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날 볼아사 시절 존나
추석날 볼아사 시절 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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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의 借古述今] (241) 추석날은 날씨가 맑고 바람 자야 시절이 좋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것을 빌려 지금을 말한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으면 미래 또한 없지 않은가. 옛 선조들의 차고술금의 지혜를 제주어와 제주속담에서 찾는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들도 고개를 절로 끄덕일 지혜가 담겼다. 교육자 출신의 문필가 동보 김길웅 선생의 글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 깃든 차고술금과 촌철살인을 제주어로 함께 느껴보시기 바란다. [편집자 글] 

* 볼아사 : (날씨가) 맑게 개고 바람 없어야

추석은 연중 중추(仲秋)로 가을이 한창일 때다. 오곡백과가 탐스럽게 익어 추수가 한창 이루어지는 절기다. 농촌이 추수철을 맞아 일 년 중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때다.

아직 곡식이며 과일이 완숙(完熟)하지 않았으니, 연일 쾌청하면 좋다. 일조량이 많아야 한다. 어쩌다 가을비가 지적지적 내리면 농사의 마무리가 잘되지 않는다. 수확에 결정적인 차질이 올 것은 말할 것이 없다. 심하면 일 년 내내 흘린 땀이 도로(徒勞)가 되고 말지 않는가.

올해처럼 코로나19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 시기에 다가오는 9월 21일 추석날이 쾌청한 데다, 휘엉청 대보름달이 동산 위로 붕긋이 떠올랐으면 좋겠다. 추석 명절을 기다려온 우리들, 언덕에 혹은 오름에 올라 “야호!” 달맞이로 쾌재를 부르며 밝은 추석 밤을 환호 속에 보낼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믿음은 소중한 것이니, 모두들, 추석에 날이 활짝 개기를 마음속으로 빌었으면 한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필자는 오래전부터 추석날이면 으레 차례를 지낸 후 다랑쉬오름 아래 기슭에 있는 부모님 산소에 가 음식을 올려놓고 참배했었다. 3~4년 전부터 줄곧 비가 많이 내리는 바람에 추석 성묘를 하지 못했다. 늘 해오던 성묘를 못하면서, 마음이 허전해 산 쪽만 바라본다. 비가 조금만 내려도 진 땅이라 길이 엉망진창이 돼 등산화가 푹푹 빠져 운신이 어려울 지경이 된다. 몇 번인가 걸음을 내딕지 못해 돌아온 적이 있다.

이젠 나이 들어 길을 걷기도 버거우니 조금만 질척이는 날씨에도 선묘 찾아 나서기가 어렵게 됐으니, 안타까운 마음 누를 길이 없다.

코로나19로 귀경을 자제해 달라는 방역 당국의 권고가 절실한 것이긴 하나. 백신 접종을 2차까지 마치고 방역 수칙을 철저히 지키면서 고향에 내려오게 됐으면 좋으련만. 힘들게 내려온 길, 선산에 성묘하기에 좋은 날씨가 됐으면 하고 하늘을 우러른다. 

농사든 추석 날씨든 모두 하늘이 하는 일이다. 예로부터 선량한 민족이니 하늘이 늘 우리를 보우해 왔지 않은가. 믿음은 소중한 것이니, 모두들, 추석에 날이 활짝 개기를 마음속으로 빌었으면 한다.

‘볼다’는 제주방언을 오랜만에 만난다. 

“바당이 볼았져.(바다가 잔잔하다.)”

“날이 볼젠허난 보름도 잤져.(날씨가 맑으려고 바람도 잤다.)”

옛 어른들이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던 말이다. 장마철이나 8~9월 태풍이 오는 절기에 애간장을 태우며 마음속으로 빌고 빌었던 말이다. 

“제발 날이 볼아줍서.” 특히 바람 센 날 조업한다고 배 타고 먼 바다로 나간 남편의 무사안녕을 빌며 기다리는 아낙네의 간절한 소망을 담은 그 말이었다.

‘추석에 볼아사 시절 존나.’ 이 말엔 개인적인 소망 따위는 들어 있지 않다. 소망은 오직 ‘절기’에 담았다. 추수는 한 해 농사의 마무리이기 때문에 추석에서부터 가을의 끝물까지 날씨가 좋아야 한다. 그런 기원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걱정을 가불할 필요는 없다. 밝은 마음으로 이번 추석날이 좋기를 기대하고 싶다.

#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 자리 ▲읍내 동산 집에 걸린 달락 외 7권, 시집 ▲텅 빈 부재 ▲둥글다 외 7권, 산문집 '평범한 일상 속의 특별한 아이콘-일일일'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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