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연휴 민족 대이동이 시작되는 날, 유독 모자의 등뒤로는 안타까운 시선만...

모자의 국보법 폐지 1인 시위

설날 연휴를 앞둔 1월 20일 오전 11시 국회 의사당 정문 앞. 하늘은 유난히 맑았다. 요사이 흩뿌렸던 눈발도 더 이상 없었다. 날씨가 영상을 웃돌면서 포근한 봄 날씨가 성큼 다가온 것 같았다. 지난 1월 13일 모친의 국보법 폐지 1인 시위를 지켜보았던 송두율 교수의 장남 송준씨(29, 화학박사)가 오늘은 1인 시위의 주인공이 되었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시민모임’(대표 최창우)이 주관하는 오늘의 1인 시위는 233번째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서울구치소에 수감중인 송두율 교수의 장남이 참가하였다. 어머니는 228번째, 장남은 꼭 1주일 뒤에 모자가 함께 국보법 폐지 시위에 참석한 것이다.

송 준 씨는 독일에서 2주간의 무급휴가를 받고 지난 1월 12일 귀국하였다. 구치소에 수감중인 아버지를 뵙고, 다음날은 어머니의 1인 시위를 지켜보면서 37년만에 귀국한 아버지에 대한 진정성과 민족애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조국 대한민국에 대한 회한이 차 오른 듯했다. 그는 설날 연휴가 끝나는 일요일(23일) 다시 독일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

따라서 금일 오전으로 예정되었던 <제주의 소리>와의 인터뷰 일정도 오후 8시로 연기되었다. 송 교수의 부인 정정희 여사는 1월 19일 필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장남 송 준 씨의 1인 시위를 1월 20일로 부득이 앞당길 수밖에 없어서 일정 조정을 정중히 부탁했고, 필자도 흔쾌히 동의하였다. 이에 필자는 송두율 교수의 장남 송 준 씨의 국보법 폐지 1인 시위 소식을 먼저 전하고, 뒤 이어 저녁 8시부터 인터뷰가 끝나는 대로 상세한 내용을 다시 기사화 할 것임을 약속한다.

오늘의 1인 시위는 평소보다 1시간 일찍 11시부터 시작하여 12시에 끝났다. 모자는 곧바로 5호선 여의도역으로 향했다. 모자의 국보법 폐지 1인 시위가 구치소에 수감 중인 남편과 부친에 대한 예의인 듯 발걸음은 총총히 오늘도 서울구치로 향했다. 부인은 서울 지하철 노선도를 손에 쥐고 다녔다. 모자는 송두율 교수의 수감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점심도 걸렀다. 필자와는 저녁 8시부터의 인터뷰 일정을 재차 확인하면서….

필자는 지하철 역사 안으로 들어서는 그들을 보고 나선 다시 한 번 하늘을 쳐다보았다. 겨울 햇살치고는 제법 눈부셨다. 이 맑고 좋은 날, 설날 연휴라는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되는 날, 유독 모자의 등뒤로는 안타까운 시선만 넘겨줄 뿐이었다.

송 준 씨는 1인 시위를 마치고 다음과 같이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민주주의 국가' 기준으로 볼 때 대한민국은 많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경제적으로 부흥을 이루었고, 역사적·문화적으로 전통을 잘 간직하고 있었던 아버지의 나라를 늘 동경해 왔었다. 그러나 부친과 같이 양심적인 학자가 범법자로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는 현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따라서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국가 대열에 동참하기에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한다."

송 준 씨는 모친에 이어 1인 시위에 동참하게 된 이유도 다음과 같이 밝혔다.

