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6·2선거) 8일 후인 2010년 6월10일, 제주시 연동 건설회관 7층에 위치한 제주도지사직 인수위원회. 첫 회의가 열린 이날 오전 인수위 사무실엔 한동안 팽팽한 긴장감과 함께 냉기가 흘렀다. 당선인이 서두에 “넥타이도 풀고 윗도리도 벗으라”고 했지만, 분위기는 달라지지 않았다. 특히 일부 공무원의 얼굴에선 핏기가 사라졌다. 업무보고를 하러 온 도청 간부들이었다. 표정은 하나같이 굳어있었다. 공직 외부의 인수위 참여 인사들과는 사뭇 대조적이었다. 마이크를 잡은 이는 와신상담 끝에 6년만에 돌아온 우근민 당선
악의 무리를 일소하는 할리우드 영화의 주인공에게 법 따위는 안중에 없다. 법은 고사하고 말 보다도 항상 주먹이 앞선다. 그에게 법은 오히려 단죄를 방해하는 장애물일 뿐이다. 어쩔 수 없음을 항변하려는 뜻일 게다. 주인공들은 종종 법의 무기력함을 탓하기도 한다. 분명 초법적임에도 불사조 같은 주인공의 활약상을 보면서 누구나 한번쯤 통쾌감을 느꼈을 것이다. 응징의 대상이 당해도 싼 악당이기 때문이리라. 폭력이 난무하는 무법천지 시절이 제주에도 있었다. 한국 현대사의 최대 비극 4.3의 참극이 벌어졌던 바로 그 시절이었다. 당시 군·경은
오얏나무 밑에서는 갓끈도 고쳐매지 말라고 했다. 괜한 오해를 사지 않도록 때와 장소를 가려 행동하라는 선현들의 가르침이다. 더구나 발을 디딘 곳이 탐스런 자두가 달려있는 과수원이 아니라, 어디든 건들기만 해도 터질 것 같은 지뢰밭이라면 더 말해 무엇하랴. 살아남으려면 할 수 없다. 이럴 땐 무조건 거기서 빠져 나오는게 상책이다. 일단 사업 추진을 중단하라는 의미다. 뭉기적거리다가는 오해 차원이 아니라 큰 화를 부를 수 있다. ‘제주판 대장동’으로 일컬어지는 오등봉 공원 민간특례사업 얘기다. ‘오등봉’에 깔린 지뢰는 한 두 개가 아니
대권주자급에 걸맞는 커리어를 쌓기위해 입각도 노려볼 것이라는 예상은 했지만, 국토부장관은 의외였다. 행안부장관이라면 또 모를까, 국회의원 시절 관련 상임위에서 활동한 적도 없고, 그의 이력에 부동산이나 교통 분야와의 접점을 찾기는 어렵다. 제주지사를 지낸 원희룡 대통령직 인수위 기획위원장 얘기다. 언론들도 예상밖이라는 반응이다. 깜짝 인사, 파격 발탁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같은 맥락에서 전문성 보다는 정무·조정 능력을 중시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곧 야당이 될 민주당은 발끈했다. 국정 운영 파트너로서의 민주당에 대한 최소한의 배
조선시대 탐관오리들에게 가해진 형벌 증살(蒸殺)은 관원의 독직을 경계하기 위한 용도로는 그만이었다. 죽음보다 명예를 중시하는 선비들 한테 증살은 치명적인 형벌이었다. 팽형(烹刑)이라고도 하는 증살은 일종의 사회적인 사망 선고였다. 어찌 사람을 삶거나 쪄서 죽이겠는가. 실은 그런 시늉만 냈다. 따라서 증살은 명예형이자 평판(評判)형이었던 셈이다. 실제로 그랬을까 하는 논란이 있지만, 광해군의 이복동생 영창대군이 유배지에서 증살되었다는 기록은 엄연히 존재한다. 아무리 증살이 명예형이라고 하나, 가혹하기로는 어느 형벌 못지 않았다. 솥에
‘국립’ 제주대학교에 양용찬 열사(1966~1991) 기림비가 세워지는 걸 보고 두가지 느낌이 들었다. 하나는 격세지감, 다른 하나는 제주가 상식이 통하는 사회라는 점이다. 1991년 11월7일 분신으로 생을 마감한 뒤 명예졸업장을 받기(2021년 12월28일)까지 걸린 시간 30년은 그 자체가 격세(隔世), 긴 세월이다. “양 열사는 역사에 기록될만한 선지자적인 훌륭한 일을 하셨다”“우리는 그 분의 선지적인 희생으로 편히 발 뻗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잘못된 것에 대해 실질적인 행동으로 옮긴 용기있는 대단한 분이다. 모두가 자랑
교육의원 존폐는 해묵은 논쟁거리다. 지방선거와 맞물려 4년을 주기로 논란이 재연됐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용감한 쥐’가 나타나지 않았을 뿐 사실 대세는 오래전에 기울었다. 민심은 ‘폐지’였다. 그들(교장 출신)만의 리그, 다양한 교육주체의 접근 봉쇄, 교육감으로 가기위한 징검다리, 깜깜이 선거, 무투표 당선, 고유 영역(교육)을 넘어서는 과다한 대표성…. 존재 이유에 딸려나오는 의문부호들은 한둘이 아니다. 혹자는 교육의원 제도 자체가 교육자치에 대한 역행이라고까지 표현했다. 여론은 일관적이었다. 10여년동안 시민단체 등이 주도
