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오름기행] 4·3 의 아픈 흔적, 다랑쉬오름

 
▲ 분화구 깊이가 115m(백록담과 같은 수준)인 다랑쉬 오름 분화구.
ⓒ 김강임
 
과거를 묻기 위한 작업이었을까? 다랑쉬 오름 가는 길엔 타이어매트가 깔려 있었다. 가파른 타이어매트에 발을 옮겨 놓을 때마다 숨이 가쁘다. 한 걸음 올라가 정상을 꿈꾸고, 또 한 걸음 올라가 뒤돌아봐도 보이는 것은 산 아래 구름 뿐이다.

길고 긴 역사의 뒤안길을 걷고 있기 때문일까? 해발 382m에 오르며 끙끙대다니. 20분이면 오를 수 있는 정상이 멀게만 느껴진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오름의 여왕, 다랑쉬

 
▲ 다랑쉬 오름 입구. 삼나무숲을 벗어나면 급경사가 나타납니다.
ⓒ 김강임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 다랑쉬 오름. 제주인들에게 다랑쉬 오름은 통곡의 한이 서린 '터'다. 그 터를 서너 번 밟아봤다. 그때마다 오름 자락엔 늘 구름이 떠돌았다.

제주의 터가 척박하다지만, 유난히 척박한 제주시 구좌읍에는 다른 지역보다 기생화산이 많이 산재해 있다. 그 중 제일 가는 여왕은 역시 다랑쉬 오름이다. 그런데 아름다워야 할 여왕 치맛자락이 상처투성이니 어찌 오름길이 순탄하겠는가.

 
▲ 오르다 뒤돌아 봐도, 계속 제자리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 김강임
 
다랑쉬는 '오름의 분화구가 달 같다'하여 붙은 이름이다. 타이어매트를 엮어놓은 매듭 아래에 노란 야생화가 피어났다. 노란 야생화가 분노의 꽃으로 태어나는 곳이 바로 이곳일까?

 
▲ 타이어매트 매듭에서도 꽃은 피어납니다.
ⓒ 김강임
 
많은 사람들이 밟고 또 밟고 문드러지게 짓밟지만, 매트 속에서 다시 피어나는 양민의 아우성. 가파른 오름길을 올라본 사람들은 절규처럼 피어오르는 구름 속을 거닐며 아우성으로 피어나는 야생화에 눈물 젖는다.

4·3을 품은 다랑쉬... "구름은 다랑쉬의 아픔 알까?"

달이 뜨면 좋으련만 어둠만 깊어
대나무 가지 사이로 바람만 불고
말라붙은 우물가엔 인적은 끊겨
내 고향 다랑쉬엔 주검이 덧쌓이네

동구 밖에 팽나무 가지 위로 목이 메고
들녘 동굴 속엔 피어나는 연기로
내 어머니 나의 형제들 검게 그을린 눈매
나를 보는 그 얼굴엔 분노의 한이

내 고향은 아무 말도 없이 사라져 가고
쓸쓸히 모여 앉은 대나무의 흔들림 속에
들려오는 그 날 총성은 누구의 명령이었나
침묵의 다랑쉬야 말하려마

(최상돈 '다랑쉬 마을에서')

 
▲ 초록으로 물든 다랑쉬 오름 분화구.
ⓒ 김강임
 
제주 사람들에게 4·3은 치욕의 전쟁 같은 것이다. 1992년, 처참한 다랑쉬 굴이 공개됐을 때 사람들은 끓는 피로 울분을 터트렸다. 그러나 4·3을 어느 작은 고을 사람들의 통곡소리로만 여겼던 시절도 있었다. 누명을 벗지 못하고 죽어간 사람들의 명예를 회복하는 데 반세기가 넘게 걸렸다. 4·3의 진상이 규명되기까지 왜 그리도 길고 긴 터널을 지나야 했는지…. 다랑쉬 오름길이 가파른 것도 그 때문일까.

