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세통Book世通, 제주읽기] (38) 노명우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 고독한 사람들의 사회학』/노대원 문학평론가·제주대 교수 혼자 밥과 술을 즐긴다는 ‘혼밥족’과 ‘혼술족’. 심지어는 광장 촛불집회에 혼자 참여한다는 ‘혼참러’라는 말까지. 이제 혼자 살기 또는 혼자 놀기는 대세인 모양이다. 언어가 한 사회를 반영한다는 논리를 따르자면, 우리 사회는 크게 변화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함께 산다는 것의 의미를 무엇인지 논하는 것이 사회학의 중요한 일이었다면, 이제 사회학마저도 ‘홀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깊이 따져 묻는 ...
[북세통Book世通, 제주읽기] (37) 힐러리 웨인라이트 『국가를 되찾자 - 대중 민주주의의 실험실을 찾아가는 현장 탐사기』/서영표 제주대 교수국가가 없는 삶을 상상하기는 힘들다. 우리들 중 대부분은(결코 전부는 아니다!) 태어날 때부터 어떤 나라의 ‘국민’이었다. 하지만, 아니 바로 그렇기 때문에, 국가가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일상에서 발생하는 무수히 많은 불만과 갈등이 국가 때문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의 성격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 놀라움은 질문을 던지지...
[북세통Book世通, 제주읽기] (36) 혜강 최한기 『기학(氣學)』/김준기 제주도립미술관장 우주가 문제다. 이제 우주는 비합리적인 기복과 주술의 표상으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정말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나서서 도와준다."는 말 때문이다. 이 문장에는 우주를 기복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주술적 심리가 담겨있다. 개탄스럽다. 우주란 그런 게 아니다. 인간 개인의 욕망이나 염원과 우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우주는 우리를 도와주기 위해서 나거는 인격신의 지위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주(宇宙)는 존재하는 모든 것의 ...
[북세통Book世通, 제주읽기] (35) 지그문트 프로이트 『종교의 기원』/이유선 교수 1. 샤머니즘의 부활 언젠가 전철을 타기 위해 전철역 입구를 들어서는 순간 어떤 중년 남성이 앞에서 다가와서 내게 뜬금없는 말을 던졌다. 정확한 문장은 생각나지 않지만 대략 “선생님은 남다른 기운이 있으시고 복이 넘치는 인상이네요.” 정도의 말이었다. 그 말이 너무나도 진실하게 느껴져서 잠시 시간을 내어 함께 이야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으나 약속 시간이 촉박해서 그렇게 하지 못했다. 내가 그렇게 인상이 훌륭한가 하는 우쭐한 느낌은 나중에 아...
[북세통Book世通, 제주읽기] (34) 정진국 『유럽의 책마을을 가다』/고영자 미학자·번역가 파리에서 8년 동안 체류하다 귀국한지도 조금 있으면 벌써 10년이 된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내가 살던 파리 16구 빠시(Passy) 동네는 여전할까? 이 동네는 중세 때 포도밭 풍경이 펼쳐지던 수도원 마을이었다. 혁명 후 귀족의 삶을 모방해서 부유한 부르주와 계급들이 차츰 몰려들면서 부촌으로 성장했다. 1860년 파리시에 합병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지역과 관련한 사건과 인물들의 이름을 딴 무수한 도로명만 보아도 이...
[북세통Book世通, 제주읽기] (33) 헤르만 크노플라허 『자동차 바이러스』 그 해악과 파괴의 역사 뜬금없는 생각하나가 머리를 스친다. 골목에 대한 기억. 어린 시절을 보냈던 서울 외곽의 동네는 전국의 모든 도시의 변두리처럼 골목들로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 좁다랗고 구불구불한 골목에는 모든 것이 있었다. 엄마들의 친목모임 장소였고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그렇게 좁은 공간이 야구장이 되기도 했고 축구장이 되기도 했으며 돌멩이 세워놓고 쓰러트리는 ‘원시적인’ 놀이의 장소이기도 했다. 골목 근처 맨땅 위에 돌조각이나 나뭇가지로 ...
[북세통Book世通, 제주읽기] (32) 정세랑 『보건교사 안은영』/장이지 시인·제주대 국문과 교수 오쓰카 에이지(大冢英志)는 일본 소설사를 ‘자연주의적 리얼리즘’과 ‘만화 애니메이션적 리얼리즘’으로 대별하여 설명하는 독자적 시각으로 알려져 있다. 이 용어법은 다소 편의주의적인 것으로 기존의 문예사조사적 지식과는 배치되는 면이 있다. 단순하게 말해도 된다면, 전자는 ‘현실’을 재현하는 수법이고 후자는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재현하는 수법이라고 할 수 있다. 사소설(私小說)을 중심으로 한 본격소설이 대체로 전자에 대응되는 것이라...
