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충석의 칼럼과 에세이사이] (7) 고충석 제주대학교 명예교수, 前 총장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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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은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있는 가정의 달이다. 아직 손주를 보지 못한 나에게 어린이날은 남의 집 잔치처럼 부러운 날이고 그나마 어버이날은 자식들에게 소박한 선물을 받고 있으니 뜻깊은 날이다. 딸이 없는 내가 어버이라고 축하의 꽃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어버이날 덕분이다. 꽃을 받으면 기쁘지만, 가슴이 울컥할 때도 가끔 있다. 아버지가 생각나서 그렇다. 우리 아버지는 살아생전 어버이날에 그 어느 자식이 꽃을 달아드린 적이 있었나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아버지는 교육열이 대단한 분이었다. 초등학교 때는 아버지가 형제들에게 직접 글을 가르쳤다. 공부가 기대 수준에 미치지 못할 때는 사정없이 매까지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올바른 교육법은 아니었다. 농촌에 살았지만, 아버지는 농사일은 몰라도 되고 공부만 잘하면 된다고 하시는 바람에 우리 형제 중 누구도 농사일할 줄 아는 이가 없다.

우리 형제들은 대부분 어릴 때 육지에 나가 공부했다. 유학이 흔치 않던 시절, 교육열이 높은 아버지의 대단한 결심 때문이었다. 그러나 큰형은 아버지의 노력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했고 우도의 땅을 팔아 객지에 나가 살았다. 풍찬노숙의 삶을 살다가 후손 하나 남기지 못하고 객사에 가깝게 생을 마감했다. 그 모든 것들이 얼마나 아버지를 가슴 아프게 했을지 아버지가 되어서 새록새록 깨달았다.

아버지는 내가 교수로 발령받은 이듬해에 돌아가셨다. 병원에 가서 진단받았을 때 이미 폐암 3기였다. 병원을 오가며 두 달을 극진히 보살폈지만 소생할 가망이 없다는 진단이 내려져 고향 우도로 모셨고 한 달을 머물다 돌아가셨다. 강의가 끝나면 우도에 가서 아버지 대소변을 받아내고 강의가 있을 때는 제주시로 왔다가 다시 우도로 들어가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쇠약해진 아버지의 다리를 주물러드릴 때는 그간 힘들게 살아온 아버지의 인생을 생각하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히틀러 암살에 실패하여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본회퍼가 옥중 서신에서 말했던가. ‘자식은 자고로 나이가 들어야 부모를 이해할 수 있다고’

폐암 말기로 인해 아버지의 육체적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시내 약국에 모르핀을 구하러 다녔지만, 불법이라 살 수 없었다. 나는 그때 말기 암 환자들에게는 그 고통을 누그러트리기 위해서 모르핀 주사 등의 사용을 허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인간은 죽음 앞에서도 위엄과 최소한의 자존을 지킬 수 있게 하여야 한다. 폐암은 물론이고 암 대부분이 정말로 심한 육체적 고통을 수반하는 병이다. 아버님에게 간헐적으로 찾아오는 심한 통증을 보면서 ‘아버님! 고통이 이렇게 심하니 차라리 저세상으로 가서 안식을 취하는 편이 낫겠습니다.’라고 차마 자식으로서는 해서는 안 될 생각마저 마음속으로 되뇌곤 했다.

제주시에 나오면 병석에 계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괴롭고 슬퍼서 술을 마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즈음에는 목소리마저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나의 손바닥에 있는 힘을 다해 손가락으로 유언을 남기셨다.

“미안하다. 너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우고 간다. 모든 장례 절차를 사십구재로 가름하라”라는 내용이었다.

며칠 후 야간 강의차 잠깐 제주시로 나왔을 때 아버지는 눈을 감으셨다. 
아버지는 이렇게 당신의 어깨에 얹힌 무거운 삶을 내려놓고 홀가분한 기분으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다른 세상으로의 여행을 떠났다. 

박목월의 가정이라는 시에도 이 세상 아버지의 어깨에 얹힌 무거운 삶이 잘 나타나 있다.


가정(家庭)  /  박목월

 

지상(地上)에는
아홉 켤레의 신발.
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깐에는
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
알전등이 켜질 무렵을
문수(文數)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내 신발은
십구 문 반(十九文半).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육 문 삼(六文三)의 코가 납짝한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얼음과 눈으로 벽(壁)을 짜 올 린
여기는
지상.
연민(憐憫)한 삶의 길이여.
내 신
발은 십구 문 반(十九文半).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십구 문 반(十九文半)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이 시 속에서 아버지의 모습을 찾는다. 당시 1960년대 시인 대부분이 가난했던 것처럼 박목월도 매우 가난했던 것 같다. 시를 써봤자 손에 들어오는 것은 아이들 학비도 되지 못하는 돈이다. 세상을 살아내는 일은 참 어려운 일이다. 살을 에는 바람이 불고 가팔라지기만 한 것이 세상사다. 그런 세상 속에서 사랑만으로 아버지 노릇을 하기란 어려울 때가 많다. 그러나 시인은 비록 어설픈 존재로서의 아버지이지만 아홉 켤레의 고무신을 보며 절절한 가족애와 아버지란 이름의 막중한 무게를 느낀다.

겨우 눈비를 피할 정도의 궁핍한 집이지만, 아버지는 꿋꿋함과 자기희생적 사랑으로 가정의 가치를 소중하게 지켜나가는 존재다. 그런 아버지의 숭고한 삶을 이 시는 이야기하고 있다. 이 시를 읽을 때마다 나의 아버지가 살아오면서 맞닥뜨린 막막함 앞에서 그의 어깨에 얹혔을 짐의 무게를 가늠해보곤 했다. 나의 아버지뿐이겠는가. 세상의 모든 아버지가 다 그랬을 것이다.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세상의 아버지들에게 이 시를 선물하고 싶다.
두 아들을 둔 나도 화이팅!
이 시대의 모든 아비 되는 이들이여 화이팅!

 

고충석은? 

現 제주대학교 명예교수. 제7대 제주대학교 총장, 제주국제대학교 초대 총장, 제주발전연구원장 등을 역임했다. 제주를 대표하는 원로학자로서 칼럼과 에세이를 넘나드는 노마지지(老馬之智)의 조언을 격주로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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