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사상: 그리움과 존재의 이유
사랑의 사상: 그리움과 존재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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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世通, 제주 읽기] (220) 김승립, ‘벌레 한 마리의 시’, 삶창, 2021.
김승립, ‘벌레 한 마리의 시’, 삶창, 2021. 사진=알라딘.

1.
김승립의 시집 ‘벌레 한 마리의 시’를 손에 쥐고 각 편의 시를 톺아보았다. 일반적으로, 시인이 아무리 숙고를 거듭한 끝에 한 권의 시집으로 묶일 시편을 엄선했다고 하더라도 편차가 있기 마련인데, ‘벌레 한 마리의 시’에 수록된 시편들의 편차가 쉽게 눈에 띄지 않을 만큼 60여 편의 시들은 서정시로서 손색이 없는 ‘좋은 시’로서 품격을 지니고 있다. 이번 시집을 통독하면서 사랑의 사상에 연루된 그리움과 사랑 그리고 존재의 이유에 대한 김승립 시인의 웅숭깊은 시적 사유로부터 상투적 일상에 대한 반성적 성찰의 시간을 가져본다. 

2.
다음의 시를 음미해보자.

그리움 하나로 눈뜨는 숲이 있다/차운 눈발조차도 부드러이 잎새들에 스며들고/눈 비비며 깨어나는 멧새들의 날개 치는/소리에 아침 하늘 환하게 열리는//
정정한 도끼날에도 순은의 햇살은 빛나고/우리 옛적 저고리에 밴 땀방울도/오직 사랑으로 일구어가는/청솔 그루터기마다 눈매 고운/웃음들이 넉넉히 자리하여/사람과 사람, 나무와 새 새끼들이 적의와 굴욕 없이도/한세상 푸짐하게 껴안는//
그리움 하나로 빛나는 숲이 있다/빈 들판에서 가축들 느리게 돌아오고/손길 주지 않아도 산나리들 무더기로 피어나/따로 희망의 약속 부질없는//
저녁연기 속으로 지친 그림자들/안개처럼 녹아들고 억센 근육으로/새큼새큼 건강한 성(性) 피워내는//
그리움 하나로 눈뜨는 숲이 있다/꾸미지 않아도 시가 항아리로 익어가고/생명이 생명으로만 타오르는 곳/그대여, 우리 그 숲으로 가자/그리하여 우리 태초에 지닌 맨살로/껴안고 살 부비며 덩실덩실 춤이나 추자/산 같은 그리움으로 한세상/맛있게 맛있게 꽃을 피우자
— ‘가자, 우리 그리운 숲으로’ 전문

‘벌레 한 마리의 시’의 밑자리에 흐르고 있는 ‘그리움’의 심상을 만나는 일은 어렵지 않다. 비록 생의 뜨거운 정열적 여름이 지나가 조락(凋落)의 가을을 맞이하더라도 “외려 가슴에 은은히 타오르는/그리움의 잉걸불이 오래 멀리/따스함을 나”누고(가을볕), 내리는 “비는 비끼리 몸을 섞지 못 하지만/그러나 오랜 그리움으로/풀잎을 적시고 마른 나무들을/적시고 온 세상의 목마름을 채우”듯이(비), 뭇 존재들에게 영원한 이별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존재들 사이에 시나브로 때로는 촘촘히 때로는 성글게 생성된 관계로부터 “영문 모를 그리움”(대설주의보 2)이 ‘존재의 이유’일 뿐이다. 이 ‘존재의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그리운 숲’을 그리워하도록 한다. 그 숲에는 사람들 사이, 사람과 자연 사이, 그리고 뭇 존재들 사이에 “적의와 굴욕 없이도/한세상 푸짐하게 껴안는”, 그래서 “생명이 생명으로만 타오르는 곳”으로, “우리 태초에 지닌 맨살로/껴안고 살 부비며 덩실덩실 춤”을 출 수 있는 곳이다. 
여기서, 김승립의 이 ‘그리운 숲’에서 펼쳐지는 도저한 시적 난장은 예사롭지 않다. 이것은 작금의 현실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겨냥하고 있다. 김승립에게 ‘그리움’의 심상은 최근 각종 문화산업에서 붐을 일으키고 있는 ‘레트로’ 감성과 거리를 둔다. 그의 ‘그리움’의 시편들은 ‘옛것’에 대한 복고취향에 젖어들게 함으로써 복잡한 현실에 대한 도피적 성격과 무비판적 문화 감성을 문화상품으로 소비하는 데 있지 않다. 그의 ‘그리움’의 심상을 거느리는 시에는 존재들 사이의 사랑을 응시할 뿐만 아니라 사랑의 상처를 함께 아파하는 시의 존재 이유가 자리하기 때문이다. 

