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세 9번 낙제 김명헌, 9번 장원 이율곡의 先見, 9번 낙방 윤석열의 異見
81세 9번 낙제 김명헌, 9번 장원 이율곡의 先見, 9번 낙방 윤석열의 異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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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호의 짧은 글, 긴 생각] 쉰 다섯 번째
시간이 지날수록 제주다움의 가치는 더욱 빛난다. 제주출신의 공학자, 이문호 전북대학교 초빙교수가 '제주의소리' 독자들과 만난다. 제주다움과 고향에 대한 성찰까지 필자의 제언을 ‘짧은 글, 긴 생각’ 코너를 통해 만나본다. / 편집자 주

세상에는 시험에 얽힌 특이한 일들이 많다. 그 중 하나가 81세 9번 낙제 끝에 과거에 급제한 제주 김명헌, 9번 장원급제 이율곡과 9번 고시 낙방한 윤석열의 대선출마 경우다.

▲81세에 호조참판에 오른 김명헌의 행년구구 낙제삼삼(行年九九 落第三三), 1794년

행년구구 낙제삼삼(行年九九 落第三三)으로도 알려진 김명헌(중문, 회수리)은 대정현감 변경붕(대정, 신도)의 스승이다. 1794년 심낙수 어사가 내도해 열린 과거에서 제자 변경붕은 논(論)에 급제했으나, 스승인 김명헌은 책(策)에서 2등에 머물렀다. 81세 나이로 과거에 응시했던 김명헌이 지은 책 가운데 ‘行年九九 落第三三(행년구구 낙제삼삼, 지금 나이 81세에 낙제는 9번 했구나)’라는 구절을 가상히 여긴 정조임금이 특별히 제주 최고령으로 합격시켰다는 말이 회자되기도 한다. 고령의 김명헌이 교지를 받으러 한양에 갈 수 없게 되자 임금이 제주목으로 교지를 내렸으나, 이듬해 2월 교지를 받기 전에 김명헌 공은 숨을 거두었다. 교지를 가져온 관원이 교지를 고인의 관 위에 올리는 순간, 관이 부르르 떨면서 교지가 바닥에 떨어졌다고 전한다.

김찬흡 선생의 리포트에 의하면, 김명헌 공의 후예(김광철·김창희)들과 회수동 소재 종가를 방문해 공의 교지들과 시권(試券: 과거 답안지) 등의 유품을 살펴볼 행운을 가졌다. 또한, 종손 김원범님의 안내로 중문동 동쪽 동산에 있는 공의 공덕비와 하원동 탐라왕자묘 근처에 위치한 묘역을 찾아 참배하기도 했다. 스승과 제자가 나란히 과거에 응시한 것을 계기로 제주지역에서의 과거제도 변화를 보면, 조선시대 과거에는 문과와 무과, 그리고 잡과가 있었다. 제주 유생들은 전라도 관찰사 주재로 3년마다 치러지는 식년 문과에서 초시(향시)에 응시하기 위해 험난한 바다를 건너야 했다.

다음은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이다.

‘제주의 세 고을은 바다 멀리 밖에 있어, 수로가 험악하기 때문에 교수와 훈도가 입도하는 것을 싫어하고 꺼리니, 함흥지역의 예에 따라 품계를 더하여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향교의 관원인 교수와 훈도가 입도를 꺼려함은 곧 제주 유학 교육의 낙후함으로 이어진다. 이에 숙종 때는 전라도의 문과 초시 정원 중 일정 수를 제주에 할당하는 규칙이 정해지기도 했다. 이에 앞서 제주에서는 향시인 승보시(陞補試)가 있었다. 승보시는 1438년(세종20) 생원진사초시의 시작으로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다, 1638년(인조16) 다시 개시됐다. 1703년 편찬된 탐라순력도 승보시사(陞補試士)를 통해 당시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승보시는 출사의 당락을 결정하는 시험이 아니었을 뿐더러, 국방의 요충지였던 제주지역에 파견된 목사와 판관이 모두 무관 출신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 편이었다. 초시(향시)인 승보시 급제자는 복시인 회시에 응시하기 위해 한양으로 가야 하나 현실은 여의치 않았다.

다음은 표해록의 저자인 장한철의 향시에 대한 글이다.

