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더위. 등을 무겁게 짓누르는 철수(배낭)와 진득하니 차오르는 땀. '알로, 박씨시' 하며 손을 내미는 아이들의 헤진 발. 하지만 슬프거나 힘들지만은 않았다. 어째서일까. 15kg가량이나 되는 무게의 배낭도 그저 기분좋게만 다가왔던 것은. 사랑의 신인 카슈미르의 고향이라서 그런걸까?요즘도 피곤에 절어 힘들다는 생각만 들 때면 아그라의 첫인상을 생각
서귀포시 표선면 제주민속촌박물관. 허름한 막살이 집에 봄이 무르익었다. 세찬 겨울바람을 이겨냈던 초가지붕 위에 햇빛이 내려앉았다. 촘촘히 엮어진 이엉은 지붕위에서 줄을 탄다. 흙으로 쌓아 올린 바람벽, 햇빛과 바람을 막아 주는 풍채도 봄볕에 졸고 있다.봄은 막살이 집 돌담 위로 피어났다. 숭숭 뚫린 돌담 틈새에서 봄바람이 새어 나온다. 지난 겨울 앞마당에
내가 태어난 집은 모슬포(상모리와 하모리로 나눠짐)에서도 하모리 가장 윗동네 일곱 채 가옥이 뚝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모두 고부이씨 종친들끼리 모여 사는 곳이었지요.나의 집에서 바닷가에 가려면 한 참을 걸어서 내려가야 하지요. 어렸을 적 거리감각으로는 꽤나 멀었지요.당시에는 수돗물이 없어서 모슬포 주민들은 모두 '신영물'이란 수원지에서 식수도 얻고 또
▲ 같이 즐기는 장소 함덕 체육관입니다. 이날은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 강충민 봉사: [명사] 국가나 사회 또는 남을 위하여 자신을 돌보지 아니하고 힘을 바쳐 애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더불어 즐길 수 있으면 참 좋은 일입니다. 치열한 삶의 전장에서 벗어나 같이 열중하다 보면 그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틈만 나면 산을 오르고,
붉은 오름 정상 등대에서 바라보는 제주풍광은 자신이 걸어왔던 길을 바라다 볼 수 있다. 바닷길 옆에는 길이 나 있고, 금방이라도 코지를 울려 퍼질 것만 같은 성당이 종소리,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협자연대, 유채꽃방울 터지는 소리가 한꺼번에 들려온다. 선돌과 마주하고 있으면서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는 붉은 화산체, 붉은 오름 정상 방두곶 등대에 서면 열린 세상 속에 서 있는 느낌이다. 바다를 통째로 안고 있는 기분은 바다위에 띄워 놓은 술잔처럼 일출봉이 둥둥 떠 있다.
'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 파리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현재 한국생태경제연구회 회원으로 활동하는 우석훈 성공회대 강사는 '국민경제의 기반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70~80% 이상의 국민들의 삶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릴..
"어 고사리가 많이 있네." 찬장을 정리하다 각시가 말린 고사리를 발견했습니다. 이번 명절 때 차례를 준비하면서 양이 많은 것 같아 덜어 놓은 것을 저도 잊고 있었습니다. 장인어른이 직접 들에서 꺾고 삶아서 잘 말려둔 것이지요.우리 부부 워낙에 둘 다 게을러터진 성격인지라 날을 잡아 찬장과 냉장고를 정리한다 해도 깔끔한 사람의 대충하는 것
▲ 우리집 딸 억지대장 강지운입니다. 코를 잘 흘리는 녀석입니다. ⓒ 강충민 우리 집 아침풍경은 거의 고정되어 있습니다. 새벽 여섯 시 사십 분에 자명종이 울리면 각시와 저는 둘 다 살포시 깹니다. 그러다 서로 눈치를 보며 밍기적거리다 일곱 시가 조금 넘어서야 비로소 이불에서 나옵니다.저는 냉장고에서 냉수를 꺼내 두 컵을 연속 꿀꺽꿀꺽 마신 후 화장실에 가
자, 이제 외돌개에 거의 다 왔다. 외돌개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다. 가장 오래된 관광코스이고, 제주를 찾은 관광객이라면 한번쯤은 들러본 곳이 외돌개다. 그래서 더욱 잘못 알려진 곳이 또한 외돌개이기도 하다. 어느 바닷가 마을의 아낙이 고기잡이배를 타고 나갔다가 풍랑을 맞은 남편을 기다리다가 마침내 돌이 되고 말았다는 바위 하나만 보고서 외돌개를 봤다고
