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영자의 교단일기(4)] 스위스의 학교를 가다②

문답식 협력학습에 매료되다

티벳의 세라 사원에 갔을 때의 일이다.
티벳은 불교국가로서 교육은 대개 사원에서 이루어진다. 그런데 이 사원은 정해진 시간에 학승들의 수업장면을 공개하는 까닭에 그 광경을 카메라에 담아가려는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나도 시간에 맞춰 수업을 보러 갔다. 
 
사원에 도착해보니 붉은 승려복을 입은 젊은 학승들이 왁자지껄 떠들고 있었고 그 주변으로 외국인들이 빙 둘러서서 쉼 없이 셔터를 눌러대고 있었다. 처음엔 어리둥절했으나 그것이 바로 문답식 토론수업이라는 것은 금세 눈치 챌 수 있었다.

▲ 문답식으로 토론하는 세라사원의 학승들
한 사람이 말하고 나면 상대편에 마주 서 있는 사람이 뭐라고 반박하는 듯하고, 몇 차례의 언쟁이 오가다 손바닥을 딱 마주치며 '그것 봐라. 내가 뭐라고 했느냐'하는 표정과 행동을 취하기도 했다.

계속 이어지던 문답에서 한 학승이 움찔 물러서니 보기에도 야무진 초등학생 정도의 어린 학승이 대학생 쯤 되어 보이는 학승의 대거리로 끼어들기도 했다. 문답식 토론은 한 시간 이상 벌어졌는데, 비록 티벳어를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필경 사회적 이슈나 철학적 문제에 대해 논하고 설파하는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스위스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방문하였을 때 역시 문답식 수업이 강하게 나를 사로잡았다. 스위스에서 문답식 수업은 저학년·고학년 가리지 않고, 교과를 가리지 않고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문답식 협력학습은 한 학생이 문제를 내면 다른 학생이 답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한국의 학생들이 사회나 국사 등의 시험이 있는 날 아침이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삼삼오오 짝을 지어 빙 둘러앉아 문제를 내고 맞히는 광경을 볼 수 있듯이 말이다. 그래서 나는 문답식 수업은 사회교과에서 주로 이루어지는 줄 짐작해 버렸다.
 
그런데 초등학교 4학년 수학교과를 참관하고 적잖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칠판에 학습목표를 써놓지 않아 우리는 학습지를 보고서야 나눗셈을 익히는 시간임을 알았는데, 수학을 문답식으로 공부하고 있었던 것이다.
 
교실에는 정교사 선생님과 보조교사 선생님 두 분이 들어왔다. 수업이 시작되면 정교사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A4 용지 한 장의 학습지를 나누어 주었다. 아이들은 둘씩 짝을 지어 교실이든, 복도든 빈 공간을 찾아 자유롭게 이동하여 자연스럽게 빈 책상을 차지하고 문답식으로 협력학습을 수행한다.

문제지를 받아든 아이들이 학습장소를 결정하는 동안 보조교사 선생님은 돌아다니며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일러주고 있었다. 둘씩 짝지어진 게 어떤 기준으로, 누가 지어 주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 수학시간에 문제지를 나눠주는 선생님

학습지에는 2단 편집된 나눗셈 문제가 빼곡히 적혀 있는 게 100문항은 더 되어 보였다. 문제는 '374:17='과 같이(이 나라에서는 ÷ 대신 :를 사용함) 암산하기에는 꽤 불편하겠다 싶을 정도의 3자리, 4자리 수의 나눗셈 문제들이었다.

한 학생이 문제지를 들고 질문하면 짝이 답을 맞힌다. 끝까지 모두 답을 맞히면 역할을 바꾸어 상대 학생이 문제를 내고 맞히게 된다.

▲ 문답식 협력학습을 수행하는 아이들

두 학생이 과제수행을 마치면 교실로 들어가서 선생님께 학습한 결과를 확인받는다. 선생님이 내는 문제를 모두 통과하여 합격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데, 통과하지 못할 경우 보조교사에게 개인지도를 받아서 보충학습을 한다. 아이들은 자기들과 다른 동양인들에게 자주 눈길을 빼앗기면서도 척척 답을 암산하여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문답식 협력학습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보편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사실에 놀랐다. 더욱이 교과의 특성이나 학습내용과 상관없이 광범위하고 다양한 학습형태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 BZI직업학교의 휴식공간이자 협력학습 공간

어머니의 암산

나는 스위스에서 암산과 암기에 놀라울 정도로 탁월했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공부도 많이 하지 못한 어머니가 척척박사처럼 셈을 해낼 때의 모습이 자꾸만 아른거려 왔다.
 
