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해군기지 문제의 겉과 속(2)

필자는 제주해군기지 문제와 관련해 지난 2005년부터 「제주군사기지반대도민대책위」집행위원장을 맡아오고 있습니다.(2007년부터는「제주군사기지저지와평화의섬실현을위한범도민대책위」공동집행위원장) 이제부터 그 과정에서 겪었던 일들 을 글로 써서 도민들게 알리고자 합니다. 필자는 이번 글을 통해 해군기지 문제의 중심에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것까지 드러내려 합니다. 그리고 모든 관계했던 인물들에 대해 실명을 사용할 것이며, 가급적 사실중심으로 풀어내지만 그 관점과 견해는 주관적일 수 밖에 없으니 이에 대한 반론이나 이견도 경청하겠습니다. 

  아울러, 필자는 이 글에서 저의 직책을 표기하지 않습니다. 이유는 제 글이 기본적으로 한 국가의 국책사업이 이렇게 허술하게 추진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을 전제하기 때문입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사회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그 의문을 펴는 과정일 따름입니다. 이 글들이 이후 있을지도 모를 제주 해군기지와 관련한 여러 후술에 참고할만한 근거로 남으면 좋겠습니다.  필자는 앞으로 제주 해군기지 문제를 둘러싼 쟁점들, ▲ 갈등 ▲ 환경 ▲ 국책사업론 ▲ 평화를 주제로 각각 몇 편의 글을 사실중심으로 쓸 것입니다.

   해군기지 문제가 갈등관리 우수사례?

제주특별자치도에서는 불필요한 행정력 유출을 방지하고 자치역량 강화를 통한 도민대통합을 유도하기 위해 도민여론조사라는 방법을 선택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유치 및 대상지를 결정하게 됨에 따라 서귀포시 대천동(강정), 안덕면(화순), 남원읍(위미)등에서 지역 주민간 해군기지 유치 찬ㆍ반 갈등 등 소모적인 논쟁은 크게 줄어든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2008년 5월 27일 행정안전부가 펴낸 상생협력 우수사례집 174페이지에 나와 있는 내용이다. 행안부는 이 사례집을 발간하면서  “ ’05년부터 ’07년까지 선정한 지방자치단체 「상생협력 ․갈등관리」우수사례들을 한데 모은 것”으로, “우수사례를 공유하고 나아가 자치단체 간 벤치마킹 기회를 제공하기 위하여 제작”했다고 밝히고 있다.    행안부 사례집은‘상생협력’과 ‘갈등관리’의 분야로 나눠 전국적으로 37개의 ‘우수사례’를 소개하고 있는 있는데, 제주 해군기지 문제가 ‘갈등관리’ 분야의 우수사례로서, “제주도를 평화의 섬으로”라는 제목으로 7번째 순서에 실려 있다. 또한 제주도는 이와 관련해 지난 2007년 11월  갈등관리 최우수단체로 선정된 바 있다. 당시의 내용이 작년에야 사례집으로 만들어져 공개된 것이다.

  하지만, 2007년 당시 이 소식이 전해지자 강정주민들은 거세게 반발하였다. 그 때 강정주민 대표들은 해군기지 예산 국회심의와 관련 국회를 방문 중에 있었는데, 이 소식을 전해 듣고는 곧바로 행안부(당시 행자부)로 달려가 항의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제주도 당국은 우수자치단체로 선정된 댓가로 정부로부터 받은 돈에 도비를 얹어 7억원을 강정마을 장학금으로 편성했지만, 강정마을회는 이것도 거부한 바 있다.

  도 자치행정과 현공언씨가 이를 집필한 것으로 돼 있는 사례집은, 내용만 봐도 당시 '우수사례’로 해군기지 문제가 선정된 것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 알 수 있다. 2007년 당시에도 이는 논란이 되었다. 행자부가 단 한 차례의 실사나 의견수렴조차 없이 제주도 당국에서 올린 내용만을 가지고 오직 서면심사를 통해 해군기지 문제를 갈등 관리 우수사례로 선정한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제주도 당국이 제공한 일방적인 자료와 행자부의 허술하고 형식적인 심사가 만들어낸 촌극이리는 지적이 강하게 일었다.
 
