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아주 경이로운 책과 만났다. ‘양을라 종실 한라태자 종부정 대종회(회장 양인)’라는 긴 이름의 종친회가 펴낸 ‘탐라왕조실록’이다. 이 책은 저자(양인)가 할아버지에게서 들은 이야기와 종실의 서고에 있던 종중기록물(족보 등), 사료 등을 모아서 엮었다.책의 내용은 탐라왕국 개국 1세 양을라에서부터 마지막 왕인 109대 고자견까지의 왕조실록으로 4천여 년 동안 묻혀 있던 탐라왕국 이야기를 발굴한 것이다. 이는 ‘조선왕조실록’에 버금가는 대단히 귀중한 사료라고 판단된다.이 책의 신빙성이 어느 정도인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3307
태ᄉᆞᆫ땅 밟기당초 한 달 일정으로 출발한 도일주 도보여행의 대장정은 10일간의 소장정(?)으로 끝날 것 같다. 그러나 불가피한 경우에 택시나 버스를 이용했으나, 1일 20~25km를 걷는 강행군으로 그야말로 고난의 행군이었다. 끝없는 수평선, 넘실대는 파도를 바라보며 제주섬을 한 바퀴 도는 동안, 나는 섬 땅의 속살과 민낯을 들여다 보는 놀라운 체험을 했다.제주 사람들은 예부터 고향을 ‘태ᄉᆞᆫ땅’이라고 했다. 태(胎)를 사른 땅이라는 뜻이니 이보다 더 의미심장하고 절묘한 표현이 또 있을까. 제주인이 제주를 잘 모르거나 알
부초처럼 떠도는 삶,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일상, 그것이 지금 나의 생의 일차적 목표이다. 2022년 4월 28일, 바람따라 구름따라 유랑하는 집시처럼 배낭 하나 짊어지고 도일주 도보여행을 떠난다. 용두암에서 출발, 해안선을 따라 제주섬을 한 바퀴 도는 대장정(?)이다. 동행이 없는 순례이지만 당장 가지 않으면 영원히 못 간다는 절박감으로 길을 나선다.수년 동안 미루고 미루다가 마침내 떠나기로 결심했는데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 도보여행이 될 지도 모른다는 예감을 가지고 출발한다. 오래 전 작성한 버킷리스트(걷기 관련)에는 산티아고
먼저 대한민국 대통령에 당선된 걸 축하드립니다.이번 대선 결과는 정권유지와 정권교체 중 약간 더 많은 국민이 후자를 선택한 것입니다. 이는 한 마디로 국정개혁을 바라는 국민적 열망의 표출이었지요.새뮤엘 헌팅턴의 ‘점진전략·전격전술’은 국정개혁의 방법론을 제시한 탁견이라고 보는데요. 개혁과제를 선정하여 우선 순위에 따라 하나씩 점진적으로 추진해 나가되, 과제가 선정된 후에는 반대 세력이 결집할 시간을 주지 않고 전격적으로 밀어붙이는 전술이 필요하다는 거예요.집권 1년 안에 밀어부쳐야 할 개혁과제는 무엇일까요? 잡다한 수식어 빼고 문제
철학이란 무엇인가? 지행합일(知行合一)이다. 삶과 철학을 분리하지 않는 것―삶의 곧 철학이다. 철학을 삶으로부터 멀어지게 한 책임은 온전히 철학자들에게 있다.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가 미술의 대중화를 위해 씌어진 것처럼 펑유란의 ‘중국철학사’는 철학의 대중화를 선언한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이 책은 ‘철학은 난해한 것’이라는 통념을 깨부순다. 달리 말하면 ‘철학이 ’지적 유희‘가 아니란 걸 보여준다.중국 철학의 양대 산맥중국 사상의 양대 조류는 유가와 도가이다. 이 두 학파는 오랜 세월 동안 발전을 거듭한 결과, 중심부의 자리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해저터널 건설’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이는 필자가 이미 8년 전에 주장했던 것이다. (제주의소리, 2014.5.27. 해저터널은 제2의 세월호 막는 안전장치 참조)제주와 육지를 잇는 해저터널 건설은 제주도라는 섬이 생긴 이후(탐라국 개국 이후) 최초요, 최대의 토목공사로서 천지개벽, 파천황의 사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중대사이다.‘제2공항 건설’ 사례에서 보아왔듯이 이런 대역사를 추진하는 데는 항상 찬성·반대가 첨예하게 대립한다. 찬성파는 장점만, 반대파는 단점만 부각하기 때문에 합의에 도달하기가
1. 골빈당의 계보와 의미지난 주 골빈당 창당 50주년(2022년)을 준비하기 위한 전당대회가 북경반점에서 열렸다. 무슨 거창한 정치인들의 모임이 아니라 골빈당이란 친목 단체의 회동이었다.골빈당은 1972년 제주시 남문로 소라다방에서 스무 살 남짓한 더벅머리 총각들이 모여 창립했다. 골빈당원들은 소라다방 일대의 술집을 누비며 낭만을 구가하던 로맨티스트였고, 군사독재 시대의 암울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오로지 문학과 술로 허기를 채우며 열정과 광기를 분출하려고 했던 데카당이었다.시대의 고뇌와 좌절을 짊어진 청년들은 시계와 점퍼를 저당
