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2013년 체제'는 무엇인가?
제주의 '2013년 체제'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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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기 칼럼> 제주의 '큰원(願)'을 생각하며

  ‘폐기', ‘폐지’의 목소리가 무성하다. ‘FTA 폐기’, ‘핵 폐기’, ‘비정규직 폐기’ 등등. 심지어 새누리당 박근혜 비대위원장 까지도 2015년까지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전면 줄이는 폐지론을 들고 나왔다. 집권여당의 수장까지 ‘폐지론’를 들고 나오는 형국은 지금껏 세상을 주도해왔던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적어도 모두가 공유하는 반성이 대세가 된 것이다. 그런데, 그것의 대체는 단지 정책 프레임 수준이 아니다. 현재 한껏 회자되는 ‘공정’, ‘정의’, ‘분배’와 같은 말들은 정책 차원 이상의 패러다임의 변화를 반영한다. 이는 비단 국내뿐 아니라, ‘반월가 시위’와 같은 세계적인 현상으로도 예고되어 왔다.

  ‘2013년 체제’는 ‘원(願)을 크게 세우는 일'

▲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가 쓴 '2013년 체제 만들기' 표지
  이렇듯 세상을 설명하는 열쇳말의 변화만 봐도, 한국과 세계는 뭔가 반복되고 흘러온 ‘잘못’과 ‘위기’의 근본적인 ‘넘어섬’을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한 마디로  ‘전환의 시대’다.
  최근 전환을 예고, 혹은 요구하는 언어로 ‘2013년 체제'라는 말이 조용히, 그러나 무게감 있게 퍼져가고 있다. 2013년 체제의 필요성을 다각도로 구성한 ‘2013년 희망코리아’라는 책이 나오기도 하고, 한겨레신문에서는 아예 ‘2013년 체제’를 주제로 강좌도 열고 있다.

  ‘2013년 체제’라는 말은 ‘분단체제론’을 펴온 백낙청 교수가 2011년 3월 강원도에서 열린 ‘평화와 통일을 위한 시민활동가 대회’에서 처음 거론한 것이다.

  백낙청 교수에 의하면 ‘2013년 체제’는 단지, 이명박 정권에 의해 조성되고 심화된 민주주의의 후퇴, 사회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자는 차원이 아니다. 따라서 그것은 2012년 예정된 총선, 대선에서 우리사회가 처한 위기를 넘어설 새로운 정치주체를 세워야 한다는 과제를 뛰어 넘는다. 물론, 그것이 절박하고도 현실 당면한 과제이긴 하지만, 그가 주문하는 ‘지금 우리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원(願)을 크게 세우는 일’이다.

  인물만 바뀐 포스트MB에 대한 기대는 ‘또 한번의 너무 작은 원’으로 돌아올 뿐이라는 것이다. 누가 새로운 정권으로 서든, 그 성패가 향후 한국사회의 운명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거나, 원든 원치 않든 피해갈 수 없는 숙제가 되는 ‘체제’의 문제에 직면한 것이 한국사회의 오늘임을 선명한 정리로 끄집어 낸 것이 ‘2013년 체제’의 문제제기이다.

  ‘2013년 체제’의 상(像) : 민주, 평화, 복지사회

  지금 한국사회에 세워야 할 ‘큰 원(願)’이란 어떤 것일까?
  백 교수는 이른바 ‘87년 체제'로 일컬어지는 군사독재, 반민주-반자유, 남북대결의 시대를 대체할 새로운 시대를 ‘2013년 체제’로 명명하고 있다. 때문에 새로운 2013년 체제는 무엇보다 87년 민주항쟁에 비견될 정도의 ‘크게 바뀌는 세상’을 전제한다. 그리고 그것의 가치는 ‘공정, 공평, 정의, 평화, 연대’와 같은 열쇳말들로 채워지고, 그것의 접근에 의한 ‘새로운 사회’로서 2013년 체제는 ‘민주, 평화, 복지사회’를 지향한다. 물론, 그것이 확정된 ‘3대 과제’도 아니고, 그것의 실현도 여타의 과제들-예컨대 생활양식을 생태적으로 전환하는 환경문제 등-과 정교히 결합되어야 한다고 백 교수 스스로도 밝히고 있지만, 굳이 2013년 체제론이 아니더라도 이는 감각적으로 감지할 수 있는 시대흐름에 따른 향후 세계의 상(像)이 아닐 수 없다.

  아울러, 2013년 체제의 중요한 숙제중의 하나로 백 교수는 ‘본격적 사회통합’을 제기한다. 사회통합은 단순히 보수와 진보의 이분법을 뛰어넘어 ‘든든한 중도’의 결집으로 비로소 합리적 진보와 합리적 보수가 소통하고 경쟁하는 ‘정상의 사회’를 지향한다. 백낙청 선생은 그러나 당장은 2012년의 선거를 통해 수구세력과 합리적 보수세력의 결탁관계가 깨지는 과정이 전제되어야 함을 지적하고 있다. 어쨌든 향후 2013년 체제에서의 중도통합, 나아가 사회통합이 중요한 숙제임은 분명하다.

  제주의 2013년 체제는 ?

  세상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체제’가 거론되는 마당에 제주의 ‘큰 원(願)’은 어디에 두어야 할까?