 주목할 것은, 사례집에서 제주 해군기지 문제에 따른 갈등해결의 전기를 2007년 여론조사로 꼽고 있다는 것이다. 여론조사가 해군기지 갈등해결의 수단으로 선택되었다는 것이다.

소모적인 도민갈등이 장기화되자 제주특별자치도에서는 해군기지 건설과 관련된 도민사회 갈등과 분열에 종지부를 찍고 도민 대통합을 이루어 나가기 위해 도민 여론조사를 통해 해군기지 및 대상지역을 선정키로 하였다.
                                                                                                               - 행안부 ‘상생협력 우수사례집 中

  2007년 4월 10일, 김태환지사도 도의회 간담회 과정에서 여론조사 로드맵을 밝히면서, 그것이 도민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일이라고 밝힌 바 있다.
어쨌든, 제주도는 2007년 해군기지 유치 및 후보지 선겅을 위한 여론조사 결과로 해군기지를 둘러싼 소모적인 논쟁이 크게 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자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 반대이다. 제주 해군기지 갈등이 본격적으로 불거진 것은 바로 2007년 5월에 실시되었던 해군기지 유치동의 결정 여론조사 결과부터이기 때문이다. 여론조사 결과 발표 이후, 천주교제주교구에서는 사상 유례없는 교구 차원의 사제단 전원 단식사태가 벌어졌고, 개신교 종교인과 국회의원의 단식투쟁도 벌어졌다. 여론조사과정의 위법성 여부를 문제삼아 도의회 행정조사권이 발동되었고, 이는 감사위원회 감사로 이어졌다. 강정마을은 후보지 결정이 사전 조작된 것이라며 크게 반발하였고, 당시 유치신청에 나섰던 윤태정 마을회장을 해임시키는 한편, 8월 20일에는 마을 자체 주민투표를 통해 공식적인 반대 의사를 결정하였다.

 제주도민들의 해군기지에 대한 여론도 여론조사 결과 이후 더욱 악화되었다. 아래의 당시 제주MBC 여론조사 결과 추이를 보면 확연해진다. 2007년 4월 10일, 김태환 도지사가 여론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해군기지 결정 로드맵을 도의회 간담회 자리에서 공식화 한 이후 급등하기 시작한 반대여론은 결정적으로 해군기지 여론조사가 쟁점이던 5월 이후 급격히 높아졌다. 당시 6월에 실시된 제민일보사의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도민들은 여론조사에 의한 해군기지 유치동의 결정은 잘못된 것이라고 답하였다.
 

▲ 2007년 당시 제주MBC 해군기지 여론조사 추이. 5월 여론조사를 전후해 도민 반대 여론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 2007년 6월 1일 제민일보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응답자의 60%가 해군기지 여론조사 결정이 잘못되었다고 답하였다.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애초부터 달랐던 건지, 자신들의 결정을 정당화하기 위해 갖다 붙인 것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사례집의 내용은 문제 있는 내용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정부와 해군, 제주도 당국은 이 여론조사 결과를 근거로 지금껏 기지건설을 추진해 오고 있다. 정부는 당시 여론조사 결정을 빌미로, 비록 국가사업이지만 도지사의 결정을 존중할 수 밖에 없다고 하고, 도지사는 국가사업이므로 자신이 결정해놓고도‘재량권 없음’을 이유로 갈등문제를 회피하였다. 그러는 사이 강정주민들의 고통만 나날이 커져 왔던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해말, 해군기지 문제는 갈등관리 우수사례로 선정되고, 제주도는 갈등관리 최우수 자치단체로 선정되었으며, 1년 후, 이 내용은 갈등관리의 ‘우수 사례’로 버젓이 행정안전부 사례집에 실려져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해군기지 문제, 100점 만점에 70점?

