[전시평론] '비비라21+'展, 일상적인 것들의 '예술적' 변용

동서양을 막론하고 동시대예술(contemporary art)을 말할 때, 이른바 ‘팝아트(Pop Art-대중예술)' 라는 이단적이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예술장르/개념을 거론하지 않고 그냥 넘어갈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1905년 마르셀 뒤샹(1887~1968)을 기점으로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본격적으로 꽃을 피우기 시작한 ‘팝아트’는 대중소비사회의 가장 대중적이고 치졸한 것도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키면서, 종래의 예술작품이 담고 있는 예술개념, 규범, 소재, 예술가/감상자의 주관적 엄숙성에 반기를 든 예술운동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를 계기로 대부분의 작가들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새롭고 파격적인 일상(평범성)의 예술적 전복을 감행하고, 그러한 시도들이 전문가들의 기대반 우려반, 그리고 대중들의 폭발적인 호응과 함께 동시대 예술의 굵은 맥을 형성해 오고 있음을 우리는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목격하고 있다. 팝아트는 특히 텔레비전이나 매스 미디어, 상품광고, 쇼윈도우, 고속도로변의 빌보드와 거리의 교통표지판 등, 다중적이고 일상적인 것들뿐만 아니라 코카콜라, 만화 속의 주인공 등 범상하고 흔한 소재들을 미술 속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이라는 이분법적, 위계적 구조를 불식시키고, 산업사회의 현실을 미술 속에 적극적으로 수용하고자 한 긍정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다. 영국의 팝아트의 선구자 리차드 해밀턴(1922~)은 대중소비시대의 바람직한 예술의 성질로 예컨대 순간적, 대중적, 대량생산적, 청년문화적, 성적(性的), 매혹적, 거대기업적인 것 등의 현대 대중문화의 속성을 조목조목 열거한 바 있다. 언뜻 보면 너무나 상업적이고, 충동적이며 흥미 본위의 가치들이지만, 기존의 미술 장르가 그러했듯이 팝아트 또한 그 시대의 시대정신과 문화가 그 안에 녹아 있음을 해밀턴은 꼬집고 있다. 

하지만 리차드 해밀턴이나 앤디 워홀(1928-1987)등이 활동하던 시기는 물질만능과 우상숭배의 산업사회였다는 점을 상기할 때, 오늘날 팝아트는 더 이상 산업사회도 아이돌 숭배사회도 아닌 맥락에서 전개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동시대 아티스트들은 초창기 팝아트의 예술의 위계질서 전복과 일상성을 재고하는 자세는 기본적으로 계승하되, 그 소재와 형식(예술표현)은 예술가들 각자가 처한 구체적인 시공간, 공동체의 문화적 가치, 공동체와 맺는 관계의 방식 등에 따라 새롭게 해체-구축하게 된다.

영·미대륙 발신의 이러한 현대예술-팝아트의 등장과 파급효과는 특히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아시아대륙, 좁게는 한국의 예술지형을 본격적으로 바꿔놓기에 충분하였다. 해외유학 자율화에 따른 신세대 작가들의 부상, 매체의 혼합과 소재의 다양화, 여기에 미디어 아티스트 백남준의 독일관 대표작가로 황금사자상 수상(1993년) 및 ‘우리문화 다시보기’ 열풍 등이 가세하면서 한국현대미술에 대한 자부심과 가능성이 재고되기 시작한 것이다.

한편, 1990년대 지자체(지방분권체제)가 정착되면서 줄 이은 광주(1995년), 부산(1998년) 등지의 비엔날레 창설과 연이은 시립 혹은 도립미술관, 지역문화센터 등의 건립과 예술지원체제는 여전히 모색 단계에 있지만 지역작가들의 창작행위를 고무시키고, 그들 사이에 중앙 즉 예술의 메카로 가야만 활동이 가능하다는 선입견 역시 불식시키는데 적잖은 역할을 해 내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일례로 중앙이 아니라 지역을 근거로 하면서 지역의 삶의 가치와 시대정신을 예술·문화적으로 승화시킴으로서 국내미술계뿐만 아니라 국제미술시장에서 그 독창성을 인정받는 지역 작가들의 사례가 잇따라 생겨나고 있다.

