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은 인류사의 중요한 전환점이다. 특히 대표적인 경우가 1347년부터 1352년까지 유럽인구의 1/3이 원인도 모른 채 검게 물든 몸으로 죽음을 맞은 흑사병이었다. 물론 그 후 흑사병은 현저히 약화됐지만 17세기까지 주기적으로 유럽을 휩쓸었다. 흑사병의 창궐은 기독교 영성과 근대 과학 및 철학은 물론, 산업 자본주의의 성격에도 큰 변화를 야기했다.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코로나19 팬데믹과 기후 그리고 생물 대멸종 위기도 그 연장선 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생태사상가이자 지구사학자라 불리는 토마스 베리 신부에 따르면 중세 사람들은 300년에 걸친 이 흑사병을 신의 징벌로 여긴 나머지 기독교의 성격이 사랑과 창조 중심의 영성에서 죄와 구원 중심의 영성으로 전환 되었다 한다. 즉 자연의 계시나 신성함은 무시되고 최후 심판을 기다리는 천년왕국에 대한 비전이 정신을 지배한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흑사병으로 만연한 자연에 대한 혐오의식은 자연을 관찰 통제하려는 근대 과학의 발달을 가져왔고 인간을 물질과 영혼으로 분리시키는 이원론의 형성에도 기여했다. 데카르트를 비롯한 근대문명을 연 계몽주의 지식인들은 자연과 동물을 영혼 없는 자동 장치라 여겼다. 얼굴 빛 하나 변하지 않은 채 개를 마구 때렸으며 고통을 느끼는 듯 몸부림치는 생명에 동정심을 느끼는 이들을 비웃었다. 매 맞을 때 내는 비명소리는 마치 시계 속에 있는 작은 스프링의 소음일 뿐, 몸 전체는 아무런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런 견해는 노동과 자연에 대한 자본주의적 착취의 정당화와 함께 식민주의에 대한 도덕적 면죄부 부여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사회 경제적 변화도 엄청나다, 팬데믹으로 인한 급격한 인구의 감소는 인건비의 상승과 부와 권력을 누리던 지주들의 파산을 비롯 중세의 특징이던 봉건주의 붕괴도 앞당겼다. 개인주의의 발달과 상업활발은 물론, 사회 경제의 유동성 변화는 반대 급부인 인클로저 운동 등 근대 자본주의의 태동을 알리는 전조로 이어졌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기후변화와 생물 대멸종 위기를 감안할 때, 현 인류 사회 또한 대응 여하에 따라 그보다 훨씬 뛰어넘는 급진적 변화가 예상된다. 마치 복잡계 과학의 자기조직화의 변화과정에서 분기점에 서 있는 형국이랄까.

1977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일리아 프리고진에 따르면 소산적 구조에서 자기조직화의 분기점은 해당 시스템의 과거에 의해서도 혹은 그 시스템의 주변 환경에 의해서도 결정되지 않는다. 오직 시스템 내부의 아주 작은 변동들, 그리고 결국에는 시스템이 내부 조건의 변화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느냐, 즉 수용적 민감성을 통해 규정될 뿐이다. 이를 우리 자신이 하나의 부분으로 포함되어 있는 사회적 체계에 유비해 볼 수 있다.

우리 역시 하나의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의 수용적 민감성이 어떻게 작동하느냐에 따라 위기를 돌파하든가 아니면 붕괴하는 것이다. 내부의 상호작용과 피드백을 통해 보다 높은 수준에서 새로운 역학적 평형상태에 도달하거나 카오스적 시스템이 그렇듯이 보다 작은 단위들로 붕괴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팬데믹과 기후비상 시대의 인류는 의식혁명을 포함한 그 어떠한 급격한 정치 경제적 변화에도 담대할 필요가 있다.

첫째, 현 지구적 자본주의 시스템의 이익에 초점을 맞춘 자기강화적 팽창 및 재생산은 자본가를 포함한 지구 전체를 삼켜버릴 기세다. 거대한 물질적 흐름의 6%만이 생산물로 귀결될 만큼 놀랍게 낭비적인 데다 생산 비용에 포함되지 않는 환경에 미친 부수적 피해도 원칙적으로 무시된다. 외부비용의 내부화를 비롯하여 현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일종의 리모델링을 강구해야 한다. 특히 자본주의 시스템을 추동하는 자기 파괴적인 생산지상주의 논리에 있어 육식, 즉 고기에 대한 신앙은 그 논리의 상징이자 동시에 대표적 증상이다.

