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벌레가 유희하는 둔지오름

 
▲ 표고 282m인 둔지오름은 생태계의 보물창고인 자연의 나라 같습니다.
ⓒ 김강임
 

# 자연의 나라, 기생화산 속으로

6월의 제주 들녘은 풀섶 이는 벌레 소리와 빨갛게 익어가는 산딸기가 나그네를 유혹한다. 더욱이 제주 들녘 곳곳에 솟아있는 기생화산에 들어가 보면 자연의 나라에 와 있는 느낌이다.

 
▲ 풀섶에 이는 풀벌레는 풀잎이 아플까 봐 오래앉아 있지않고 뛰어다닙니다.
ⓒ 김강임
 
'찌르륵- 찌르륵-'.

제주시 구좌읍에 있는 둔지오름은 한마디로 자연의 나라였다. 입구에 들어서자 제일 먼저 나그네를 반겨주는 것은 나비와 풀벌레들. 노랑나비, 흰나비, 호랑나비가 마치 보랏빛 엉겅퀴가 자신의 놀이터인 듯 유희를 한다.

오르미는 둔지오름 표지석으로 오르지 않고 오른쪽 농로를 따라 남쪽에서 이어진 능선을 타고 올랐다. 민들레 이파리 속에 숨어 있던 여치와 메뚜기들도 분주하기만 했다. 풀벌레들은 풀잎이 아파할까 봐 풀잎 위에 오래 앉아 있지 못하고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닌다. 행여 풀벌레를 밟을까 봐 까치 발걸음으로 풀 섶을 헤치며 걷느라 곤욕을 치렀다.

 
▲ 산딸기가 둔지오름 등산로를 열더군요. 한줌을 따서 입에 넣으니 갈증이 해소되었습니다.
ⓒ 김강임
 
# 산딸기가 길을 여는 동심의 세계

완만하게 이어진 능선은 잘 다듬어진 길이 아니다. 그저 사람들이 밟으면 길이 되는 능선은 잡초가 우거져 있었다. 그 잡초 속에는 생태계의 보물창고였다.

아뿔싸! 그런데 둔지오름 가는 길은 빨갛게 익어가는 산딸기가 길을 열어 주었다. 무성한 띠(제주 초가지붕을 이는데 사용하는 재료) 속에 숨어 있던 산딸기를 보는 순간 가슴이 두근거렸다. 어릴 적 동심이 생각났다. 잎 새 뒤에 숨어 있는 산딸기를 찾아 헤매던 기억이 아련하게 떠올랐다.

오른손엔 카메라를, 왼손으로는 산딸기를 따서 입에 넣는 순간 달콤한 맛이 갈증을 해소 시켰다. 그런데 산딸기는 정상까지 길을 열어 주었다. 처음엔 한 알씩 따서 입에 넣었다가 한주먹을 따서 입속에 털어 넣었다. 씁쓸하던 입안이 단맛으로 꽉 채워진다. 달짝지근함에 취하는 포만감과 해방감이 함께 몰려왔다.

 
▲ 남쪽으로 벌어진 말굽형분화구에는 초록이 가득합니다.
ⓒ 김강임
 
# 오름 등성이마다 제주인의 삶 느껴

표고 282m인 둔지오름은 보는 곳마다 그 자태가 다르다. 어떤 이는 둔지오름을 '야외음악당 같다'하지만 내가 본 둔지오름은 '암탉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이다. 더욱이 능선을 타고 가노라면 오름 속에 존재하는 제주인의 삶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남쪽으로 벌어진 말굽형 분화구속에는 벌써 초록이 물들었다. 초록에 취해있는 순간도 잠시, 그 아래 구릉처럼 자리 잡은 용암 암설류도 또 하나의 장관이다. 올록볼록 용암유출로 붕괴되어 생긴 작은 언덕이 신비롭게 펼쳐졌다. 그리고 그 사이마다 여백도 없이 농부들이 만들어 놓은 밭담은 제주인들이 얼마나 흙에 애착심이 강인한지를 보여준다.

 
▲ 인동초라 부르는 금은화가 오름자락에 향기를 뿜어댔습니다.
ⓒ 김강임
 
제주오름에서는 고도가 높아갈수록 얼굴에 스치는 바람의 느낌의 농도가 다르다. 고도가 낮은 지점에서는 흙냄새와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하지만 고도가 높아질수록 멀리 김녕과 한동 바다에서 날아온 바닷바람이 신록과 어우러져 향기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오름 속에 서식하는 야생화들의 꽃향기는 또 하나의 자연의 향수를 선사한다.