이상의 복합적인 예술창작과 예술정책의 세계적 흐름 속에서, 이번 제주 설문대여성문화센터가 주관한 제주 젊은 여성작가 5인 “VIVA! 비바리힐즈 21+”전 역시 지역예술의 세계무대를 향한 도전과 실험정신으로 실현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아래에서 언급하겠지만 이런 유형의 전시는 개관한지 1년 8개월 만에 공공기관으로서는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기획한 것으로, 지금까지 도내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사례라 할 수 있겠다. 물론 지금까지 제주사회에서도 다소 타이틀은 다르지만 매년 통과의례의 신진작가, 젊은 작가를 발굴 및 지원하는 제도는 존재해왔다. 하지만 기존의 신진작가 발굴 및 지원이 비평과 이론 부재 차원의 단순한 전시지원을 벗어나지 못했던 반면, 이번 설문대여성문화센터가 주관한 기획전은 제주와 여성을 테마로 하여 장시간에 걸쳐 작가들-예술평론가-큐레이터와 함께 연동하여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미학강연, 현대미술계의 흐름, 작업의 고민과 지향점, 제주·여성으로서의 아이덴티티에 대한 담론을 형성·공유하면서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번 전시는 오브제를 이용한 표현기법을 고심하는 작가(부화 걸, 이은경), 현대적 감성으로 한국화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가(가식 걸, 이미성), 일상의 다양한 움직임을 화폭에 포착하는 작가(센치 걸, 강은정), 낙원을 동경하며 치유와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는 작가(나슬 걸, 한항선), 사물간의 관계의 방식을 모색하는 작가(모를 걸, 고윤정), 이상 제주여성작가 이른바 예술 ‘비바리’ 5인의 소박하지만 담대한 이야기로, 평면 52점, 입체평면 6점, 조각 5점으로 구성되었다. 현대예술사조의 흐름에서 자의반타의반 ‘팝아트’의 후예들답게 이들의 작업 모티브에서는 주변(제주)과 일상(여성)에 대한 관심, 평범한 것을 예술적으로 승화하려는 실험정신, 내면(기억)의 순간을 시각적 언어로 압축하려는 의욕, 작품의 소재에 부합한 표현기법에 대한 고민과 성찰 등이 공통적으로 느껴진다.

이은경의 작품은 순수조형미술에서 추구하던 전통적인 재료와 기존의 표현기법에서 벗어난 새로운 조형언어로 우리의 시각환경을 확장시킨다. 그는 미술에 본격적으로 입문한 대학시절 이래 ‘비즈(beads)’라는 오브제를 통하여 생명의 ‘화려함’과 자연현상의 ‘찬란함’을 집요하게 탐구해 왔다. 비즈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신구 혹은 액세서리를 만들거나 화려한 의상을 장식하여 황홀하고 눈부시게 보이게 하는 효과만점의 일종의 보석류이다. 이은경이 다양한 빛과 형태를 자아내는 비즈라는 오브제를 통하여 집요하게 해석·표현해 온 세계는 다름 아닌 과일의 세계이다. 소재와 기법에 대한 그녀만의 다각적인 접근은 관객의 호기심을 끌어들이기에 충분하다. 작가의 말에도 있듯이 일상에서 누구나 먹을 수 있고, 쉽게 접할 수 있는 소재인 과일을 이용해 평범한 삶 속에 화려한 이면을 가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내면(과일의 씨)을 비즈로 상징화해 보자는 계기가 지금의 창작의 밑거름이 되었다 한다. 이런 맥락에서 석류, 토마토, 호박, 오렌지 등의 절단면을 이용해서 크거나 작디작은 씨 알갱이들의 존재방식을 한 알 한 알의 비즈로 세심하게 공들인 흔적을 보면 감탄이 절로 인다.