2016년 흥행 다큐 《카우스피라시(Cowspiracy): 지속가능성의 음모》 스틸샷. 출처=넷플릭스.

고기 생산과 가축 사료로 연간 750억 마리의 동물이 무자비하게 도살당하고 어류의 40%와 물 소비의 70%, 세계 식량의 40%가 투입된다. 세계 농지의 83%를 차지하고선 1인당 칼로리의 15%만을 공급한다니 이보다 비효율적인 게 있을까. 정치적 보조금으로 값싼 곡물이 양산됨에도 그 곡물조차 구입하기 어려워 기아로 10억명이 죽어가는 반면, 그 값싼 곡물을 동물들에게 공급하는 게 더 이익이 되며 20억명이 과도한 육류섭취로 인해 비만과 만성질환으로 고통받고 있는 현실이다. 그 과정에서 자원이 고갈되고 팬데믹을 겪고 생태계가 피괴되며 다시 육류소비가 증가하는 악순환에서 깨어나야 한다.

둘째, 현 국제 정치체제도 홉스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같은 주권 국가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각 국가들 사이의 야만적인 관계가 한 국가 내부의 윤리적 영웅으로도 떠받들어지는 어처구니없는 광경이 여전히 목도되고 있으니 말이다. 팬데믹과 핵, 기후위기 등의 해결을 위해서는 지구적 관리체제(글로벌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국가 주권을 넘어설 수 있는 모든 인류 공동체들 사이에 보편적인 연대와 협력을 이뤄내야 한다. 무엇보다 보편적 지구별 윤리와 그 윤리에 근간한 지구 민주주의가 요구되는 이유이다. 보편적 지구별 윤리는 세계관의 전환을 전제한다.

셋째, 인간을 먹이사슬의 최상위에 두고 자연과 생명체를 도구와 소비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인간 중심의 세계관은 인간 본연의 연민과 자각으론 차마 받아들이기 힘든 세계관이다. 오늘날 지구적 자본주의의 팽창과 지속가능성 위기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받는 이유이다. 인간 본연의 연민과 자각으로 비춰볼 때, 왜곡 축소되고 마비되지 않으면 감내하기 힘든 세계관의 강요는 인간의 관계를 찾아내는 능력이자 고통을 덜어주려는 열망을 억제하면서 기아, 생태계, 공동체 파괴 등 미래 세대에 끼칠 고통도 무감각하게 만든다. 또한 이러한 문제를 자각하고 효과적으로 다룰 능력도 서서히 억압한다. 예전 시대와 달리 ‘나’라는 자아와 개인주의가 공공의 이익과는 배치되는 협소하고 과격하며 불안한 특성을 띠는 것도 이 때문이다.

새로운 세계관은 생태학이나 현대 물리학 그리고 많은 영적 전통이나 종교에서 언급되듯, 서로가 먹고 먹히는 적자생존이 아니라 먹고 먹이는 상호의존의 관계 속에 서 있음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인간도 하나의 생물종이며 모든 종은 하나로 연결되어 상호존재 한다는 것이다. 자연이 준 음식과 물질은 모든 존재들의 호혜와 희생이 있기에 가능하니 우주의 선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의 삶도 거기에 합당한 성숙한 삶 즉 환경으로부터 무한한 자원을 끌어내는 영웅적 면모보다는 필요한 것 이상을, 다른 이들이 공유할 수 있는 것 이상을 취하지 않도록 유의하며 생태계의 모든 생물종들과 협력하는 겸손한 삶이 마땅할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과시적 소비를 모방하려는 경쟁에 혈안인 이전 세계관의 맥락에서 보면 경천동지할 일이다.

모든 영적 전통과 종교에서 강조하는 ‘대접받고 싶은 대로 상대를 대접하라’ 의 황금률이야말로 우주 보편적 윤리이고 이는 우리의 밥상에서부터 미래 세대와 모든 생물 무생물까지 실천돼야 할 때다. 사진=고용석 한국채식문화원 공동대표.

우리의 마음이 홀로 고립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리기 시작할 때 순수한 본연의 상태로 될 수 있다. 이렇게 생물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조화로운 삶을 살수록 모든 생명체들이 연결되고 그 생명체들이 느끼는 바에 더 감응하며 자동적으로 그들을 보호하려고 들 것이다. 물론 절대적으로 피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럼 피해가 적은 쪽으로, 문제가 가장 적고 가장 적게 해치는 쪽을 택하게 되는 것이다.

