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렁쇠 이야기]한국 도깨비를 돌에 새긴 석공예 명장

한국 도깨비를 돌에 새긴 석공예 명장

우리 도깨비는 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오랜 세월 그림책이나 교과서에서 보아온 도깨비의 모습이 맞을까. 머리에 뿔이나 혹이 나고 원시인 옷차림으로 쇠방망이를 들고 있는 모습? 죄송하지만 이 녀석 역시 우리 도깨비가 아니다. 우리 도깨비엔 뿔이나 혹이 달린 경우가 없다. 쇠방망이를 들고 다니지도 않는다.

얄미운 이 녀석은 일본 도깨비다. 일본 귀신 '오니(鬼)'가 들씌워진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것 역시 청산하지 못한 식민지 유산이다. 오니를 데리고 온 주범은 당연히 일본 민담. 식민지를 발판으로 이 땅에서 주인 노릇을 할 때 우리 민담은 그 옛날 할머니의 무릎 위에서 한숨만 쉬는 서러운 신세였다. 여유와 재치, 해학과 풍자가 넘치는 기지를 발휘할 길이 없었다. 나라 잃은 설움과 같은 것이다. 그 틈을 타 일본 귀신 오니가 한국 도깨비의 행세를 하며 우리 강산을 누비고 다녔다. 아무도 막지 못했다. 오히려 일본 것을 베끼고, 일본 것을 우리 것 인양 앞다투어 자랑하기에 바빴다. 거창하게 표현하면 친일문학이었고 친일예술이었다.

일제시대 때 창씨개명을 했다는 소리는 들어봤어도 한국 도깨비마저 일본 도깨비로 둔갑해버렸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십년 전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의 심정은 '오니'가 들고 다니는 쇠방망이로 뒷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이 정체 불명의 한국 도깨비에서 나는 청산해야 할 식민지 잔재를 본다.




지난 가을, 플라치도님이 제주에 오셨다. 이틀동안 제주섬을 돌아다닐 기회를 가졌다. 언제나 든든한 벗, 그이에게 무언가 좋은 선물을 주고 싶었다. 화산섬 제주의 숨결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모시고 갔던 곳이 금능석물원이었다.

석공예 명장 장공익(張公益·76) 할아버지의 땀과 혼이 흠뻑 배어 있는 작품현장이다. 어린 자식 다섯을 가슴에 묻고 슬픔을 이겨온 구원의 현장이기도 하다. 장공익 명장의 인생이 고스란히 돌작품에 새겨져 있다. 돌하루방의 원형을 가장 정확하게 복원해 놓았고, 제주 섬사람들의 고단했던 삶이 구멍 숭숭 뚫린 현무암에 생생하게 새겨놓았다. 50여년의 세월동안 빚어낸 작품마다 풍자와 익살로 가득차 있다. 척박한 환경을 이겨온 제주 섬사람들의 강인한 생명력이 꿈틀거리는 것을 더듬을 수 있다. [관련기사 보기]

헛깨비(=허깨비) 골목이 있다. 장공익 명장의 재치가 돋보이는 곳이다. 금능석물원의 명물로 손꼽힌다. 나는 이 '골목'에서 진짜 우리 도깨비를 만났다. 일본 도깨비가 우글거리는 우리나라에서 한국 도깨비들이 지지 않고 우글거리고 있다는 것은 사라진 보석상자를 되찾은 것과 같은 반가움이다. 우리 도깨비에 홀린다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장공익 할아버지가 존경스럽다. 우리 출판계, 문화계, 심지어 언론방송을 앞세운 미디어 세계에서 친일의 찌꺼기를 걷어내지 않고 일본 도깨비에 온갖 애정을 쏟는 사이 한 시골 할아버지는 우리 도깨비를 돌에 새기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 도깨비는 상머슴 같다. 덩치가 크고 털이 덥수룩하다. 누렁내가 나고 패랭이를 쓰고 다닌다. 성욕도 강하다. 도깨비는 귀신과 다르다. 귀신은 괴인의 모습이고 인간과 적대적이지만 도깨비는 그렇지 않다. 사람처럼 행동하고 사람과 관계를 맺으려 한다. 우리 도깨비는 이처럼 인간적이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일하는 도깨비 연구가 김종대 박사가 말하는 우리 도깨비의 모습이다. 금능석물원 '헛깨비 골목'에서 만난 도깨비와 그의 설명이 다르지 않다. 금능석물원의 도깨비가 우리 한국 도깨비라는 나의 믿음이 억지가 아니리라.

