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57) 악셀 호네트 『사회주의 재발명』 /서영표 교수 악셀 호네트는 세계적 명성을 가진 사회철학자이다. 프랑크푸르트학파(Frankfurt School)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비판이론’의 공식적 계승자이기도 하다. 선배인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의 의사소통합리성(우리가 간혹 사용하는 숙의 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가 이 개념으로부터 파생된 것이다.) 이론을 계승하면서도 자신만의 독특한 인정(recognition)이론을 발전시켜 현시대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철...
[BOOK世通, 제주 읽기] (56) 앨리스 플래허티 『하이퍼그라피아』/노대원 교수 “창조적인 작가란 다름 아닌 글쓰기에 문제를 겪는 사람이다.” 이 책은 20세기의 위대한 문학평론가인 롤랑 바르트의 문장을 제사(題詞)로 삼아 출발하고 있다. 나는 여기에 “작가는 다른 사람들보다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사람이다.”는 소설가 토마스 만의 말도 덧붙이고 싶다. 괴상한 말로 들리지만 많은 작가들이 공감할 만한 문장들이다. 물론 작가들은 글쓰기의 인지적이고 기술적인 측면에서 보통의 다른 이들보다 훨씬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
[BOOK世通, 제주 읽기] (55) 위르겐 하버마스 『공론장의 구조 변동』 모든 인류의 문화가 그러하듯 예술 또한 그 자체로 공공적인 기재이다. 문제는 예술의 자율성인데, 그것이 어떤 경로를 통해 자율적인 기재로 자리 잡았는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볼 기회가 그리 많지 않다. 을 통해서 우리는 예술이라는 제도가 어떻게 공공영역으로 자리 잡았는지를 역사적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다. 동시에 ‘부르주아 사회의 한 범주에 관한 연구’라는 부제에서 나타나듯, 근대와 함께 태동한 유럽의 부르주아 사회가 예술이라는 소...
[BOOK世通, 제주 읽기] (54) 윌리엄 셰익스피어 『코리올라누스』 /이유선 교수 대선 토론의 품격 지난 몇 주간 미세먼지, 사드, 박근혜, 경제난 등등의 문제로 거의 녹초가 되다시피한 몸과 마음에 그나마 기운을 불어 넣어 주었던 것은 코미디 프로그램보다 우습고 재미있다는 대선 토론이었다. 우리나라의 미래를 결정할 중요한 토론을 마치 오락 프로그램을 보듯이 즐길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오랜 동안의 촛불 시위가 드디어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게 되었다는 일종의 안도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무능한 대통령은 탄핵되었고, 주변에서 불법...
[BOOK世通, 제주 읽기] (53) 스티븐 핑커 『빈 서판』 /고영자 미학자·번역가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대한민국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과 구속으로 조기대선이 코앞에 다가왔다. 대권주자들 저마다 개혁 진보, 보수 적자, 중도 보수, 애국 보수를 자처하며 나라를 살리겠다는 TV토론과 유세 연설을 접하면서, 이번에도 예외 없이 진보 대 보수 간의 세몰이 선거라는 기시감(데자뷰 현상)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유권자들도 마찬가지로 보수와 진보로 양분된 양상을 띠면서, 자신과 반대 진영에 속하는 세력에게 각각 ‘좌파’ vs...
[BOOK世通, 제주 읽기] (52) 닉 수재니스 『언플래트닝, 생각의 형태』 /노대원 교수 만화책이자 박사학위 논문. 서로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두 가지 분류법이 모두 가능한 책. 닉 수재니스(Nick Sousanis)의 『언플래트닝, 생각의 형태』는 그것만으로도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 책은 수재니스가 컬럼비아대학교에 교육학 박사학위로 제출한 만화 형식의 논문으로, ‘하버드대학이 출간한 최초의 만화책’으로도 알려졌다. 컬럼비아대학교에서도 박사학위 논문으로 만화를 심사하여 통과한 것은 최초라고 하니 이 책의 독특한 위치를...
[BOOK世通, 제주 읽기] (51) 조정환 『예술인간의 탄생』/김준기 제주도립미술관장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1959)에서 노동과 작업, 그리고 행위라는 세 가지 활동 형식에 관한 현상학적 분석을 제시했다. 노동은 인간이 생명체로서의 인간이 살아가기 위한 기본 조건이다. 작업은 생존을 위한 인간 활동 이상의 인공세계를 제작하는 활동이다. 행위는 개인으로서의 인간을 창출하는 존재기반이다. 인간의 조건을 다시 사유한 아렌트는 1)재화와 용역을 생산하는 노동과 2)물질형식에 기반을 둔 예술창작으로서의 작업, 3)...
