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주년 제주4.3추념 전야제 개최...뮤지컬-추념공연-무용 등 다양성 부각

오랜 염원이었던 4.3특별법 개정이 이뤄지고, 희생자에 대한 배보상이 진행되고, 억울한 옥살이를 한 이들의 누명이 벗겨지고, 양민 학살의 직접적 책임자인 국가와 군·경은 영령들 앞에 고개를 숙였다. 70여년 세월에 갇혀있던 제주4.3은 근 1년 사이에 획기적인 변화의 기로를 맞았다.

그러나, 남아있는 이들의 봄은 여전히 시리다. 4.3의 진정한 해결을 위한 여정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4.3은 단지 과거의 불행한 사건이 아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다. 74주년 4.3추념식을 하루 앞두고 열린 전야제는 말이 되지 못한 기억을 보듬는 시간이었다.

2일 오후 5시 제주아트센터에서 열린 제74주년 4.3희생자 추념 전야제. ⓒ제주의소리
2일 오후 5시 제주아트센터에서 열린 제74주년 4.3희생자 추념 전야제. ⓒ제주의소리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잊어도 되는 이름은 없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그들의 이름을 불러야 하는 까닭입니다.
이제 그날의 아픔을 기억했듯이 뜨거웠던 4월의 함성 역시 
역사의 진실 앞에서 말해야 합니다.

 

-제74주년 4.3추념 전야제 김동현 제주민예총 이사장 메시지 중

제주도와 제주4.3평화재단(이사장 고희범)이 공동주최하고 (사)제주민예총(이사장 김동현)이 주관하는 '제74주년 4·3 희생자 추념 전야제'가 2일 오후 5시 제주아트센터에서 열렸다. '낙인과 차별을 넘어'라는 슬로건을 내건 이날 전야제는 2부로 나뉘어져 뮤지컬 형식의 극을 비롯해 뮤지션들의 추념공연, 대합창 등으로 구성돼 다양성을 살렸다.

어린이합창단 '클럽 노래하자춤추자'와 4.3평화합창단은 각각 4.3을 대표하는 노래인 <애기동백꽃의 노래>와 <잠들지 않는 남도>를 열창하며 무대의 막을 열었다. 독창중이던 어린이 합창단원이 한참 가사를 더듬는 실수가 있었지만, 관객들은 오히려 큰 박수로 화답했다. 작은 해프닝 속에서도 화해와 상생의 4.3정신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2일 오후 5시 제주아트센터에서 열린 제74주년 4.3희생자 추념 전야제. 합창단 '메모리아&꽈뜨로' 공연.ⓒ제주의소리
2일 오후 5시 제주아트센터에서 열린 제74주년 4.3희생자 추념 전야제. 합창단 '메모리아&꽈뜨로' 공연.ⓒ제주의소리
2일 오후 5시 제주아트센터에서 열린 제74주년 4.3희생자 추념 전야제 뮤지컬 갈라 '낙인과 차별을 넘어'. ⓒ제주의소리
2일 오후 5시 제주아트센터에서 열린 제74주년 4.3희생자 추념 전야제 뮤지컬 갈라 '낙인과 차별을 넘어'. ⓒ제주의소리

4.3의 중심에 서 있는 제주4.3희생자유족회와 제주4.3평화재단, 제주특별자치도는 전야제 메시지를 통해 상처 입은 과거가 상처 입은 현재를 위로하는 연대와 공생의 메시지를 전했다.

합창단 '메모리아&꽈뜨로'는 양태현 지휘자가 작곡한 음율에 김동현 제주민예총 이사장이 가사를 덧씌운 곡 <그 기억 속 희망>의 첫 선을 보였다. 낙인과 차별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았던 시기를 기억하자는 의미의 노랫말은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이어 뮤지컬팀 '튠즈'는 뮤지컬 갈라콘서트 형식의 '낙인과 차별을 넘어' 무대를 통해 어두웠던 시대를 살아간 이들의 이야기를 예술적 시각으로 풀어냈다. 백발의 노인은 4.3의 광풍이 몰아친 1948년부터 오늘날까지 굴곡진 인생을 살아왔다. 부모는 떠났고, 마을은 불에 탔다. 자신도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된 핍박을 받았다.

노인이 된 오늘날의 내가 4.3의 낙인으로 인해 조작간첩사건의 재판정에 선 1978년 과거의 나와 조우하는 모습은 극의 백미였다. 시대가 달라지며 그 크기는 다를지언정 여전히 '낙인과 차별'의 고리에 묶여 고통 속에 갇혀 있는 이들의 목소리다.

독립운동가 안중근 의사의 일대기를 그린 뮤지컬 '영웅' 의 수록곡인 <누가 죄인인가>는 이날 공연에서 새롭게 해석돼 4.3의 배경이 된 제주도민들의 항거의 역사를 선명하게 보여줬다. 멜로디만 들어도 단번에 알아차릴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I Dreamed a Dream>은 혹독한 현실 속에서 꿈을 잃어버린 노인의 절망을 드러내는 장치로 활용됐다.