일본 도깨비에 점령당한 한국 도깨비

우리 도깨비를 되찾고 싶다. '혹부리영감' 이야기를 들어 보았는가. 우리 교과서에 소개되어 있으니 모르지 않을 것이다. 이 삽화에서도 어김없이 뿔 달리고 철퇴를 들고 있는 괴이한 일본 도깨비 형상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출판사에서 펴내는 동화책에도 하나같이 일본 도깨비에 홀려있다. 이야기 속에도, 삽화 속에도 출몰하는 것은 일본 귀신이 붙은 한국 도깨비들뿐이다.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심각하다. 우리 도깨비를 일본의 손아귀에서 구출해 내야겠다. '도깨비 민족해방운동'이라도 벌여야 할 판이다. 이것은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되찾는 일일 수도 있겠다. 우리의 고유한 심성과 문화를 더듬는 값진 시간일 수도 있겠고.




우리 조상들의 정신세계에 자리잡은 도깨비는 어떤 존재일까. '도깨비'는 불이나 곡식의 씨앗을 뜻하는 '돗'과 아버지를 뜻하는 '애비'가 합쳐진 낱말이다.(제주에서는 '도채비'라 부른다.) 풍요로움을 가져다주는 성인 남자란 뜻이다. 이를 풀면, 농경사회에서 불(火)이나 종자(種子)처럼 생산능력이나 부를 늘릴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신격 존재로 설명이 가능하다. 그래서 일본 귀신 '오니'처럼 쫓아내야 하고, 물리쳐야 하는 잡귀와는 근본부터 다르다. 중국과 일본의 귀신이나 요괴들은 사람을 헤치거나 잘못되게 하는 부정적인 존재였다. 그러나 우리의 도깨비는 고통받는 민중들에게 풍요와 부를 가져다주는 긍정적인 존재였다.

도깨비는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녀석이다. 우리 도깨비는 한마디로 '자연귀'이다. 도깨비는 산과 바다, 공동묘지나 집 등 다양한 곳에서 풍찬노숙 한다.(노숙하는 것을 보았느냐고 묻지 말라. 밝히려면 머리통이 깨진다.)

우리 도깨비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하는 녀석이다. 그 심성이 악하지 않다는 것이다. 도깨비가 사람들에게 짓궂은 장난을 치는 것은 악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서이다. 기껏 해를 입혀봐야 그동안 베풀었던 돈을 나뭇잎이나 모래로 만들어 버리거나 동네방네 다니면서 자신을 속인 사람을 욕하는 정도였다.

도깨비가 아무 사람이나 붙잡고 씨름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도깨비는 만나는 사람 누구에게나 시비를 거는게 아니라 씨름 싸움을 건다. 그렇다고 도깨비가 천하장사인 것도 아니다. 씨름꾼으로도 그는 영 시원찮다. 외발다리에 별로 힘센 것도 아닌 묘한 씨름꾼, 그가 우리 한국 도깨비다.




도깨비는 귀신의 일종이나 귀신이 모두 도깨비는 아니다. 귀신이란 우리의 경험적 세계를 초월하여 존재하는 영(靈)적 존재의 한 범주이다. 영적 존재 가운데에 도깨비는 천신·산신 등의 고참신들 보다 하위직 귀신이다. 그런데 귀신은 주로 인간이 죽어서 되는 것이지만 우리 도깨비는 어떤 물건으로부터 발생하는 점이 다르다.

