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의 명칭은 그 조직의 성격과 역할을 규정한다. 때론 조직의 비전을 담기도 한다. 그래서 작명(作名)은 중요하다. 리더와 구성원이 공히 내다보는, 혹은 바라봐야할 지점을 정확히 가리켜야 하기 때문이다. 한번 지은 사람의 이름을 바꾸는게 어려운 것처럼-법적인 개명 절차는 이전보다 한결 간편해졌으나-조직의 명칭을 고치는 것도 말처럼 쉽지 않다. 고려해야할 요소가 한 둘이 아니다. 국토교통부 산하 국가공기업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가 그런 경우다. 제주국제자유도시 조성 전담기구인 JDC는, 국제자유도시가 여전히 유효한 제주의 비
영화 을 보고나면 가슴이 먹먹한 것은, ‘어쩌면’ 누명을 벗겨줄 재심 때문이 아니다. 고문과 조작으로 목격자를 살인범으로 몰고간 경찰, 진실을 밝히기 위한 두 남자의 눈물겨운 사투 때문도 아니다. 열다섯살 소년 현우(강하늘 분)의 ‘잃어버린 10년’은 어쩔 것이냐는 생각에서다. 그 느낌이 너무 부담스러워 채널을 돌릴 때도 있다. 억만금을 줘도 살 수 없는 게 있다. 시간이다. 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고 했다. 더구나 그 시간이 앞날이 창창한 10대의 것이라면 더 말해 무엇하랴. 현실에서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피살사건’은
화폐는 재화와 서비스를 거래하기 위한 수단이다. 한 국가에서 재화와 서비스를 거래하면서 주고받은 돈이 외국으로 많이 빠져나간다는 것은 그만큼 국가의 부(富)가 유출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 지역에서 거래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돈이 외부로 유출된다는 것은 곧 지역의 부(富)가 유출되는 것과 같다. 따라서 지역경제를 지키기 위해서는 중앙은행에서 발행하는 국가화폐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지역화폐는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지역의 부(富)가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특정 지역에서만 통용되는 대안화폐이다.드디어 제주에서도 11
“초토(焦土)작전은 인도적으로 결코 허용될 수 없고, 전시에도 명령하거나 묵인한 사령관은 전범으로 처형을 면키 어렵다. 하물며 전후(戰後) 평화시에 자기가 군정(軍政)하는 영토 내의 국민에게 이런 명령을 내렸다고 세상에 알려지면 그 결과는 엄청날 수 밖에 없다. 전범재판을 받지 않는다 해도 그는 인도적으로 처형될 것이다”4.3당시 초토화 작전을 거부했다가 미 군정에 의해 해임된 김익렬 중령(당시 9연대장)이 후임인 박진경 중령에 대해 기술한 유고록의 일부다. 1988년 세상을 떠난 김익렬 중령은 “이 원고가 가필(加筆)되지 않은 그
대법원의 최종판결에도 반성 없는 보수언론들의 대권후보 만들기선팅이명박 전대통령이 대법원에서 17년간의 형을 확정받고 결국 영어(囹圄)의 몸이 됐다. 그동안 1심과 2심에서 모두 중형을 선고받았지만, 보석으로 풀려나 논현동 자택으로 돌아간 지 8개월 만이다. 당초 중범죄인에게 보석을 허용한 것은 상식적으로도 맞지 않았고 전례를 찾아보기도 어려운 일이었지만, ‘유전무죄’의 법리를 흔히 보여주는 사법부의 현실임을 감안하면 ‘그들만의 각별한 휴머니즘’은 이해하지 못할 바는 없었다. 허기를 참을 수 없어 불과 몇 천원의 빵을 훔쳐 먹은 어느
올 3월까지만 해도 의혹 제기 수준이었다. 환경단체는 확신하는 분위기였으나, 사실 확인이 필요했다. 사업을 접을 수도 있는 중대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송악산 일대)매우 수려한 자연경관은 공공의 자산이며, 개인이 독점할 수 있는 자산이 아니므로 자연경관을 현저하게 침해하는 개발계획은 적정하다고 보기 어렵다. 제출된 (환경영향)평가서를 토대로 검토한 결과 사업 시행 시 해당 지역의 자연경관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되는 바 재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사실상 사업을 추진해선 안된다는 메시지였다. 사업은 ‘뉴오션타운’으로 명명
정조의 숨겨진 리더십을 조명한 김준혁 교수는 조선 최고의 개혁 정책으로 대동법(大同法)과 함께 신해통공(辛亥通共)을 꼽았다. 광해의 대동법이 불합리한 납세 제도를 뜯어고친 것이라면, 정조의 신해통공은 왜곡된 상업 질서를 바로잡으려는 것이었다. 쉽게말해 누구나 자유롭게 장사를 할 수 있도록 한 게 신해통공이었다. 신해는 신해년, 즉 정조 15년인 1791년을 말한다. 대동법이 공물(貢物, 특산물)을 쌀로 통일하여 바치게 한 것과 마찬가지로, 장사의 문턱을 없앴을 뿐(?)인 신해통공이 뭐 그리 대단하냐고 되물을 수 있다. 모르는 소리다