이후 작가에게 과일의 씨는 생물의 단순한 내면조직이 아니라 그녀가 사는 제주자연의 눈부신 색채이면서 동시에 화려한 생명력, 우주의 중심, 나아가 모든 존재의 근원이 될 수 있다는 해석과 확신을 갖는다. 특히 이번 전시에 주목되는 <생명의 찬가>와 <또 다른 사고...2>는 기존 비즈 작업에서 느껴지는 소재 표현의 정직성과 장인적 섬세함을 넘어 자연의 건강함 내지 생명의 찬란함이라는 철학적·상징적 메시지가 전달된다. 작가는 자연의 빛과 실내의 조명효과를 이용하여 크거나 작디작은 비즈 알갱이들을 같은 크기의 여러 장의 아크릴판에 번갈아 배치한 후, 그것들을 하나의 프레임 안에 일정한 간격으로 띄워 고정시켜 입체효과를 내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마주하는 대상은 더 이상 완두콩 또는 라임 오렌지라는 대상물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물리적 형체 너머의 아우라, 이를테면 새롭게 뿜어져 나오는 한줄기 강렬한 빛 또는 무한우주 속 온갖 생명들의 잉태의 순간마저 섬뜩 예감케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작가는 제주자연과 여성의 또 다른 존재방식을 보여주는 듯 하다. 그래서인지 이번 전시에서 이은경 작가의 애칭 ‘부화 걸’은 결코 낯설지 않다. 거기에 ‘비즈 작가’란 애칭을 하나 더 보태며 그의 세심한 장인정신과 예술적 모색에 박수를 보낸다.

이미성은 한국화를 통해 제주의 신세대의 힘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작가다. 그는 제주도 한라산 끝자락 해발 280m의 고지대의 작고 조용한 산촌 마을 동광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고지대 산자락 특유의 계절의 변화무쌍함과 자연의 위대함과 매서운 위력을 몸소 체험했다 한다. 그런 환경 속에서 이웃과 공존하며 생명과 자연을 가꾸고 기르는 지혜를 일찍이 터득해서 일까, 도심에서 자란 신세대들과 달리 근래 보기 드문 도인다운 서정이 아련히 묻어나는 작가다. 그에게선 언제나 다소곳하면서도 생기발랄한 26세의 여성의 모습과, 고집스럽게 일에 몰두하며 인간의 내면세계와 자연의 이치를 차분하게 터득해가는 작지만 당찬 사색가의 모습 역시 읽을 수 있다. 이런 사람이기에 그녀에겐 ‘한국화’라는 장르가 너무나 잘 어울린다.

하지만 한국화라 해서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관조적인 자연경관과 풍류의 정서 등만을 화폭에 담아낸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산이다. 특히 최근 신진작가들의 한국화를 보면, 거기에는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일상의 전복과 주관적 엄숙성에 반기를 든 동시대예술-팝아트적 시대정신이 반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화의 기법을 재해석하여 강렬한 색채와 현대적인 감각으로 이를테면 마이클 잭슨, 슈렉, 수퍼맨 등 영화속 캐릭터와 유명인들을 수묵의 필치로 담아내어 국내와 해외 미술시장에서 반향을 일으키는 한국화 작가들이 속출하는 것을 보면 이상한 말도 아니다.

이런 맥락에서 이미성의 작품은 예리한 관찰력과 극사실적 표현기법으로 우리 주변의 소박하고 눈에 띄지 않은 평범한 여성들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얼굴의 미묘한 변화와 섬세한 표현을 한층 더 돋보이게 하기 위해 그는 주로 전통 채색인 장지 기법을 이용한다. 색을 천천히 쌓아 올려줌으로써 인물의 깊이감이 더해져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더욱더 화면으로 빠져들게 마력이 있다. 언뜻 보기엔 단순한 타인들의 초상화처럼 보이나 그들은 다름 아닌 어느 순간 강렬히 지각되는가 싶더니 어느새 사라지고마는 나의 또 다른 모습이다. 때론 은밀하게, 우아하게, 고독하게, 강렬하게 때론 불안하기만 한 다양한 존재 형태가 예리하고 단정적인 선 처리, 먹 색깔의 명암을 통해 잘 묘사되고 있다.

한편, 화폭 속 여성들의 다양한 각도의 시선을 통한 주변 세계와의 관계맺기 방식 역시 작가 이미성만의 독자적인 체험과 기억 속에서 소화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미성의 작품세계는 흑백 초상화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분채(粉彩)를 이용하여 일상의 잡동사니가 등장하는 가게풍경을 경쾌하고 로맨틱하게 표현하는 등, 앞으로 더 기발한 소재와 대범한 표현기법으로 한국적 팝아트의 후예답게 더 넓은 시선으로 세계를 해석하는 작가로 거듭나리라 기대해본다. 스스로 본인의 애칭을 ‘가식 걸’이라 하는 이미성 작가에게 ‘시선 작가’라는 또 다른 애칭을 보태본다.