우리 조상들은 사람들이 주로 쓰던 가재도구나 자연물이 도깨비로 변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밤길을 가다가 도깨비가 나타나 심술을 부리기에 칡덩굴로 묶어놓고 다음날 가보았더니 헐어빠진 빗자루 하나가 묶여 있었다는 이야기나, 나그네가 밤길을 가다가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부지깽이 또는 방앗공이 하나를 안고 누워 있었다는 이야기가 그렇다. 여기서 도구는 단순한 물건이고, 신이 빙의(憑依:붙거나 씌워진 상태)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 자체가 변해서 도깨비가 된다는 사고가 자리잡았다. 그러므로 물건에 영력이 깃들어 있다고 하여 숭배하는 주물신앙(呪物信仰)이나 신을 상징하는 신체(神體)를 모시는 것과도 크게 다르다.

다른 지방에서는 도깨비를 신으로 모시는 경우가 드물지만 제주에서는 도깨비가 당신(堂神)으로 행세하며 굿거리에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신 가운데 하위의 잡신으로서 참봉이니 영감이니 하는 말로 불려진다. 제주 도깨비는 부의 신, 풍어의 신, 가업수호신, 역신, 대장신, 촌락공동체의 당신 등 직무범위가 아주 넓다.






어리숙하나 '인간'을 닮은 우리 도깨비

민담과 전설에는 도깨비 이야기가 비교적 많다. 사람을 잡아먹는 도깨비도 간혹 있지만, 대개가 무섭긴 하지만 어리숙하여 잘 다루면 오히려 사람에게 이로울 수 있는 존재로 묘사된다. 금·은·보화가 원하는 대로 쏟아지는 '도깨비 방망이'를 가지고 있거나, 쓰면 보이지 않는 '도깨비감투'를 인간에게 주기도 하면서 인간과 꽤 잘 어울린다.

도깨비는 귀신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인간과 비슷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먹고 마시며, 춤추고 노래부르는 것을 좋아하며, 씨름과 놀이에 끈질긴 집착을 보인다. 널리 알려진 '혹 떼러 갔다가 혹 붙었다'는 민담에서의 도깨비는 한마디로 풍류쟁이다.

이 녀석이 밉지 않은 것은 심술궂은 장난을 매우 잘 즐긴다는 점이다. 장에 갔다오는 사람에게 씨름을 청하여 하나 뿐인 다리 때문에 자꾸 져도 끈질기게 덤볐다든지, 국수를 뒷산 나뭇가지에 걸어 놓는다든지, 잔치가 벌어진 어느 집에 나타나 솥뚜껑을 솥 안에 우그러뜨리고 황소를 지붕 위에 올려놓았다는 이야기는 도깨비의 장난기 어린 심술을 잘 말해준다. 악귀와는 거리가 멀다.

흔히 사람이 얼토당토않은 일을 당했을 때 도깨비 장난 또는 도깨비 조화라는 말을 한다. 장난기가 많아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일을 저지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밤에 신기하게도 게가 잘 잡혀 좋아라 하며 밤새워 잡고 있는데, 새벽녘에 누가 "김 서방, 게 많이 잡았어?" 해서 뒤돌아보니, 키가 아홉 척이나 되는 사람이 킬킬거리며 달아나 버렸다. 그런데 날이 밝아 게를 잡아놓은 곳을 보니 망태기에 쇠똥만 가득 들어있었다. 머리 두껑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망할 넘의 도깨비 자식~

우리 도깨비가 최고로 좋아하는 음식은 메밀묵이다. 수수팥떡을 좋아하고, 막걸리를 잘 먹는다. 말피는 아주 무서워한다. 재주가 많고 힘이 세지만 이 말피 한 방에 언제나 인간에게 배신당해 무릎을 꿇는다. 제주잠녀와 과부를 좋아하는 제주 도깨비인 '영감'은 돼지고기와 수수범벅, 그리고 소주를 잘 마셨다.

예쁜 여자를 좋아한다. 젊은 과부와 성 관계를 맺기도 하고, 잠녀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며 함께 살자고 조르기도 한다. 밤에 몰래 여자방에 드나들기도 한다. 우리 도깨비는 성욕이 왕성한 남성이다.






