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위한 종교인協,탑동~어영해안까지 평화걷기
'느림의 미학'…“이제부터 함께 걸어갑시다”

▲ 평화를 위한 제주종교인협의회가 격월로 주최하고 있는 평화찾는 걷기행사가 27일 제주시 탑동광장에서 용담동 어영마을 구간에서 열렸다.
【서귀포남제주신문】 “뚜벅,뚜벅…, 뚜벅이를 아시나요?”
걸어 다니는 사람을 두고 흔히 뚜벅이라 부르던가. 요즘이야 한집에 차한대가 기본이지만 자동차가 귀한 시절, 자동차는 곧 능력의 상징이었고 상대적으로 걸어 다니는 사람을 낮추어 뚜벅이라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따지고 보면 그리 썩 좋은 의미로 탄생된 단어는 아닌듯 싶다.

그러나 요즘처럼 뚜벅이의 ‘붐’이 일었던 적이 있을까. 그것도 자진해서 뚜벅이가 되는.
유산소운동의 대표적인 운동이고 정신적 안정에도 매우 좋은 활동이 바로 ‘걷기’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어디서든 걷는 사람들을 쉬이 볼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웰빙 붐’은 인간이 자신의 몸을 더 이상 기계문명사회의 보조수단에 머물지 않도록 독려하고 있다. 걷기는 ‘정신적 행복’과 ‘신체적 건강함’을 동시에 되찾게 해 주는 좋은 수단이기 때문이다. 

여기 정기적으로, 그것도 ‘떼’로 모여 뚜벅이를 즐기고 나누는 이들이 있다.
평화를 위한 제주종교인협의회(공동대표 대효 스님, 박영조 목사, 임문철 신부, 방인성 교무)가 27일 오후 6시 제주시 탑동광장에서 ‘내 안의 평화를 찾는 걷기대회'를 마련했다.
지난해 시작된 ‘내 안의 평화를 찾는 걷기대회'는 바쁜 일상에서 소홀했던 자신의 내면과 대화를 나누고 에너지를 충전하는 시간으로, 올해부턴 격월 주기로 개최되고 있다.

▲ 서쪽 하늘로 넘는 해를 바라보며 참가자들이 탑동 방파제위를 여유롭게 걷고 있다.
“뚜벅이를 즐겨라” 걷기 호응 높아…선거 앞둬 언론은 평화걷기 무관심

전체 구간은 탑동광장부터 어영 해안도로 연대 쉼터까지. 맘 잡고 한번 걷기에 딱 좋은 거리이고 코스다. 지는 해를 바라보며 탑동 서쪽 끝자락을 빠져나가 한두기 바닷가, 용연 구름다리와 용두암, 그리고 용담 해안도로를 걸으면서 생동하는 초여름 날의 향취를 한껏 느낄 수 있는 행복한 주말 저녁이었다. 다른 때와 달리 5.31지방선거를 목전에 두어서인지 언론도 여기에까지 관심 둘 여력이 없는 듯 그 흔한 ENG방송카메라 한 대없는 주목받지 못한 행사였다.

대한성공회 박동신 신부의 인사말로 이날 행사를 열었다. 박 신부는 평화걷기에 참석한 이들에게 이런 말을 전했다.
 “살다보면 뜻하지 않은 어려움들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가 오늘 걸으면서 만나게 되는 맞바람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함께 걸으면 혼자 걷는 것보다  훨씬 쉽게 바람을 헤쳐 나갈 수 있듯이 세상의 어려움도 이렇게 함께 모여 고민하고 나누면 이겨낼 수 있습니다. 오늘 이렇게 함께 걷게 돼 행복합니다.”