언제부턴가 징후만 보고도 그 조직이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헤아림은 정확도가 점점 높아졌다. 통찰력이 있어서가 아니다. 직감이 곧잘 통했다고나 할까. 직감은 능력의 깊이 따위를 일컫는 내공과도 다른 것이다.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30년 가까운 언론 ‘짬밥’이 원초적 본능을 수없이 자극한 결과 아닐까 싶다.제주도감사위원회가 최근 내놓은 제주연구원에 대한 종합감사 결과를 보면서 새삼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직감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감사 결과는 씁쓸했다. 제주 최고의 싱크탱크를 자
지표와 체감도 사이에는 틈이 있게 마련이다. 이러한 간극은 측정 기준이 잘못됐거나 정교하지 못할 때 주로 생긴다. 그걸 감안해도 이건 아니다 싶은게 있다. 제주도가 지역안전지수 전국 꼴찌의 불명예를 또 안았다. 한마디로 전국에서 제주도가 가장 불안하다는 얘기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벌써 몇 번째인가.도둑, 대문, 거지가 없는 삼무(三無)의 고장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나. 지역안전지수를 가리는 6개 분야 가운데 ‘범죄’는 삼무와 가장 관련이 있는 분야다. 이 역시 최하위 등급을 받았다니 놀랍다. 그것도 7년 연속으로. 격세지감,
‘끼리끼리’를 뜻하는 유유상종(類類相從)이 본디 부정적으로 쓰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긍정적인 뉘앙스가 강했다. 유유상종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중국 전국시대 제(齊)나라 학자이자 관료인 순우곤(淳于髡)이다. 요즘으로 치면 그는 익살과 달변의 아이콘이었다. 하루는 제 나라 선왕(宣王)이 순우곤에게 널리 인재를 찾아 등용하도록 명했다. 이에 여러 지방을 돌아다닌 순우곤은 일곱명의 인재를 데리고 왕 앞에 나타났다. “너무 많지 않느냐”는 왕의 물음에 순우곤의 대답이 일품이었다. “같은 류의 새가 무리지어 살 듯 인재도 끼리끼리 모이는
코로나19로 제주는 더욱 핫해졌다. ‘잠시 멈춤’이 최고의 미덕이던 사태 초반과는 확연히 다른 양상이다. 누가 이럴줄 알았겠나. 회복(?)의 속도가 놀라울 따름이다. 그제는 관광객 1000만명을 돌파했다. 연말에는 1200만명도 넘어설 기세다. 관광업계에서 극성수기는 통상 8월을 일컫는다. 올해는 10월을 그렇게 불러야 할 판이다. 한꺼번에 몰려서 그런가, 어딜 가나 제주는 코로나19 전보다도 더 북적이는 느낌이다. ‘허허하호’. 도로는 렌터카들의 경연장이다. 도민들은 숨이 막힐 지경이라고 아우성이다. 교통체증이 관광객 때문만은 아
동티를 경계할 법도 한데 주저함이 없었다. 제주의 상징과 다름없는 한라산 자락의 오름을 파헤치는 일인데도 거리낌이 없었다. 속전속결. 민간 개발업자의 이야기가 아니다. 행위 주체는 국토교통부. 이를 제주도가 허가했다. 시쳇말로 케미가 잘 맞았다. 제주도는 무능하거나 무신경했고, 국토부는 시치미(?)를 뗐다. 훼손 현장은 한라산국립공원 내 천연보호구역이자 절대보전지역인 삼형제큰오름. 1100고지 인근에 동서로 포진한 크고작은 3개의 오름(삼형제오름) 중 첫째로, 국립공원의 핵심지역이다. 백록담과의 거리도 5km 밖에 안된다고 한다.굴
70여년 전 4.3 군사재판의 불법성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살인적 취조와 고문을 가한 뒤 이름만 호명하는 식의 재판은 졸속 그 자체였다. 2019년 이후 4.3 관련 재심에서 예외없이 공소기각 또는 무죄 판결이 난 것도 당시 재판의 불법성을 뒷받침한다. 이 점에서 4.3특별법 개정 과정에서 유족들이 줄기차게 군사재판의 무효화를 주장한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군사재판의 무효화는 4.3수형인들이 단 한명도 배제되지 않고 누명을 벗을 가장 확실하고도 근본적인 처방이었다. 연고자가 없거나, 개별적으로 재심을 청구할 여력이 없는 경우까지
아무리 부처 속성이 그렇다쳐도, 도저히 속내를 모르겠다. 상식적으로 집행 가능성이 희박한데도 기어코 수백억원의 예산을 편성하고야 마는 국토교통부의 집념이 대단하다. 이쯤되면 병적인 집착에 가깝다. 제주 제2공항 얘기다. 다들 대세가 기울었다고 여기는 판국에 여차하면 삽질부터 할 심산인지 국토부에 묻고 싶다. 가뜩이나 코로나19로 재정이 궁핍할 텐데, 시쳇말로 “뭣이 중헌디”를 되뇌이게 한다. 외려 우리가 나라 곳간 사정을 잘못 알고 있지나 않은지 의심이 들 정도다. 그만큼 환경부가 반려한 전략환경영향평가서의 하자는 치명적이다. 보완
