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는 널리 인재를 구하는 일이다. 내, 외부를 가리지 않고 능력 있는 인사를 발탁하기 위함이다. 인사권자와의 친분은 중요치 않다. 본뜻이 그렇다는 얘기다. 맥락은 다르지만, 당쟁이 심했던 조선 후기 탕평책도 출신에 관계없이 ‘글 잘하는 사람’을 등용하기 위한 정책이란 점에서 오늘날의 공모와 닮은 구석이 있다. 언제부턴가 제주도정이 산하 기관장을 물색할 때 공모는 빠지지 않는 절차가 되었다. 그러나 매번 공모의 본뜻은 뒷전으로 밀렸다. 그 자리에 걸맞는 역량과 자질 보다는 측근이냐 아니냐는게 더 중시됐다. 최종 합격자가 미리 정해져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후 해마다 연말이 다가올 때면 이듬해 제주도 예산과 관련해 어김없이 펼쳐지는 장면이 있다. 일정한 텀을 두고 희비쌍곡선이 그려진다. 감정(?)을 드러내는 주체는 제주도 뿐만이 아니다. 제주 출신 국회의원과 지역 언론도 마찬가지다. 도 예외는 아니다. ‘모처럼’ 완벽한 하모니를 이룬다. 주요 현안 사업에 대한 국비 지원 여부가 문제인데, 그 중심에 도서지역 농산물 해상운송비가 있다. 매년 비슷한 흐름이 유지된다. 주무 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는 일단 제주도에 대한 지원 액수를 자체 예산안에 반영한다. 그
‘정치인 원희룡’은 달변가(達辯家) 보다는 다변가(多辯家)에 가깝다. 정가의 대체적인 평가가 그렇다. 깎아내리려는 게 아니다. 사전적으로도 다변가는 ‘입담 좋게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가치중립적인 표현이다. 하지만 정치인으로서 ‘다변’은 양날의 칼이다. 박학다식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제 무덤을 파는 흉기가 되기도 한다. 정치인은 자신의 말에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말에 팩트상 오류가 있다면 치명적일 수 있다. 맥락은 다르지만, 툭하면 ‘아무말잔치’가 벌어지는 여의도에서 이미 뱉어놓은 말을 주워담지 못해
대통령의 언급이 있어서가 아니다. 위안부가 인류의 양심과 보편적 인권의 문제라는 건 누구나 안다. 양심과 양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류석춘은 그걸 저버렸다. 따라서 류석춘(연세대 교수)을 파면하라는 제자들의 요구는 양심과 양식의 발로이다. 소녀상도 마찬가지다. 양징자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 전국행동’ 공동대표는 “소녀상에 대해 ‘반일’이라든가 ‘헤이트(증오)’라고 하는 것은 사실 오인이자 중상(中傷)”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소녀상을 반일로 봤다면,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8월14일) 일본의 심장부 도쿄에서 일본 시민들의
‘互通無界 好樂無限 濟州’(호통무계 호락무한 제주). 처음엔 뭔 뜻인가 했다. 이게 한 때 제주의 비전이었다면 믿겠는가. 불행(?)하게도 도민들은 이 말을 제주의 비전으로 ‘받아들여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것도 국적불명의 비전을. 공감 여부는 논외였다.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2011년 12월 확정된 제2차 제주국제자유도시종합계획(종합계획·2012~2021년)에 제주의 비전이 이같이 한자로 떡하니 명시됐다. 기가 찰 노릇이었다. 종합계획은 10년 단위로 수립하는 제주 미래 설계도이자 청사진이다. 국제자유도시에 관한 한 최상위
제2공항이 제주 최대 갈등 현안임이 또 입증됐다. 여론조사 결과 찬·반이 팽팽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간 원희룡 지사가 직접 나서 이른바 맞장토론까지 벌였으나, 여론의 추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도민들은 누군가 나서주기를 갈구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번 여론조사는 추석 연휴 직전인 8~9일 실시했다. 를 비롯해 제주新보, 제주MBC, 제주CBS 4사가 참여했다. 질문은 최대한 단순화했다. 선입견을 배제하기 위해서였다. 그저 ‘국토교통부가 제주지역 공항 인프라 확충 방안으로 추진중인 성산읍 지역 제2공항 건설