얼마 전 원희룡 지사가 내놓은 송악산 선언을 놓고 말이 많다. 대권을 향한 존재감 살리기라는 비판과 함께 구체적 실행계획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잇단 난개발로 옛 모습을 잃어가는 제주를 생각할 때 송악산 선언이 제주 사회를 확 바꾸어놓은 큰 전환점이 된다면 환영할만한 일이다. 그러기엔 선언이 선언에만 그치지 말아야 한다.원지사가 내세운 또 다른 선언 가운데 하나는 사회적경제 활성화다. 원지사는 지난 지방선거 때 사회적경제 선도도시 제주를 36호 공약으로 밝혔다. 스스로를 사회적경제 시이오(ceo)에 가깝다고 자부하는 원
“시련 끝에 맞이할 더 큰 영광을 바라보겠다”함축적이었다. 엊그제 취임한 고은숙 제주관광공사 사장의 이 한마디는 여러 의미를 내포했다. 문장의 앞 부분은 공사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이보다 더 나빠질까 싶을 만큼 공사는 지금 호된 시련을 겪고 있다. 그렇다고 앞날이 보이는 것도 아니다. 솔직히 현재 시점에서 ‘더 큰 영광’은 언감생심이다. 그가 말한 대로 공사의 존재 이유를 따져봤다. 관광산업 육성, 지역경제 발전, 주민복리 증진. 공사 누리집엔 ‘미션’으로 적혀있다. 2008년 설립 이후 미션을 얼마만큼 수행했는지는 잘 모
원희룡 지사 다웠다. 누구보다 언론의 생리를 잘 알고, 이벤트에도 능한 그였다.‘전국적으로 뜨고 싶은’ 원 지사로서는 극적인 효과를 노렸을 것이다. 날씨까지 받쳐줬다. 화창한 일요일 오전 송악산 앞. 전쟁과 학살, 개발의 상흔이 중첩돼있는 송악산은, 난개발에 마침표를 찍겠다는 선언 장소로는 제격이었다. 송악산이 어딘가. 1980년대말 군사기지 건설 논란은 굳이 돌이킬 필요도 없다. 개발의 역사로만 봐도 30년 가까이 광풍이 잘 날 없던 대표적인 핫 플레이스였다. 바로 이곳에서 다음세대를 위해 청정 제주를 지키겠다고 약속했으니 언론의
유럽이나 미국의 주거지역에서는 웬만하면 고층 아파트를 짓지 않는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이른바 ‘고층 아파트의 사회적 해악’을 다룬 글이다. 고층 아파트가 저층 아파트 보다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효과가 훨씬 크다는 게 글의 요지 중 하나였다. 즉 고층 거주자들이 ‘상대적으로’ 이웃과의 교류가 적고, 남을 도와주려는 의지나 빈도도 적다는 것이다. 입증된 팩트임을 강조하려 함인지 선진국의 연구 결과를 인용하기도 했지만, 정서적인 공감에 머문 걸 보면 식견 부족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보다는 돈을 좇는 사업자들의 욕망을 언급한 대목
“백두에서 한라까지”에서 볼 수 있듯이 한라산은 백두산과 함께 한민족의 영역 범위를 상징한다. 그리고 한라산은 ‘제주!’하면 떠오르는 제주이미지 상징 1위이자, 가장 대표적 제주문화상징이다. 한라산은 제주사람들에게 정복하기 위한 산이라기보다는 언젠가는 반드시 돌아가고픈 영원한 모성이며 그리운 고향이다.한라산은 제주민간신앙의 본향당신 할로산또(한라산신)의 발상지이자, 제주를 창조한 설문대할망 전설, 신선 사상의 불로초와 백록 전설, 불교의 오백나한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한라산은 보는 위치와 시간에 따라 천태만상의 얼굴을 가지기 때문
“고향이 그리워도 못 가는 신세~”처음 만나 어색해 할 법 한데도, 동향의 취재진을 반갑게 맞아주며 구슬프게 을 부르던 할머니의 소원 한 가지는 이뤄졌다. 고향 제주의 4.3평화공원에 한번 가보는 게 할머니의 꿈이었다.[제주의소리]가 창간 15주년 특집으로 기획한 ‘생존수형인 4.3을 말하다’ 인터뷰를 위해 경기도 안양에 사는 할머니를 찾아간 게 지난해 3월 중순, 할머니가 4.3공원을 방문한 건 그해 4월3일이다. 보도 덕분인지 할머니에게 초청장이 날아든 것이다. 4.3생존수형인이었던 변연옥 할머니(95). 그
