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303) 여자를 홀릴 땐 남의 밭담도 쌓는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것을 빌려 지금을 말한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으면 미래 또한 없지 않은가. 옛 선조들의 차고술금의 지혜를 제주어와 제주속담에서 찾는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들도 고개를 절로 끄덕일 지혜가 담겼다. 교육자 출신의 문필가 동보 김길웅 선생의 글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 깃든 차고술금과 촌철살인을 제주어로 함께 느껴보시기 바란다. / 편집자 글


* 놈의 : 남의
* 밧담 : 밭담
* 답나 : 쌓는다

1971년 8월에서 10월 사이, 제주시 오라1동에서 촬영한 밭담 사진. 멀리 보이는 건물은 제주공설운동장이다. / 사진=이토아비토, 제주학아카이브
1971년 8월에서 10월 사이, 제주시 오라1동에서 촬영한 밭담 사진. 멀리 보이는 건물은 제주공설운동장이다. / 사진=이토아비토, 제주학아카이브

흥미롭다.

여자를 유혹할 때는 제 밭만 아니라 남의 밭담도 쌓는다는 얘기가 아닌가. 하기야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으면, 환심을 사기 위해 못할 짓이 무어겠는가. 할 수 있는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게 마련이다.

농경사회에서 밭 만한 재산이 없다. 궁리 끝에 그녀가 나다닐 만한 곳을 찾아 남의 밭담을 쌓는 연출(?)도 마다하지 않는다. 팔을 걷어붙여 밭담을 쌓는 걸 보고, 여인의 마음이 움직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냥 실없이 해보는 말이 아닐 것이다. 옛 시절에는 시도했을 법한 그럴싸한 장면임이 분명해 보인다. 남자가 큰 밭에서 담을 쌓는 것이며, 건장한 몸을 과시하는데 어느 여자가 무심할 것인가.

나중에 남의 밭인 게 들통이 나겠지만, 그건 하나도 거리낄 일이 아니다. 나중 일은 나중에 다 처리되는 수가 있기 마련 아닌가. 더군다나 남의 밭을 도둑질한 것도 아니다. 어떻게 보면 한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한 일이니, 그 마음에 감동할 수밖에 없을 터. 

마음에 드는 여자에게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을 것 아닌가. 농촌에서 농사지으며 사는 우직한 총각의 입장임에랴. 하긴 남의 밭담을 쌓는 행위가 소박하고 순진하기 그지없다. 그 시대에나 통할 일이었다. 요즘에야 여자를 꼬드기는 방법이 그런 힘든 노동이겠는가. 데이트를 신청할 것이고, 화끈하게 마음을 살 수 있는 방법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세상 많이 변했다.

‘입단 옷에 다리웨질허영 어린 지집 달래레 간다(입던 옷에 다리미질해서 어린 계집 달래러 간다)’와 유사한 것. 

입성이 시원치 않지만 입던 옷이라도 곱게 다리미질해 입어 여자를 만날 것이다. 여인을 향한 남정네의 순수한 애정이 산속에 숨어 핀 들풀처럼 곱고 싱그럽지 않은가.

‘여자 홀릴 땐 놈의 밧담도 답나’

여자의 마음을 붙들 수만 있으면 못할 일이 없다. 애간장이 타들어갈 만큼 간절함이 배어 있다. 행간을 읽을 일이다. 


#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 자리 ▲읍내 동산 집에 걸린 달락 외 7권, 시집 ▲텅 빈 부재 ▲둥글다 외 7권, 산문집 '평범한 일상 속의 특별한 아이콘-일일일'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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