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67) 천정환 『대중지성의 시대』 /서영표 교수 나는 습관적으로 책을 산다. 구입한 책의 20-30 퍼센트만 읽었으면 세계적 석학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는 당치 않은 생각을 할 때가 있을 정도다. 천정환의 『대중지성의 시대』도 그렇게 습관적으로 ‘배달 된’ 수많은 책 들 중의 한권이었던 것 같다. 언제 왜 샀는지도 기억조차 나지 않으니 말이다. 이 책이 출간된 것이 2008년 말이니, 아마도 2008년 봄을 뜨겁게 달구었던 촛불시위가 촉발한 ‘집단지성’ 또는 ‘대중지성’에 대한 관심에 저자에 대한 ...
[BOOK世通, 제주 읽기] (66) 스티븐 다얀 『우리는 꼬리치기 위해 탄생했다』 /노대원 교수 고백하자면, 이 책은 충동적으로 서점에서 구입했다. 나는 보통 관심사를 정해두고 지속적으로 책 정보를 수집한 뒤 목록에 따라 중요 순위에 따라 책을 구입하거나 대출하곤 한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책들과 조금은 다른 셈이다. 물론 전혀 관심사에 없었다고 말할 수 없다. 요즘 관심이 부쩍 많아진 심리학 책들을 둘러보기 위해 심리학 코너에서 이 책을 발견했으니. 제목만 봐서는 유혹과 짝짓기(mating)의 심리학을 다룬 책으로 보였다...
[BOOK世通, 제주 읽기] (65) 수잔 레이시 『새로운 장르 공공미술 : 지형그리기』/김준기 관장 한국사회에서 정치적 민주주의 논의를 넘어 사회적 공공성 논의가 본격화한 지 십 수 년이 지나는 동안 미술계에서도 공공미술을 둘러싼 다차원의 담론과 실천이 이어졌다. 그것은 예술의 공공성을 다시 묻는 것이기도 하거니와 우리사회의 공공성 자체에 관한 새로운 질문과 대답이기도 했다. 2000년대에 접어들어 미술의 공공성 논의가 본격화할 무렵에 이 책 는 매우 큰 영향을 끼쳤다. 그것은 1980년...
[BOOK世通, 제주 읽기] (64) 허버트 마르쿠제 『에로스와 문명』 / 이유선 교수 허버트 마르쿠제 『에로스와 문명』, 김인환 역, 나남, 2009 1. 사랑이 사라진 시대 사랑에 관한 동서양의 고전에 등장하는 주인공들, 로미오와 줄리엣이나 이몽룡과 성춘향의 나이는 대략 16세 전후이다. 요즘으로 치면 고등학교 1학년 정도 되는 셈이다. 시쳇말로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어린아이들이 목숨을 건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요즘의 부모들은 아마도 자기 자식이 그런 사랑을 한다고 하면, 도대체 대학은 어떻게 가려고 그런 엉뚱한 짓이나 ...
[BOOK世通, 제주 읽기] (63) 니콜 아브릴 『얼굴의 역사』 /고영자 박사 우리말 ‘얼굴’은 한자로 顔(안) 또는 面(면), 또는 이 둘의 합성어 안면(顔面)이라 한다. 여기서 面은 목과 면상(생김새)을 본뜬 글자이고, 頁(머리 혈)이 들어간 顔은 얼굴 중에서도 특히 머리를 강조한 말이다. 頁은 갑골문에서 사람의 머리를 형상적으로 그린 것에서 유래한다. 얼굴을 구성하는 요소 중 頁이 들어간 글자로는 頭(머리 두), 頂(정수리 정), 頰(뺨 협), 鬚(수염 수) 등이 있다. 한편, 머리(頁)와 관련된 속성의 글자로는 頌(기...
[BOOK世通, 제주 읽기] (62) 김명희 『통합적 인간과학의 가능성』 /서영표 교수 오늘 소개할 책은 두께와 내용에서 독자를 압도한다. 저자의 박사학위 논문을 보완하여 책으로 출간하였다는 것만으로 쉽게 접근하기 어렵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학위논문이 요구하는 건조한 형식과 촘촘한 인용 표시만으로도 책은 무거워질 수밖에 없는데, 여기에 저자가 엄청난 양의 독서의 결과를 벽돌 쌓듯 차곡이 쌓아 놓았으니 본문만 543쪽에 분량만으로도 웬만한 용기 없이는 쉽게 책을 열지 못한다. 그래서 이렇게 ‘대중적이지 못한’ 책을 전문연구...