[북세통Book世通, 제주읽기] (31) 존 롤즈 『정의론』/이유선 서울대 기초교육원 교수성실하게 살다보면 언젠가는 인간다운 삶을 살 줄 알았다. 비록 상아탑의 유령 취급당하는 시간강사로 떠돌면서 살아온 삶이지만 강단에서는 늘 학생들에게 다른 사람을 사람으로 대할 것을 요구했다. 다른 사람은 네가 이겨야 할 경쟁상대가 아니라고, 너의 이익을 위해서 희생시켜도 좋은 수단이 아니라고, 네가 함부로 무시하거나 경멸해도 되는 대상이 아니라고, 그리고 그 사람의 고통이 너의 삶과 무관한 것이 아니라고. 그러나 그 학생들이 그와 같은 가...
[북세통Book世通, 제주읽기] (30) 이소마에 준이치 『상실과 노스탤지어』 /고영자 박사 지난 해 영화 이래, 올해는 , , , , 등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 잇달아 개봉되어 극장가를 달구고 있다. 이들 영화는 동일 시대를 배경으로 했음에도 각기 다른 지점에서 각양각색의 인물과 이야기들로 꾸며져 보는 이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역사(내셔널 히스토리)라는 것이 국민 또는 국가의 이름으로 과거에 대한 공공의 기억을 구축하는 것이라면, 예술로서 ...
[북세통Book世通, 제주읽기] (29) 벨 훅스 『행복한 페미니즘』 서영표 제주대 교수 벨 훅스의 말처럼 페미니즘은 흔히 ‘남자들이 가진 것을 갖고 싶어 하는 여자들’을 상징한다. 페미니즘의 핵심은 ‘남성’과 동등한 지위와 대우를 원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페미니즘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 비판정신을 버리고, 그리고 수많은 자매들의 처지를 무시한 채 ‘남성들의 세상’에서 경력을 쌓고 특권을 누리는 소수의 여성들에게는 그럴 수도 있겠다. 여성해방의 전사처럼 말하지만 여성의 얼굴을 한 남성성의 변종을 만들어 내는 잘 나가는 여성들에게...
[북세통Book世通, 제주읽기] (28) 한수산 『군함도』 /장이지 시인·제주대 국문과 교수 한수산의 『군함도』는 그 띠지에서 ‘역사소설’을 표방하고 있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일제강점기의 징용 문제나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와 같은 역사적 사실을 그 중심에 두고 있지만, 어떤 역사적 위인을 중심으로 서사를 전개하고 있지는 않다. 그는 역사적 환원론에 의거하여 운명론을 늘어놓지도, 계보학적 방법에 기대어 ‘또 다른 역사의 가능성’을 그리지도 않는다. 그는 미처 역사가 다루지 못한 것, 역사에서 고의로 누락되었거나 지워진 것을 고...
[북세통Book世通, 제주읽기] (27) 김현경 『사람, 장소, 환대』 /이유선 서울대 기초교육원 교수 1. 집 없는 설움 스트레스가 쌓였다고 생각하면 관악산 꼭대기에 올라가곤 한다. 그런데 요즘은 관악산에서 보는 서울의 풍경 때문에 더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관악산 정상에서 보는 서울은 온통 아파트밖에 없다. 전세 계약 만기일이 다가오니 ‘저 많은 아파트 가운데 내가 살 집 한 채가 없다니’하는 한탄이 저절로 나오는 것이다. 김현경 씨의 독창적이고 재기 발랄하면서도 묵직한 책에 대한 이야기를...
[북세통Book世通, 제주읽기] (26) 래리 쉬너 『예술의 탄생』 고영자 미학자·번역가 아니 왠 ‘상상의 박물관’? 거기다 또 난데없이 ‘문화의 슈퍼마켓’은? 서평 제목치곤 왠지 고약하고 불친절해 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마침내 그리고 감히 이런 제목을 달고 글을 시작해 본다. 이번에 소개할 래리 쉬너의《예술의 탄생》(원서: 2001년/번역서:2007년)의 경우는 그 이야기보따리를 푸는 데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다. 사실, 올해 본지에 문을 연 ‘Book世通’ 서평 쓰기 제안을 수락한 후, 그렇다면 ‘나’라면...
