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집 창문 너머로 별을 보다④] 돌기초 올리고 흙 반죽하기

▲ 지난 2월 어느날 햇살 넘치는 구들방
3월의 시작이다. 영락없는 봄날이다. 한낮에는 조금만 꼼지락거려도 땀이 날 지경이다. 거실에 책장을 만들고 구들방에 연기가 새어나오는 틈을 메우며 하루를 보냈다.

내일은 된장 담을 항아리를 준비해야한다. 봄이 다가올수록 점점 부산스러워지는 건 시골에 사는 이 땅의 모든 농사꾼들의 일상이다. 아침저녁으로 굵은 서릿발이 가는 겨울을 알리려 안간힘을 써 보아도 봄이 오는 걸 막을 수는 없다.

▲ 세 아들이 모여 봄 햇살을 즐긴다. 이 그림을 위해 세상의 모든 부모들이 구슬땀을 흘린다.
봄은 언제나 반갑지만 마음 한 켠으로 아쉬움도 짙다. 겨울의 추위가 혹독할수록 봄이 더 새롭고 감격스러울 텐데 겨울이 맹맹하니 봄을 맞는 기분도 그저 맹숭거릴 뿐이다.

그래도 여유가 생기니 군시렁거리는 것일 게다. 작년 봄에는 군시렁거릴 여유가 없었다. 아니다. 군시렁대면서도 뭉기적거릴 틈이 없었다. 다시 작년 이맘때를 조금 넘긴 어느 봄날의 메모를 뒤적거린다.

▲ 첫째는 흙더미에서 삽질중이고 막내와 엄마는 신경전이 한창이다.

집터를 높이고 나니 일은 점점 빨라져야했다. 봄이 온다 싶으면 고사리장마가 있다. 고사리장마를 보내면 본격적인 장마가 들이닥치고 시시때때로 태풍이 몰아치는 게 제주의 날씨다.

그 사이사이 맑은 날을 골라 흙벽을 쌓아올리며 집을 지어야했다. 집도 한 칸 집이 아닌 일곱 칸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집이다. 객기를 부려도 너무 심하게 부린 것이다. 하지만 이미 건축허가는 받아버렸다. 설계변경을 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했다.
  

▲ 흰색 스프레이로 돌기초를 쌓을 동그라미를 그리고 있다.

기왕 시작했으니 끝을 봐야지. 스멀스멀 올라오는 상념을 떨치고 집터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동그라미를 그려놓으니 한 칸에 3.5평인 방이 너무 작아 보인다. 발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조그마한 방을 보며 웃음이 나왔다. 이 방 둘레에 흙벽을 올리면 넉넉하고 푸근한 구들방이 되겠지. 다시 꿈이 살아나고 의욕이 생긴다.

▲ 돌기초를 놓고 있다.

▲ 돌기초를 쌓고 기초안으로 흙을 넣었다.

동그라미를 따라 돌기초를 쌓는 일은 석공에게 맡겼다. 콘크리트기초를 하지 않는 마당에 돌기초라도 튼튼하게 쌓아야 된다는 주위 의견에 결국 내가 양보했다. 석공 두 사람이 3일을 일하고 나니 돌기초가 올라갔다. 중간 중간 구들 아궁이로 쓸 구멍을 낸 원형의 돌기초 한 가운데로 흙까지 부어놓으니 제법 모양이 나왔다. 다음은 돌기초위에 흙벽을 쌓아올리는 작업을 할 차례다.

▲ 굴삭기로 흙과 물과 짚을 섞어 반죽하고 있다.

▲ 반죽되는 짚과 흙

▲ 흙벽을 두드리기 위해 만든 나무망치

흙벽은 마구잡이로 올릴 수 없다. 흙끼리 붙게 하기 위해 물을 섞어 반죽해야하고 그 반죽에 조금 더 잘 붙어서 덜 갈라지라고 짚을 섞어야 한다. 흙을 반죽하는 작업은 그리 쉽지 않다.

예전에는 동네 사람 모두 모여들어 맨발로 흙을 밟으며 반죽작업을 했다. 나도 처음에는 옛 어른들처럼 해볼까 구상했으나 이내 포기했다. 흙벽두께를 최소 40cm 이상 쌓아올릴 경우 예상되는 흙의 양은 15톤 트럭으로 20여대 가까이 필요했다. 벽이 두꺼워 어마어마한 흙이 들어가는 것이다.

이 많은 양의 흙을 인력으로 반죽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해서 요즘에는 대부분 굴삭기를 쓴다. 굴삭기를 이용한 반죽은 간단하면서도 잘 반죽되어 편리하다. 기초공사를 할 때 도움 받았던 굴삭기를 불러 흙반죽을 했다. 반죽은 한나절도 되지 않아 끝나버렸다. 돈이 들긴 하지만 그만한 값어치를 하니 기계를 쓰게 되는 것이겠지. 그래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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