벼락처럼 사랑이 왔다 해도/무모한 정념이 쏟아낸/다스려지지 않은 그 많은 말과 행위들/그것들은 네게 얼마나 무거운 짐이었으며/역겨운 소음이었을까
— ‘풋것의 사랑’ 부분

세상의 쓸쓸한 벽마다/네 생의 남루를 걸어둘 수 있게끔/네 슬픔의 무게를 오롯이 견디는/대못으로 박혀 있고자 했다/그러나/어쩌다가 나는/외려 너의 가슴에 깊숙이 박혀/네 영혼의 피를 철철 흘리게 하는/대못이 되었단 말인가
— ‘어떤 사랑’ 부분

사랑처럼 아름답고 고귀하고 순결한 그 무엇이 있을까. 그래서인지, 인간의 그 어떤 미사여구로도 사랑의 진실에 다가가는 일은 난망한 일이다. 위 시구를 곰곰 음미하는 동안 새삼 ‘사랑을 한다는 것’, ‘사랑에 대해 사유한다는 것’, ‘사랑을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것’ 등속이 “얼마나 무거운 짐이었으며” 누군가의 “영혼의 피를 철철 흘리게 하는/대못”과 흡사한 것인가를 뼛속 깊이 새기게 된다. 돌이켜보면,시의 영역에 국한시킬 때, 많은 시인들이 사랑에 관한 시를 노래한 가운데 절창으로 손꼽는 것들은 상처어린 사랑이 아니던가. 서로를 향한 애틋한 사랑으로 열려 있었으나, 그것은 도리어 타자를 주체의 사랑의 정동 안에 옴쭉달싹할 수 없게 가둬두는 것이었고, 타자를 향한 온후한 언어가 갑작스레  서로의 존재를 위협을 가하는 날카로운 비수의 언어로 둔갑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채지 않았던가. 설령 그것이 우리가 마주하고 싶지 않은 사랑의 끔찍한 모습이지만, 우리는 바로 이러한 사랑의 상처를 자신과 타자에게 남기고 있었다.

3.
그래서일까. 김승립 시인의 눈에 밟히는 남다른 사랑이 있다. 

오래전 식민지 열혈청년과 제국의 무적자(無籍者) 여인이 한데 얼려/제국 대법정에서 당당하게 맞짱 뜬 불꽃 눈빛을 응시하니/외려 사랑이 강철이고 사상은 밤비처럼 스미는구나//
왜 일찍이 깨닫지 못했을까/얼음 속에 피어 있는 꽃도 있을 테고/수억 년 바위에 새겨진 나뭇잎 화석도 있을 터/때로는 날아오르는 새의 여리디여린 날갯짓이/허공을 두 쪽으로 가르는 일도 없다 할 수 없을 터이다//
지금 나는 사랑의 사상에 중독된다
— ‘사랑의 사상’ 부분

1923년 일본의 간토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일본 정부는 조선인 아나키스트 박열과 일본인 가네코 후미코를 일왕을 폭사한다는 혐의로 체포한다. 식민 종주국인 일본 여성과 피식민지 조선 남성은 반제국주의로서 아나키즘을 공유하고 있는 연인이다. 그들도 사람이기 때문에 서로에게 숱한 상처를 남기지만, 그들에게 사랑이 먼저인지 이념이 먼저인지를 묻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가네코 후미코가 법정에서 박열의 “모든 과실과 모든 결점을 넘어 나는 그를 사랑”하며, “부디 우리를 함께 단두대에 세워달라, 박열과 함께 죽는다면 나는 만족스러울 것이다”고 하듯, 사랑과 이념을 구분할 수 없는 “외려 사랑이 강철이고 사상은 밤비처럼 스”며든 그들 존재의 이유는 “사랑의 사상”에 기인한다. 
이러한 ‘사랑의 사상’에 중독된 시인에게 4.3무장대 사령관 이덕구의 주검이 패배한 혁명이 아니라 미완의 혁명을 넘어 도래할 혁명의 가치를 지닌 제주의 붉은 동백꽃으로 현현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조롱받은 나사렛 청년의/가시면류관처럼 빛나지는 않으나/마지막 그의 숟가락은 낮달처럼 하늘에 걸려/지지 않는 혁명을 떠올리게 하네//(중략)//
이 땅 어디선가는/그의 살아생전 형형한 눈빛 닮은/또 다른 동백꽃들 피어나/한세상 붉게 붉게 물들이고 있겠지
— ‘이덕구의 숟가락’ 부분