이따금 타는 버스지만, 그 맛이 여간 쏠쏠하지 않다. 시쳇말로 꿀잼이다. 차창 밖 풍경을 오롯이 감상할 수 있어서다. 그 순간은 짧지만 온전한 ‘나만의 시간’이다. 자가용을 고집할 적엔 버스 타는 재미를 몰랐었다. 이러한 매력 때문에 시간을 재촉하지 않아도 되는 휴일에는 부러 여유를 부려본다. 평일에도 숙취가 있는 날이면 버스에 오르기 위해 기상을 서두르곤 한다. 버스는 거의 제 시간에 온다. 빈도의 차이는 있지만, 구석구석 안가는 데가 없다. 도심 통행 속도는 자가용을 훨씬 앞지른다. 대중교통 우선차로 덕분이다. 갈아타도 추가 요
김현승의 시 를 접하고 나서도 플라타너스가 버즘나무란 사실을 몰랐었다. 아니 그 반대가 맞을 것 같다. 버즘나무가 그 유명한 플라타너스임을 알지 못했었다. 정확히 말해 버즘나무는 한국식 이름이고, 플라타너스는 학명이다. 버즘나무에도 종류가 있다. 버즘나무, 양버즘나무, 그리고 단풍버즘나무…. 기억이 맞다면 제주시민의 녹색 쉼터 한라수목원에서도 최소 2종류의 버즘나무를 볼 수 있다.어릴적 동네 몇 안되는 점빵(전방·廛房) 앞에도 버즘나무가 서 있었다. 그땐 수종을 따질 계제가 아니었다. 국내 버즘나무가 대개 미국에서 건너
정치인으로서의 존재감을 누구보다 중시하는 것으로 알려진 원희룡 제주지사가 모처럼 속내를 드러냈다. 문재인 정권을 견제하고 야권의 혁신과 통합을 위해 해야 할 역할이 있다면 그 역할을 하겠다고 했다. 자유한국당 입당 가능성도 열어뒀다. 보수 재편 움직임이 가시화하면서 부쩍 높아진 주가를 반영하듯 대표적인 보수지(紙)인 조선일보에서 장문의 인터뷰를 통해 원 지사를 조명했다. 언론 노출을 마다하지 않는 원 지사로서도 호기였을 것이다. 조선일보는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으로 갈라진 보수 진영에선 서로 우리와 함께 하자며 손짓을 보내고 있다
꼬박 16년이 걸렸다. 도대체 몇 번을 좌절했는지 모른다. 그동안 국가보훈처에서 받은 서류는 한 무더기였다.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는 방증이었다. 번번이 4.3이 발목을 잡았다. 무고한 양민들을 구하려다 토벌대에 총살된 게 죄라면 죄였다. 그래도 세상이 달라지긴 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비로소 독립유공자로 선정됐다. 지난해 대통령 표창을 추서받은 고(故) 한백흥(韓伯興, 1897~1948) 선생의 이야기다. 선생은 제주지역 대표적인 항일운동인 조천3·1만세운동을 주도했다. 일경에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조천항일기념관 전시관에는
제주도가 또 전철을 밟으려 하고 있다. 예의 절차적 투명성 문제다. 해군기지 졸속 유치, 제2공항 강행으로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있는데도 교훈을 얻고자 하는 모습이 안보인다. 제주 신항만 얘기다. 하필 셋 모두 국책사업이다. 지난 1일 정부가 제2차 신항만건설기본계획(2019~2040)을 심의·확정하자 제주도는 곧바로 보도자료를 내 ‘탐라국 천년 해양관광 실크로드’ 기반이 마련됐다며 흥분했다. 그리고는 6조원이 넘는 생산유발효과, 5조원 가까운 부가가치유발효과, 약 3만명의 취업유발효과를 떠벌렸다. 총 사업비가 2조8662억
자주 실망하면서도 원희룡 지사에 대해 일말의 기대를 거두지 않는 이유는, 실낱 같지만 그가 쉽게 민의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여기에는 자치단체 수장으로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 때 중앙정부 보다는 도민 편에 설 것이라는 희망이 서려있다.4월10일 제주도의회 임시회 본회의장. 제2공항 찬성 측 의원이 지금 상황이 답답하다는 듯 쉴새없이 몰아세우자 원 지사는 정부를 겨냥, 작심 발언을 했다. “문재인 정부도 (제2공항을)안할 거면 안할 거라고 얘기해달라”후보 시절 ‘조기 개항’ 입장을 밝힌 문재인 정부를 향해 미적대지
“시드니, 하와이와 같은 민군복합형 명품 항만과 어깨를 겨루며…”지금은 영어의 몸이 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발언은 호기로웠다. 2016년 2월26일 제주해군기지(제주민군복합형 관광미항) 준공식 때 그는 이렇게 축전을 띄웠다. 황교안 당시 국무총리도 같은 말을 반복했다. “정부는 이곳을 미국 하와이나 호주 시드니 같은 세계적인 민군복합항으로 발전시키고자 한다” 원희룡 지사도 거들었다. 강정마을이 세계인이 사랑하는 최고의 복합관광미항으로 발돋움할 것이라고 한껏 기대를 드러냈다. 세계적인 관광미항, 국가안보, 지역경제 발전, 해양주권 수