‘내가 이전에 여러 차례 향시에 합격했으나 한양으로 시험을 치르러 갈 수 없었던 것은 천 리나 멀리 떨어져 있고 집안에 한두 섬의 쌀도 없어서 짐을 싸서 멀리 떠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제주에서의 소과 급제자의 기록인 사마방목(司馬榜目)과 사마선생안(司馬先生案)에는 29명만이 기록돼 있다. 이들 중 19세기 이전의 급제자는 6명에 불과하다. 그러던 중 17세기에 들어서 제주지역 과거 설행에 변화가 생기는데, 별견어사(別遣御使)의 파견에 의한 시재설행(試才設行)과 직부전시(直赴殿試)의 특권이 그것이다.

▲ 아홉 번 과거시험에 모두 장원급제한 ​한국의 천재 이율곡(1536-1584)

율곡 이이.

한국의 역사상 현인의 경지에 근접한 인물을 꼽으라면 관점의 차이는 있겠지만 율곡 이이 선생을 꼽는데 누구도 주저하지는 않을 것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율곡 선생은 9번 과거시험에 모두 장원급제 한 인물이다. 우리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며, 또한 예언자적 능력도 뛰어나 임진왜란을 미리 예견하고, 10만 양병설을 주장했으며, 정치, 경제, 국방 등 모든 분야에 식견이 탁월한 정치가요, 사상가이며, 교육학자였고, 철학자였다. 그의 가문은 또 유명한 신사임당을 어머니로 둔 뿌리 깊은 천재가문의 집안이었으며, 한국판 제갈공명, 한국 정신사의큰 산맥, 성리학의 대가 등 여러 가지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그러나 천재는 단명이라고 했던가, 그는 타고난 건강이 좋지 않아 49세의 나이로 세상을 마감했다. 

최근 전 검찰총장 윤석열은 아홉 번 고시에 낙방했지만 대선에 나와 뛰고 있다. 행년구구 낙제삼삼(行年九九 落第三三)으로도 알려진 김명헌, 아홉 번 장원급제한 이율곡은 세상 앞을 내다보는 선견(先見)을 가졌지만, 아홉 번 낙방한 윤석열은 세상이치를 보통사람과 다르게 보는 이견(異見:개 사과 Dog Apple)을 가진 게 특징이다.

▲변경붕(대정읍 신도리) 대정현감이 기록한 갑인년 제주대흉년, 1794년

‘1794년 8월 27일과 28일 2일 동안 휘저은 강풍이 추수를 앞둔 들녘을 강타하니, 큰 기근이 이어졌다. 바람이 어찌나 드센지 바다 짠물이 하늘을 덮었고 큰 나무들마저 뿌리째 뽑혀 나갔다. 집들은 무너지고, 도로는 날아든 돌덩이에 막혀 오갈 수 없게 되었다. 사람들은 엄청난 재앙에 넋을 잃고 서로 바라볼 뿐이었다. 제주목사는 급히 조정에 장계를 올려 구휼하려 했으나 바닷길이 험난하여 10월부터 굶어 죽는 사람이 생겼다. 거리에 시체들이 늘어났지만 사람들은 꺼려하지도 않았다. 이듬해 1월 구휼양곡을 실은 배 30척이 화북포와 조천포에 무사히 도착했으나, 뒤따라오던 다섯 척의 배는 포구가 좁고 여울이 심해 머뭇거리는 사이 갑자기 바람이 일어 침몰했다. 배에 실은 수천 포의 쌀이 바다에 빠져버렸고 이를 지켜본 사람들은 발만 동동 굴렀다.’

위의 글은 갑인년 대기근에 대한 변경붕의 처절한 기록이다. 조선왕조실록은 대기근 시 굶주린 사람 수가 1794년 겨울 기민(飢民)은 6만2698명이고, 1795년 겨울 기민은 4만3735명이어서, 감축(減縮)된 자가 1만8963명에 이른다고 전한다. 갑인년 대기근 시의 기아자들에 대해 변경붕은 다음과 같이 특이하게 적고 있다.

‘쇠고기를 먹은 사람은 배고픔을 이겨냈고, 말고기를 먹은 자는 더욱 배고파했다. 땅에서 나는 것을 먹은 자는 배를 채웠지만, 해산물을 먹은 자는 배고파했다. 곡물을 적게 먹으면서 배고픔을 견딘 사람은 살았지만, 채소를 많이 먹으며 배를 채운 사람은 죽었다. 서광서리 넙게오름에 선친이 경작했던 ’개다리 왓‘이 있는데 1794년 갑인년 흉년에 개다리 하나와 밭을 바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때 제주 대흉년은 천지를 뒤집어놓았다.

