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재심, 역사의 기록] (56) 1927년생 생존수형인 박화춘 할머니 명예회복

모두를 울고 웃게 만든 95세 할머니의 기구한 삶…제주4.3 억울함 풀렸다

 

제주4.3 생존수형인 박화춘 할머니가 4.3 당시 피해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제주4.3 생존수형인 박화춘 할머니가 4.3 당시 피해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무사 아들한티 고라져신지(왜 아들에게 말했는지). 아휴. 다들 고생하고. 너무 고무워 할 말이 많은데, 할 수가 없네”

100세를 바라보는 1927년생 박화춘 할머니가 제주4.3 당시 억울하게 옥살이한 누명을 벗게 되자 법정에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법정에 있는 사람들 모두 박화춘 할머니 말 한마디에 울고, 웃었다.  

6일 오후 2시 제주지방법원 형사4-1부(재판장 장찬수 부장판사)는 4.3 당시 내란죄라는 누명을 써 억울하게 옥살이한 박화춘 할머니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했다. 

박화춘 할머니 옆에 앉은 아들 윤창숙씨는 귀가 좋지 않은 어머니를 향해 “교도소 생활한 것이 없던 일이 됐다”고 대신 전했다. 방청석에 앉아있던 박화춘 할머니의 증손자까지 4대가 명예 회복의 기쁨을 함께 누렸다.  

4.3 당시 서귀포시 강정리에서 마을 사람들이 끌려가는 모습 등을 목격한 박화춘 할머니는 밭에서 숨어 지내다 친척의 제사가 있어 이동하던 중 모르는 사람에게 끌려갔다. 

산속 굴에서 하루를 지난 박화춘 할머니는 군경에 이끌려 서귀포경찰서에서 며칠간 수감됐다 제주경찰서로 이동했다. 

발언하는 검사를 바라보는 박화춘 할머니. ⓒ제주의소리
발언하는 검사를 바라보는 박화춘 할머니. ⓒ제주의소리

제주경찰서에서 박화춘 할머니는 천장에 거꾸로 매달리는 고문을 당했다. 군경은 박화춘 할머니에게 사실대로 말하라고만 했고, 고문에 못이긴 박화춘 할머니는 “산사람(무장대)에게 보리쌀 2되를 줬다”고 거짓말했다. 

경찰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박화춘 할머니의 거짓말을 이용해 불법적인 재판에 넘겼고, 1948년 1차 군법회의에서 박화춘 할머니는 내란죄라는 억울한 누명을 써 징역 1년형에 처해졌다. 

배를 타고 목포를 거쳐 전주형무소에서 3개월 정도 생활한 박화춘 할머니는 세 살된 딸과 함께 교도소 생활을 했다. 이후 서울 서대문형무소로 이감하게 되자 딸을 보육시설에 맡겼고, 1949년 10월 출소했다. 

출소한 박화춘 할머니는 어린 딸을 다시 데리고 목포에서 배를 타고 와 제주에 돌아왔다. 3남 2녀를 뒀지만, 아들 2명과 딸 1명은 박화춘 할머니보다 먼저 삶을 마감했다. 

특히 혹여 자녀들에게 피해가 될까 그 누구에게도 4.3 피해 사실을 밝히지 않다가 최근에서야 자신의 아들에게 4.3 피해 사실을 털어놨다. 몇 년 전 박화춘 할머니의 손자가 혹여 집에 4.3 피해 당한 사람이 있느냐 물었을 때도 박화춘 할머니는 손사래 치면서 “전혀 그런 일이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기구한 박화춘 할머니의 삶이 언급되자 법정은 울먹이는 소리로 가득했다. 

박화춘 할머니 직권재심을 청구한 ‘제주4.3사건 직권재심 권고 합동수행단(단장 이제관, 합동수행단)’ 소속 변진환 검사는 제주어로 박화춘 할머니의 무죄를 호소했다. 

변 검사는 “할머니, 잘못한 것 어수다(없습니다). 잘못한 것도 어신디 사람들이 막 심엉강 거꾸로 돌아매고 허영 막 고생 많아수다(잘못한 것도 없는데, 사람들에게 끌려가 거꾸로 매달려 정말 고생이 많았습니다). 제가 재판장님한티 할머니 잘못한 거 없댄 잘 고라시난 아무 걱정 허지 맙서예(제가 할머니 잘못한 것 없다고 재판장님에게 말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합동수행단 소속 변진환 검사가 박화춘 할머니에게 무죄를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구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박화춘 할머니의 변호인도 “할머니는 창피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욕을 먹을까봐 그 누구에게도 4.3 피해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이제라도 명예를 회복해달라”고 변론했다. 

박화춘 할머니는 직접 자신이 4.3때 겪은 일을 진술했는데, 제주어를 잘 알아듣지 못한 사람이 많아 재판부가 허영선 제주4.3연구소장에게 표준어로 해석을 부탁하기도 했다. 

70년 넘는 세월 입을 굳게 다물고 살았던 박화춘 할머니는 자신이 어디로 끌려갔는지, 어떤 피해를 당했는지 또렷이 기억했다. 그러면서 “창피해서 그 동안 말하지 못했다. 나 때문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고생한다”며 주변 사람들을 걱정했다.

이날 재판부는 박화춘 할머니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오늘 판결로 옛날 옥살이한 것 다 해결됐다”고 말했다. 

이에 박화춘 할머니는 “아들에게 (4.3 관련 얘기를) 왜 말했는지...(나 때문에) 이 많은 사람들이 고생하고 있다. 너무 고맙다. 할많이 많은데, 할 수가 없다”고 답했다. 

주변인을 배려하는 박화춘 할머니 발언에 재판부가 “할머니가 배려심이 깊다”고 말하자 아들 윤씨는 “고집이 있으시다. 이제까지 (4.3 피해 사실을) 말도 안했다”고 답했다. 일순간 방청객 모두 크게 웃었다. 

이날 박화춘 할머니 재심에는 오영훈 제주도지사도 방청했다. 재판부가 발언을 부탁하자 오 지사는 “억울함과 그 한을 ‘어떻게 견뎠을까’하는 생각에 감정이 복받친다. 단 한분도 4.3으로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박화춘 할머니의 명예가 회복되면서 합동수행단이 청구한 직권재심으로 명예가 회복된 누적 4.3 피해자는 총 521명이 됐다.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억울한 제주4.3 피해자가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제주의소리
오영훈 제주도지사도 이날 방청석에서 재판을 지켜봤다. 재판부의 발언 요청에 오 지사는 억울한 제주4.3 피해자가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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