 
▲ 아름다운 다랑쉬 오름의 능선은 소리 없이 4·3을 말합니다.
ⓒ 김강임
 
송골송골 피어나는 땀을 닦고 정상에 섰다. 분화구에선 여름이 한창이었다. 깔때기 모양을 한 원형분화구를 보는 순간 크기가 어마어마하다는 데 놀랐다. 화구의 깊이가 백록담을 연상하게 한다. 화구 안에선 초록이 햇빛에 물들어갔다.

 
▲ 마을에서 다랑쉬 오름의 슬픈 노래가 흘러나오는 듯합니다.
ⓒ 김강임
 
오름에 오르는 사람들은 오름을 말하지만, 다랑쉬 오름을 오르는 사람들은 4·3을 말한다. 어느 마을에서는 얼마만큼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고, 어디가 요충지였고, 어느 바닷가는 어떤 사람들의 학살터였다는 역사 이야기를 능선에서 나눈다.

 
▲ 오름 정상에 서면, 일출봉과 우도까지 관망할 수 있습니다.
ⓒ 김강임
 
그렇다 보니 능선을 걷는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다랑쉬 오름의 정상에선, 아름다워야 할 능선이 경계선으로 보인다. 일출봉이 희망이고 기다림이라지만, 다랑쉬 오름 정상에서 보는 일출봉엔 이어도 같은 전설만 흐를 뿐이다.

 
▲ 붉은 송이를 밟고 화구를 한 바퀴 돌았습니다.
ⓒ 김강임
 
오름에서 태어나, 오름에서 살다, 오름으로 가는 제주 사람들. 신성한 곳으로 자리매김해야 할 오름에서 분노가 포도처럼 일고 있으니 산 아래 터를 일구고 살아가는 이곳 사람들은 얼마나 가슴이 미어질까.

언젠가 안개가 자욱한 날이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 속에서 1500m에 달하는 다랑쉬 화구를 걸었다. 산 아래 다랑쉬 굴에서 원망과 통곡의 소리가 흘러나오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화구 전체가 스코리아(붉은 송이)로 덮여 금방이라도 피를 토할 것 같은 화구의 길. 그 길에 소나무가 어우러지고 이름 모를 꽃들이 길을 가로막았다.

 
▲ 손자봉 모습이 보입니다.
ⓒ 김강임
 
화구 위로 아스라이 보이는 손자봉과 용눈이 오름과 은월봉에 구름이 머문다. 구름은 다랑쉬의 아픔을 알까?

 
  4·3의 아픔 안은 다랑쉬 오름  
 
 
 

다랑쉬 오름의 표고는 382m, 비고는 227m, 둘레는 3391m다. 예전엔 한자어로 대랑수악, 대랑봉, 월랑수산, 월랑수 등으로 표기됐다. 지금은 월랑봉으로 표기된다.

산정부에는 깔때기 모양을 한 원형 분화구가 있다. 화구의 둘레는 1500m, 깊이는 115m다. 오름 기슭엔 삼나무숲이 있으며 시호꽃, 송장꽃, 섬잔대, 쑥부쟁이 등 초지식물도 자란다.

다랑쉬 오름 주변 지역은 4·3사건 때 유격대원들이 활동한 요충지였다. 20여 가구가 살다가 폐촌이 된 다랑쉬 마을과 1992년 4·3사건의 희생자 11명의 유골이 발견된 다랑쉬굴이 있다.
 
 
 
 
☞ 찾아가는 길 : 제주시 - 12번 도로(동쪽)- 비자림 입구(동쪽 1.5km) - 오른쪽 시멘트 도로(1.5km)-다랑쉬 오름 표지석. 1시간 정도 걸린다. 다랑쉬 오름이 가파르긴 하지만, 20분 정도면 정상에 오를 수 있다. 화구 1500m를 돌아보는 데는 20~30분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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