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남단 제주가 느닷없는 핵 배치 문제로 한 며칠 발칵 뒤집혔다. 다름아닌 핵이다. 그런데도 논란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 자체로 메가톤급 위력을 지닌 사안이지만, 진원지인 여권이 관련 보도를 오보 혹은 가짜뉴스로 몰아가자 논란은 점차 수그러드는 양상이다. 핵은, 오영훈 지사의 말마따나 제주와 도민의 생존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존재다. 있을 수도 없고, 검토조차 없어야 한다. 국책사업의 소통 부재를 나무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핵 문제 앞에서 ‘세계평화의 섬’과의 부조화는 어쩌면 한가한 소리다. 제주가 전략적인 핵 배치 요충지가
‘절대’(絕對)는 비현실적이다. 실제로는 구현하기 거의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어찌 아무런 조건이나 제약이 붙지 아니할 수 있겠나. 종잡기 힘든 우리네 인생을 논할 때는 더 그렇다. 개인적으로도 ‘절대’를 입에 담았다가 낭패를 본 적이 많다. 그 말을 쓰기에는 내 자신의 식견과 경험이 편협하기 이를데 없다. 모든 게 변화하는 세상의 이치와도 맞지 않다. 지금은 마음 속 일종의 경계어로 삼고 있다. 인간은 자신이 겪은 바에 따라서 사물이나 대상을 평가하기 십상이다. 그 인식의 틀을 깨기가 쉽지 않다. 따지고 보면, 우주만물에서 인간 자
이보다 빠를 수 없다. 전광석화 같다고나 할까. 윤석열 정부 들어 최고 권력자에 조응하는 사정기관의 민첩한 동작을 두고 하는 말이다. 척척 손발을 맞추기로는 각 부처도 마찬가지다. 사정기관들은 여당과도 이심전심 합을 잘 맞추는 것 같다. 역대급이다. 과거 어느 정권에서 이랬을까 싶다. 대통령이 입을 여는 순간 이들 기관은 행동을 개시한다. 넌지시 뭔가를 암시하거나, 불편한 기색을 보이기만 해도 예외없이 움직인다. 날래기만 한 게 아니라 일사불란까지 하다. 또 전방위적이다. 웃프게도, 권력 앞에 ‘알아서 다 해준다’는 퍼스트레이디의
“벼슬살이의 요체는 두려워할 외(畏) 한 자 뿐이다”다산 정약용이 목민심서에서 새로 부임하는 수령에게 일러준 마음자세, 즉 목민관이 지녀야 할 태도 가운데 하나는 백성을 두려워하라는 것이다. 나의 밥, 나의 권력이 어디서 오는 가에 대한 근본적 물음과도 닿아있다.고을의 원(員)이나 수령을 일컫는 목민관은 오늘날 지방자치단체장이 대표적이다. 버스가 지나간 뒤에 손 흔드는 격이어도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겠다. 권력교체기 ‘제주도지사 원희룡’은 후임자에게 이런 말을 해줄 수 있었을까. 많은 이들이 느낄 것이다. ‘차마’ 그럴 수 없었다는
‘그곳’에서 비교 또는 경쟁 따위는 무의미하다. 간혹, 출세한 사람의 우쭐거림이 있다고 해도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반대의 경우에 속한 사람도 그곳은 포근하게 감싸준다. 그래서인지 때가 되면 누구나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때’는 명절이 대표적이다. 이른바 귀소본능이 작동한다. 더러는 고향을 궁극의 회귀 지점으로 삼기도 한다. 이 때는 수구지심에 가깝다. 원초적 평등의 공간. 마음의 안식처. 바로 고향이다. 고향은늘 가난하게 돌아오는 그로 하여 좋다. 지닌 것 없이혼자 걸어가는들길의 의미.- - - - - -‘찬란한 슬픔
대통령의 언행은 하나하나가 모종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럴리야 없겠지만, 아무 생각없이 내뱉거나 행동하는게 아니라면 말이다. 더구나 대통령 주변엔 두터운 참모진이 포진해있다. 그렇다면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2일 단행한 광복절 특별사면에는 어떤 메시지가 들어 있을까.윤 대통령 스스로 밝혔다. 이번 사면은 무엇보다 민생과 경제회복에 중점을 뒀다고 했다. 하지만 특정 경제인 사면을 ‘경제위기 극복 기회 제공’으로 포장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사실, 근거가 부족했다. 재벌 총수는 뭘해도 용서가 된다는 또 하나의 선례를 남겼다
