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양동규. 그의 예술은 ‘학살로서의 4.3’을 살피는 일에서 출발했다. 카메라를 든 그의 시선은 늘 제주 땅과 사람에 고정돼있다. 그러나 섬의 항쟁과 학살이라는 특수성의 조명은 결국 한반도와 동아시아, 더 나아가 세계평화라는 보편성으로 확장하기 위한 평화예술의 길임을 누구보다 잘 아는 실천적 작가다. 매주 한차례 [양동규의 필·필·필 film·筆·feel]을 통해 행동주의 예술가로서의 그만의 시각언어와 서사를 만날 수 있다. / 편집자 글한라산 자락 오름에 봉화를 올리고 뜨거운 함성을 외쳤다. 남한만의 정부 수립을
부재의 존재“있어야 할 자리가 아니라 뜻밖의 자리에서 마주할 때엔 이상한 기분이 들어. 그게 연결되지 않은 장소여서 그렇기도 하지만 도저히 연결되지 않는 공간, 어쩌면 다른 세상에서 온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거든. 그런데 그게 그것들이 원하는 장소이거나 위치는 아니었을 거란 거지. 그래도 어찌 되었든 존재해왔던 것이고 존재하고 있고 존재해가는 것이어서 의미는 있지 않을까 하는 거야. 그런데 가끔은 그곳에 있으면서도 없는 것 같은 존재도 있거든. 그곳에 있지만 전혀 의미를 찾을 수 없는 것들도 존재하는 거지.”얼마 전에 끝난 화제
보는 나무, 기억을 담은 산 아니시나베 세계관에서는 나무를 사람으로 친다. 나무는 ‘서 있는 사람들’이다.(「향모를 땋으며」 로빈 윌 키머러) 우리에게 오래된 나무는 하늘과 땅을 연결해 주는 신목이었다. 나무는 서 있는 사람들이고, 서있는 시간을 겹겹이 쌓아 올리며 오랜 세월을 버텨낸 나무를 신목이라 불렀을 것이다.오랜 세월을 버티며 서 있었던 나무는 흘러간 모든 것을 보았을 것이다. 나무가 보았던 모든 것들은 기억이 뉴런들과 시냅스들에 인코딩되어 저장되는 것처럼 숲속 깊은 곳에 남아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무가 보는 모든 것들이 뿌리
동시대 스냅 예정된 시간에 맞춰 활주로로 향하던 비행기는 이륙을 하지 못하고 한동안 멈춰서 있었다. 특별한 안내방송도 없었다. 옆으로 다른 비행기 한 대가 더 들어왔다. 시선을 하늘로 옮기자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난비하고 있는 전투기 대여섯 대가 눈에 들어왔다. 순간, 태평양 상공 또는 그 어딘가에 긴급을 요하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10여 분의 시간이 흘렀을 것이다. 난비하던 전투기는 한 대씩 지상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무슨 상황이지? 왜 전투기가 이곳에? 비상상황인가? 그런 생각들을 하던 중 내가 앉
오월단상#1. 도로는 무등산 숲길을 돌아 금남로로 이어진다. 봄의 정점으로 접어든 오월의 무등산 숲길에는 한량없는 햇볕이 드리워져있다. 갓 피어난 생명이 빚어낸 오월의 숲은 아름답다. 금남로의 끝 또는 시작 지점에 위치한 분수광장은 어수선하게 분주하다. 내일은 5월 18일이다.#2. 5년 전, 망월동5.18묘역을 찾았다. 5.18 기념식이 끝난 후였다. 햇살은 찬란했다. 기념식은 숙소에서 방송으로 봤다. 국가행사를 방송으로 보면서 눈물을 흘려보기는 처음이었다. 전날의 숙취가 남아있었다. 느리게 흐르는 구름처럼 묘역을 둘러보았다. 누
태 ᄉᆞᆫ 땅으로 가는 포털곶자왈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고사리다. 이른 아침 작정하고 나선 산책길에서 만났다.이 시기의 아침은 부드럽다. 막 떠오른 해가 뿌려낸 빛은 옅은 안개 사이로 은은하게 떨어진다. 이 시기는 새로 돋아나 펼쳐진 연둣빛 순이 점점 짙어지는 시점이다. 검은 돌과 검은 흙 위에 펼쳐져 있어 그런지 더 도드라져 보이는 연둣빛 고사리였다.카메라에 담아온 고사리를 사진 편집 프로그램으로 불러와 찬찬히 들여다보며 현상을 진행한다. 이른 아침의 빛이어서 그런지 차분하다. 노출을 좀 더 줄여 배경을 어둡게 만들었다. 밝은
