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차진’의 ‘그치다’는 ‘끊다’[斷] 또는 ‘베다’[割], ‘잇으다’는 ‘잇다’[繼]의 제주어이다. ‘그차진 목을 잇으다’는 ‘끊긴 목을 잇다’라는 말이다. 정치를 담당하는 권력자들의 세계에서는 망나니를 두어 생사람의 목을 치는 수도 있었지만, 제주도 백성들의 세계에서는 산짐승, 미역, ‘코지’까지도 끊긴 목을 잇는 일이 전승되었다. ‘코지’는 바다 가운데로 뾰족하게 나간 육지이거나 갯바위이다.다만 제주도 백성들의 세계에서도 사회생활에 필요한 식자재 확보 수단으로 ‘피쟁이’를 두고 마소 따위의 목을 치고 도살하는 수가 있었을 뿐이
남풍은 남쪽, 또는 남동쪽에서 기원하여 북쪽, 또는 북서쪽으로 부는 바람이다. 제주도 사람들은 남풍 또는 남동풍을 ‘마보름’이라고도 일렀다. 이하 ‘마보름’을 남풍이라고 일관한다. 남풍은 따스하고 물기가 많은 축축한 바람이다. 그리고 북풍은 북쪽, 또는 북서쪽에서 기원하여 남쪽, 또는 남동쪽으로 부는 바람이다. 제주도 사람들은 북풍, 또는 북서풍을 ‘하늬보름’이라고 일렀다. 이하 ‘하늬보름’을 북풍이라고 일관한다. 북풍은 차갑고 건조한 바람이다. 제주도에서 남풍 계절은 청명(4월 5일경)부터 추분(9월 23일경)까지, 그리고 북풍
고씨 어르신에게 가르침 받은 제주도 토종 감1996년 어느 날, 나는 제주시 건입동에 사시는 고○○(1931년, 남) 어르신에게 제주도에서 전승되는 재래종 감을 가르침 받았다. 지금은 돌아가신 고씨 어르신은 살아생전에 제도권 교육을 받지 않으셨지만 나에게 큰 가르침을 한없이 주셨다. 고씨 어르신에게 나는 제주도 토종 감도 가르침 받았다. 제주도 토종 감은 ‘고레감’, ‘쉐불감’, ‘폿감’, ‘조밤감’ 네 가지가 전승된다는 것이다. 나의 필드 노트에 적어 놓은 내용은 다음과 같다. ▲ ‘고레감’은 ‘고레’처럼 납작한 감이지.(제주도
‘두모악’의 등장‘두모악’을 논문으로 맨 처음 발표한 사람은 한영국(韓榮國)이다. 한영국(韓榮國)은 1981년 『한우흔 박사 정년기념 사학논총』(韓㳓欣博士停年紀念私學論叢)에서 「‘두모악’고」(‘頭毛岳’考)를 발표하였다. 그 내용의 대략은 다음과 같다.조선 시대 때 ‘두모악’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두모악’(頭毛岳)은 ‘두무악’(頭無岳, 頭無惡), ‘두독야지’(豆禿也只)라는 이름으로도 불리었다. ‘두모악’은 제주도를 떠난 이들이다. 원래 거주지였던 제주도를 불법적으로 이탈하여 전라도나 경상도 해안에 거주하던 제주도민을 가리키는
마을마다 이름을 갖고 있다. 제주도 여러 마을 이름에는 자연발생적 이름과 인위적 이름이 있다. 자연발생적 마을 이름은 그 마을 주변, 곧 제주도 사람들이 지은 이름이다. 인위적 마을 이름은 마을 사람들의 합의에 따라 지은 이름이다. 옛날 마을 주변 사람들이 하나의 마을 이름을 지은 까닭은 여러 마을을 구분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래서 자연발생적 마을 이름은 오랫동안 통용되었다. 그러다가 19세기 후반 무렵에 이르러 제주도 여러 마을 사람들은 스스로 마을 이름을 짓는 수가 많았다.제주도 여러 마을의 자연발생적 마을 이름 속에는 제주도
‘촐’(꼴)은 주로 소에게 먹이는 월동 사료 풀이고, ‘새’(띠)는 표준어로 띠에 해당하는 초가지붕을 덮는 풀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비곡’의 ‘비다’는 베다[刈]의 제주어다.제주도 사람들은 ‘촐’과 ‘새’를 밭에서 마련하였다. 밭은 곡류, 채소, 풀을 심어 농사를 짓는 땅이다. 제주도에서 농사를 짓는 밭은 네 가지가 있다. 제주도 이외의 육지부 농가에서 농사를 짓는 땅은 밭과 논 두 가지만 거느리고 있는 것과 달랐다. 제주도의 밭은 마소의 월동 사료인 촐을 가꾸거나 자라는 땅인 ‘촐왓’, 그리고 초가지붕을 덮는 풀인 ‘새’를 가꾸
제주도의 산짐승제주도 사람들은 산야에서 산짐승을 잡았을 때, 이웃 사람들에게 산짐승의 고기를 나누어줄 때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었다. 산짐승의 고기를 나누어주기를 ‘분육’(分肉)이라고 하였고, 나누어주지 않기를 ‘비분육’(非分肉)이라고 하고자 한다. 제주도 사람들이 사냥물을 놓고 이루어졌던 ‘분육’과 ‘비분육’에는 법도(法道)가 있었다. ‘법도’는 법률을 지켜야 할 도리라는 말이다. 왜 제주도에서는 ‘분육’과 ‘비분육’의 법도가 작용하였을까. 그 배경의 속내로 쑥 들어가 보고자 한다. 이 글은 제주도 사람들이 삶에 필요한
제주 선조들의 땀내 나는 일상을 살펴온 ‘서민 생활사 연구자’ 고광민 선생의 연재 ‘제주 생활사’가 8년 만에 [제주의소리]를 통해 돌아온다. 바로 ‘고광민의 제주 생활사’다.‘제주 생활사’는 지난 2010년부터 2014년까지 도내 일간지와 간행물을 통해 연재됐다가 총 112편으로 중단된 바 있다. 이후 2016년 제주지역 출판사 ‘한그루’를 통해 책으로 묶어 발간됐다. 책 ‘제주 생활사’는 “주류의 역사나 정치사회사가 아닌, 고단한 생업의 현장에서 하루하루를 꾸려나갔던 옛 제주 사람들의 삶의 방식과 그 속에 담긴 지혜”를 68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