2014년이었다. 박근혜 정부가 제주4·3을 국가추념일로 지정한 것은 지금 생각해봐도 아이러니하다. ‘완전한 해결’로 나아가는 하나의 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무척 다행스런 일이긴 해도 말이다. 그만큼 박근혜 정부는 추념일 지정 말고는 집권 내내 4.3과 관련해 퇴행적 행보를 보였다. ‘예정된 공식 무대’에서 치적을 알리고픈 욕망이라도 있을법한데 웬일인지 박 대통령은 추념일 지정만 해놓고 그해 열린 첫 국가 추념 행사에 불참했다. 이게 의아하다는 얘기다. 약속을 잘 지키는 대통령이라서? 4·3 국가추념일 지정은 2012년 12월 대
시민사회의 예상이 적중했다. 국토교통부가 사실상 제주 제2공항 강행 수순에 돌입했다. 환경부에 의해 퇴짜를 맞은 전략환경영향평가서를 보완하기로 한 것이다. 중대한 하자였기에 치유가 불가능해 보였지만, 국토부의 판단은 달랐다. 2억4000만원을 들여 보완 가능성까지 ‘연구’한 끝에 기어코 판을 뒤집었다. 억지도 이런 억지가 없다. “원희룡(장관)의 국토부에서 (환경부의)반려 결정을 뒤엎을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보완 가능성 검토 용역도 정권의 입맛대로 가공될 가능성이 높다. 공정과 상식에 부합하는 보고서가 아닌 거짓과 부실로 점철될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6·2선거) 8일 후인 2010년 6월10일, 제주시 연동 건설회관 7층에 위치한 제주도지사직 인수위원회. 첫 회의가 열린 이날 오전 인수위 사무실엔 한동안 팽팽한 긴장감과 함께 냉기가 흘렀다. 당선인이 서두에 “넥타이도 풀고 윗도리도 벗으라”고 했지만, 분위기는 달라지지 않았다. 특히 일부 공무원의 얼굴에선 핏기가 사라졌다. 업무보고를 하러 온 도청 간부들이었다. 표정은 하나같이 굳어있었다. 공직 외부의 인수위 참여 인사들과는 사뭇 대조적이었다. 마이크를 잡은 이는 와신상담 끝에 6년만에 돌아온 우근민 당선
악의 무리를 일소하는 할리우드 영화의 주인공에게 법 따위는 안중에 없다. 법은 고사하고 말 보다도 항상 주먹이 앞선다. 그에게 법은 오히려 단죄를 방해하는 장애물일 뿐이다. 어쩔 수 없음을 항변하려는 뜻일 게다. 주인공들은 종종 법의 무기력함을 탓하기도 한다. 분명 초법적임에도 불사조 같은 주인공의 활약상을 보면서 누구나 한번쯤 통쾌감을 느꼈을 것이다. 응징의 대상이 당해도 싼 악당이기 때문이리라. 폭력이 난무하는 무법천지 시절이 제주에도 있었다. 한국 현대사의 최대 비극 4.3의 참극이 벌어졌던 바로 그 시절이었다. 당시 군·경은
오얏나무 밑에서는 갓끈도 고쳐매지 말라고 했다. 괜한 오해를 사지 않도록 때와 장소를 가려 행동하라는 선현들의 가르침이다. 더구나 발을 디딘 곳이 탐스런 자두가 달려있는 과수원이 아니라, 어디든 건들기만 해도 터질 것 같은 지뢰밭이라면 더 말해 무엇하랴. 살아남으려면 할 수 없다. 이럴 땐 무조건 거기서 빠져 나오는게 상책이다. 일단 사업 추진을 중단하라는 의미다. 뭉기적거리다가는 오해 차원이 아니라 큰 화를 부를 수 있다. ‘제주판 대장동’으로 일컬어지는 오등봉 공원 민간특례사업 얘기다. ‘오등봉’에 깔린 지뢰는 한 두 개가 아니
대권주자급에 걸맞는 커리어를 쌓기위해 입각도 노려볼 것이라는 예상은 했지만, 국토부장관은 의외였다. 행안부장관이라면 또 모를까, 국회의원 시절 관련 상임위에서 활동한 적도 없고, 그의 이력에 부동산이나 교통 분야와의 접점을 찾기는 어렵다. 제주지사를 지낸 원희룡 대통령직 인수위 기획위원장 얘기다. 언론들도 예상밖이라는 반응이다. 깜짝 인사, 파격 발탁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같은 맥락에서 전문성 보다는 정무·조정 능력을 중시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곧 야당이 될 민주당은 발끈했다. 국정 운영 파트너로서의 민주당에 대한 최소한의 배
조선시대 탐관오리들에게 가해진 형벌 증살(蒸殺)은 관원의 독직을 경계하기 위한 용도로는 그만이었다. 죽음보다 명예를 중시하는 선비들 한테 증살은 치명적인 형벌이었다. 팽형(烹刑)이라고도 하는 증살은 일종의 사회적인 사망 선고였다. 어찌 사람을 삶거나 쪄서 죽이겠는가. 실은 그런 시늉만 냈다. 따라서 증살은 명예형이자 평판(評判)형이었던 셈이다. 실제로 그랬을까 하는 논란이 있지만, 광해군의 이복동생 영창대군이 유배지에서 증살되었다는 기록은 엄연히 존재한다. 아무리 증살이 명예형이라고 하나, 가혹하기로는 어느 형벌 못지 않았다. 솥에