바다안개올해 처음 보는 바다안개다. 한낮 태양의 열기는 벌써 여름인가 싶을 정도로 뜨겁더니 겨우내 차갑게 내려앉았던 바다를 덥히고 있었던 모양이다. 4월의 늦은 오후, 바닷바람을 타고 올라온 안개는 차갑다. 차가운 안개는 모든 사물을 흐릿하게 가려버린다. 흐릿한 안개 덕분에 맨눈으로는 바라보기 힘든 태양을 똑바로 쳐다볼 수 있게 됐다. 뜨거웠던 한낮의 햇빛이 안개에 가려질 즘 바다는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점점 더 많아진다. 주변의 소음도 줄어든다. 점점점. 파랑의 흔적만이 귓가에 고요히 와닿을 즘 어디에선가 깊은숨을 내뱉
4.16세월호참사 8주기4.16 세월호 참사 6주기를 앞둔 새해 첫날이었다. 제주항에서 배를 타고 완도를 거쳐 팽목항으로 향했다. 한겨울이지만 그렇게 춥지 않은 날이었다.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적힌 노란 깃발은 바람과 함께 펄럭이고 있었다. 깃발의 끝은 바람을 타고 떨어져 나간 실들의 부재로 흐트러져 펄럭이고 있었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찾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한적했다. 그리고 쓸쓸했다. 아이와 함께 포구 끝에 있는 등대로 향했다. 수많은 리본과 함께 적혀있는 메시를 훑어보았다. 아직 어린아이는 말이 없었다.여기까
무꽃곳곳에 무꽃이 피었다. 이 꽃을 처음 봤을 때 뭔가 특별한 이름이 있는 꽃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냥 무꽃이었다. 무심한 듯 피었다 지는 무꽃.돌무더기가 있다. 아마도 밭을 일구다 모아 놓은 듯하다. 무심히 카메라에 담았다. 무꽃에 둘러싸여 있는 돌무더기 한 컷. 그리고 무심히 찍은 사진을 기억 속 깊은 곳에 남겨두고 잊어버렸다.70여 년 전에 누군가가 찍어 놓은 흑백 사진 한 컷을 유심히 들여다본다. 죽어간 자들의 여러 컷 들 사이에 섞여 있는 죽어간 자의 사진이다. 그리고 떠오른 무꽃에 둘러싸여 있는 돌무더기 사진 한 컷.7
4월이 오면 진달래는 피어납니다.한겨울 숨은 돌이 검은 돌로 바뀔 때 즘 계곡 사이사이에서 수줍게 피어납니다.오름에 봉화를 올리기 전에 이미 한라산 자락 깊은 계곡에 진달래는 피어올랐습니다.진달래는 제주에서 피어올라 한반도 곳곳으로 번져갑니다.4월을 맞아 시 두 편을 소개합니다.(……)강산을 덮어, 화창한진달래는 피어나는데,출렁이는 네 가슴만 남겨놓고, 갈아엎었으면이 균스러운 부패와 향락의 불야성 갈아엎었으면갈아엎은 한강연안에다보리를 뿌리면비단처럼 물결칠, 아 푸른 보리밭.강산을 덮어 화창한 진달래는 피어나는데그날이 오기까지는,
까마득한 어둠이다. 그 깊이는 가늠하기 힘들다. 들고 있는 스마트폰 빛에 의지해 들어간다. 한 걸음을 내딛기도 힘들다. 발걸음이 아니라 한손을 짚고 기는 걸음으로 간다. 앞서 가는 사람이 있어 다행이다. 따라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 솟아내려온 종유석에 대맹이를 몇 번 들이박고 나서는 몸뚱이가 바닥에 달라붙는다. 얼마나 갔는지 흘렀는지 모른다. 가늠하기 힘든 시공간이다. 좁디좁았던 뱀 굴 같은 터널을 벗어나자 허리를 필 수 있는 높이가 나온다. 좀 더 들어가니 두 다리를 쭉 피게 됐다. 빛을 비춰보니 어렴풋하게 반대편 용암바위가 눈에
어이없는 현상에 대한 투쟁어이없는 현상의 연속이었다.고난의 시작이었다. 한 줌도 안 되는 흙에 뿌리를 내렸다. 주위는 온통 돌밭이었다. 돌 틈 사이를 힘겹게 파고들며 흙을 찾아 물을 찾아 뻗어 나갔다.그렇게 보낸 시간이 수십 년, 어쩌면 일백 년을 훨씬 넘겼을지도 모르겠다.같은 세월을 보낸 흙 좋고 물도 좋은 땅에 사는 것들 보다 몸집이 많이 작을 수밖에 없었다.그래도 더 단단한 뿌리로 바위를 움켜쥐고 버텨낸 세월이라 탄탄한 몸집을 만들었다.그런데 웬걸, 생각도 못했던 어이없는 일이 일어났다.난생 처음 듣는 굉음과 함께 돌이 깨어져