1. 2030 잡지 말고 교육을 잡아라요즘 대선 레이스가 한창 달아오르고 있지만 주자들은 교육에 별로 관심이 없는 듯 하다. 연일 온갖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으나 교육 정책은 잘 안 보이기에 하는 소리다.2030을 잡겠다, 중도를 잡겠다, 난리를 쳐대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교육을 도외시하는 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처사다. 왜냐하면 전국의 학생 수는 대략 1000만명, 교원과 학부모 등을 합치면 3000만명이 직접 관련자이고 간접 관련자까지 더하면 전 국민이 ‘교육 관심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그런데도 역대 대통령이
1.오래 전, 20대 때 노자의 ‘도덕경’을 읽다가 던져버렸다.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고, 도(道)와 덕(德)의 개념도 애매모호했기 때문이다.도덕경 제1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말할 수 있는 도는 늘 그러한 도가 아니요, 이름 붙일 수 있는 이름은 늘 그러한 이름이 아니다.(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도대체 처음부터 뭔 헛소릴 지껄이는지 아리송하다. 만일 노자가 예수처럼 비유를 들어가면서 구체적으로 설명했다면 난 도덕경을 끝까지 읽었을 거다.최근에 나는 미망에 둘러싸인 달을 가리키는 노자의 손가락을 찾았다.2. ‘장자
라퐁텐 우화에 나오는 이야기다.한 나라의 왕이었던 사자가 죽자, 짐승들은 새로운 왕을 뽑기 위해 모였다. 전부 왕관을 써보았으나 아무에게도 맞지 않았다. 그때 원숭이가 왕관을 쓰고 곡예사처럼 재주를 부리자, 그게 재미있어서 동물들은 원숭이를 왕으로 추대했다. 후에 여우가 보물이 있는 곳을 알려주겠다며 원숭이를 유인하여 함정에 빠뜨린 다음, “그대가 우리를 지배할 수 있는가?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놈이...”라고 조롱했다. 그제서야 원숭이는 왕관을 쓰는 일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가당치 않다는 걸 깨닫고 주저 없이 왕위를 버렸다.
1. 만약 주역을 읽었더라면….대장동 개발 사업(특혜 의혹 사건)이 세간의 화제가 됐을 때, 필자는 회사 이름(화천대유, 천화동인)을 보고 졸지에 동양 고전인 ‘주역’이 각광을 받고 있구나, 정도로 여겼다.그런데 사건의 베일이 조금씩 벗겨지면서 이 사건의 배후에 엄청난 부정과 비리가 숨어있다는 사실을 간파했다.주역의 대유괘(大有卦)는 ‘온갖 것이 잘 자라 풍요롭다’, 동인괘(同人卦)는 ‘서로서로 이롭다’는 뜻이다. 아마도 특혜 의혹의 핵심 멤버들이 도원결의를 하면서 “서로 힘을 합쳐 크게 한탕 해보자‘는 의도로 회사명을 지었다고 추
1. 코로나 바이러스의 집단 감염으로 온 나라가 야단법석인데 대장동 의혹으로 벌집을 쑤신 듯 시끄럽다. 역병보다 더 심각한 건 확증편향의 집단 감염이다. 여기에 더해서 아노미 상태에 빠진 무규범의 집단감염이 치명적이다.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일시적인 격정이나 열정에 휘말리는 파토스만 있지 사회 집단의 도덕적인 기풍을 뜻하는 에토스가 사라졌다. 과거에는 만인 공통의 가치관이나 도덕 기준,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규범이 있어서 대다수 시민이 이에 동의했다.그런데 지금은 자칭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적 편견에 사로잡힌 자들이 자신만이 선이고 정
2021년 9월의 어느 날,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 예수가 나타났다. 그의 옷차림 남루했고 얼굴엔 덕지덕지 때가 묻었으며 덥수룩한 수염이 안면을 덮었다. 오래 굶주렸기 때문에 그의 걸음걸이는 비틀거렸고 고사목처럼 곧 쓰러질 것 같았다.범상치 않은 건 광채나는 그의 눈빛이었다. 형형한 안광은 사람을 압도하는 위엄이 있었으며 그와 눈을 마주친 자들은 얼른 시선을 돌려버렸다.얼마 후, 그는 도심의 시장통에 들어가 상인들에게 말했다. “회개하십시오. 회개한 자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그 분은 우주만물의 창