  제주 해군기지 문제가 갈등관리 우수사례로 선정된 배경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해군기지 문제가 갈등관리 우수사례로 선정되기 두 달이 안 된, 2007년 9월 11일 서울 대한상의 회의실에서는 제주해군기지문제를 주제로 한 토론회가 열렸다. 사회갈등연구소가 주최한 토론회에는, 당시 정부 관계자로 총리실의 이동범 사무관이 참석했다.(지금은 다른 곳으로 감). 필자도 토론자로 참석했는데, 당시 이동범 사무관이 토론회에서 했던 말을 또렷이 기억한다. 새만금이나 부안 핵폐기장 등에 비추어 제주 해군기지문제는 국책사업 중 그나마 제대로 절차를 밟아 추진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제주해군기지 문제는 정부가 추진하는 사업 중 100점을 만점으로 한다면, 70점 정도는 줄 수 있다며 모범적인 사례로 평가하였다.

  필자는 당시 이 사무관이 토론회 공식석상에서 정부를 대신해 발언한 이  얘기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정부가 제주해군기지 문제를 어떻게 사고하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이런 표현은 단지 이사무관만의 것이 아니었다. 참여정부 당시 제주해군기지 문제를 담당했던 청와대 김화준 행정관을 통해서도 이는 자연스럽게 들을 수 있었다. (이동범 사무관은 그래도 해군기지 문제 과정에서 만난 정부나 제주도 관계자를 통틀어 필자의 기억에 가장 합리적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그는 토론회에서 해군기지 문제가 절차적으로 하자가 있다는 점도 인정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표현이 가능했을까? 답은 또다시 여론조사이다. 정부가 국책사업을 추진하면서, 더구나 국가안보사업을 이렇게 여론을 물어 결정한 적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70점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점수를 들어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해군관계자나 다른 정부관계자 등에게서도 군사기지 사업을 추진하면서 여론조사를 통해 결정한 자체를 매우 높이 평가하는 얘기를 몇 번 들었는데, 모두 이와 같은 맥락의 말이었다. 이러니 해군기지 문제가 갈등관리 우수사례로 오를만 하지 않은가! 단지, 제주도 당국이 올린 일방적인 자료와 행자부의 형식적 심사 때문만이 아니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다시 되짚어 보자. 앞서 봤지만, 제주해군기지 문제가 본격적인 제주사회의 갈등으로 치달은 것은 바로 2007년 여론조사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이 정부관계자나 해군에 의해서는 군기지를 건설하면서, 절차적으로 과거와는 다른 이른바 ‘민주적 진전’을 이룬 사례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제주도민들은 찬반을 떠나 정부의 해군기지 추진방식에 문제를 제기해왔다.정말로 국가안보에 꼭 필요한 사업이라면 도민을 설득하려해야지, 되도 않는 절차논리나 경제논리로 도민들을 현혹하지 말라는 것이 그것이다. 요식적인 수준에 불과한 여론조사 결과를 해군기지 추진의 근거로 삼고, 이미 결정했으니 따라오라는 식의 행보가 오늘 날의 갈등을 더욱 골 깊게 만든 것은 아닐까?

   더욱이, 기지건설하면서 여론조사를 통해 결정했다는 것만 놓고 100점 만점에 70점이라 자평하는 우리나라 정부나 군의 태도 앞에서 어떻게 성숙한 국민 민주주의를 기대할 수 있을까? 

    제주해군기지 문제는 정부의 국책사업 논리가 국민의 의사와 충돌할 때 국가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 하는 것을 생각게하는 매우 중요한 사건이라 생각한다. 국민의 의사를 존중하는 것을 자신의 권위를 포기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지금 국가의 모습이 아닌가 한다. 여전히 한 번도 ‘밀리는 꼴’을 보여줘서는 안되는 대상이 국민인 것이다. 적어도 지금까지 해군기지 문제에서 보여준 국가의 태도는 그렇다. 그러면 특별자치도지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나.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도민들은 도지사가 이 문제를 잘 풀어주길 기대했던 것은 아닐까? <계속 이어집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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