표류물 1제주도의 여름과 겨울 날씨는 한라산을 경계로 산북과 산남이 확연하게 다르다. 그날도 그랬다. 산북의 하늘은 어두운 구름이 내리 깔려 꽤나 굵은 눈발이 지난밤부터 휘갈겨졌던 날이었다. 그런데 제주 시내를 벗어나 남조로를 타고 산남에 들어서니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남조로는 나름 추억이 많은 길이다. 그 길의 끝에 닿은 바다가 있다. 그 바다도 몇 컷의 나쁘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곳이었다. 갯가에 차를 대고 바닷내를 한껏 들이마셔 본다. 그러고는 아이와 함께 구럼비낭(까마귀쪽나무) 사이를 지나 해안 암벽 아래로 내려
정방낙화(正方落花)주상절리 절벽에 거센 바람이 부딪친다. 한라산 남쪽 계곡을 따라 흐르던 물은 절벽을 타고 바다로 떨어지다 바람을 만난다. 바다에서 불어온 바람은 떨어지는 물을 흐트러트린다. 흐트러져 흩날리던 물방울은 다시 바람을 타고 바다로 향한다. 햇빛은 구름에 살짝 가려져있어 한낮의 빛이 은은하다. 봄부터 불어오던 열기는 한여름에 정점을 찍더니 어느새 식어간다. 이제 태풍이 한두 번 더 불어올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겨울이 오겠지.그래도 아직 괜찮다. 바람에 흩어지는 물방울이 온몸을 적셔도 아직 괜찮다. 습해 찝찝한 기분은 이미
이 땅은 전쟁터였단다노인의 말이다. “팡팡 터지는 게, 전쟁 난 줄 알아서. 수류탄 터지는 것도 아니고, 무신 폭탄 터졈신가 했주.무서웡이. 그 소리영, 불이영……. 경해도 사람들은 하영 모여선게.“처음 불타오르는 오름을 멀리서 지켜봤을 때 노인의 말이 떠올랐다. 구럼비 바위가 폭파된 다음 해였다. 이곳은 서부지역 유격대의 근거지였다. 유격대원들은 다리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오름과 들판을 뛰어다니며 봉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48년 2월 초 미군정은 300여 명의 폭도(유격대)가 애월면의 오름에서 훈련 중인 것으로 보고했다.아직 이른
촛불로 타오르던어제는 늦게 찾아온 눈구름이 거센 바람과 함께 휘몰아치더니 오늘은 함박눈이 부드럽게 내려앉는다. 입춘이 지난 주말이다. 거셌던 바람은 주춤해졌지만 겨울의 끝에 불어오는 입춘 한파는 매섭다.이곳에 촛불을 들고 모인 지 열여섯 번째가 되는 날이다. 매 주말 저녁이 되면 한 사람, 한 사람 모이기 시작하더니 금세 수십 수백 명으로 불어났다. 처음 촛불문화제를 시작할 때는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매주 일어났다. 그렇게 해를 넘기면서 오롯이 겨울의 주말을 이곳에서 보내게 됐다.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결정만 기다리면 된다. 그
누이야,몇 해 전 별세한 문충성 시인의 시 중에 ‘누이야, 원래 싸움터였다’로 시작하는 시 「제주바다 1」이 있다. 이 시에서 시인은 ‘제주 사람이 아니고는 진짜 제주 바다를 알 수 없다’라고 했다. 재일교포 김시종 시인은 장편 서사시 「니이가타」에서 ‘바람은 바다의 깊은 한숨으로부터 새어 나온다.’라고 했다. 나는 물 막은 섬에 살면서도 바다가 그리워 바다를 찾는다. 그리움의 대상은 없었다. 그저 그냥 막연한 그리움이었다. 그런데 그 바다는 부모가 아들을 낳으면 ‘야인 내 자식이 아니고 고기밥이라’던 섬의 바다. 부당한 폭력에 저
봄바라보고 있다. 아직 겨울이다. 며칠 쏟아진 눈이 쌓였다가 녹아내리기를 반복하고 있다. 오름이 넓게 펼쳐져 보이는 들판 어느 즈음일 것이다. 한 번 힘차게 몰아붙였던 눈구름이 지나가고 햇빛을 받은 파란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사라진다. 봄이 오고 있어서 그런지 쌓였던 눈은 금세 질퍽거리는 잔여물이 된다. 소 먹일 풀을 키워냈을 것 같은 들판을 지나 가시덤불 앞에 섰다. 소도 들어갈 엄두가 안 났던지 가시덤불이 무성하다. 그 앞에 웅크리고 앉아 덤불 사이로 하늘을 쳐다봤다. 눈구름을 다 휘날려 보내고 남겨진 구름이 빠르게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