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제주해군기지 문제의 겉과 속(1)

  필자는 제주해군기지 문제와 관련해 지난 2005년부터 「제주군사기지반대도민대책위」집행위원장을 맡아오고 있습니다.(2007년부터는「제주군사기지저지와평화의섬실현을위한범도민대책위」공동집행위원장) 이제부터 그 과정에서 겪었던 일들 을 글로 써서 도민들게 알리고자 합니다. 필자는 이번 글을 통해 해군기지 문제의 중심에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것까지 드러내려 합니다. 그리고 모든 관계했던 인물들에 대해 실명을 사용할 것이며, 가급적 사실중심으로 풀어내지만 그 관점과 견해는 주관적일 수 밖에 없으니 이에 대한 반론이나 이견도 경청하겠습니다. 

  아울러, 필자는 이 글에서 저의 직책을 표기하지 않습니다. 이유는 제 글이 기본적으로 한 국가의 국책사업이 이렇게 허술하게 추진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을 전제하기 때문입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사회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그 의문을 펴는 과정일 따름입니다. 이 글들이 이후 있을지도 모를 제주 해군기지와 관련한 여러 후술에 참고할만한 근거로 남으면 좋겠습니다.  필자는 앞으로 제주 해군기지 문제를 둘러싼 쟁점들, ▲ 갈등 ▲ 환경 ▲ 국책사업론 ▲ 평화를 주제로 각각 몇 편의 글을 사실중심으로 쓸 것입니다.

 프롤로그

  태어나서 애국가를 이번 처럼 선 자리에서 반복해서 여러 번 불렀던 적은 없다. 환경영향평가위원회 심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후 내내 불렀으니, 4절까지 30번 이상은 충분히 부른듯 하다. 강동균 강정마을회장과 홍동표 부회장, 환경연합 이영웅 사무국장과 필자는 이번 환경영향평가심의 개최에 대한 부당함의 의사표시로 회의 내내 위원들 앞에서 애국가를 불렀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상대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할 정도의 애국가 소리에도) 회의는 계속되었고, 결과는 도출되었다. 공무원이나 위원들 아무도 자신들 바로 앞에서 시위하는 우리에게 뭐라고 하지 않았다. 또한 그들 중 그 누구도 우리의 의사를 전혀 수용할 뜻이 없어 보였다. 특히, 위촉된 민간위원 중 누구도 의사진행과 관련한 언급하지 않았다. 그것이 우리의 ‘방해’를 질타하는 것이든, 이해하는 내용이든 아예 약속이나 한 듯이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애써 회의에 전념하려는 태도였다. 모두다 ‘무반응’을 약속이나 한 것 처럼.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연세대 교수는 빼놓고라도 평소 이런 문제에 비교적 합리적으로 대처하리라고 생각했던 제주대 정대연 교수나 현해남 교수, 자연사박물관 김완병 박사 조차 일체의 언급이 없었다. 서로 옆에 자리한 앞서의 두 교수는 애국가를 부르는 우리 앞에서 이번 안건에 대해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웃음을 동반한 의견교환까지 하는 여유(?)를 보였다. 위원장 자격으로 회의 진행을 담당한 현영진 제주대 교수는 현수막까지 펼쳐들고 항의하는 우리들에게 의견을 말할 기회를 주었다. 심지어는 우리를 그대로 세워둔 채 회의를 진행하려 했다. 그것이 ‘배려’인지 ‘무시’인지 알 길은 없지만, 때문에 우리는 애국가를 부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는 마지막 심의결과를 공표하고, 이를 제지하려는 우리의 시도에 맞서듯 회의 탁자를 내리치고 의사봉을 내팽겨쳐 버렸는데, 비로소 무엇이었는지 알 것 같았다.  당연직 위원인 고여호 도 청정환경국장은 “고여호 국장님! 이 회의가 왜 정당한지 밝혀보시오!”라는 필자의 수차례 고함 섞인 요구에도 못 들은 척 자료를 뒤척이고, 심지어는 앞에 놓인 귤을 까먹는 태연함을 연출했다.

  우리는 현수막을 들고 서서 항의 의사를 표현했지만 공허했고, 그 자리에서 우리의 실체는 ‘없는 듯’ 회의는 평소와 다를바 없이 전개되었다. 도가 공식적으로 밝힌 것처럼 방청권을 주었고 의견진술 기회도 주었으니 할 일은 다한 거라 여겼던 것인가. 이 ‘제도의 수호자’들은 무례하고 무모한 시위대앞에서 흔들림이 없었으며, 제주도 환경영향평가위원으로서 자신의 본분을 충실히 수행하였다. 더구나 거대한 국가사업을 평가하는 위원이기에.

  하지만 묻고 싶다. 이번 회의는 ‘제도의 실행’을 빌미로 이성과 상식을 무너뜨린 폭거라는 필자의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눈 앞에서는 우리가 ‘폭거’였을지 모르지만, 결론을 전제한 통과의례로서 치러진 이번 회의의 그 ‘성실함’이 또 다른 폭거를 낳은 진짜 폭거는 아니었는지.‘제도=공식성=이성(합리성)’은 늘 정당하게 성립되는 것인지. 그래서 심의회에서 보여준 ‘보고도 못본 척 하는’ 위원들의 태도는 이성이나 합리성으로 설명될 수 있는 정당한 것인지. 그래서 위원으로서 본분을 다한 것인지.

  그리고, 특히 교수들에게 묻고 싶다.
  필자는 교수들이 낸 보완의견은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나름대로 현실적인 해법을 제시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하는지. 전문가로서의 기능은 훌륭히 해냈을지 모르지만, 첨예한 논란의 한 가운데서 벌어진 이번 심의에 참여하면서 전문가 아닌 지식인으로서의 역할은 없었는지. 그냥 교수이기 때문이 아니다. 영향평가위원으로 참여한 교수이기 때문이다. 

 지난 토요일 환경영향평가 심의회 과정은 해군기지 문제가 지속돼 온 지난 시간 내내 필자가 가졌던 의문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국가와 제도 앞에서 행정은 그것이 중앙정부이든 지자체이든 더 이상 국민의 공복이나 정책의 조정자가 아니었다. 오직 국가를 대리한 집행자일 뿐이며 국가 그 자체였다. 지식인은 무언의 협력자였으며, 이 때 스스로의 학자적 양심은 협력적 견해 바깥에 걸어두어야 하는 것이다. 안보의 논리는 전가의 보도였고, 이에 직면한 주민의 고통은 감내되거나 기껏 관리의 대상일 뿐이었다. ‘개인’은 국민 속에 감춰졌으며, ‘주민’은 도민 속에 용해되었고, 국민은 국가논리의 하위범주였다. 그러면 국가는 무엇인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며, 그 실체는 무엇인지 해군기지 문제 과정에서 의문은 커져만 갔다. / 고유기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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