곁에 와있는 줄만 알았던 봄이 주춤거리는 사이, 삼월도 벌써 중순을 넘어가고 있다. 음력으로는 아직 정월이니 겨우살이를 나는 게 지극히 당연한데도, 봄에 대한 기다림은 간절하기만 하다. 소규모 농촌학교의 새 학기는 봄뜻을 앗아가는 꽃샘추위만큼이나 오슬오슬하고 황량한 몸살 증후군을 앓고 있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5학급이었는데 올해 들어
봄비가 내렸다. 봄이 왔지만 개운치 않았던 맘이 풀려버렸다. 진입로에 심어놓은 잔디가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해 질퍽거려 불편하다. 그래도 개운하다. 진정한 봄은 역시 봄비로부터 시작된다. 오늘밤 수많은 새싹들이 세상으로 나갈 준비를 하겠지. 가만히 눈감으면 생명의 싹들이 기운차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동서남북이 온통 생명의 소리로 가득 차 있다. 인간들도
▲ 알바매기 오름정상에 핀 봄의 화신. ⓒ 김강임 남녘의 봄은 어디만큼 왔을까? 사람마다 봄을 맞는 느낌은 다르지만 제주의 봄은 '화산의 터'에서부터 시작된다. 경칩이 지난 3월 11일, 해송 가득한 '화산의 터'로 봄을 찾아 나섰다. 감귤원과 목장이 이어진 들판에는 신록이 묻어났다. 겨우내 눈 속에 묻혔던 잡초사이로 고개를 내미는 냉이와 쑥도 제법
'길고 길었던' 입학식 기사를 쓰고나서 직장동료나 지인들에게 수십 번 '반복하며' 들었던 아침인사는 이거였습니다."ㅇㅇ은 어떵 학교는 잘 댕겸서?""아이는 요새 어떵햄서?"결론적으로 말씀드려 아이는 학교를 잘 다니고 있습니다.(이 지면 빌려 학교를 '재밌는 곳'으로 만들어주신 선생님, 거듭 감사드립니다. 꾸~벅
점심으로 잡채를 만들어 먹었다. 아침에 나온 시금치 반찬을 밑재료 삼아서. 서귀포에서는 '고기 국수'를 먹었다. 제주도 특유의 향토음식 중 하나다. 잔치 때 돼지를 잡고 나면 그 국물에 국수를 넣어서 먹던 풍습에서 유래한 음식이다. 육지 사람들이 들으면 질겁을 한다. 어떻게 돼지고기 국물에 국수를 마느냐고. 그러나 '토종 제주' 사람인 나는 제주에
만약 내 주위의 누군가가 델리에서 가장 ‘인도냄새’ 나는 곳이 어디냐 묻는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자미마스지드 앞의 바자르를 일러주겠다. 말 그대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곳, 덧붙여 거의 인간만큼이나 많은 염소와 소를 만날 수 있는 곳, 하얀 옷을 입고 있는 부잣집 소년과 다 떨어진 누더기로 몸을 싸고 있는 박씨시가 한 데 모여
스페인 산티아고 도보순례는 내게 고향 제주를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피레네’에서는 한라산을, ‘멜리데’에서는 중산간 마을 가시리를, 900킬로미터 여정의 종착지인 ‘피니스테레’에서는 내가 나고 자란 서귀포를 보았다. 피니스테레에서 난 결심했다. 한국에 돌아가면 고향 제주의 속살을 내 두 발로
아직도 아침에 눈을 뜨면, 1월 1일의 내가 생각난다. 2007년의 첫날. 그리고 본격적인 인도여행의 시작. 돈과 여권이 든 힙쌕을 품에 안고 뜬눈으로 밤을 지샌 그 차갑던 새벽이. 누가 인도를 더운 나라라 했던가. 물론 남인도쪽으로 내려가서는 그 말에 뼈저리게 긍정했지만 아직 나는 북인도에 있었다. 북인도의 겨울은 상당히 춥다. 동절기가 짧기 때문에 난방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을 저는 아직도 잘 모르지만 초등학교 입학식 날, 딸아이가 보였던 모습을 이해하기란 정말 힘들었습니다.딸아이의 새 출발을 위해 ‘만사를 제쳐두고’ 입학식에 참석했던 저는 애초의 설렘과 기쁨 그리고 노파심은 안중에도 없고 시종 곤혹스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나중엔 슬슬 부아가 돋기도 했습니다
3월의 시작이다. 영락없는 봄날이다. 한낮에는 조금만 꼼지락거려도 땀이 날 지경이다. 거실에 책장을 만들고 구들방에 연기가 새어나오는 틈을 메우며 하루를 보냈다. 내일은 된장 담을 항아리를 준비해야한다. 봄이 다가올수록 점점 부산스러워지는 건 시골에 사는 이 땅의 모든 농사꾼들의 일상이다.
제주의 소리 측에서 창간 3주년을 맞아 ‘제주의 소리에 바란다’는 요청을 해왔을 때 “어,저저...”라는 말이 부지불식간에 나왔다. 생일을 맞아 덕담 몇 줄 적는 것이야 무에 망설일 일일까마는, 일순간 말더듬이가 됐던 것은 당혹감 때문이다. 나 역시 제주의 소리에 고정적으로 원고와 글을 올리는, 어쩌면 제주의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