  사실, 이미 그러한 원(願)의 지향은 일찌감치 있어왔다. ‘지속가능한 발전’, ‘생태평화도시’, ‘제주다움’ 등의 구호는 그것의 반영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 동안 철저히 비주류의 담론이었고, 여전히 그것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미 제주는 ‘올레’에 대한 각광, 세계자연유산으로의 인정 등을 통해 가능성과 기회를 확인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논란이 되는 7대 경관 문제는 그런 기회와 가능성을 의식하면서도, 정작 진지한 성찰이 결여된 탓에 왜곡된 경로(정치적 실적주의)로 유입되고 변형된 미숙한 열망이 빚은 파장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카지노 개발과 그 시너지를 통한 국제자유도시 창출이 향후의 제주를 담은 종합계획이란 이름으로 제시되는 것이 또한 제주의 ‘체제’를 대변하는 현주소이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그림을 그려야 한다. 그것이 제주의 살길이고, 제주가 클 수 있는 방안이기도 하다. 2013년 체제에서 제기되는 키워드들이야말로 제주가 이에 가장 부합하는 모델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2013년 체제의 시대정신은 우선 ‘자율적 다중에 의한 지배’, 즉 시민(주권) 민주주의를 지향한다. 수많은 ‘촛불'에서 보았듯 지금 새로운 사회체제의 징조 자체가 여기서 비롯되었다.

 이는 제주가 더 이상 관주도의 동원체제가 끌어가는 사회로서는 희망이 없음을 시사한다. 철저히 민(民) 주도, 적어도 민․관의 협력이라는 대전제가 굳건하게 서가야 한다. 특별자치도 체제에서 그 동안 철저히 홀대당했던 주민직접참여제도의 획기적 개선 등 참여자치의 정신을 선도적으로 끌어올리고, 행정계층구조를 공동체적 민주주의에 합당한 틀로 바꿈은 물론이다.

  제주가 천혜의 자연을 배경으로 ‘살만하고 잘사는 곳’으로 소문이 날 정도로,  공정(기회와 조건의 평등), 공평(경쟁결과의 합리적 보장)의 사회망을 제주 스스로 앞서서 설계해야 한다.  큰 기업이나 자본을 유치하지 못해도, 그 과정에 실제 많은 주민들이 고용되고,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내실있고 지속가능한 성장모델’을 찾아 키워 가야 한다. 여기에서 기후변화와 에너지 위기라는 경제성장의 제약이 오히려 제주에겐 새로운 성장의 기회가 될 수 있지 않을지 심도 있게 검토해봐야 한다.

  대통령 후보의 한 사람으로 거론되는 김두관 경남도지사는 지난 주 언론에서 시대정신과 어젠더를 묻는 질문에 대해 ‘평화애호 중견국가’지향을 밝히며, ‘평화’를 시대정신으로 우선 꼽았다.

  미국은 최근 1950년 이전 수준으로 핵무기를 감축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한다. 제주는 일찍이 평화의 섬이고, 이를 뒷받침하는 역사맥락을 품고 이어왔다. 그리고 현재 진행형의 해군기지 문제는 평화의 섬으로서 제주역사 맥락을 총체적으로 비추는 프리즘이 되고 있다. 때문에 2013년 체제의 시각에서 봤을 때, 해군기지 문제는 단지 경제적 이유나 단순 안보논리로 여길 사안이 되서는 안 될 것이다.

  여느 사회보다 찬반양론이 대결하는 제주사회에서 진정한 통합이란 무엇이고 어떤 프로세스를 가져야 하는지 진지한 모색도 매우 중요하다. 이것을 위해서는 다시 무엇보다 이해관계와 연고로부터 자유로운 소통과 토론을 위한 성찰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 이는 소위 지도층들의 진정성 있는 노력은 물론, 무엇보다 제주사회 지식인들의 투명하고 적극적인 역할론이 나와야 한다. 익명성이나 프라이버시를 기반으로 하는 SNS 소통의 툴도 중요한 매개가 되리라 생각한다.

  2013년 체제론을 설파하는 백낙청 교수는 최근 그의 저서를 통해 2013년 체제 ‘만들기’라는 표현을 썼다. 책머리에서 그는 그 이유를 ‘체제’라 불릴만큼 획기적 전환기인 지금 생각만하고 말 때는 결단코 아니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만들기’라는 표현은 그 만큼, 결국 전환을 일궈내는가 아닌가는 그것을 밀고 가는 의지에 의해 결정됨을 시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고유기
  동시에, 백 교수는 ‘2013년 체제’라는 말은 학자나 논객의 언어라는 점에서 조심스러움을 내비친다. 그러면서, ‘희망 2013’이란 말로 대신 사용되고 있는 사례도 소개하는 바, (물론 학계에서 논쟁도 있겠지만) 2013년 체제란 우리 같은 사람들 입장에선 선명하고도 일관되게 구현된 희망 설계도쯤으로 받아들이면 좋을 듯싶다.  이 희망의 설계도 안에서 제주는 어디쯤 위치하고 있을까? 아니, 제주는 제주만의 어떤 희망 설계도를 준비해야 할까? 세상의 흐름을 쫓아 생각해 볼 때다. / 고유기 민주통합당제주도당 정책실장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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