▲ 용연 구름다리위를 건너는 부모와 아이들의 맞잡은 손이 더욱 단단해지고 표정은 더 밝아졌다.
100여명의 참석자들은 복장도 생각도 자유로웠다. 트레이닝복, 몸빼 바지, 무엇을 입어도 좋아보였다. 두발로 걸으면서 땅을 디디고, 몸과 마음도 함께 대지를 밟았다.
이 ‘평화걷기’의 단골손님인 제주시 화북동 원명유치원생들도 안전과 홍보(?)를 위해 노란 원복을 입고 나왔다. 어린이들의 총총걸음이 내내 어른들의 발걸음을 가볍게 이끌었다.
얼굴을 스치는 시원한 바닷바람, 코끝을 파고드는 갯냄새, 여름이 성큼 다가옴을 느끼며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이날 탑동광장의 풍경은 좀 산만했다. 이날 5.31지방선거를 앞둔 모정당의 필승 유세행사의 홍보차량들이 쏟아 내는 방송 소리와 유세에 참석한 정장차림의 사람들로 북적 거렸다. 눈빛들이 매서웠다. 뜨악한 시선으로 평화걷기의 참가자들을 여기저기 훑어보는 것이 느껴지는 그들 사이를 빠져나와 탑동 서쪽 끝을 향해 걸었다. 방파제 위, 저기 저 길을 걷는 사람들은 지금 무슨 생각에 잠겨 있을까…. 좀 이른 시간이긴 하지만 해는 바다 가까이 내려와 제 몸 숨길 채비를 하느라 제법 붉은 휘장을 두르기 시작했다. 엄마와 맞잡은 어린아이의 손이 더 정겹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 평화걷기에 참여한 어느 엄마와 아이의 맞잡은 손이 정겨워 보인다.
걷는다는 것은 인간 실존·생존문제 성찰의 시간

“걷기는 세계를 느끼는 관능에로의 초대다”
프랑스의 사회학자인 다비드 르 브로통이 한 말이다. 그래서일까. 수많은 역사 속 인물들이 걷기를 즐겼다고 전해진다.

달라이라마와 함께 살아있는 생불(生佛)로 추앙받는 틱낫한 스님이 올해 초 우리나라를 다녀간 뒤 걷기명상 붐이 더 일었다. 걷기는 다이어트나 육체적 건강이 목적이 아니라, 걷는 행위에서 얻어지는 마음의 평안과 안식이 우선하고 육체적 목적은 부수적인 것이어야 한다. 걷기명상은 평소보다 조금 천천히 걷는 게 좋다. 좀 느리면 어떤가. 걷기명상을 할 때는 느리더라도 마음을 발에 두고 발과 대지의 하나됨을 느끼면서 걸을 수 있으면 좋다.

결국 걷는다는 것은 인간의 실존문제요, 생존문제다. 성찰의 시간이다. 인간이 유인원과 확실하게 구별되기 시작한 것도 두 발로 직립보행 하면서였다.

하지만 초고속 현대사회에서 인간은 많이 걸어야할 이유가 사라지고 있다. 자동차가 너무 흔한 현대사회에서 걷는 일은 고작 주차장에서 사무실이나 아파트 엘리베이터까지의 짧은 거리 걷기다. 교통수단의 발달로 인간의 이동은 엄청난 시공간으로 확대됐다. 누군가 대낮의 도심을 느긋하게 걷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할 일 없는 무능한 사람으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걷기는 여전히 ‘정신적 행복’과 ‘신체적 건강함’을 동시에 되찾게 해 주는 가장 좋은 수단이다. 그것은 분명하다.

▲ 걷기에 참여한 어느 스님 패랭이 위에 걸린 지는 해가 평화롭다.
생활 속 여유 즐기기 걷기명상 ‘붐’…가장 경제적 효과적 유산소 운동효과

‘뚜벅 뚜벅 뚜벅…’ 두 발로 땅을 디디며 걸으면서 인간은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게 된다. 이때 걷는 것은 다리와 발뿐만이 아니다. 몸과 머리, 마음도 함께 대지를 밟는다. 발로 걸어 다니는 인간은 걷는 행위를 통해 이목구비 모든 감각기관의 모공을 활짝 열어 주는 능동적 방식의 명상에 빠져 들 수 있다.

실제로 천천히 걸으며 인간은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생활 속의 여유를 만끽하면서 즐거움에 빠지기도 한다. 차를 타면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길 위의 사물이나 풍경도 느린 걸음을 통해 새롭게 다가온다. 이목구비의 모든 감각기관이 새롭게 태어나는 순간이다.

▲ 바닷가 해안 곳곳에 이름모를 야생화들이 참가자들의 눈과 코를 즐겁게 했다.
때문에 걷기의 미학은 느림의 미학이기도 하다. 자동차나 비행기를 타고 갈 때에는 분초를 다투며 움직이지만 한가롭게 걸어 갈 때는 시간의 강박관념에서 자유롭다. 그래서 많이 걷는 사람은 분명 시간의 부자이다.