제주의 전통사회에서는 마을마다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협력하고 손쉽게 일을 해결하기 위한 협부조직으로서 '접(계)'이 관행적으로 행해져 왔다. 화단접, 그릇접, 레접, 쉬접 등을 비롯한 다양한 형태의 접을 통해 일을 수눌고 상부상조했는데, 이는 척박한 자연환경에 맞서 슬기롭게 삶을 영위하기 위한 조상들의 생존전략이었다.
 
정월 명절이 다가오고 눈이 퍼뜩퍼뜩 날릴 때쯤이면 동네마다 명절 제숙 마련을 위한 추렴이 있었다. 추렴은 대개 남자 접원끼리 하게 마련이었는데, 추렴과 함께 연말정산도 하고 새로운 임원도 구성했다. 여성들의 접은 근대적으로 변모하면서 쌀제, 돈제, 며느리제, 갑장제 등의 형태로 삶의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있었다.
 
사람들은 한 계에만 가입하지 않고 연령, 성, 목적 등에 따라 여러 계에 가입하였기 때문에 뜻에 맞은 사람끼리는 중복가입을 하기도 했다. 또, 계의 회장이나 서기는 대체로 순번제로 하여 해마다 한 번씩은 어느 집에서든 회가 있게 마련이었다.
 
일 년에 한 번씩 하는 회동을 어른들은 '제회(契會)보러 간다'고 했다. 초저녁 어스름이 질 무렵 집을 나선 어머니는 12시가 다 되어서야 종종대며 문을 밀고 들어오시곤 했다. 그리곤 쏟아지는 잠을 참으며 기다린 우리에게 생강과자, 쌀과자, 새콤달콤한 사탕들을 풀어놓으셨다.
 
어디 따라 다니며 얻어먹는 걸 끔찍하게 싫어하셨던 어머니도 집에서 회가 있는 날 만큼은 어른들 틈에 끼어 있는 우리를 모르는 척 넘어가 주셨다. 회의가 시작되면 어른들은 몇 년째 이어온 장부를 꺼내 재무보고를 하고 정산과 함께 이자를 계산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다른 아이들 서넛과 함께 어른들의 어깨 너머로 얌전히, 그러나 콜콜히 진행과정을 지켜보곤 했다. 
 
가끔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계산을 해보라고 권하기도 했다. 숙제를 던져주시곤 은연중에 어느 집 아이가 쓸 만한가 헤아려보는 꼼수였다. 우리는 잔뜩 긴장된 채 연습장에 연필을 꾹꾹 눌러가며 열심히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를 했다. 
 
그런데 어머니는 정말 귀신같았다. 우리가 셈을 마치기도 전에 늘 한발 앞서 암산으로 셈을 마치는 것이었다. 어떤 때는 우리의 계산이 어머니와 다를 때도 있었다. 그러면 어른들의 목소리가 한층 커지며 두 번 세 번 셈하게 되는데, 그때마다 이상하게도 어른들의 셈이 맞아떨어지는 것이었다. 그때의 놀라움과 낭패감이란.......


전통적인 교육방법 고수하기

오늘날은 기계에 대한 의존도가 점점 높아지면서 사소한 것도 암기·암산하지 못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컴퓨터와 전자계산기, 전자사전이 보편화 되면서 머리를 쓰지 않아도 간편하게 일처리를 할 수 있게 되면서 암기나 암산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나도 머잖아 기계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노래 가사를 못 외운 지가 오래 되었고, 형제자매, 친구의 전화번호도 못 왼다. 어떤 이는 가끔씩 자기 집 전화번호도 잊어버릴 때가 있다고 푸념하는데 거기까지는 아니어서 참으로 다행인 셈이다.
 
어느 날,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두 팀으로 나뉘어 하는 의미 있는 대결을 본 적 있다. 숫자 4개를 주고 사칙연산을 하여 합을 10으로 만드는 게임인데 먼저 맞히는 쪽이 이기게 된다.