김달삼 사령관이 부재한 자리에 이덕구는 제주의 장두처럼 그 역할을 떠맡는다. 토벌대에 비해 현저히 열세에 놓인 무장대를 이끌며 이덕구는 “금수저 흙수저 가릴 것 없이 압제 없는 세상을 꿈꾸”면서, “삼삼오오 모여 앉아 따숩게 숟가락의 정 나누는/그런 밥상의 삶을 이루고자 했을 뿐”이다(이덕구의 숟가락). 이러한 세상을 향한 꿈이 이덕구의 혁명 안팎을 휩싸는 ‘사랑의 사상’이다. 기실, 시인에게 박열, 가네코 후미코, 이덕구, 제주의 민중, 그리고 뭇 존재들은 ‘사랑의 사상’을 지닌 존재로서 동토의 땅 틈새로 비집고 나와 “지구를 온통 파랗게 뒤흔들어놓는/무모한, 썩지 않는 사랑”(벌레 한 마리의 시)의 기운을 가져다주는 ‘벌레 한 마리’와 같은 경이로운 존재다.

4.
시집을 덮으면서 다시 펼친 시가 있다. 그리움의 심상과 사랑의 상처를 응시하면서 시인은 치유를 수행한다. 그의 치유가 주목되는 것은, 치유의 대상을 세상에서 아예 없애버리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고 그것과 함께 한바탕 어울려 놀면서 상처 스스로 훼손시키는 대상에 대한 적대적 관계로부터 놓여나는 길을 선택하도록 한다. 그렇다. 이러한 치유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치유책이 아니라 고수(高手)가 행할 수 있는 치유책이다. 상처가 절로 아무는 것은 상처 스스로 상처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는 고수의 치유책이야말로 우리가 귀 기울여야 할 삶의 성찰이리라. 

이 지루한 상처/그냥 커다란 바윗돌로 눌러 덮고 잠가버릴까/상처도 숨구멍이 있는데 그건 너무 잔인하다/불길 사막에다 뉘어놓고 그냥 말려버릴까/아으 상처의 살 썩는 냄새는 더욱 기막히다//
차라리 상처를 데불고 놀아보자/상처에 바퀴 달아주고 굴려보기/꽃단장하고 강강술래/혹은 서로 푸하푸하 물 먹이기//
뜻밖에 상처가 깔깔대며 웃는다/아하, 상처란 놈도 지가 지루해서/여태껏 날 지루하게 했나 보다
— ‘지루한 상처’ 부분


# 고명철

1970년 제주 출생. 광운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1998년 <월간문학> 신인문학상에서 <변방에서 타오르는 민족문학의 불꽃-현기영의 소설세계>가 당선되면서 문학평론가 등단. 4.3문학을 전 지구적 차원에서 새로운 세계문학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연구와 비평에 매진하고 있다.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문학(문화)을 공부하는 ‘트리콘’ 대표. 계간 <실천문학>, <리얼리스트>, <리토피아>, <비평과 전망> 편집위원 역임. 저서로는 《흔들리는 대지의 서사》, 《리얼리즘이 희망이다》, 《잠 못 이루는 리얼리스트》, 《문학, 전위적 저항의 정치성》, 《뼈꽃이 피다》, 《칼날 위에 서다》, 《세계문학, 그 너머》, 《문학의 중력》 등 다수. 젊은평론가상, 고석규비평문학상, 성균문학상 수상. mcritic@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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