[[BOOK世通, 제주읽기] (50) 아즈마 히로키 『일반의지 2.0 루소, 프로이트, 구글』 /이유선 교수 1. 두 개의 광장 대통령 탄핵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을 직접 경험하는 과정은 정의가 이 땅에 실현될 수도 있으리라는 희망에 흥분되면서도 무엇인가가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는 듯 답답함을 느끼게 하는 힘든 시간들이었다. 그 답답함은 검찰조사에도 응하지 않고 기자들의 질문도 받지 않았던 대통령이 이름 없는 인터넷 TV와 인터뷰를 하면서 꺼내놓은 말들 때문인지도 모른다. 촛불집회의 두 배에 달하는 태극기 집회가 열리고 있고, 그 ...
[BOOK世通, 제주읽기] (49) 오스틴 해링턴 『예술과 사회 이론』 독일의 소설가 토마스 만의 중편소설 (1903년)의 줄거리가 새삼 눈길을 끈다. 소설 속 주인공 토니오는 북독일적 이성과 도덕관을 가진 아버지와, 남국적인 열정과 예술적 재능을 가진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토마스 만의 분신들 중 하나다. 토니오는 가업을 잇기를 바라는 부모 밑에서 자라지만 부모의 기대를 거스르고 장차 예술가가 되려는 청년이다. 토니오는 자기 자신의 진정한 ‘소명’, 천직으로 생각한 예술을 그의 가족이 당연시한 천직인 사업과 화해...
[BOOK世通, 제주읽기] (48) 장훈교 『밀양 전쟁 』 /서영표 제주대 교수 우리 사회는 공감능력을 상실하고 있다. 공감은커녕 나의 일이 아니면 이해하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이 다반사다. ‘나 살기도 바빠 죽겠는데 남의 일 걱정 해 줄 시간이 어디 있어’ 정도의 일상의 언어가 아니라 경쟁력과 효율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사회에서 타자와의 공감 노력을 비용으로 계산하는 ‘공식화’된 교육의 효과라는 점에서 심각하다. 자식을 잃은 아버지가 진상을 규명해 달라고 단식을 하고 있는 자리에서 ‘폭식투쟁’이라는 이름의 조롱을 서슴지 ...
[BOOK世通, 제주읽기] (47) 조너선 갓셜 『스토리텔링 애니멀』/ 노대원 교수 우리는 문학에 대해 문학적으로, 또는 인문학적으로 말하는 것에 익숙하다. 그러면 문학과 이야기를 과학적으로 말하는 것은 어떨까? 이를테면, 우리가 이야기를 즐기는 ‘과학적’ 이유는 뭘까? 답은커녕 이런 질문조차 생소하지만 이제는 이런 질문에 성실한 답변을 제출하는 책이 나오기 시작했다. 『스토리텔링 애니멀』의 저자, 조너선 갓셜은 젊은 문학 연구자답게 도전적으로 문학과 과학, 또는 과학과 예술의 접점에 천착해왔다고 한다. 이 책의 제목이 ‘스토...
[BOOK世通, 제주읽기] (46) / 김준기 제주도립미술관 관장 예술의 근저에는 감성이라는 소통 기재가 존재한다. 따라서 예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감성의 메커니즘을 체계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 감성이라는 것이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것이라서 체계적인 인식의 대상으로 삼기에 적절한 것인지 조차도 망설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근대 초기부터 이 분야에 대한 연구가 치열하게 존재해왔고 그것으로부터 예술이라는 체제가 공고히 자리 잡을 수 있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감성에 관한 체계적연 연구의 장구한 역사 속에 단...
[BOOK世通, 제주읽기] (45) 이사야 벌린 『이사야 벌린의 자유론』/이유선 교수 1.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진리가 승리할 것이고, 정의는 늘 진리의 편에 선 자의 손을 들어줄 것이라는 믿음은 매우 강력한 것이어서 부정하기 어렵다. 그런 믿음이 아무런 근거도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면 몰매 맞기 십상이다. 그러나 명백한 진리를 인정하지 않고 부정의에 편들고 있다고 보여지는 사람들이 그와 같은 주장을 내세우면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믿는 것은 진리가 아니며 거짓 선동에 휘둘...