모든 사람은 법 앞에 정말로 평등한 것일까칼레의 시민‘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는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의미한다. 본래 19세기 왕정시대 프랑스에서 유래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불과 20년 전만해도 우리에게 생소했지만 지금은 우리 표준어사전에 공식적으로 오를 정도로 친숙한 말이 됐다. 그만큼 민주화가 정착되면서 사회상류층에 대한 민초들의 사회적 위치와 마음가짐이 달라졌음을 반영하는 지표인 것이다. 하지만 본래 엄격한 신분제의 산물이며 귀족문화를 미화하는데 사용됐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공짜가 묘미는 있을지언정 자칫 감흥을 잃을 수 있다. 다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직접 겪어봐서 안다. 경험에 의하면, 공짜표는 몰입도를 떨어뜨린다. 영화도 그렇고, 공연도 그렇다. 졸음을 쫓으려는 사투의 강도도 달라진다. ‘덤’이라는 내 안의 인식이 마음가짐을 흐트려놓았을 수 있다. 제 값을 치르는 게 당연지사가 된 요즘과는 거리가 있었다. 어느덧 지금은 공짜를 바라면 이상한 사람 취급받는 세상이 되었다. ‘제 값’에는 관객을 위해 애쓴 이들에 대한 예의가 내포되어 있다. 즐기는 입장에서 보면 응당 내야 할 비용이다. 여행도 마찬가지
코로나 19를 물리치려면 결국 백신 밖에 답이 없다고들 한다. 하지만 국내 최고의 생태학자로 꼽히는 최재천 교수의 생각은 다르다. 대한민국 대표 석학 6명이 코로나 19 이후 신 인류의 미래를 논한 에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인류가 그 전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는 최 교수의 통찰이 녹아있다.그에 따르면, 백신은 늘 뒷북을 칠 수 밖에 없다. 바이러스의 창궐 주기는 점점 짧아지고 있다.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를 떠올려보라. 앞으로 또 어떤 바이러스가 인류를 덮칠지 모른다. 그것도 머지않아. 백신의 안전
며칠 후면 코로나 시대에 맞는 첫 추석이다.추석은 민족대이동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큰 명절이고 고향 방문은 의무처럼 됐다. 추석 민족대이동은 산업화가 낳은 현상이다. 1960~1970년대 산업화로 농어촌지역에 살던 많은 젊은이들은 고향을 떠나 서울이나 큰 도시로 떠나 노동자로 살았다. 쉴 틈 없이 일하던 어린 노동자들에게는 떠나온 고향을 갈 수 있는 추석은 꿈에 그리던 날이다.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과 가족들에 대한 각인효과는 머무는 시간보다 오가는 시간이 많았던 시절에도 사람들을 고향으로 이끌었다.하지만 이제 민족대이동이란 말은
과거 학생들은 ‘그저 따르는 존재’였다. 당시 학생은, 엄밀히 말해 인격체가 아니었다. 보다 정확하게는, ‘인격을 갖춘 개체’로 취급받지 못했다. 순순히 따르지 않으면 물리적 고통이 뒤따르기 일쑤였다. 워낙 강압적인 시절이라 정작 학생 자신도 인격체임을 자각하기 어려웠다. 매를 피하려면 고분고분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 그런 건 아니었지만, 부모들은 한술 더 떴다. 심한 경우 자식을 소유물처럼 여겼다. “내 아이 내 맘대로 한다는데 뭔 상관이야” 부모의 표독스러운 항변에는 진심어린 충고도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
101세 현경아 할머니의 마지막 소원은 남편의 시신을 수습하는 일이다. 솔직히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언제 어디서 죽었는지, 그 보다 생사조차 모르기 때문이다. 72년 전 소식이 끊겼다. 4.3의 광풍이 휘몰아친 1948년 11월, 경찰서로 끌려간 게 마지막이었다. 명예회복이 보다 현실적인 희망이다. 재심을 통해 무고한 남편에게 덧씌워진 법적 올가미(국방경비법 위반)를 걷어내는 일이다. 이 또한 녹록지 않다. 일단 재심 청구가 받아들여져야 하고, 정식 재판에서 공소 기각 결정이 나야 한다. 백을 넘긴 할머니에겐 하루하루가 시간과의
자기 진영을 비판할 때는 종종 비판의 칼날이 무뎌진다. 때론 외면하고 때론 덮어버린다. 어느 사안에 대해선 적극적으로 해명하면서 정당화를 시도한다. 진보 진영이 상대 진영을 비판할 때 사용했던 도덕적 언어들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진보 진영은 도덕적 비판에 대해 도덕적 언어로 대응하지 않았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이중 잣대다. 상대에게는 법적 기준보다 높은 도덕적 기준을 들이댔으나, 자신에게는 그러질 못했다. 법을 어기지 않았으니 도덕적 비판을 그만하라고 했다. 말과 행동이 달랐다. 말처럼, 글처럼 행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