2일 오후 5시 제주아트센터에서 열린 제74주년 4.3희생자 추념 전야제 뮤지컬 갈라 '낙인과 차별을 넘어'. ⓒ제주의소리
2일 오후 5시 제주아트센터에서 열린 제74주년 4.3희생자 추념 전야제 뮤지컬 갈라 '낙인과 차별을 넘어'. ⓒ제주의소리
2일 오후 5시 제주아트센터에서 열린 제74주년 4.3희생자 추념 전야제 뮤지컬 갈라 '낙인과 차별을 넘어'. ⓒ제주의소리
2일 오후 5시 제주아트센터에서 열린 제74주년 4.3희생자 추념 전야제 뮤지컬 갈라 '낙인과 차별을 넘어'. ⓒ제주의소리
2일 오후 5시 제주아트센터에서 열린 제74주년 4.3희생자 추념 전야제 뮤지컬 갈라 '낙인과 차별을 넘어'. ⓒ제주의소리
2일 오후 5시 제주아트센터에서 열린 제74주년 4.3희생자 추념 전야제 뮤지컬 갈라 '낙인과 차별을 넘어'. ⓒ제주의소리

2부에서는 제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무용수(윤정애·박연술·한정수·김한결·라무)들의 무용공연 '말이 되지 못한 기억', 국악연희단 하나아트와 (사)마로가 함께 하는 '민중아리랑' 공연이 펼쳐졌다. 말할 수 없어 자신을 숨기고, 낙인의 고리로 움직이기 힘든 4.3의 고통을 몸짓으로 풀어냈다. 아리랑 가삿말에는 깊은 한이 묻어나왔다.

1983년 대학가요제 대상을 수상한 그룹 '에밀레'의 리드보컬로 울림 있는 목소리를 지닌 제주 출신의 포크가수 김대익은 <임진강>을 비롯해 <잠들지 않는 남도>와 <애기동백꽃의 노래>를 선보였다.

싱어송라이터 안예은은 시대를 잇는 매개의 역할을 했다. 인기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스타덤에 오른 안예은은 그 독특한 창법으로 인해 또래 가수들과 달리 독보적인 장르를 구축하고 있는 뮤지션이다. 그 인기를 반영하듯 이날 전야제에도 20~30대의 젊은이들이 무대 곳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영화 '왕의 남자'를 보고 영감을 얻어 만든 것으로 전해지는 대표곡 <홍연>은 곡의 배경을 모르고 접근하니 4.3의 아픈 과거를 떠올리는 기제가 됐다.

'시대의 음유시인' 정태춘의 무대는 그 순서나 비중에 있어 가장 많은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어내기 충분했다. 2030세대에는 낯선 이름일 수 있지만, 그 바로 윗 세대를 살아온 이들에게는 가슴 깊숙한 곳을 찌르는 추억과 묵직한 힘을 선사하는 이름이다.

정태춘은 <북한강에서>, <떠나가는 배>를 잇따라 열창했다. 노랫말과는 별개로 노동자와 민초들을 위해 목 놓아 부르짖고 싸워온 정태춘은 존재 자체로 위로를 안겼다. 거친 시대를 이겨낸 곡 <92년 장마, 종로에서>의 피날레에서는 억눌렀던 관객들의 박수와 환호가 터져나왔다.

2일 오후 5시 제주아트센터에서 열린 제74주년 4.3희생자 추념 전야제 피날레를 장식한 가수 정태춘. ⓒ제주의소리
2일 오후 5시 제주아트센터에서 열린 제74주년 4.3희생자 추념 전야제 피날레를 장식한 가수 정태춘. ⓒ제주의소리
2일 오후 5시 제주아트센터에서 열린 제74주년 4.3희생자 추념 전야제 피날레를 장식한 가수 정태춘. ⓒ제주의소리
2일 오후 5시 제주아트센터에서 열린 제74주년 4.3희생자 추념 전야제 피날레를 장식한 가수 정태춘. ⓒ제주의소리
2일 오후 5시 제주아트센터에서 열린 제74주년 4.3희생자 추념 전야제에서 가수 안예은의 공연. ⓒ제주의소리
2일 오후 5시 제주아트센터에서 열린 제74주년 4.3희생자 추념 전야제에서 가수 안예은의 공연. ⓒ제주의소리
2일 오후 5시 제주아트센터에서 열린 제74주년 4.3희생자 추념 전야제. 포크 가수 김대익이 열창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2일 오후 5시 제주아트센터에서 열린 제74주년 4.3희생자 추념 전야제. 포크 가수 김대익이 열창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이내 모든 출연진들은 무대에 올라서 대합창 <상록수> 공연을 통해 제74주년 4.3희생자 추념 전야제의 막을 내렸다.

앞서 오임종 4.3유족회장은 전야제 메시지를 통해 "암울했던 시절 아버지·어머니의 호적에 이름도 올리지 못하고 살아온 사람들도 많았다. 서류 한 장 없어 부모를 부르지 못하던 시절이었다"며 "이제 고통의 역사는 끝나야 한다. 모두가 한 마음으로 평화의 강물에서 힘차게 노를 저어 새로운 희망의 역사를 우리 아이들에게 넘겨줘야 한다"고 전했다.

고희범 4.3평화재단 이사장은 "74년 전 4월 우리는 새로운 세상이 오기를 염원했던 평범한 사람들이었고, 해방된 땅에서 진정한 민주주의가 꽃 피우기를 원했던 소박한 시민들이었다"며 "역사의 강물은 정의의 바다로 향하고 있다. 모두가 하나 되어 나아가자. 우리 모두 뜨거운 마음으로 하나되는 그 날을 염원한다"고 외쳤다.

구만섭 제주도지사 권한대행은 "역사의 정의를 바로 세우는 것은 건강한 공동체로 회복시키는 일이다. 다시 찾아온 봄 4.3의 완전한 해결을 향한 4월의 진실 앞에서, 역사의 정의 앞에서 우리는 함께 한다"며 "74년 동안 모두가 염원했던 그 날에 한 걸음 더 다가선 우리 모두는 4.3의 유족이자 가족"이라고 의미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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