적당히 마시면 술은 백약의 으뜸(百藥之長)이다.누군가에게 술은 삶의 활력소, 윤활유가 되고 성욕을 북돋아주는 최음제, 불면을 치유하는 수면제, 불안·슬픔·아픔을 잊게 하는 마취제가 된다.반면에 서양 속담은 “악마는 인간을 방문하는 일이 너무 바쁠 때 자기 대신 술을 보낸다”고 한다. 그러나 이 풍진 세상 술 없이 무슨 낙으로 살 건가? 나는 술 없는 장수(長壽) 보다 술 있는 단명(短命)을 택하겠다. 말하자면 곧 죽어도 술이다. 술꾼의 분류나는 술꾼을 이렇게 분류한다.애주가(愛酒家)는 거의 매일 마시는 사람. (필자의 청년기)
김원웅 광복회장은 작년 광복절 기념식에서 이승만 대통령과 애국가 작곡가 안익태 선생을 친일파로 매도하고 대한민국은 민족반역자를 청산하지 못한 유일한 나라라고 했다.금년 광복절 경축식에서도 그는 역대 보수정부를 친일정권이라고 비난하면서 “이런 세력은 대한민국 법통이 임시정부가 아니라 조선총독부에 있다고 믿는다”며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했다.역사를 바라보는 시각, 관점을 사관이라 하는데 어떤 사관을 갖느냐에 따라 역사 해석이 달라진다. 그렇다 해도 선입견이나 이념적 편견, 호불호의 감정에 의해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평가하
나는 매일 죽었다 깨어난다.아침에 세수할 때 사도신경을 외면서 숨을 참았다가 내쉬는 훈련(?)을 매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신체 훈련에 불과하지만 영적으로 보면 내 나름의 수행이요, 구도다.대다수가 죽음은 먼 훗날의 이야기고 나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하지만 언제든지 각종 사고나 질병으로 죽음과 직면할 수 있다. 사실 평소엔 잘 느끼지 못하지만 우리 모두는 죽음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으며 그것은 매일 조금씩 죽어가고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그래서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과 절차에 대해 늘 염두에 둬야 한다. 곧, 죽음 준비이고
코로나 팬데믹 시대의 가장 불편하고 짜증나는 일은 여행이 불가하다는 것. 나처럼 역마살 있는 인간이 바깥 구경 못하니 온몸에 두드러기가 생기는 중. 하여 나의 계획은 8월, 2차 백신 접종이 끝나는 즉시, 무조건 해외로 튈 생각.하와이든, 사이판이든 어디든 땡큐! 그 동안은 여행기나 읽으면서 여행의 즐거움을 대리체험하는 게 장땡! 지금 상상열차를 타고 세계의 곳곳을 누비며 씽씽 달리는 중.세계의 4대 여행기는 이븐 바투타여행기,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오도릭의 동방기행이다. 이 가운데 나는 바투타
‘작은 사랑의 씨앗 운동’은 30여 년 전 제주도교육청에서 시작됐다. 직원들이 매월 월급에서 천 원 미만의 자투리 금액을 기부해 불우한 이웃을 돕는 운동이다.처음엔 교육청 직원들만 참여하던 운동이 산하기관(각급 학교, 사업소)으로 확산하면서 나중엔 적립금이 수 억 원에 이르렀다. 실로 ‘티끌 모아 태산’이요, 이소성대(以小成大)란 말이 실감되는 사례였다.작은 사랑의 씨앗을 뿌렸더니 매우 큼지막한 열매를 맺는 것이다. 매스컴에서 어려운 이웃이 있다는 보도가 나오면 바로 작사동의 성금이 전달됐는데, 많은 이들이 혜택을 입었다.큰 금액은
모든 것을 황폐화시킨 세월은 70년이 흐르고 서야 자신의 속살을 조금씩 내비치기 시작했다. 일흔 살이 되고서야 생의 비밀을 엿보게 됐다는 말이다. 이제야 뿌연 안개 속에 가려져 있던 인생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나는 것 같다.1. 인생은 인과응보다뿌린 대로 거두는 게 인생이다. 법 구경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악인이 한 때 잘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건 하늘이 악의 열매가 익어 떨어질 때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고대의 역사가 헤로도토스가 말한 역사의 교훈은 두 가지다. 인과응보와 인생무상―그것이 인간의 역사를 지탱해온 두
1.연극(drama)의 어원은 드로메논(dromenon, 제사행위)인데, 제단을 만들고 제물을 진설해 절하고 기도하는 절차가 드로메논이다. 신의 내력, 우주의 기원을 알리는 절차가 드로메논이고 이것의 변형된 형태가 오늘의 연극이다.또한 신화(myth)의 어원은 뮈토스(신의 내력담)인데, 뮈토스는 제사할 때 드렸던 기도문이나 발원문으로 제주굿의 본풀이에 해당하며 이것의 변형된 형태가 오늘의 희곡이다.제주에는 1만8000의 무속신(巫俗神)이 있었다고 전해져 오는데 이는 일만 팔천개의 본풀이가 있고 그만큼 많은 연극(제사, 굿)이 행해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