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3일~31일 원도심 ‘아트스페이스·씨’…이진경 “먼 먼 산: 눈은 나리고” 展

상처받은 수많은 존재를 예술이라는 치유의 시선으로 어루만지는 이진경 작가의 제주 전시가 열린다. 

오는 8월 3일부터 31일까지 제주 원도심에 자리한 ‘아트스페이스·씨’에서는 2022년 제주문화예술재단 우수기획에 선정된 이 작가의 ‘먼 먼 산:눈은 나리고’ 전시가 개최된다. 

작가는 한국 근현대사 속에서 상처 받은 민중의 삶부터 동식물과 전통문화 등 분명히 존재하면서도 일상에서 쉽게 인식되지 못하는 수많은 존재를 치유의 시선으로 어루만져 왔다. 

이번 전시는 제주를 비롯해 험난한 삶을 살아낸 민중들을 기억하고 치유를 염원하며 앞으로 새롭게 쓰일 역사를 가늠해보기 위해 마련됐다. 

전시장 3층에는 제주 바닷가에 떠내려온 목재들에 ‘국가보안법’, ‘출륙금지령’ 등 문구를 써 완성한 신작들과 동학농민운동을 이끌다 처형당한 최시형에 관한 작품 ‘법대로’도 전시된다. 또 4.3을 비롯한 제주의 근현대사를 돌아볼 수 있는 작품도 소개된다. 

지하 1층 전시장에는 역사의 불꽃에 앞장선 사람들을 위한 제사를 지내는 공간이 준비된다. 자연과 일상의 작고 소중한 면모를 느끼게 하는 작품들과 함께 우리와 같이 그것들을 영위했으나 먼저 간 영혼들을 기억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했다. 

이진경, 생선노래, 2022, 제주 바닷가로 떠내려 온 유목 위에 아교와 먹. 이미지=아트스페이스·씨.<br>
이진경, 생선노래, 2022, 제주 바닷가로 떠내려 온 유목 위에 아교와 먹. 이미지=아트스페이스·씨.
이진경, 옥돔, 2022, 한지 위에 천연염색 한지 꼴라쥬, 수채, 과슈, 먹,&nbsp;63x93cm.  이미지=아트스페이스·씨.<br>
이진경, 옥돔, 2022, 한지 위에 천연염색 한지 꼴라쥬, 수채, 과슈, 먹, 63x93cm. 이미지=아트스페이스·씨.

이진경은 작가의 말을 통해 “한없는 푸른 바다와 박하고 억센 땅에 부는 바람, 그 속에 곁 하여 살던 사람들. 고된 물질로 미역을 따고, 3천평 보리밭을 일궈 간신히 다섯 식구가 먹고 살았다면 이제 육지 것들에 기대 풍광을 팔아먹고 산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귤나무 세 그루면 대학을 보냈다는 것도 귤 밭을 다 갈아엎는 이 마당에 다 옛말이다. 백록담 하얀 사슴은 자개장에 박혀 있고, 깊은 바당 용왕 같은 옥돔은 머리를 간신히 보존한 채 진공포장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때 되면 부는 바람과 차고 기우는 달과 한없는 바다가 우리를 여기 이끌었을 것이다. 사는데 만나는 모든 생기와 슬픔과 두려움은 그저 새로운 풍경이라서 그리 마음 낼 게 아닐지 모른다. 손 끝에 가시가 아프지 않을 수 없으니 아픔을 잠시 뒤로 하고 그저 바라보는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고승욱 작가는 전시와 관련해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속 키치를 통해 이 작가를 소개했다.

고 작가는 “나는 이진경의 그림에 대해 저린 가슴, 사소한 것 등을 덧대어 어물쩡 키치라고 말했다. 하지만 구겨진 것 위에 써나가야 하는 것이 역사인 한에서, 참과 거짓으로 범벅된 것이 우리인 한에서, 키치가 세 번째 눈물을 흘리는 한에서 이진경의 그림을 키치라고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진경, 법대로, 2021, 탄 종이 꼴라주 위에 아크릴 물감, 한지 꼴라주 위에 먹, 160X112cm. 이미지=아트스페이스·씨.<br>
이진경, 법대로, 2021, 탄 종이 꼴라주 위에 아크릴 물감, 한지 꼴라주 위에 먹, 160X112cm. 이미지=아트스페이스·씨.

전시와 더불어 8월 3일부터 6일까지는 ‘예술공간 이아’에서 열리는 고길천 작가의 ‘붉은 구럼비’ 연계 부대프로그램이 이뤄질 예정이다. 

전시 개막일인 3일 오후 4시에는 김종길, 임정희 미술평론가와 고승욱 작가가 참여하는 작가와의 대화 ‘사소함과 온생명 사이에서’가 진행된다.

5일 오후 2시에는 씨앗매개자 강나루와 함께 토종 씨앗에 대해 배워보는 ‘씨앗바람’ 워크숍이, 6일 오후 1시 30분에는 ‘순이 삼촌’ 소설가 현기영의 제주 공동체주의에 대한 강연이 펼쳐진다. 

같은 날 오후 2시 30분에는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가 한국전쟁 전후 자행된 민간인 학살이 군사독재 시절 조작간첩 사건으로 이어진 제주의 역사 ‘4.3과 조작간첩사건의 피해자들’ 강연을 진행한다. 

전시 관람과 프로그램 참여는 무료며, 강나루의 ‘씨앗바람’ 워크숍은 사전 신청자에 한해 참여할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아트스페이스·씨 홈페이지(artspacec.com)를 확인하면 된다.

안혜경 아트스페이스·씨 대표는 “이번 전시는 독특한 공간 구성으로 관람객들에게 새로운 전시 관람 경험을 선사한다”며 “개별 작품에 집중하기보다 공간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기운을 형성하도록 전시를 구성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정치, 경제, 자연, 일상, 사회 등 다양한 의제들에 관한 이야기들이 한데 얽히고 섥히며 핵심적인 개념들 속으로 관통해 묻어 들어가도록 고안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작가의 작품을 중심으로 전시장에 모여든 사람들이 전시와 강연, 워크숍을 경험하며 우리들 삶을 온 생명의 관점으로 소통하는 예술체험이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진경은 서울에서 태어나 덕성여대 서양화가를 졸업한 뒤 금호미술관, 도쿄 현대미술관, 예술의 전당, 성곡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전북도립미술관, 영국 Asia House 등에서 여러 번의 개인전과 단체전을 가졌다.

도쿄 현대미술관 12명의 세계 작가에 선정되기도 했으며 2002년부터 ‘쌈지길’과 ‘쌈지농부’의 아트디렉터로 활동하며 로고·공간 디자인 및 ‘이진경체’ 폰트를 제작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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