[BOOK世通, 제주 읽기] (61) 와시다 키요카즈 『듣기의 철학』 오래 전에 철학자 도올 김용옥 선생이 TV에 나와 강연을 하면서 그랬다. 철학자가 많아서는 안 된다고. 철학자는 너무 말이 많다고. 말 많은 철학자들이 많아져서는 곤란하다는, 말 많은 철학자의 말. 그 말이 맞을까? 질문에 답하기 전에, 다시 묻자. 철학자는 정말 말 많은 사람인가? 우리는 대개 철학자란 현명하고 지혜로운 말을 잘 하는 사람이라고 알고 있다. 적어도 철학자라면 범인들이 알지 못하는 난해한 개념들의 언어를, 우리와 무언가 다른 언어를 유창하게 ...
[BOOK世通, 제주 읽기] (60) 승현준 『커넥톰, 뇌의 지도』 /김준기 관장 알파고는 커제를 이긴 후 은퇴했다. 이로써 현생 인류 가운데 알파고를 한번 이겨본 사람은 이세돌이 유일하다. 하지만 그도 단 한 번의 예외였을 뿐, 같은 일이 다시 벌어질 가능성은 매우 낮다. 이제 인간은 바둑 게임에서 컴퓨터를 이길 가능성이 사라졌다고 보는 게 맞다. 그렇다고 해서 인류에게서 바둑이 차지하는 위상이 변화한 것일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인간은 인간대로 자신의 가진 뇌의 용량을 사용해서 인간들끼리 즐기면 그것으로 충분히 즐거운...
[BOOK世通, 제주 읽기] (59) 미셸 푸코 『감시와 처벌』 / 이유선 교수 1. 청년들의 고통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지 대략 한 달이 지났다. 청년 일자리 문제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는 확고해 보인다. 대통령 나름대로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이 보여 다행스러운 생각이 든다. 대한민국의 모든 청년들을 중동으로 보내자며 해맑게 미소 지었던 전 대통령 밑에서 오랜 세월을 인내하며 견디어 온 청년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자신들에게 숨 쉴만한 공간을 만들어 주길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공공일자리 몇 ...
[BOOK世通, 제주 읽기] (58) 자크 아탈리 『등대』/고영자 미학자·번역가 사람이 산다는 것은,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는 과정일 것이다. 너와 나 누구랄 것도 없이 타인의 운명이나 처지에 깊은 관심과 더불어 때로는 연민과 동정을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리라. 어려서는 가족이나 이웃, 친구와 같은 물리적으로 가까운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던 것이, 차차 성장하면서부터는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사람에 대한 관심과 공감의 스펙트럼이 넓고도 깊어진다. 거기다 그들이 동서고금을 막론하여 자신의 취향이나 추구하는 목...
[BOOK世通, 제주 읽기] (57) 악셀 호네트 『사회주의 재발명』 /서영표 교수 악셀 호네트는 세계적 명성을 가진 사회철학자이다. 프랑크푸르트학파(Frankfurt School)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비판이론’의 공식적 계승자이기도 하다. 선배인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의 의사소통합리성(우리가 간혹 사용하는 숙의 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가 이 개념으로부터 파생된 것이다.) 이론을 계승하면서도 자신만의 독특한 인정(recognition)이론을 발전시켜 현시대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철...
[BOOK世通, 제주 읽기] (56) 앨리스 플래허티 『하이퍼그라피아』/노대원 교수 “창조적인 작가란 다름 아닌 글쓰기에 문제를 겪는 사람이다.” 이 책은 20세기의 위대한 문학평론가인 롤랑 바르트의 문장을 제사(題詞)로 삼아 출발하고 있다. 나는 여기에 “작가는 다른 사람들보다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사람이다.”는 소설가 토마스 만의 말도 덧붙이고 싶다. 괴상한 말로 들리지만 많은 작가들이 공감할 만한 문장들이다. 물론 작가들은 글쓰기의 인지적이고 기술적인 측면에서 보통의 다른 이들보다 훨씬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
[BOOK世通, 제주 읽기] (55) 위르겐 하버마스 『공론장의 구조 변동』 모든 인류의 문화가 그러하듯 예술 또한 그 자체로 공공적인 기재이다. 문제는 예술의 자율성인데, 그것이 어떤 경로를 통해 자율적인 기재로 자리 잡았는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볼 기회가 그리 많지 않다. 을 통해서 우리는 예술이라는 제도가 어떻게 공공영역으로 자리 잡았는지를 역사적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다. 동시에 ‘부르주아 사회의 한 범주에 관한 연구’라는 부제에서 나타나듯, 근대와 함께 태동한 유럽의 부르주아 사회가 예술이라는 소...
