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미의 제주여행(2) - 한 여름밤의 탑동광장

지난 5일엔 모처럼 아이와 함께 탑동을 찾았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종종 찾았던 탑동인데, 아이들이 커 가면서 같이 보낼 수 있는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광장에서 멀리 떨어진 골목길에 차를 세우고 아이의 손을 잡고 룰루랄라 찾은 탑동은 마침 해가 지고 있었다. 몇년만의 폭염이라며 하루종일 분기탱천하던 태양도 시간의 흐름을 막을 수 없는지 아쉬운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광장에는 더위를 피해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려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고 있었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 노래자랑을 하는 가족이 있는가 하면, 빨갛게 물드는 해변을 두 손 꼭 잡고 바라보는 연인들의 모습도 보인다.

아이와 함께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손에 들고 행여 녹을세라 부지런히 빨아 먹으며
여기 기웃 저기 기웃 모처럼 한가한 저녁을 보낸다.

어느덧 해는 기울어 가로등이 하나 둘 켜지고, 광장을 찾는 사람들도 부척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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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동(塔洞)이라는 말은 탑을 세웠던 동네에서 비롯된 한자어이며 , 원래는 '탑알' 혹은 '탑발'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탑'은 사악한 것을 막기 위하여 돌을 쌓아올려 만든 방사용 탑을 말한다.

요즘은 '방사탑'이라고 부르는데 원래 '거욱대', '걱대', '하르방', '답(탑)' 등으로 불렀으며 '방사탑'이라고는 부르지 않았는데 '답'을 기록하는 사람들이 방사용 탑을 합성시켜서 방사탑이라고 표기하는 식으로 전해진 것같다.

탑은 제주도에 흔한 현무암을 그대로 쌓아 원뿔이나 사다리꼴 등의 모양으로 만들어진 마을 공동의 탑이다.

탑위에는 석상(石像)이나 나무로 만든 새를 꽂아 놓기도 한다. 이러한 것들은 사악한 것을 막거나 쫒아버리는 상징적 의미가 깊다.

원래 탑동에는 동쪽과 서쪽에 두개의 탑이 있었다. 제주시 삼도2동 무근성 서북쪽에 있었던 탑들은 지금은 없어졌다. 아마 해안을 매립하면서 싹 쓸어버렸을 것이다. 원래 탑은 이 곳 무근성에서 나이 젊은 과부가 많이 나기 때문에 세워진 것이라고 한다. 즉, 과부가 많이 나는 것은 살기(殺氣)가 비친 까닭이라 하여, 이 마을 북쪽 바깥에 좌우로 돌탑을 쌓고 해마다 제사를 지내었다고 한다.
해변공연장의 모양이 바로 이 탑의 모양이다. 지금이라도 복원하는 것은 어떨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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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해변공연장 쪽에서 음악소리가 나 그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해변공연장에서는 한여름 밤의 해변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안내 팜플렛을 보니 7월20일부터 8월9일까지 매일 저녁 8시에 공연이 열리고 있었다.

오늘은 칸투스 합창단과 콘서트콰이어 합창단의 "별밤 해변에서의 합창"이 공연되고 있었고, 객석에도 꽤 많은 시민들이 가족과 혹은 연인과 함께 공연을 관람하고 있었다.

나들이 나온 어린이가 자전거를 타고 무대 앞을 오고가도 누구하나 개의치 않을 정도로 자유로운 분위기의 공연이었다.


그러고 보니 제주도의 여름은 각종 문화행사가 풍성한 계절이다.
한여름 밤의 해변축제 뿐만 아니라 서귀포에서도 서귀포 여름음악축제가 열렸고,
곧이어 제주국제관악제와 아시아 태평양 관악제가 열린다.

특히 탑동광장은 무더운 여름 밤을 시원하게 보낼 수 있는 음악, 무용, 풍물공연, 연극 등 좋은 프로그램들이 다양하게 열리고, 제주의 살아있는 자연의 세계를 볼 수 있는 사진전시회 등 각종 전시회도 개최되고 있었다.


공연을 보다 아이의 손을 잡고 슬그머니 빠져 나왔다.
광장에는 초상화를 그려주는 사람, 맛있는 간식거리를 파는 노점상들, 더위를 이열치열로 이기려는 듯 운동에 열중하는 젊은이들로 붐비고 있었다.


모처럼 나온 김에 가까운 산지천을 찾았다.
산지천이 복원된 후 처음으로 오는 길이다. 차를 타고 지나면서는 여러번 보았지만 이렇게 걸어서 오기는 처음이다.
중국 난파선을 재현해 놓은 배에 올라가 보기도 하고, 밝게 켜 놓은 조명 아래 아이들이 물장구치며 노는 다리위도 건너며 동문로터리쪽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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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천(山底川)은 오등동 남쪽 한라산에서 발원하여 제주시를 가로질러 제주항으로 흘러가는 하천이다.

산지천은 그 하류 일대를 지칭한다. 물이 얼음처럼 차서 예로부터 제주시내 사람들이 한여름에는 이 물로 몸을 씻어 더위를 잊었다 하며, 은어가 많아서 이를 잡아 진상했다고도 한다.

산지천이 흐르는 하류는 예로부터 대외교류가 활발히 이뤄졌던 중요한 포구였다.
1928년 산지포구에서는 제주성을 허물고 축항공사를 했다. 그 도중에 기원을 전후해서 유통됐던 중국 한대(漢代)의 화폐유물이 출토되었다.
이것은 기원무렵부터 중국, 한반도와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졌음을 뒷받침하는 고고학적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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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개 구조물을 모두 헐어버리고 하천을 복원하여 다리도 친환경적으로 새로 만들고, 사철 물이 흐르는 청정하천으로 만들려는 당국의 노력에 찬사를 보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지나면서 보이는 하천은 아직 인간과 가까워진 하천으로 보기는 어려웠다.

물위에 떠 있는 쓰레기와 물이 떨어지는 곳에서 솟아오르는 하얀 침전물들은 아직도 청정과는 거리가 먼 하천으로 보이게 한다.
지금도 끊임없이 생활하수 등 각종 오염물질들이 하천으로 유입되고 있는 것 같다.


그래도, 아이들이 가장 하고 싶어 하는 놀이 중의 하나인 물놀이를 신나게할 수 있는 분수는 물만 깨끗하다면 한여름의 열기를 식히기에 충분한 공간이라 생각된다.

* 양영태님은 '오름오름회' 총무, 'KUSA동우회 오름기행대' 회원입니다. 이 글은 양영태님의 개인 홈페이지  '오름나들이(ormstory.com)에도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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