[BOOK世通, 제주읽기] (44)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ere) 『미학 안의 불편함』/고영자 미학자·번역가 제주도정은 지난해 8월 "동아시아의 지중해라는 지정학적 여건을 활용해 제주를 '문화예술의 섬'으로 조성하겠다"며 팔을 걷어붙였다. 이를 위해 ‘세계섬문화축제’의 부활이라든가 국제예술축제의 한 형태인 ‘제주비엔날레’와 같은 메가급 국제행사의 구상과 계획을 내놓으면서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는 확실히 최근 제주사회 내 ‘문화·예술’ 담론 형성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기폭제가 되고 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
[BOOK世通, 제주읽기] (43) 에르네스토 라클라우 , 샹탈 무페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 』/서영표 교수 아르헨티나 출신의 정치학자 에르네스토 라클라우(Ernesto Laclau)와 벨기에 태생의 정치이론가 샹탈 무페(Chantal Mouffe)가 함께 저술한 『헤게모니와 사회주의전략』의 초판이 출간된 것은 1985년이었다. 그 때 두 사람 모두 영국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이 책은 출간 직후부터 뜨거운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노동계급의 중심성과 경제의 우위를 부정하는 도발적인 수정은 불쾌한 것이...
[BOOK世通 제주읽기] 필진들이 추천하는 '2017, 이 책' 오늘 대한민국은 아프다. 제주도 역시 신음한다. 부패와 분열, 반목과 파괴로 병들어가고 있다. 정의와 치유, 소통과 상생으로 회복하는 '힘'이 필요하다. 정유년(丁酉年) 새날에 '책 읽기'를 권하는 이유다.
[BOOK世通, 제주읽기] (42) 브라이언 보이드 『이야기의 기원』 /노대원 교수 세상엔 온갖 이야기들이 넘쳐 난다. 재미난 소설과 영화, 드라마와 웹툰은 오늘도 계속 창작되고 있다. 독자와 관객들은 이야기 없이는 인생도 없다는 듯이 이야기에 매혹된다. 물론 영화나 소설에만 이야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짧은 광고 영상이나 뉴스에도 자세히 살펴보면 크고 작은 이야기가 있고, 무릎 위에 손자들을 앉힌 할머니, 할아버지의 소박한 옛날이야기도 있는 법이다. 그러고 보니 세상에는 정말 이야기가 없는 곳이 없다. 요즘에는 교육에도 이야기가 필요하다며...
[북세통Book世通, 제주읽기] (41) 제럴드 에델만 『세컨드 네이처』/김준기 관장 인문/사회과학이 대세였던 1980년대에 필자에게 유물론은 세계의 근본문제를 좌우하는 황금잣대였다. 그 유물론이 철학적 토대에서 세워진 매우 관념적인 것이라는 점을 깨닫는 데는 20여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돌이켜보면 근대 이후의 인문/사회과학은 자연과학에 큰 빚을 지면서 진화해왔다. 프로이트가 정신분석을 토대로 무의식이라는 문제를 얘기했을 때, 그것은 세기를 뒤흔든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이러한 사건의 근저에는 진화론이 있었다. 다윈의 진화론이야...
[북세통Book世通, 제주읽기] (40) 리처드 도킨스 『만들어진 신』 1. 광화문에서 오랜만에 광화문에 나가 보았다. 학교 앞에서 탄 버스는 마치 MT라도 가는 듯 들뜬 학생들로 가득했다. 버스가 서울역까지만 운행했기 때문에 서울역부터 걷기로 했다. 얼마나 거리에 있게 될지 몰라서 지하 식당가에 들어가 우동 한 그릇으로 요기를 했다. 거리로 다시 나오니 다양한 깃발을 든 사람들과 마치 산책이라도 나온 것처럼 즐겁게 웃으며 오가는 사람들로 붐볐다. 30년 전에 군사독재 타도를 외치며 스크럼을 짜고 내달렸던 비장한 거리...
[북세통Book世通, 제주읽기] (39) 매튜 배틀스 『도서관, 그 소란스러운 역사』/고영자 박사 일찍이 고전 중 고전의 반열에 오른 만큼 오래된 미국 영화 (아더 힐러 감독, 1970년)를 기억하시는가? 물론 그 영화가 개봉될 당시 필자는 갓난아기였지만, 이 영화가 한국에 들어와 극장가를 달구고 그 주제곡인 ‘눈싸움(Snow Frolic)’이 인기절정에 달했던 것은 나의 학창시절이었다. 그 영화 속엔 명장면도 많지만 개인적으로는 주인공 올리버(라이언 오닐 분)가 제니(알리 맥르로우 분)를 처음 만나게 되는 하버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