[북세통Book世通, 제주읽기] (25) 팀 잭슨 『성장 없는 번영』 /서영표 제주대 교수 ‘바닥을 쳤다’는 표현이 있다. 더 이상 나빠질 수 없으니 이제 나아질 것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개인적으로 한국사회가 ‘바닥을 쳤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나빠질 수 없는 상태에 도달했다는 진단과 함께, 이제는 뭔가 변해야 한다는 희망이 섞인 생각이다. 하지만 주식시장이나 외환시장, 또는 프로 스포츠 팀의 성적과는 달리 한 사회의 상태가 한계를 지나 바닥에 부딪힌다고 해서 더 나은 상태로 나갈 것이라는 보장 따위는 없다. ‘위기’는 개...
[북세통Book世通, 제주읽기] (24) 1. 불안한 현대 문명 20세기 초에 몇몇 철학자들은 과학기술의 발달에 토대를 둔 현대 문명이 유토피아를 건설하기보다는 디스토피아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우려했다. 니체는 신이라는 환상을 상실한 현대의 대중이 ‘원한’ 감정에 기초한 공동체를 만들어 냄으로써 공멸할 수 있다고 걱정했고, 하이데거는 목표지점을 알 수 없는 방향으로 인류를 닦달하는 과학기술 문명이 결국 우리 모두를 고향을 잃어버리고 부유하는 덧없는 존재로 만들지 않을까 우려했다.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대량학살 무기를 경험한 지...
[북세통Book世通, 제주읽기] (23) 우에노 치즈코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장이지 시인 우리는 ‘여성 혐오(女性嫌惡) 사회’에 살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이것은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문제로 여겨진다. 남성들이 여성을 멸시해왔다는 것은 경험에 비추어 보더라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여성의 자기혐오에 대해서도 우리는 대체로 알고 있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하는 말이 널리 통용되고 있는 것만 보아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여성 혐오’는 자주 개인의 인성 문제로 환원되곤 한다. 그것이 결코 ...
[북세통Book世通, 제주읽기] (22) 송정규 『해외문견록』/고영자 미학자·번역가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문득 떠오른다. 가령, 우리가 말하는 ‘옛 기록’만 해도 그렇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적잖은 옛 기록들이 다양한 종류의 도서관·박물관 서고에서 먼지를 뒤집어 쓴 채 틀어 박혀 몇 십 년 아니 몇 백 년 동안 잠자고 있다. 말 그대로 ‘구슬’은 ‘서말’이지만 ‘제대로 꿰지 못해’ 보배에 이르지 못한 기록들이 부지기수다. 걔 중에는 한때 어느 특정 부족, 민족, 국가, 지방의 문화 전반을 선도하는 데 기여...
[북세통Book世通, 제주읽기] (21) 오언 존스(Owen Jones) 『차브: 영국식 잉여 유발사건』을 통해 본 브렉시트 /서영표 제주대 사회학과 교수 chav의 사전적 의미는 “아주 저급한 취향과 패션을 즐기는 일탈 청소년을 이르는 말, 또는 그런 청소년의 문화”다. 하지만 오언 존스의 책 『차브』에서는 노동계급을 경멸적으로 지칭하는 말이다. 1950년대 많은 사람들의 소망이었고, 1960년대는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자랑이었던 공공임대주택(council house)에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부끄러워해야 하며, 실업과 ...
[북세통Book世通, 제주읽기] (20) P.A 크로포트킨 『만물은 서로 돕는다』 /박경훈 화백 들어가며 2005년 이 책 《만물은 서로 돕는다》(원제 Mutual Aid: A Factor of Evolution, 상호부조: 진화의 요인/이후 상호부조론으로 표기)초판이 나왔을 때 필자는 신선한 충격과 감동을 받은 바 있다. 그것은 필자만의 경험은 아닐 터이다. 왜냐하면 소위 우리가 진화론하면 떠오르는 몇몇 키워드들이 머릿속에서 어깃장을 놓는다. 흔히 교과서에서 배운 기억으로는 다윈의 진화론하면 자연선택, 도태, 적자생존, 상호...
[북세통Book世通, 제주읽기] (19) 나카자와 신이치(中澤新一) 『대칭성인류학』 나카자와 신이치(中澤新一)는 아사다 아키라(淺田彰)와 함께 일본 뉴아카데미즘을 대표하는 철학자다. 들뢰즈, 크리스테바, 데리다 등 유럽의 후기 구조주의의 흐름을 이어받으면서도, 그는 그것을 인류학과 접목함으로써 새로운 논의를 펼쳐오고 있다. 『대칭성 인류학』은 그의 ‘비교종교론’ 강의록을 토대로 한 총 다섯 권의 ‘카이에 소바주(Cahier Sauvage)’ 시리즈의 첫 번째 책으로, 시리즈의 총론에 해당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에서 나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