‘국립’ 제주대학교에 양용찬 열사(1966~1991) 기림비가 세워지는 걸 보고 두가지 느낌이 들었다. 하나는 격세지감, 다른 하나는 제주가 상식이 통하는 사회라는 점이다. 1991년 11월7일 분신으로 생을 마감한 뒤 명예졸업장을 받기(2021년 12월28일)까지 걸린 시간 30년은 그 자체가 격세(隔世), 긴 세월이다. “양 열사는 역사에 기록될만한 선지자적인 훌륭한 일을 하셨다”“우리는 그 분의 선지적인 희생으로 편히 발 뻗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잘못된 것에 대해 실질적인 행동으로 옮긴 용기있는 대단한 분이다. 모두가 자랑
교육의원 존폐는 해묵은 논쟁거리다. 지방선거와 맞물려 4년을 주기로 논란이 재연됐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용감한 쥐’가 나타나지 않았을 뿐 사실 대세는 오래전에 기울었다. 민심은 ‘폐지’였다. 그들(교장 출신)만의 리그, 다양한 교육주체의 접근 봉쇄, 교육감으로 가기위한 징검다리, 깜깜이 선거, 무투표 당선, 고유 영역(교육)을 넘어서는 과다한 대표성…. 존재 이유에 딸려나오는 의문부호들은 한둘이 아니다. 혹자는 교육의원 제도 자체가 교육자치에 대한 역행이라고까지 표현했다. 여론은 일관적이었다. 10여년동안 시민단체 등이 주도
언제부턴가 징후만 보고도 그 조직이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헤아림은 정확도가 점점 높아졌다. 통찰력이 있어서가 아니다. 직감이 곧잘 통했다고나 할까. 직감은 능력의 깊이 따위를 일컫는 내공과도 다른 것이다.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30년 가까운 언론 ‘짬밥’이 원초적 본능을 수없이 자극한 결과 아닐까 싶다.제주도감사위원회가 최근 내놓은 제주연구원에 대한 종합감사 결과를 보면서 새삼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직감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감사 결과는 씁쓸했다. 제주 최고의 싱크탱크를 자
지표와 체감도 사이에는 틈이 있게 마련이다. 이러한 간극은 측정 기준이 잘못됐거나 정교하지 못할 때 주로 생긴다. 그걸 감안해도 이건 아니다 싶은게 있다. 제주도가 지역안전지수 전국 꼴찌의 불명예를 또 안았다. 한마디로 전국에서 제주도가 가장 불안하다는 얘기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벌써 몇 번째인가.도둑, 대문, 거지가 없는 삼무(三無)의 고장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나. 지역안전지수를 가리는 6개 분야 가운데 ‘범죄’는 삼무와 가장 관련이 있는 분야다. 이 역시 최하위 등급을 받았다니 놀랍다. 그것도 7년 연속으로. 격세지감,
‘끼리끼리’를 뜻하는 유유상종(類類相從)이 본디 부정적으로 쓰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긍정적인 뉘앙스가 강했다. 유유상종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중국 전국시대 제(齊)나라 학자이자 관료인 순우곤(淳于髡)이다. 요즘으로 치면 그는 익살과 달변의 아이콘이었다. 하루는 제 나라 선왕(宣王)이 순우곤에게 널리 인재를 찾아 등용하도록 명했다. 이에 여러 지방을 돌아다닌 순우곤은 일곱명의 인재를 데리고 왕 앞에 나타났다. “너무 많지 않느냐”는 왕의 물음에 순우곤의 대답이 일품이었다. “같은 류의 새가 무리지어 살 듯 인재도 끼리끼리 모이는
코로나19로 제주는 더욱 핫해졌다. ‘잠시 멈춤’이 최고의 미덕이던 사태 초반과는 확연히 다른 양상이다. 누가 이럴줄 알았겠나. 회복(?)의 속도가 놀라울 따름이다. 그제는 관광객 1000만명을 돌파했다. 연말에는 1200만명도 넘어설 기세다. 관광업계에서 극성수기는 통상 8월을 일컫는다. 올해는 10월을 그렇게 불러야 할 판이다. 한꺼번에 몰려서 그런가, 어딜 가나 제주는 코로나19 전보다도 더 북적이는 느낌이다. ‘허허하호’. 도로는 렌터카들의 경연장이다. 도민들은 숨이 막힐 지경이라고 아우성이다. 교통체증이 관광객 때문만은 아
동티를 경계할 법도 한데 주저함이 없었다. 제주의 상징과 다름없는 한라산 자락의 오름을 파헤치는 일인데도 거리낌이 없었다. 속전속결. 민간 개발업자의 이야기가 아니다. 행위 주체는 국토교통부. 이를 제주도가 허가했다. 시쳇말로 케미가 잘 맞았다. 제주도는 무능하거나 무신경했고, 국토부는 시치미(?)를 뗐다. 훼손 현장은 한라산국립공원 내 천연보호구역이자 절대보전지역인 삼형제큰오름. 1100고지 인근에 동서로 포진한 크고작은 3개의 오름(삼형제오름) 중 첫째로, 국립공원의 핵심지역이다. 백록담과의 거리도 5km 밖에 안된다고 한다.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