예컨대 동물이건 식물이건 다른 생명을 죽여 먹이로 삼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삶의 전제조건이다. 이를 의식하는 마음이 크게 불편하고 두렵지만 이왕 먹는다면 폭력을 최소화하며 필요 이상을 취하지 않음이 비건 채식을 하는 마음인 것이다. 비건 채식은 비폭력의 가장 높은 표현이며 사랑의 실천이다.

생태계 보호·생명존중·윤리적 소비의 깨어있는 밥상은 새로운 세계관을 내면화하며 일상에서 행하는 윤리적 실천이다. 영적 전통과 문화 그리고 종교에서 공통으로 말하는 ‘대접받고 싶은 대로 상대를 대접하라’의 황금률을 동물과 생물종, 미래세대에 대해 표현한다고 할까. 무의식적이고 개인적으로 보이는 밥상에 지구와 생명에 미치는 영향을 피드백하고 우주적 공공성을 담는다. 이는 인간 본성을 원 상태로 되돌리며 새로운 인류의식을 향한 유의미한 출발점이기도 하다.

‘삶을 바꾸려면 마음을, 마음을 바꾸려면 먼저 음식을 바꿔라’는 말이 있다. 집단적 의식혁명에 비해 음식이란 매개체를 통한 의식변화는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고 시간도 안 걸린다. 대중적이면서 동시에 실천적이고 근본적이다. ‘깨어진 창’ 이론에서 보듯 뉴욕의 골치 아픈 범죄률을 해결한 게 예상치 못한 소소한 지하철의 낙서이듯 음식은 패러다임의 변화를 반영하고 촉진하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절묘한 신의 한 수라 할 수 있다.

삶에 뿌리내린 일상의 민주주의는 건강, 지구환경, 생명, 경제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는 마음에서 출발한다. 그러므로 끼니마다 시장에서 무엇을 구입하느냐는 선거이자 일종의 투표 행위가 된다. 일상의 밥상에서부터 황금률 실천은 시민으로서의 역량을 끌어내고 다른 큰 이슈들에도 지렛대 역할을 하며 민주주의와 지구적 살림 및 생명 문화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더 나은 시민공동체와 지속가능성 선순환을 열어가는 살아있는 지구 민주주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지구 민주주의는 시민권의 밑바탕이 낄린 공동체의 범위를 지구 생물권까지 확대한다. 자연과 생물 종들은 상호연결되어 있다. 서로를 폭력적으로 다루면 인간에 고스란히 되돌아오기 마련이다. 인류가 야생동물을 사냥하고 그들의 서식지인 숲을 파괴한 결과, 겪고 있는 것이 작금의 코로나19 팬데믹과 기후위기가 아닌가. 동물의 권리와 식물의 권리, 세균의 권리와 자연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으면 인간도 지구도 건강을 얻을 수 없는 법이다. 인간, 동식물, 바이러스 모두가 하나의 지구, 하나의 건강 체계에 있기 때문이다.

원인과 조건이 사라지지 않은 이상 또 다른 팬데믹은 물론, 기후위기는 상수일 수밖에 없다. 차가 꼭 필요한가를 묻지 않고 차 연비를 효율화해도 계속 더 좋은 차를 원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이치다. 근본적인 소비패턴의 전환 없이는 시장과 기술, 정부의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한 국가의 시민과 동시에 지구 시민로서의 깨어있는 역할 특히 깨어있는 밥상이 요구되는 이유이다. 이는 향후 팬데믹과 기후변화를 위한 지구적 관리체제(글로벌 거버넌스) 구축은 물론, 새로운 경제체제와 모든 인류 공동체 사이에 보편적 연대와 협력을 이뤄내는 토대가 될 것이다. / 고용석 한국채식문화원 공동대표

# 고용석은?

비건채식운동가. 1994년, 환경·시민·종교단체가 총망라된 국내 최초의 국제 채식 심포지엄 ‘채식이 지구를 살립니다’와  미래진단 세미나 '퓨쳐비젼'을 비롯하여 2008 2009년 세계를 연결하는 3차례 지구온난화 글로벌 컨퍼런스  등 창의적이고 선구적인 프로그램들을 기획해왔다. 세계 NGO대회와 유엔회의 관련 활동에도 수십차례 참여해왔으며 방한 종교및 환경지도자의 통역일과 각종 주요신문의 컬럼리스트와 자유기고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현재 한국채식문화원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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