바닷물이 철썩철썩 파도치는 서귀포 금(은)비늘이 반짝반짝 물에 뜨는 서귀포 자갯돌이 철썩철썩 물에 젖는 서귀포 일제강점기 말부터 전국을 풍미한 노래 각 절(節)의 첫 소절들이다. 노랫말은 금지곡·개사곡·해금 등의 우여곡절을 거치며 변천을 거듭한 듯 했다. 컴퓨터 마우스를 옮길 때마다 각 소절의 배치 순서, 시점, 단어 등에서 미세한 차이점이 발견됐다. 곱긴 고왔던 모양이다. 금비늘이면 어떻고 은비늘이면 또 어떤가. 어디 이 뿐이랴. 서귀포 해안은 곳곳에 기암절벽과 폭포, 올망졸망한 섬들이 어우러진 한폭의 동양화 그
‘살인 미수’ 사건 하나만 터져도 난리가 났던 시절이 있었다. 맞다. ‘살인’ 사건을 말하는게 아니다. 내 기억으로는 90년대 중반까지도 그랬다. ‘어쩌다’ 강력 사건이 발생하면 기자들은 ‘모처럼’ 부산을 떨어야 했다. 그만큼 과거 제주는 강력 범죄와 거리가 멀었다. 이를 섬이라는 지역적 특성과 결부하는 해석이 많았다. 도둑·대문·거지가 없는 이른바 삼무(三無) 전통의 발현이라는 그럴싸한 분석도 존재했다.그러더니 언제부턴가 범죄 피해를 우려하는 일이 일상화됐다. 주변에 범죄가 너무 자주 일어나서다. 흉흉해졌다고나 할까. 어느덧 ‘범
혹자는 여론조사를 ‘일상을 조종하는 보이지 않는 권력자’라고 했다. 정치 선거 뿐만 아니라 내가 마실 커피 한잔, 옷 한 벌을 고를 때도 여론조사가 힘을 발휘한다는 뜻이다. 민의를 통계로 검증하는 여론조사가 정치의 예측가능성을 높여주기도 하지만, 그러한 예측가능성이 오히려 정치문화의 수준과 품격을 떨어뜨린다는 지적도 있다. 자칫 인기 영합으로 흐를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네 삶 속에 깊이 파고든 여론조사의 영향력과 순기능, 그리고 부작용을 설명해주는 말들이다. 중시하되, 너무 연연하지도 말라는 경구 쯤으로 새겨두면 좋을 듯 싶다.
쪼그려앉은 한 무리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무표정했다. 하지만 난 그들의 얼굴에서 불안해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한가지는 분명했다. 고향에 간다는 설렘과는 거리가 멀었다. 한 사학자는 다시 사지(死地)로 내몰린 난민을 떠올렸다. 과연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처연했다. 올초 공개된 영상( 70년전, 강제 추방된 제주인들 ‘불법체류자’ )은 4.3의 광풍을 피해 일본으로 피신했던 제주인들의 행적을 엿보게 한다. 흐릿한 흑백 영상에는 1949년 3월4일 일본 사세보항을 출발한 여객선 귤환(橘丸·다치바나 마루)호가
“차로를 줄여 자동차 진입수요를 물리적으로 억제하겠다. 공해차량의 한양도성(漢陽都城) 내 진입 제한도 추진하겠다”(2018년 8월7일 서울시)“도지사님! 정신 차리세요. 그 아름다운 삼나무 길을 훼손하다니. 붐비면 좀 어떻습니까. 천천히 가면서 주위의 아름다운 경관을 바라보는 것도 좋을 성 싶은데...”(8월8일 네티즌 ‘바당’)지난해 여름 서울과 제주(?)에서 펼쳐진 두 광경은 너무 대조적이었다. 공교롭게도 이 때는 원희룡 제주지사의 여름 휴가 기간(8월3~10일). 한마디로 서울은 도심 진입 차량을 줄이겠다고 하고, 반대로 제주
4월23일 제주도의회에서 카지노 관련 정책 토론회가 열렸다. 주제는 ‘카지노 대형화 이대로 좋은가?’. 갈수록 몸집을 불려가는 제주도내 카지노에 문제의식을 느낀 도의회가 마련한 자리였다. 찬반 격론이 벌어지는 와중에 찬성 쪽에서 대형화는 세계적인 추세라며 해외 사례를 소개했다. 일본에서 복합리조트 법안(카지노 법안)이 통과된 것도 이러한 흐름을 거스를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과연 그럴까? 카지노에 관한 한 난 문외한에 가깝다. 어쭙잖은 식견으로 ‘전문가’들의 주장을 반박할 입장이 못된다. 하나 합리적 의심까지 떨쳐버릴 수는 없
빨갱이로 몰려 끌려간 경찰서에서 세 살배기 둘째딸은 엄마가 매질을 당할 때 함께 다리를 난타당했다. 엄마 등에 업혀 있었던게 화근이었다. 살이 뜯기고 하얀 뼈가 훤히 드러났다. 전주형무소에 입소한지 20일 후 딸은 결국 세상을 떠났다. 안동형무소에서 태어난 세째딸 역시 7개월만에 하늘나라로 갔다. 엄마 뱃속에서 고문과 폭행을 함께 견뎌내기가 힘들었으리라. 4.3의 광풍 속에 남편은 이미 자취를 감춘 상태였다. 중산간 마을을 모조리 불태우는 이른바 초토화작전 당시 할머니에게 맡겨졌던 큰 딸은 나중에 보니 남의 집 수양 딸이 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