[BOOK世通, 제주 읽기] (54) 윌리엄 셰익스피어 『코리올라누스』 /이유선 교수 대선 토론의 품격 지난 몇 주간 미세먼지, 사드, 박근혜, 경제난 등등의 문제로 거의 녹초가 되다시피한 몸과 마음에 그나마 기운을 불어 넣어 주었던 것은 코미디 프로그램보다 우습고 재미있다는 대선 토론이었다. 우리나라의 미래를 결정할 중요한 토론을 마치 오락 프로그램을 보듯이 즐길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오랜 동안의 촛불 시위가 드디어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게 되었다는 일종의 안도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무능한 대통령은 탄핵되었고, 주변에서 불법...
[BOOK世通, 제주 읽기] (53) 스티븐 핑커 『빈 서판』 /고영자 미학자·번역가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대한민국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과 구속으로 조기대선이 코앞에 다가왔다. 대권주자들 저마다 개혁 진보, 보수 적자, 중도 보수, 애국 보수를 자처하며 나라를 살리겠다는 TV토론과 유세 연설을 접하면서, 이번에도 예외 없이 진보 대 보수 간의 세몰이 선거라는 기시감(데자뷰 현상)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유권자들도 마찬가지로 보수와 진보로 양분된 양상을 띠면서, 자신과 반대 진영에 속하는 세력에게 각각 ‘좌파’ vs...
[BOOK世通, 제주 읽기] (52) 닉 수재니스 『언플래트닝, 생각의 형태』 /노대원 교수 만화책이자 박사학위 논문. 서로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두 가지 분류법이 모두 가능한 책. 닉 수재니스(Nick Sousanis)의 『언플래트닝, 생각의 형태』는 그것만으로도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 책은 수재니스가 컬럼비아대학교에 교육학 박사학위로 제출한 만화 형식의 논문으로, ‘하버드대학이 출간한 최초의 만화책’으로도 알려졌다. 컬럼비아대학교에서도 박사학위 논문으로 만화를 심사하여 통과한 것은 최초라고 하니 이 책의 독특한 위치를...
[BOOK世通, 제주 읽기] (51) 조정환 『예술인간의 탄생』/김준기 제주도립미술관장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1959)에서 노동과 작업, 그리고 행위라는 세 가지 활동 형식에 관한 현상학적 분석을 제시했다. 노동은 인간이 생명체로서의 인간이 살아가기 위한 기본 조건이다. 작업은 생존을 위한 인간 활동 이상의 인공세계를 제작하는 활동이다. 행위는 개인으로서의 인간을 창출하는 존재기반이다. 인간의 조건을 다시 사유한 아렌트는 1)재화와 용역을 생산하는 노동과 2)물질형식에 기반을 둔 예술창작으로서의 작업, 3)...
[[BOOK世通, 제주읽기] (50) 아즈마 히로키 『일반의지 2.0 루소, 프로이트, 구글』 /이유선 교수 1. 두 개의 광장 대통령 탄핵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을 직접 경험하는 과정은 정의가 이 땅에 실현될 수도 있으리라는 희망에 흥분되면서도 무엇인가가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는 듯 답답함을 느끼게 하는 힘든 시간들이었다. 그 답답함은 검찰조사에도 응하지 않고 기자들의 질문도 받지 않았던 대통령이 이름 없는 인터넷 TV와 인터뷰를 하면서 꺼내놓은 말들 때문인지도 모른다. 촛불집회의 두 배에 달하는 태극기 집회가 열리고 있고, 그 ...
[BOOK世通, 제주읽기] (49) 오스틴 해링턴 『예술과 사회 이론』 독일의 소설가 토마스 만의 중편소설 (1903년)의 줄거리가 새삼 눈길을 끈다. 소설 속 주인공 토니오는 북독일적 이성과 도덕관을 가진 아버지와, 남국적인 열정과 예술적 재능을 가진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토마스 만의 분신들 중 하나다. 토니오는 가업을 잇기를 바라는 부모 밑에서 자라지만 부모의 기대를 거스르고 장차 예술가가 되려는 청년이다. 토니오는 자기 자신의 진정한 ‘소명’, 천직으로 생각한 예술을 그의 가족이 당연시한 천직인 사업과 화해...
[BOOK世通, 제주읽기] (48) 장훈교 『밀양 전쟁 』 /서영표 제주대 교수 우리 사회는 공감능력을 상실하고 있다. 공감은커녕 나의 일이 아니면 이해하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이 다반사다. ‘나 살기도 바빠 죽겠는데 남의 일 걱정 해 줄 시간이 어디 있어’ 정도의 일상의 언어가 아니라 경쟁력과 효율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사회에서 타자와의 공감 노력을 비용으로 계산하는 ‘공식화’된 교육의 효과라는 점에서 심각하다. 자식을 잃은 아버지가 진상을 규명해 달라고 단식을 하고 있는 자리에서 ‘폭식투쟁’이라는 이름의 조롱을 서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