143개나 되는 제주 하천의 생성 시기를 논하는 것은 능력 밖이다. 다만 한가지, 각각의 하천이 장구한 세월 풍수와 맞서거나 상호작용한 결과가 오늘의 모습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비든 바람이든 어디 부드럽기만 했겠는가. 하천의 나이를 가늠해보면, 사납게 몰아친 날도 셀 수 없이 많았을 것이다. 때때로 홍수도 닥쳤을 터. 그 인고의 시간이 없었다면, 단언컨대 제주의 하천은 지금처럼 아름답지 않았다. 신의 조화가 아니다. 암반 위 각양각색의 소(沼)도 마찬가지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이 없다고 하찮게 볼 일이 아니다. 지질적으로나 환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는 사람이 없다면 절망적이다. 이 상황에 처하면 뭘 하든 수습이 어렵다. 신뢰가 땅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메주를 쑤는 주체가 정부 혹은 공적인 기관이라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구성원들이 도통 들으려 하지 않으니 정책의 효과는 커녕 우리 사회에 불신의 골만 깊어질 뿐이다. 원인은 거짓말이다. 거짓말에도 유형이 있다. 선의의 거짓말은 때로 불가피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솝 우화 속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은 심심풀이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결과는 참혹했다. 반복된 거짓말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화를 키웠
개과천선한 선생 김봉두가 뒤늦게 막아보려 했지만, 학교 문은 닫히고 말았다. 끝내 반전은 없었다. 애초 김봉두의 시커먼 속내를 알아차리지 못한 순하디 순한 시골 주민들은 폐교를 막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할 태세였다. 그것은 김봉두의 마음을 붙잡으려는 형태로 나타난다. 촌지는 과일, 채소로 대신했다. 여하한 노력의 이유는 분명했다. 주민들에게 학교는 심장이었다. 멈추는 순간 생명이 꺼지고마는. 운명도 하나였다. 학교가 없어진다면 결국 마을도 사라질 것이다. 경제적 효율성을 따질 일이 아니었다. 마을의 생존이 달려있는데, 설사 주민들의
지난 3월18일 제주도의회 임시회. 제주도와 국토연구원 관계자들이 도의원들로부터 질책을 당하고 있었다. 분위기는 무거웠다. 제3차(2022~2031년) 제주국제자유도시종합계획(이하 종합계획) 수립에 따른 현안 보고 자리였다. 국토연구원은 이 용역을 이끄는 국책연구기관. 질책의 요지는 용역 만료일이 코앞인데 갈팡질팡한다는 것. 뜬구름 잡기식이라는 지적도 쏟아졌다. 그럴만 했다. 용역에는 자그마치 12억8300만원이 책정됐다. 제1, 2차 종합계획 역시 계획 대비 이행실적이 매우 저조해 허명의 문서, 결국 캐비닛 용역으로 전락했다는 비
도시공원의 존재 이유를 생각해본다. 본질적인 존재 이유. 녹지공간의 확보냐, 시민 이용 증진인가. 굳이 따진다면-적절한 조화가 이상적이긴 하지만-어느 것이 우선시되어야 하는지 솔직히 헷갈린다. 도시공원을 규정한 법률(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 이하 법률)을 들춰봐도 아리송하긴 마찬가지다. 법률에는 이렇게 정의되어 있다. ‘도시지역에서 도시자연경관을 보호하고 시민의 건강·휴양 및 정서생활을 향상시키는 데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설치 또는 지정된 공원’맞다. 지금 제주에서 뜨거운 감자인 도시공원 민간특례사업을 얘기하려다 근원적인
너무 앞서가나 싶어도 토를 다는 게 어색할 때가 있다. 충만한 의지의 표현 쯤으로 받아들이면 그만인 경우다. 사회 변화를 추구하는 선도적인 뭔가를 선포할 때 주로 이런 분위기가 형성된다. 계획 또는 목표와 현실 사이의 간극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선의의 구호 앞에서 목표는 말 그대로 목표일 뿐이다. 제주도가 2030년까지 도내 자동차 37만대 전체를 전기차로 바꾸겠다고 선언할 때도 그랬다. ‘제1기 원희룡 도정’ 출범 이듬해인 2015년이었다. 2030년은 카본 프리 아일랜드(탄소 없는 섬) 달성 연도로 설정한 해다. ‘37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