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쌓던 흙벽이 무너지다

▲ 오름 ⓒ오영덕
볕 좋은 봄날이다. 오랜만에 녹차밭을 둘러보았다. 지금쯤이면 확연하게 녹차나무들이 드러나야 할 시기지만 녹차밭인지 풀밭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지리산에서 구해온 야생차 씨를 뿌려 놓은 지 벌써 3년째. 아직도 녹차나무는 바닥에서 풀들과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생명을 키우는 농부로 살기에 난 너무 매정하고 무심한 인간이다.

인간의 손길을 최소화시킨 차나무의 잎이 제대로운 맛을 낸다는 말에 기대어 주인의 게으름과 무관심까지 합리화하고 있는 것이다. 차 밭 곁에 심어놓은 석창포밭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석창포는 한방에서 머리를 맑게 하는 '총명탕'의 주재료로 사용하는 약초다. 귀한 약재라고 나름대로 비닐멀칭까지 해 놓았지만 녹차밭과 다를 바 없다.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건 석창포 뿐인 것 같다.

풀들만이 제 세상 만난 듯이 활개치고 있는 밭에서 잠시 머물렀다. 그래도 나쁘지 않다. 풀들속에 깔려있지만 녹차나무는 싱싱했다. 석창포도 죽지는 않았으니 잠에서 깨는 대로 쭉쭉 뿌리를 뻗어 나갈 것이다.

농사는 기대감의 산물이다.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김을 매면서 농사꾼은 늘 꿈을 꾼다. 싹이 트는 꿈을 꾸고 그 싹이 무럭무럭 자라서 풍성한 열매를 맺는 꿈을 꾼다. 수확을 해서 좋은 값에 팔아 자식들을 키우는 꿈을 꾼다.

자신이 키워낸 먹거리를 사람들이 맛있게 먹어주는 꿈을 꾸며 농사꾼은 행복해한다. 세상에 많고 많은 직업 중에 농사꾼처럼 늘 기대감에 부풀어 있고 늘 꿈꾸며 살아갈 수 있는 직업이 있을까. 단연코 없다. 생명을 키워내는 일보다 사람들의 기대감을 드높이는 일이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런 농사꾼들이 요즘 우울하다. 꿈꾸지 못해 절망한다. 정부는 꿈꾸는 농사꾼보다, 지나가다 목말라하는 나그네에게 물 한잔 건네주는 넉넉한 농사꾼보다, 물 한 잔 시세를 계산하고 분석해서 돈을 받는 장사꾼이 되라한다. 그것도 세상 모든 돈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미국에 대항해서 싸우라고 등을 떠민다. 

농사꾼이 장사꾼이 되면 피해를 보는 건 도시사람들이다. 그나마 숨막히는 생존경쟁에서 도시민들의 탈출구로 위안을 삼는 곳은 거의 유일하게 농촌밖에 없다. 삭막한 도심에서 막힌 숨을 트여 주는 건 시골의 논두렁과 온갖 채소와 잡곡들이 자라는 밭이다.

한겨울에 노랗게 빛나는 귤들의 싱싱한 아름다움이다. 세상인심이 흉흉하다지만 여느 밭 구석에서 식사하고 있는 농사꾼에게 다가가 막걸리 한 사발 청해보라. 돈내고 먹으라는 이 한사람도 없을 것이다.

경제논리에 마냥 휘둘리지 않는 농사꾼들은 이 땅의 재산이다. 갈수록 삭막해지는 세상의 마지막 보루이자 희망의 심장이다. 그런데 그 농사꾼들이 지금 꿈을 꿀 수 없다. 농사를 포기하려한다. 생각하면 할수록 우울하다. 농사꾼의 마음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정치인이 이 땅에 정녕 없는 것인지 다시 우울해지는 맘을 추스르며 쭈그렸던 다리를 폈다.

차 씨를 심어놓고 4년, 석창포 역시 심어놓고 4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말을 듣고서 심었는데 벌써 반이 지났다. 무슨 일이든 금방금방 성과를 내야 직성이 풀리는 나에겐 기다림이 보약이다.

4년 동안은 풀이나 뽑으면서 버텨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주인이란 놈은 풀조차 뽑아 주지 않으니 녀석들이 겪는 고초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작년에는 집을 짓느라 바쁘고 집이 다 되어가니 올해는 또 다른 일을 벌이느라 바쁘다.

그래도 봄이라고 밭을 돌아보니 가슴이 아프다. 장마 전에 한 번, 장마 끝나고 한번, 여름에 한 번 정도는 무슨 일이 있어도 김매기를 해주어야겠다고 다짐한다. 휘적거리며 밭을 나오는데 도꼬마리씨가 살아보겠노라고 옷에 잔뜩 달라붙어 따라왔다.

'훠이훠이~' 씨를 떼어내어 흙으로 던져낸다. 날이 더 따뜻해지면 놈은 다시 흙을 비집고 싹을 내놓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또다시 녀석들과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한다. 도꼬마리처럼 조금만 더 치열하게 살아야겠다.

▲ 봄 일을 하는 사람들 ⓒ오영덕

집의 앞마당은 사정이 조금 나았다. 매일 눈으로 보니 틈틈이 풀을 뽑을 수밖에. 구름국화는 하얀꽃을 가득 피워 삭막한 산중의 이른 봄을 풍성하게 해주고 있다. 야생 부추들은 이제야 고개를 내밀고 있다.