▲ 2021년 8월  9급 공무원 시험: 1794년 9번 낙방하다가 열 번째 81세에 과거급제, 호조참판에 오른 김명헌에서 보듯, 230년이 지난 2021년 8월 현재  9급 공무원 약100대 1에 목을 매고, 7급은 35대 1, 5급은 43대 1이다.

요즘 워낙 취업경쟁이 심하다 보니 대학과 도서관을 오가며 신분이 보장되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많고. 최근에는 퇴직이나 정년에 이른 분들이 인생 이모작 준비로 자격증 공부 등으로 도서관을 채우고 있다. 본 글은 김찬흡 선생(제주일보)의 글을 부분적으로 참조했다. 1969년 9월 제주제일고에서 필자와 책상머리를 같이 했다. 감사드린다. 

# 이문호

이문호 교수는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 서광리 출신 전기통신 기술사(1980)로 일본 동경대 전자과(1990), 전남대 전기과(1984)에서 공학박사를 각각 받고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서 포스트닥(1985) 과정을 밟았다. 이후 캐나다 Concordia대학, 호주 울릉공- RMIT대학, 독일 뮌헨,하노버-아흔대학 등에서 연구교수를 지냈다. 1970년대는 제주 남양 MBC 송신소장을 역임했고 1980년부터 전북대 전자공학부 교수,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며 세계최초 Jacket 행렬을 발견했다. 2007년 이달의 과학자상, 과학기술훈장 도약장, 해동 정보통신 학술대상, 한국통신학회, 대한전자공학회 논문상, 2013년 제주-전북도 문화상(학술)을 수상했고 2015년 국가연구개발 100선선정, 2018년 한국공학교육학회 논문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제주문화의 원형(原型)과 정낭(錠木) 관련 이동통신 DNA코드를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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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 2021-11-07 11:30:40
예나 지금이나 무언가를 꾸준하게 도전하는 건 개인의 의지와 확신이 없고서는 힘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제주에선요. 9번을 합격한 사례보다 9번이나 도전해서 끝내 합격한 사례가 더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211.***.***.56

제주도는 제주도 2021-11-05 09:30:25
이제 소재가 떨어지면 스스로 글을 놓아야 하는 것도 선인들의 지혜인 줄 아옵니다.
175.***.***.207

선인장 2021-11-04 20:53:03
@ 끊임없이 멈추지 않고 도전하다보면 길이 보인다. 자신을 마음대로 움직이는 신묘한 기술을 터득하고 연마하다 보면 뜻하지 않게 빨리 목적지에 도착해 있는 자신을 발견할때가 있다. 부뚜막에 소금도 넣어야 짜다. 우선 우직하게 실천해보다 보면 좋은 결과에 도달해 있다. 세상사 모두가 계산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 의외로 단순명료한 사고방식이 해결의 단초가 되는 경우가 있다. 코로나 난국에 취업문이 더욱더 좁아지고 있다. 젊은 사람들이 사회구성원으로 제역할을 할때가 진정한 행복국가가 이루어진다. 청년이 취업하고, 결혼해서 자녀를 낳아 인류 종족유지가 꼭 이루어져야 한다. 너도너도 공무원하면 소는 누가 키우나. 본인의 소질을 찾아 개발하고, 똘똘한 기술분야 국가자격증 하나 따서 취업을
221.***.***.68

김낙훈 2021-11-04 17:37:02
섬이라는 지역적인 단절로인한 어려움과 취약한 환경으로 공직자의 길도 쉽지가 않았으며 기근에 나라의 경제적인 도움이 적기에 이루어지지않아 제주민의 서러움을 자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취준생이 둘인 자식을 지켜보는 현실에서 부모노릇하기도 작금의 현실에서 힘이 듭니다.
보편타당하게 서민이 노력하여 살만 한 세상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121.***.***.10

이율곡 2021-11-04 16:52:17
율곡선생은 9번시험볼때마다 장원급제,바다건너 올라간김명헌은 계속낙방, 포기않고81세에 합격한집념. 그용기,우리가본받아야합니다
.중문회수리에 그에 자손들이 살고있읍니다.변경붕현감 자손들도신도리에
살고있는것 같습니다.연락있길바랍니다.
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