강은정의 그림세계는 언제나 유쾌하다. 일상의 아기자기함이 간결명료하면서도 과감한 선과 색감으로 보는 이들을 즐겁게 한다. 비오는 날 알록달록하게 우산으로 가득 찬 거리를 좋아하고, 그 때의 비의 향기며, 일상에서 그를 스쳐가는 사람들의 색깔, 향기, 걸음걸이에서도 그림을 그릴 소재가 생긴다는 작가의 말처럼 강은정은 일상을 따스한 시선과 애정 어린 관심으로 포착, 그것에 약간의 궁금증과 긴장감이 감도는 분위기를 조성해서 작품으로 승화하는 재기발랄하고 감성이 풍부한 작가다.

이번 전시에 출품한 30점의 발걸음 동작(각 38×38cm, 캔버스에 아크릴)시리즈만 봐도 우선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은 뒤, 그 다음에는 그들로 하여금 그곳이 어디인지, 어디로 가는 것인지, 그 상반신의 의상이며 얼굴은 어떤 모습인지, 무슨 생각을 하며 걷고 있는지 등등 이런저런 유쾌한 궁금증을 자아내는 마력이 있다. 장면 하나하나마다 그것만의 완결된 스토리가 될 수도 있고, 전체화면 그 자체가 하나의 우연하면서도 거대한 스토리가 되어 현실과 환상세계를 넘나들기도 한다. 사

실 궁금증이 생기면 대개의 사람들은 그것을 꼭 알아야 직성이 풀리는 법이지만, 작가의 작품 속에서는 궁금하면 궁금한 채로 넘어가되,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찜찜하거나 뒤끝이 불편해지는 법은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어쩌면 강은정의 작품이야말로 일종의 풍자와 역설이 숨어있다는 생각이 스친다. 평범하고 아기자기한 스토리가 분명 있는 법하면서도 사실은 유(有)-스토리가 무(無)-스토리로 끝나는 세계 말이다. 작가를 따라 뭔가 열심히 발걸음을 쫓아 따라갔는데 뒤를 돌아보니 그 어떤 이의 발자국도 없는 그런 어리둥절한 시튜에이션 말이다. 작가 본인을 포함하여 우리 모두는 어느 순간부터 장면 속의 유의미한 스토리를 따라간 것이 아니라, 매력적으로 잘 조합된 색깔과 ‘뚜벅뚜벅, 또각또각’과 같은 의미 이전의 자연의 소리세계에 넋을 놓고 있었음을 한참 뒤에야 깨닫는다.

강은정은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본인이 경험한 수많은 상황과 기억, 구체적이거나 추상적으로 떠오르는 장소, 그 장소에 대한 감정과 이미지, 그것들을 장식하는 갖가지 소품 등이 서로 우연히 만나고 그것들은 불규칙한 방식으로 조합된다”고 말한다. 그 말은 다시 말하면, 일상생활에서 규칙적이며 원인결과적으로 맺어진 대상세계 등은 보여지는 예술작품로 변용될 때, 대상 간의 탈맥락화(탈영토화) 내지는 재조직화(재영토화)의 과정을 거쳐, 그 결과 의미 있는 세계는 무의미하게, 반대로 무의미한 세계는 유의미하게 된다는 말과 잘 맞아떨어진다. 앞으로는 자신을 둘러싼 세계, 역사, 환경 등의 보더 큰 테두리에서 의미-무의미의 역설적인 스토리 작업을 더욱 재치있게 할 것을 기대하며, 강은정 작가에게 의미(현실)-무의미(환상)을 넘나드는 ‘또각또각 작가’란 애칭을 보낸다. 

한항선 작품은 마치 슬프고도 애틋한 이야기를 한편 전해 듣는 느낌이 든다. 한국말 ‘낫다’의 미래형을 제주어로 표현하면 ‘나슬 거여’라 하는데 여기에 착목하여 작가는 스스로의 애칭을 ‘나슬 걸’이라 부르면서 언젠가는 '아픔이 사라질 것이다', '괜찮아 질 것이다'라는 치유와 희망의 메시지를 화폭마다 담아내고 있다. 유년기 엄마의 잦은 입원과 대수술의 기억이 아프고 우울한 사람과 치유의 메시지로 결집되어 그의 작업 모티브를 형성하고 있다.