그러나 난봉꾼인 우리 도깨비도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투사다. 자기의 이익을 위해 남을 흉보거나 시기하는 사람이 있으면 서당 훈장 어른보다 더 무섭다.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을 돕고, 욕심쟁이와 나쁜 사람을 골탕 먹일 줄 안다.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 결코 해치지 않는다. 착한 사람에게는 '부'를 주고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졸딱 망하게 하거나 괴로움을 준다. 이만하면 웬만한 사람보다 낫지 않을까 싶다. 풍문에 의하면, 우리 여인들에게 '열 남자 부럽지 않은 녀석'이라는 설이 있다.

우리 도깨비가 훌륭한 신통력을 가졌어도 우직하고 소박하여 인간의 꾀에는 자주 넘어가는 편이다. 사람의 간교함에 복수를 하기도 하지만 되려 사람을 잘 되게 도와주기도 한다. 영악한 인간들은 이런 도깨비의 미련함을 이용하여 재물을 얻거나 이득을 보기 위해 고단수의 잔머리를 굴리기 일쑤다.

혹 때문에 노래를 잘한다 하여 보물방망이를 혹과 바꾼 이야기, 도토리를 깨물어 나는 소리를 집 무너지는 소리인줄 알고 도망친 도깨비 이야기, 한번 돈을 꾸어주었더니 매일 저녁 꾼 돈을 가져와 부자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기억날 것이다. 영락없이 우리 도깨비는 꾀도 없고 미련곰탱이다. 허나, 꾼 돈 갚은 도깨비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비록 미련하고 건망증이 심한 도깨비지만 빌린 돈은 꼭 갚는 책임감 하나는 훈장을 줄만 하다.

한마디로 우리 도깨비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시기와 질투도 많고, 사람처럼 소외되면 화를 내고, 체면을 중시하기도 한다. 도깨비도 인간과 같은 성정을 지니고 있어 희로애락을 모두 느끼며, 특히 기쁘고 즐거운 일에 정신을 못 차린다.

도깨비가 지닌 초자연적 신통력은 결국 인간의 소망과 맞닿아 있다. 사람들은 현실에서 이루고 있지 못한 소원을 성취하고 싶은 생각, 가령 돈을 벌고 싶고, 권세를 누리고 싶고, 좋은 음식을 먹고 싶은 생각, 좋은 집에서 호의호식하고 싶은 생각을 품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여의치 않다. 할 수 없이 사람들은 도깨비를 믿음으로써 마음 속으로 그러한 욕망과 소원을 충족시키고 있는 것이다.




한국 도깨비는 우리 조상의 얼굴

도깨비는 그 실체를 입증할 수 없는 존재다. 다만 사람들의 의식구조상 실재한다고 믿어지는 존재일 뿐이다. 달리 표현한다면 도깨비는 인간들의 의식구조상 만들어진 피조물이라는 것이다. 결점을 지닌 채 한편으로는 초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인간이고 싶어하는 하는 우리들 마음의 표현이다.

허약하기 짝이 없는 우리 인간은 너무나 신에 가까운 능력을 지니려고 별별 노력을 다한다. 이것이 오히려 인간을 비인간적으로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결점과 장점을 동시에 가진 인간형의 추구를 뜻하는 의식구조가 하나의 도깨비 신앙을 낳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도깨비는 우리에게 있어 무엇인가. 한마디로 도깨비를 정의할 수는 없다. 구전되는 이야기에 도깨비가 자주 등장하고 여러 조각이나 그림에서 보듯이 우리 마음 한 구석에 존재하기는 하지만 이를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다.

다만 지금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한국 도깨비는 우리 조상의 얼굴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오래도록 기억해야 할 얼굴이다. 이 얼굴에 담고 있는 도깨비 마음을 우리 인생에 살갑게 포개놓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기도 하다. 금능석물원 '헛깨비 골목'에서 우리 정신세계에 자리잡은 한국 도깨비를 만나면서 느꼈던 생각이다.
/굴렁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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