작년에 미리 심어놓은 매화도 꽃을 피우지 못하고 간신히 싹을 밀어낸다. 꼬마수선화가 진 자리에 백리향이 가득하다. 산수국의 여린 잎 곁에는 고사리의 구부러진 등허리가 솜털을 가득 달고 서 있다. 솜털 보송보송한 여린 싹을 바라보는 기쁨은 봄이 주는 또 다른 축복이다.

마당 구석에 만들어놓은 임시장독대 위 항아리에서는 메주가 익어간다. 아직 장을 가르지 못했다. 손끝으로 찍어 먹어본다. 제법 간장 맛이 올랐다. 시골에 살면서 게으르게 뒹굴어도 수년째 장은 직접 만들고 있다.

된장, 간장을 만들어 먹는 건 가족들의 건강을 지키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봄의 만개를 알리는 마지막 전령사는 떼죽나무다. 어제 드디어 떼죽나무의 새순이 세상을 향해 문을 열었다.

▲ 격려방문을 온 정연맘, 혁진맘이 준석맘과 뒤늦은 점심을 먹고 있다.ⓒ오영덕
▲ 큰아들 준석이는 잠깐 어슬렁거리더니 종일 일한 사람처럼 폼을 잡는다. ⓒ오영덕
한창 흙벽이 올라가며 신이 났던 작년에는 어쩌면 올해보다는 수월하게 봄을 봄 그대로 누렸던 것 같다. 가깝게 지내던 주변 사람들도 너나없이 신났다. 흙벽을 쌓아올리는 동안 여러 가족들이 응원겸 봄나들이를 했다.

일꾼들 간식을 사오고 때로 점심도 차려주었다. 콘크리트로 집을 짓고 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중장비가 끊임없이 드나들고 각종 공구와 위험한 작업 자재들이 난무하는 건축현장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소풍을 나가는 정신없는 부모들은 없다.

▲ 흙작업 현장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오영덕
▲ 모처럼 다 모여든 현장에서 기념사진 포즈를 취하다. ⓒ오영덕
흙을 만진다는 건 축복이다. 오염 되지 않은 흙덩이를 물에 개어 둥글게 빚다보면 손가락 사이로 스르륵 빠져나가는 진흙구렁이의 서늘한 촉감에 전율한다. 어릴적 모내기를 할 때 그랬다. 논에서 모를 심을 때면 맨발로 물이 들어찬 논에 들어 가야한다.

발을 논바닥에 디디면 발가락 사이로 구렁이가 지나가는 것 같은 선뜻한 느낌이 있다. 벌써 수십년전의 그 촉감이 그대로 되살아났다. 좋다. 달리 뭐라 표현하겠는가. 어른도 아이도 흙을 만지며 낄낄댄다.

흙일은 결코 만만한 일은 아니다. 물을 부어 이겨놓은 흙은 손발에 찰싹찰싹 달라붙어 사람의 힘을 빼놓는다. 그래도 작업현장에는 웃음과 여유가 떠나지 않는다. 흙이 주는 맑은 기운 때문일 것이다.

▲ 구들아궁이가 될 구멍은 벌써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어버렸다. ⓒ오영덕
▲ 구들고래를 놓고 있다. ⓒ오영덕
아이들방으로 쓰일 서쪽 방의 벽이 어느 정도 윤곽을 드러냈다. 구들방이다. 솥단지를 걸어놓지 않는 함실구들 방식이다. 옛날에야 불을 때면서 따뜻한 물을 만들어 씻고 밥하고 해야 했지만 요즘에는 그럴 필요가 없다. 아까운 장작의 열기를 밖으로 낭비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하여 구들장 바로 아래에서 불을 때는 함실구들로 만들었다. 바닥에서 구들장까지는 약 80cm 높이를 예상하고 돌기초를 높였다. 일반적인 구들방 바닥의 고래높이는 40cm 정도이니 두배 더 높게 고래 높이를 잡은 것이다.

고래가 높으면 아궁이에서 굴뚝으로 이어지는 불길이 막힐 염려가 없다. 예전에는 일년에 한번 아궁이에서 긴 막대를 집어넣어 불길을 청소해야했지만 고래 높이를 훌쩍 높여버리면 청소할 필요가 없다. 대신 외부에서 보기에 집이 높아 보여 소박하고 정겨운 맛이 떨어진다. 

▲ 비에 대비해 비닐을 씌우고 있다. ⓒ오영덕
▲ 애써 쌓아올린 흙벽이 허물어지니 어찌 허탈하지 않겠는가. ⓒ오영덕
흙벽을 쌓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만은 않았다. 흙이 너무 끈적거리는 찰흙이라 작업이 불편했다. 흙을 뭉치는 일도 흙벽을 쌓고 해라로 면을 다듬는 일도 육지에서보다 배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흙작업이 더디게 진행 되는데는 날씨도 한 몫 했다. 잊을만하면 바람이 심하게 불어 초봄의 날씨를 더욱 쌀쌀하게 만들거나 일주일에 한 번은 비가 내려 흙벽에 비닐을 씌워놓는 수고를 하게 했다.

제주날씨에 비가 내릴 때는 단순히 비닐만을 씌워 될 일이 아니니 비닐 씌우는 일은 만만하지 않다. 바람에 날려가지 않고 수평으로 들이치는 빗방울을 차단해야 하니 대충 윗부분만 비닐을 걸쳐놓아도 되는 육지와는 상황이 많이 달랐다.

결국 반 이상 쌓아놓았던 한쪽 벽이 허물어지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작업하는 내내 나는 구시렁댔다. 흙집이 아니었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것인데 흙집이기 때문에 수도 없이 발생해 사람의 애간장을 태우는 이 뼈아픈 상황은 어떡해야 하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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