사실 동서양을 막론하여 회화의 역사를 돌이켜 생각해보건 데, 화폭에 재현되는 대상세계는 지극히 제한되고 엄선된 세계였다. 인간은 눈을 통해 세계를 바라보는 존재다. 근대예술은 일례로 눈앞에 펼쳐진 자연의 경이롭고 아름다움에 경도되어, 그것을 그 순간에만 느낄 수밖에 없다는 안타까움에 그 대상세계를 화폭에 담아 소유하여 자신이 원할 때면 언제나 펼쳐보는 것이 관례였다. 인류 초기에는 생명과 자연을 관장하는 초월적인 힘과의 만남을 열망한 나머지 그들은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초월적인 힘을 그들 식의 이미지로 동굴의 벽이나 돌, 종이, 화폭 등에 담아 성스럽게 모시기도 하였다. 이처럼 인간들에 의해 재현된 세계는 대부분 초월적인 것, 성스러운 것, 아름다운 것, 강한 것, 위대한 것, 화려하고 밝은 것, 영원한 것, 생동하는 것 등등으로 제한되었던 것이다.

그러한 것들만을 접하고 소유하고자 열망한 사람들은 대상세계의 위계질서를 만들고, 공동체를 형성해서 문화적 가치를 전수하고, 심지어 예술의 법칙과 미의식의 보편성을 확립하는 한편, 그렇지 못한 것들, 이를테면 소멸하는 것, 어둡고 칙칙한 것, 불안과 우울과 같은 감정적인 것, 약한 것, 죽음과 같은 순리적인 것, 배설물과 같은 일종의 추한 것 등등에 대해서는 죄다 공공영역에서는 물론 예술의 영역에서 추방하였다. 사실 이와 같이 엄격하면서도 허황된 위계질서와 주관성에 반기를 들고 나선 것이 마르셀 뒤샹 이후의 동시대예술-팝아트이다. 그는 남성용 소변기를 전시관에 가져와 《샘 Fountain》이라는 제목으로 출품한 사건은 미술계의 전설이 되었다.

한항선의 작품을 대하고 있노라면 예술의 파란만장한 역사적 맥락이 떠오른다. 예술은 여전히 언제까지나 초월적이며 아름답고 밝고 생동하는 것이라 믿고 있는 이들에게 한항선의 작품은 사실 불편할 따름이다. 그 속에는 슬픈 얼굴을 한 여성, 약하디 약한 어린이, 길 잃은 동물들 등 고전 예술의 규범에서 벗어난 소재와 어두운 색채가 전면에 들어나 있기 때문이다. 갑자기 일평생 제주의 어두운 역사 제주4·3항쟁만을 다룬 어느 작가의 말이 떠오른다. “일반 대중들의 구미에 맞고 미술시장에 팔리는 아름답고 밝고 예쁜 그림을 못 그려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본인마저 그 대열에 합류한다면 그 누가 우리의 어두운 역사와 상처를 기억하겠느냐고...” 이 작가의 말처럼 한항선 역시 현실의 어두운 면을 어루만지며 시대의 치부와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겪고 있을법한 아픔을 화폭에 담으면서 그 치유의 해법을 고집스럽게 모색하고 있다. 바로 여기에 작가의 동시대예술-팝아트적 정신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한항선 작가에게는 ‘이야기 작가’란 애칭이 어울린다. 앞으로 소재와 표현기법 간의 관계성에 대해 더욱 고민하여 어둡지만 흥미있고, 절망을 희망으로 만드는 이야기가 화폭에 새록새록 넘쳐났으면 한다.

조각가 고윤정의 작품에는 강하면서도 진지하고 때론 솔직담백함이 묻어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자연과 인간 등, 대상세계들 간의 관계의 방식에 집중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작가는 자신의 생각과 관계없이 획일적인 생각을 강요하는 사회와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가치관으로 똘똘 뭉친 주변 세계에 대해 본질적인 의문을 품게 되면서, 세상에 존재하는 대상세계들 간의 관계방식을 작품의 모티브로 끌어올리고 있다. 작가의 기억에 초등학교 때 남녀 불문하고 남들 냄비받침 만든다고 할 때, 그는 그것의 10배가 되는 발판을 조립해보겠다고 애쓴 적이 있다 한다. 당시 본인이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둘째 치고 판 한 쪽을 망치질하면 다른 한 쪽이 튀어 나오는 과정을 몇 번이나 반복하면서 애섰다는...그 말만 들어도 짐작할 수 있듯이 고윤정은 조각가로서의 기량과 배짱을 어려서부터 차근차근 닦아 온 근래 보기 드문 제주의 촉망받는 신진 조각가다.