대부분의 출연진들은 인기 연예인들인데, 게임이 시작되기에 앞서 어느 초등학교 출신인지 밝힌다. 초등학교 수준의 쉬운 문제라는 의미인데, 그들은 쉬운 사칙연산에도 자주 실패하였다. 그들도 나처럼 숫자에 젬병이 되어 가고 있는 듯했다.
 
나는 가끔 오늘의 수업도 기능만 익히고 본질은 깨우치지 못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지 않은가 노파심을 가질 때가 있다. 우리의 교육현장은 어느 때인가는 한 해 동안 교사마다 제작하여 교수·학습 자료로 사용한 OHP 필름이 몇 장인지 보고하게 하고, 또 어느 때인가는 수업에 인터넷을 활용한 횟수를 보고하라고 한 적도 있다.

학교에서는 아예 교과진도표와 함께 ICT 활용교육계획서를 결재 받도록 하기도 했다. 장학지도 때는 하다못해 학습목표나 사진 몇 컷이라도 띄워야 우수수업으로 칭찬받는다. 
 
우리 선생님들은 때론 너무 친절하다. 학생들이 요약할 학습내용을 모두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학습지를 나누어 준다. 시험 때가 되면 보관하고 있는 학습지의 장수를 세어 수행평가를 한다. 학습지를 제출할 때가 되면 학습지를 분실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남의 학습지를 빌려 수정액으로 지운 다음 다시 재복사해서 자기 것으로 제출하는 깜직한 일들도 발생하곤 했다. 필체를 눈여겨 봐두지 않으면 누구 것이 진본인지 알 길이 없다. 

암기식·주입식 교육 대신 ICT 활용교육을 얼마나 잘 하는가, e-learning을 얼마나 잘 하는가가 인터넷강국으로서 내세울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굳이 부인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교단강국을 부르짖으면서 교실수업에서 칠판은 점점 소외되고 있으며, 아이들에게서는 공책이 없어진 지 오래다. 요즘 아이들에게 글쓰기는 끔찍하게 싫은 일이고, 글짓기나 독후감 쓰기는 형벌과도 같다. 집에서 써오게 하면 대개는 인터넷에서 베껴오고, 학교에서 쓰게 하면 한 쪽을 넘기지 못한다.
 
중학교 생물시간을 참관했을 때였다.
뒤쪽에 앉은 학생의 공책이 하도 가지런하고 정연하게 필기 되어 있길래 나는 특정 학생에 해당되는 일이려니 하면서 몇 학생의 공책을 더 걷어보았다. 어느 학생 할 것 없이 놀랍도록 깨끗하고 단정하게 필기되어 있었다.

▲ 생물시간의 아름다운 공책
나무의 뿌리에서부터 잎까지 그려진 그림은 선생님이 나눠준 듯한데, 단정하게 오려서 붙인 그림의 옆과 아래로 죽 단정한 필체가 줄을 맞춰 도열하고 있었다. 나도 한때 가진 적이 있는 아름다운 공책이었다.
 
누군가는 스위스가 부자나라이고 선진국이긴 하지만 교육은 덜 세련되었다고 말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스위스 교실에도 멀티비전이 있었고 시설도 선진적이었다. 칠판은 최첨단이었고 아이들의 공책은 단정하고 깨끗했다.

무엇보다도 세계 10대 안에 드는 대학이 3개나 있을 정도로 교육력이 강한 나라이기도 하다. 암기와 암산, 공책 필기 등 전통적인 교육방법을 고수하는 스위스의 교육을 보면서 우리는 너무 쉽게 교육의 본질을 놓아버리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나는 교사들에게 가산점까지 주면서 일률적으로 장려되는 e-learning이나 논술 같은 열병을 피해 가고 싶다. 다소 생뚱맞게 들릴지도 모르고, 시대에 역행하는 뒤떨어진 선생이라고 무시당할지도 모를 일이지만, 나는 문답식 방법으로 암산도 하고 토론도 하는 전통적인 교육방법으로 되돌아가기를 소망한다.

일방적·개인적으로 진행되는 수업에 비해 쌍방향이 가능한 전통적인 문답식 협력학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 우리를 반기는 초등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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