둔지오름 북쪽에 빼곡히 들어선 해송도 산새들에게 앉을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심심하던 산새들은 해발 282m까지 날아들며 곡예를 한다. 정말이지 야외 음악당에서 연주가 시작되고 있는 것 같았다.

 
▲ 용암 암설류가 봉긋봉긋 솟아 있으며, 그 뒤로 다랑쉬오름이 보입니다.
ⓒ 김강임
 
 
▲ 둔지오름은 명당의 자리로 묘지가 옹기종기 모였습니다. 죽어서도 천당가려는 사람들의 욕망이 느껴집니다.
ⓒ 김강임
 

둔지오름 말굽형 굼부리가 끝나는 지점에는 묘지가 자리 잡았다. 살아있는 사람들은 죽어서도 자신들이 좋은 터에서 누워있기를 바라나 보다.

살아 있을 때도 가장 쾌적한 공간을 꿈꾸고 죽어서도 명당을 찾아가는 사람들, 이는 인간의 욕망이 어디까지인지를 잘 시사해 주는 것 같다. 명당의 자리로 손꼽히는 둔지오름 남쪽과 북쪽 기슭이 묘지구역으로 자리 잡고 있으니 말이다.

 
▲ 정상에 서면 멀리 우도와 성산일출봉이 한눈에 보입니다.
ⓒ 김강임
 
 
▲ 정상은 띠로 장관 이루며 경방초소가 그 외로움을 달래줍니다.
ⓒ 김강임
 
# 손가락 끝에 매달린 정상의 풍경들

급경사인 능선을 타는 피곤함도 잊고 산딸기 맛에 취해 있을 때였다. 정상 부근에는 돌들이 박혀 있었고 그 돌 틈에는 해송과 쥐똥나무, 그리고 양치식물들이 군락을 볼 수 있었다. 또 제주사람들이 지붕을 이는데 사용했다는 '띠'가 또 하나의 장관을 연출했다. 풀벌레 소리 가득한 정상에 서자, 내 입가에는 빨간 산딸기의 흔적이 마치 동심을 그려내고 있었다.

"저기- 우도가 보인다!"
"저기- 성산 일출봉이 보여!"
"저곳은 다랑쉬 오름이야!"

 
▲ 쥐똥나무 뒤에는 제주인의 삶의 터가 길과 길에 연하여 있습니다.
ⓒ 김강임
 
그동안 내가 발품을 팔며 걸었던 풍경들이 손가락 끝에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하얗게 피어나는 쥐똥나무 뒤에는 길과 길이 연하여, 다시 그 길을 걷고 살아가는 제주인의 터가 오롯이 떠 있었다. '자연의 나라'를 품에 안고서 말이다.

 

 
  유택도시 둔지오름  
 
 
 
▲ 둔지오름
ⓒ김강임


둔지오름은 제주시 구좌읍 한동리 산 40번지에 있으며, 표고 282m, 비고 152m이다. 둔지는 평지보다 조금 높은 곳을 이루는 제주방언으로 둔지가 많은 지역이라서 둔지오름이라 한다.

둔지오름 북쪽 비탈은 해송 숲을 이루고 남쪽 비탈은 풀밭과 듬성듬성 해송을 이루었다. 북쪽으로 벌어진 말굽형 분화구를 가지고 있으며, 원지형이 잘 보존돼 있다.

화구 앞에는 용암 부스러기가 작은 구릉을 이루고 있다. 오른쪽 주변 돌담이 둘린 무덤은 지형에 따라 각양각색의 돌담을 이루며 유택도시라는 인상을 풍긴다.

                             - 둔지오름 표지석에서-

 
 

 ☞ 찾아가는 길 : 제주시- 구좌읍 한동리 사무소- 둔지오름 삼거리(농로를 따라 8Km)- 덕천(200m)- 둔지오름 표지석으로 1시간 정도가 걸린다. 오름정상까지 오르는 데는 왕복 1시간 정도 걸린다.

※ 제주오름 등반 시는 꼭 정해진 등반로를 이용합시다. 오름등반 시 자연을 훼손시키는 일은 삼갑시다.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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