걷기만큼 생각하는 데 더없이 좋은 순간이 있을까. 소크라테스와 그의 학파들은 학원 안을 늘 산책하면서 대화도 나누고 사색을 펼쳤기에 소요학파(逍遙學派)라는 이름을 얻기도 했다. 스피드가 경쟁력인 사회에서 우리는 역설적으로 ‘느리게 사는 법’을 터득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 유력 주간지 <타임>은 “일주일에 5번씩, 하루 30분을 걸으면 심장마비와 당뇨, 골다공증의 발병 가능성을 낮춰 주며 관절염, 고혈압과 우울증까지 치료해 주는 탁월한 효능이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그만큼 걷기는 다이어트를 비롯한 건강의 지표이기도 하다. 가장 경제적이고 효과적인 유산소 운동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하루 30분 이상 일주일에 5회 이상 실천하면 젊음을 되찾을 수 있다고 자신한다.

올바른 걷기를 지속하면 호흡의 능률이 높아져서 산소 섭취량이 증가하고 다리와 허리의 근력이 증대된다. 또 운동의 강약을 조절할 수 있어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좋은 운동이다. 근력과 지구력이 높아지면서 체력도 강화된다. 필요 없는 지방은 소비되기 때문에 날씬한 몸매를 가꾸는 데도 그만이다.

걷기는 공간 속에서 뿐만 아니라 인간의 마음속으로 난 길을 찾아가게 한다. 걷는 사람은 세상의 모든 것과 다 손 잡을 수 있는 마음으로 세상의 구불구불한 길을, 그리고 자신의 내면의 길을 더듬어 간다.

용연계곡 위 구름다리를 건너는 부모와 아이들, 남편과 아내, 벗과 벗의 맞잡은 손이 더욱 단단해졌다. 길을 걷는데 좋은 동행자가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 그래서 걷기는 더욱 삶의 불안과 고뇌를 치료하는 약이 되기도 하고, 걷기를 통해 느껴지는 육체적 시련은 정신적 시련의 해독제가 되기도 한다.

▲ 대한성공회 박동신 신부가 평화걷기를 마친후 행복한 미소를 지어보이고 있다.
용두암 바닷가를 지나 용담해안도로를 따라 행렬은 서쪽으로 계속 이어졌다. 걷기 참가자 패랭이 끝에 걸린 해넘이의 풍경이 여유롭다. 해안가의 이름 모를 야생화들도 평화걷기의 행렬을 반긴다.

한참을 걸어 이날 걷기의 목적지인 어영마을 해안도로 연대쉼터에 다다랐다. 참가자들의 표정이 한결같이 밝다. 유치원 아이들이 불러주는 동요와 율동에 어른들도 덩달아 신이 났다. 거기에다 원명유치원에서 간식으로 마련해온 떡을 나눠 먹으며 참가자들은 예정에 없던 소박한 잔치를 즐겼다.

이날 걷기에 아이와 함께 참가한 윤석현(42. 남군 성산읍)씨는 "주말에 딸 아이와 함께 뜻깊은 시간을 보낸것 같다"며 "걷는 내내 평소에 나누지 못하던 속깊은 대화를 나눌수 있어 좋은 시간이었다"고 전했다.

또다른 참가자 고인경(36. 제주시 삼양동)씨는 "걸으면서 이번 선거에서 어떤 인물을 선택할 지 고민했다"며 "생각이 여유로운 사람이면 좋겠고, 거짓말하고 권력을 남용하는 인물들은 뽑지 말아야 할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평화걷기는 원명선원 대효 스님의 인사말로 마무리했다.   대효 스님은 “마음이 무겁다는 것은 생각이 부족한 것과 같은 상태입니다. 크고 깊은 생각은 사려 깊은 사색의 결과인데, 자주 걷는 습관이 매우 중요합니다”고 했다.

▲ 개신교 늘푸른교회 이정훈 목사가 평화걷기 후 즉석에서 벌어진 떡잔치에서 참가자들에게 떡을 나눠주고 있다.
또 스님은 “오늘 여러분은 걷기를 통해 육체의 보약뿐만 아니라, 정신적 보약을 한재 씩 다 잡수신 것과 다르지 않으니 다음 평화걷기까지 오늘 보약을 잘 유지하시기 바랍니다”고 말해 참가자들로 하여금 잔잔한 미소를 짓게 했다. 서녘 하늘의 해도 어느새 짙은 구름사이로 서둘러 몸을 숨겼다.

▲ 평화걷기를 마친후 원명선원 대효스님의 참가자들에게 마무리 인사말을 하고 있다.
한편, 평화걷기를 주최하는 제주종교인협의회는 도내 불교, 원불교, 천주교, 개신교 등 4개 종단의 성직자와 일반신자들로 구성돼 제주를 진정한 평화의 섬으로 만들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는 모임이다. 생명평화탁발순례를 하고 있는 도법, 수경스님도 이 모임의 고문으로 활동 중이기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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