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인수위 변신 노력 좋으나 미래상 막연

민선8기 제주도지사직 인수위원회에게는 선거 공약을 점검하는 것 뿐만 아니라 오영훈 당선인이 그리는 제주 미래상을 잘 정립해야 하는 과제도 주어졌다. [그래픽=한형진 기자] ⓒ제주의소리
민선8기 제주도지사직 인수위원회에게는 선거 공약을 점검하는 것 뿐만 아니라 오영훈 당선인이 그리는 제주 미래상을 잘 정립해야 하는 과제도 주어졌다. [그래픽=한형진 기자] ⓒ제주의소리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6·2선거) 8일 후인 2010년 6월10일, 제주시 연동 건설회관 7층에 위치한 제주도지사직 인수위원회. 첫 회의가 열린 이날 오전 인수위 사무실엔 한동안 팽팽한 긴장감과 함께 냉기가 흘렀다. 당선인이 서두에 “넥타이도 풀고 윗도리도 벗으라”고 했지만, 분위기는 달라지지 않았다. 

특히 일부 공무원의 얼굴에선 핏기가 사라졌다. 업무보고를 하러 온 도청 간부들이었다. 표정은 하나같이 굳어있었다. 공직 외부의 인수위 참여 인사들과는 사뭇 대조적이었다. 

마이크를 잡은 이는 와신상담 끝에 6년만에 돌아온 우근민 당선인. 그는 인사말 내내 “제주도와 도민을 위해서…”라고 강조했지만, 한이 맺혔는지 ‘공무원사회’를 향한 경고성 발언을 늘어놓았다. 그럴때면 분위기가 더욱 얼어붙었다.  

당선인은 중간중간 “훌훌 털고 같이 가자” “사심없이 일하자” “떳떳하게, 자신있게 일로써 승부하자”며 손을 내밀었다. 그래도 공무원들의 표정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싸늘함이 절정에 달한 순간은 과거 선거 얘기를 할 때였다. 아마도 2002년 제3회 동시지방선거를 일컫는 듯 했다. 우 지사는 1995년 제1회 동시지방선거 때 정치적 맞수인 신구범 전 지사에게 패배했으나 이후 2(1998년)~3회(2002년) 동시지방선거에서 연거푸 승리했다. 

하지만 선거법 위반으로 2004년 지사직을 잃었다. 김태환 전 지사가 바통을 넘겨받았다. 이른바 ‘제주판 3김’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지방권력을 장악했던 당시 제주 공직사회엔 줄서기가 만연했다.

“지난번에 당선돼서 업무보고를 받는데 나한테 거짓말한 공무원이 있었다. 그에게는 보직을 주지 않았다” 
“도지사를 속이고, 상관을 속이는 공무원과는 일을 할 수 없다”
“선거때 공무원들이 이랬다 저랬다(하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이 말 뒤 분위기가 어땠겠는가. 여운은 길고도 오래 갔다. 

애초 ‘점령군’처럼 비쳐질까봐 인수위도 구성하지 않겠다고 했으나, 막상 인수위가 출범하자 상황은 돌변했다. 전임 도정이 추진했던 주요 사업들에 잇따라 제동이 걸렸다. 환경파괴 우려가 제기된 사업에 대한 추진 중단 요구 등은 신선하다는 평가가 따랐지만, ‘군기잡기’라는 시선도 팽배했다.

2014년 원희룡 당선인 시절에는 방대한 인수위가 입길에 올랐다. 12개 분과위원회에 무려 137명이 이름을 올렸다. 전임 도정 인수위 때보다 4배 가까이 많았다. 매머드급 인수위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자 당시 야당 도의원이 관련 조례안(제주도지사직 인수위원회 구성 및 운영에 관한 조례)을 긴급 발의하기도 했다. 조례는 그해 6월27일 제정됐다.

원 지사의 등장은 20년 넘게 지속된 제주판 3김 시대의 청산을 의미했다. 그러나 정작 그는 인수위에 3김 측근들을 다수 배치해 의아함을 자아냈다. 

원 지사는 당선 일성으로 대규모 난개발에 대한 경고와 함께 공직사회 대수술을 예고했다. 한편으로는 대통합, 도정의 연속성, 인사 탕평 의지를 밝혔다. 

지방권력을 넘겨받는 쪽과 넘기는 쪽의 관계가 자칫 전쟁의 승자와 패자의 관계로 인식되는 것에 대한 부담은 누구나 느끼는 것 같다.  

민선8기 도정을 이끌 오영훈 당선인 역시 불필요한 오해를 막기위해 일종의 경계심을 드러냈다. 

“인수위 성격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도청을 접수한다’ 이런 게 아니다. 후보자가 선거 과정에서 약속했던 정책과 비전들을 향후 도정 운영 과제로 잘 정리해 내는게 필요하다. (그래서)전문가들이 필요하다. (인수위는)어떤 지지자들의 모임이 아니다”(6월3일 제주의소리 인터뷰 중)

오 당선인은 지금의 인수위를 ‘스마트 인수위’로 표현했다. 4개 위원회 산하 8개 분과에 총 20명의 위원을 임명했다. 별도의 자문위원회를 두긴 했으나, 과거보다는 단출해보인다. 세 과시용이 아닐진대 인수위를 슬림하게 꾸린 것은 잘한 일이다.

인수위 파견 공무원단을 실무형으로 구성한 것도 호평을 받았다고 한다. 관례로 볼 때, 인수위 합류는 인사 우대 기회를 잡은 것으로 여겨져 온게 사실이다. 이 점을 의식한 각계 요로의 특정 공무원 픽업 요청(?)을 당선인 쪽에서 물리쳤다는 후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집무실 이전을 떠올리게도 하지만, 역대 도지사 13명이 머물렀던 집무실을 큰 도로를 향해 옮기는 것도 나쁘지 않다. 각종 집회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겠다는 소통 행보로 받아들이고 싶다. 

다만 한가지, 오 당선인이 그리는 ‘새로운 미래’가 뭔지 다가오지 않는다. 상(像)의 실체가 잡히지 않는다. 급한대로 미사여구를 갖다쓴 것인지, 아니면 채 설명을 못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막연하게 들린다.  

6대 핵심 공약을 뜯어보면 오늘날 제주사회에 긴요한 과업들을 잘 정리했지만, 이들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빠진 느낌이다. 리더와 구성원이 똑같이 응시하는 지점, 구성원 전원이 공감하는 미래의 야망과도 같은 그 무엇 말이다. 

비전이라고 해도 좋다. 가령 제주형 기초자치단체 도입이 곧 제주의 비전일 수는 없다. 오 당선인이 회심작으로 내놓은 ‘실천적 실용주의’도 말의 성찬으로 끝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선거 공약을 점검해 실천가능한 정책 목표를 제시하기도 빠듯할 텐데 비전까지 가다듬어야 할 판이니 인수위로서는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하게 됐다.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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