평면회화와 달리 조각은 3차원의 입체세계이기 때문에 시각적 효과뿐만 아니라 촉각적 요소도 중시되는 것은 물론, 규모에 따른 양감, 질감, 비례, 나아가 빛의 변화에 따라 입체물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그림자 운동도 중요한 요소를 차지한다. 작가는 이러한 복잡한 공정을 거치는 조각이라는 장르를 통하여 3차원의 공간 속에 자기 내부에서 발현되는 다중(多重/多衆)의 정체성을, 이를테면 계단에 앉은 소녀의 모습으로, 무릎을 꿇어 고개를 지면에 처박은 한 젊은이의 모습으로, 또는 인간 신체의 기관인 심장 등으로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다. 거기에 기존의 조소작품이 입체미 내지 조형미에 무엇보다도 액센트를 찍어 마무리하는 것과 달리 고윤정은 완성된 입체물에 ‘옷’을 입혀 조형물을 한층 부드럽고 인간적으로 만들어 낸다. 이른바 조소에 회화적 기법을 가미한 것으로, 일례로 물이 담긴 넓은 용기에 마블링 물감을 풀어 작가가 원하는 색감과 모양이 나올 때까지 단시간 또는 장시간 기다렸다가 그것을 종이에 흡수시켜 말린 후 이를 최종적으로 완성된 조형물에 콜라쥬하는 공정이 그것이다. 작가의 기량과 독자성은 바로 이런 실험정신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발현되고 있다 하겠다. 그의 작가노트를 살짝 훔쳐본다.

“모든 대상은 다양한 대상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 다양한 대상들과의 관계는 그만큼 다양한 관계의 형식적 복잡성이 따른다. 작가는 이처럼 관계를 통해 파생되는 다양한 현상들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 나를 둘러싼 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나’는 여러 모습이 혼재하고 있다. 한 사람의 삶에는 보다 세세한 변수들이 개입되어 삶에 영향을 미친다. 즉 ‘다른 경험’으로 형성된 ‘다른 가치관’들 중에서 보다 많은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가치관들의 지배를 받는다. 나는 다양한 관계의 대상 중 인간의 한 사람으로서, 내가 바라보는 다양한 관계의 방식을 통해 파생되는 다중(多重/多衆)의 정체성에 관심을 갖고 이를 작품을 통해 표현한다.”(고윤정)

세상에 존재하는 대상과 대상들은 '차별'이 아닌 '차이' 내지는 '다름'으로 존재한다는 생각으로 오늘도 작업실에 홀로 앉아 본인의 제2, 제3의 얼굴을 빚어내고 있는 고윤정 작가에게 ‘궁금 작가’라는 애칭을 달아 보면서 비평글을 매듭지으려 한다.

이상, 제주에서 만난 5인의 예술 ‘비바리’들의 작가적 면모와 작품세계를 거칠게나마 소개하였다. 이번 전시가 그들에게 한층 더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고, 한편 우리의 ‘현재’를 이루고 있는 나, 가족, 이웃, 여성, 사회, 역사, 환경, 미래, 세계 등등의 단위를 각자의 작업 모티브 속에 보다 더 적극적이고 치밀하게 끌어내어 ‘사유’와 ‘소통’의 창구로서 예술의 존재이유를 담대하게 보여주는 작가로 거듭 성장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이번 기획전은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설문대여성문화센터가 주관하여 제주여성과 자연을 주제로 작가들-예술평론가-큐레이터와 함께 연동하여 결실을 맺은 것이다. 이를 계기로 앞으로 더욱 분발하여 설문대여성문화센터가 ‘제주’와 ‘여성’에 대한 건강하고 신선한 담론 모색의 메카로 굳건히 잡고, 그 일환으로 지역의 젊은 미술주체들에게 분발을 촉구하는 의미에서 정기적이고 체계적인 <젊은, 여성, 미술> 프로젝트를 탄탄하게 추진하여 제주를 대표하는 여성작가를 발굴하고, 그들과 함께 지역여성 나아가 세계여성들과의 네트워크를 확장하는 제주여성 문화공간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면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 고영자 예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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