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신 카슈미르의 고향 '아그라'(2)
2006년 대한민국의 청년들이 가장 많이 꿈꾼 나라라는 인도. 인도는 명성에 걸맞게 매혹적인 요소를 곳곳에 숨기고 있는 나라였다. 그 중 사람들이 가장 쉽게 매료된다는 장소, 교과서마다 사진 한 장씩은 꼬박꼬박 올라 있는 명소 타즈마할을 찾았다.
타즈마할의 입장료는 비쌌다. 만 16세가 넘지 않은 입장객에게는 단돈 1루피도 받지 않는 주제에 단 하루만 지나도 700루피씩 칼같이 뜯어간다.
나야 뭐 애초에 지나도 너무 지났으니 공짜로 들어갈 마음은 버렸었지만, 그래도 700루피라니 너무했다. 심지어 옆의 현지인 창구에서 현지인들이 단돈 15루피를 내고 들어가고 있는데 피가 거꾸로 솟지 않을 여행객은 없으리라. 그 피 같은 700루피를 내면서 아침의 물렁했던 '교과서와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해' 라는 생각에 대폭 수정을 가했다. '즐겨 줄 테다. 반드시 여기서 볼 수 있는 건 다 봐 줄 테다. 풀 한포기 놓치지 않고 샅샅이 눈에 집어넣어 줄 테다'라고.
타즈마할 본관은 티켓부스와 게이트 하나만을 사이에 두고 있을 뿐 그다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그 게이트부터 얼마나 '포스'를 풍겨대는지. 한쪽 측면이 공사 중이라 썩 아름답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목이 꺾어지도록 올려다보아야 할 규모에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때의 감동은 타즈마할을 만났을 때에 비해 새 발의 피에 불과했지만.
타즈마할은 매시간마다 다른 모습을 보인다고 한다. 내가 방문했던 다소 늦은 듯 한 느낌의 아침은 귤색의 햇빛이 타즈마할에 녹아들어 무척이나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내 뒤로 들어온 한 단체의 가이드가 하는 말을 주워듣자니, 오늘 타지마할에 온 사람들은 굉장히 운이 좋은 거란다. 평소엔 늘 짙은 안개로 뒤덮여 이정도 거리에선 타즈마할 본관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라고. 왠지 700루피의 '뽕을 뽑겠어!'라는 나를 날씨까지 도와주는 듯 해 웃음이 나왔다.
웅장함과 산뜻함. 이렇게 상반된 두 가지의 이미지가 하나의 건축물 안에 녹아들 수 있다는 것이, 그리고 그렇게나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이 무척이나 놀라웠다. 입장료 700루피가 아까워서 입장하지 않았더라면 정말 후회할 뻔 했다. 물론 후회해야 할 이유도 몰랐을 테지만.
하지만 타즈마할에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갈수록 더욱 강해졌던 것은 타즈마할의 아름다움에 놀라는 마음이 아니라 현실에 대입해 본 후 나타나는 경악이었다.
꿈속에서 만난 궁전처럼 아름다운 타즈마할은, 사실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자빠지며 만들어 낸 무덤인 것이다. 뭄타즈 마할을 위해 만든 샤 자한 최대의 역작. 또한 그 이상 가는 건축물을 만들지 못하게 하기 위해 인부들과 설계사에게 행했던 샤 자한의 잔혹한 행위. 전날 읽은 가이드북의 내용을 상기해버린 이상, 타즈마할은 내게 있어 더 이상 아름답기만 한 건축물일수는 없었다.
다른 외국인들은 10루피, 20루피씩 턱턱 냈지만 나는 가뜩이나 가난했던 데다 700루피라는 적지 않은 돈을 하루사이에, (북인도에서는 하루 평균 300루피도 채 쓰지 않았다) 그것도 입장료로 다 써버렸기 때문에 그다지 여유가 없는 상태였다. 게다가 5루피는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짜이를 두 잔이나 마실 수 있고, 말 잘하면 세잔까지도 오케이다. 오믈렛을 사이에 끼운 모닝빵도 한 개쯤 먹는 사치를 부릴 수 있는 큰돈이다. 신발덮개 하나 가격으로는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이니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는 없으리라.
예전 언젠가 중국의 만리장성을 보고 노역에 동원되었던 인부들의 고통을 실감했듯이. 어느 쪽 이었던 지간에 샤 자한의 뭄타즈 마할을 향한 사랑을 온몸으로 느끼고 감동하는 장면은 없었다. 사랑보다는 오히려 과시욕을 느낄 수 있었을 뿐. 샤 자한의 사랑은 오히려 그 다음 코스였던 '아그라 랄 낄라'에서 더욱 강하게 느낄 수 있었으니 말이다.
타즈마할은, 분명 아름답지만 어떻게 보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고 말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타즈마할에 700루피를 내고 들어가서도 정작 샤 자한과 뭄타즈 마할의 관은 볼 수 없었으니까. 현지인은 볼 수 있는 모양이었지만 외국인에게는 개방이 되질 않았단다. 우스운 일이다. 단돈 15루피를 내고 들어간 현지인은 실제 관을 보고, 700루피를 내고 들어간 여행자는 가묘로만 만족을 해야 하니 말이다. 애초에 ‘문화유산 관리의 책임’이라는 명목으로 징수해가는 500루피의 기금 역시 여행자에게만 걷는다는 것 또한 우스운 일이다.
인도에는 '있는 사람이 더 써야 한다'라는 인식이 확실히 박혀있다고 한다. 그러니 있어서 여행까지 할 수 있는 사람에게 다소(?) 바가지를 씌우더라도 그것은 잘못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나름의 원리를 '국가에서부터' 팍팍 지원해주는 예라고 할 수 있겠다.
기묘한 형태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라 생각하면 되겠지만, 나는 그 '노블'층이 아니라 저예산 여행을 하고 있는 가난한 여행자였기 때문에 현지인들이 얄미울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