"민주주의를 가로막는 악법으로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한 뜻 있는 사람들이 나서는 것은 당연하다. 지난 어머니의 시위 때는 날씨가 많이 추웠었다. 그러나 입술을 굳게 다문 어머니의 의지를 곁에서 확인하고 저도 일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날씨가 많이 풀렸지만 우리 모자의 마음은 폭풍우 속에 있다. 이제 전 국민의 명절인 설날이 끝나고 저는 독일로 돌아간다. 조국 대한민국에는 부모님만 남는다. 아버님은 차가운 구치소에서, 어머님은 아버님의 진실 승리를 위해 여기저기 바쁘게 돌아다니신다. 아들로서 아버님의 학자적 양심과 민족을 사랑하는 진정성을 늘 느껴왔기에 오늘의 1인 시위에 동참하게 된 것이다.
다시 한 번 아들로서 당연한 도리를 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국가에 대해 할 말이 없는가를 묻자, 송 준 씨는 아버지의 공판과정을 지켜보면서 검사에게 한 말씀을 드리고 싶다라고 하면서,

"정의의 법 집행을 담당하는 검사에게는 오로지 민주주의 원칙에 충실하고자 하는 소신이 필요하다. 단지 실정법을 적용코자 하는 직업인으로서, 특히 밥그릇을 챙기는데 급급한 직업인으로서의 검사는 더 이상 정당한 법 집행의 주인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아들의 1인 시위를 곁에서 지켜보던 모친 정정희 여사는 필자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5차례의 공판과정에서 송두율 교수의 혐의는 대부분 증거 없이 여론재판에 의해 처리된 사안임이 명백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국민들이 투명하게 송두율 교수의 공판과정을 접할 수 있도록 철저한 공개재판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지난 번 오길남 씨가 증인으로 참석한 비공개 재판 진행 및 불출석을 선언한 황장엽 씨의 증언이 비공개로 다시 재판부에 의해 채택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투명한 공개재판만이 국민들에게 송두율 교수의 진실을 정확하게 알려줄 것입니다."

온 가족들이 모여 즐겁게 담소를 나누는 대한민국의 명절을 바로 코앞에 둔 이 때. 그들은 가족끼리의 이산이라는 슬픔, 37년만의 귀국에 대한 대한민국의 박대, 더구나 다른 곳도 아닌 국가 기관에 의한 인신구속까지 걸머져야 했다.

도대체 반만년 역사를 지닌 한반도의 역사 앞에, 그 숱한 어려움을 이겨낸 우리 민족 앞에 분단의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이데올로기의 허울 앞에 아직도 우리 민족이 현명하게 극복치 못하고 처절히 몸부리치고 있음을 필자는 감내해야 했다.

한편, 이날 송두율 교수의 장남 송 준 씨의 국회 앞 1인 시위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시민모임'(www. antikukbo. net. 이하 시민모임) 주관으로 이뤄졌다. 2001년 7월 설립된 시민모임은 대표를 맡고 있는 최창우 씨가 온갖 일을 도맡아 희생적으로 꾸려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대법원 앞에서 시작된 1인 시위가 이제는 국회 앞으로 옮겨져 오늘 233번째를 맞았다고 한다.

최창우 대표는 "평일을 중심으로(토·일요일에는 지원자가 있을 시) 12:00 ∼ 13:00 1시간 동안 국회 앞에서 벌이는 우리의 1인 시위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국보법을 탄생시킨 국회 앞에서 결자해지의 차원에서라도 입법부가 다시 한 번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재정립시켜야 한다면서. 특히 국보법이 폐지되는 그 날이 진정한 민주주의의 시발점이라고 확신하면서 ….

그는 많은 시민들의 동참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그러면서도 "아직 우리 사회 내에 소극적인 의식과 양심을 떨쳐내지 못하며 주춤거리는 국민들이 많다"라고 하였다. 지난 군사정권 시절을 겪으면서, 문민정부·국민의정부·참여정부가 계속되건만 국보법이 건재하다는 사실이 국민들 사이에 알게 모르게 '나라를 지켜주는 법'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했다.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억압하고 비인권적 요소를 지니며 국제사회로부터도 폐지 압력을 받고 있는 대표적 악법인 '국보법'에 대해 이제는 국민들도 폐지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서서히 싹트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섣불리 나섰다간 다친다라는 지나친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소시민적 속성들이 팽배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라고 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제발 올해부턴 모든 국민들이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의식에서 탈피하여 과감하게 그리고 적극적으로 민주사회 건설에 동참해야한다고 강조했다.

2004. 1. 20(화) 홍기표.

<홍기표의 제주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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