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신 카슈미르의 고향 '아그라'(1)

파리. 더위. 등을 무겁게 짓누르는 철수(배낭)와 진득하니 차오르는 땀. '알로, 박씨시' 하며 손을 내미는 아이들의 헤진 발. 하지만 슬프거나 힘들지만은 않았다. 어째서일까. 15kg가량이나 되는 무게의 배낭도 그저 기분좋게만 다가왔던 것은. 사랑의 신인 카슈미르의 고향이라서 그런걸까?

요즘도 피곤에 절어 힘들다는 생각만 들 때면 아그라의 첫인상을 생각해보곤 한다. 힘들었지만 힘들지만은 않았던 아그라. 무언가에 대한 기대가 온 몸에 가득 차서 힘든것 쯤 가볍게 이겨낼 수 있었던 그 곳. 인도에 도착한 후 처음 탄 택시가 우핸들인 게 재미나서 온몸의 근육통따위는 안중에도 두지 않았던 그 곳.
 

   
 
 
첫날은 숙소를 잡으러 돌아다니다 보니 예상보다 시간이 늦어져서 문화유산을 돌아보기엔 무리가 있었다. 하루하루가 아까운 판에 시간을 그냥 보내버리기는 너무나 아까웠지만, 그래도 마음을 편안히 먹고 아그라 시내를 돌아보기로 했다.

가이드북을 펼쳐 봐도 나오는 건 문화유산과 식당 뿐.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지 않기에 지갑과 여권, 디지털카메라만 챙겨들고 무작정 거리로 나섰다.

소와 개, 사람과 싸이클릭샤, 오토릭샤와 트럭, 10년은 된 것 같은 구식 승용차들이 제멋대로 엉켜있는 길. 그 길이 못 견디게 좋았다. 명상이나 요가 같은 대외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인도는 힌두교의 영향으로 참 시끄러운 나라다. 그 시끄러움이 좋았다. 클락션을 울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 그 길이 좋았다.

길을 가다 보니 어린아이들이 교복을 입고 일렬로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타즈마할이나 베이비 타즈마할, 아그라포트같이 굵직한 문화유산이 많이 남아있는 곳이다 보니 관광객이 많이 몰리고, 그래서 전체적으로 삶의 질이 높았나보다. 이만한 어린아이들이 교육기관에 다닐 수 있다는 건 정말 대단한 거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이는 노란 유치원복과 이들이 입은 교복은 전혀 다른 의미다. 나는 한 달 여간 인도여행을 하면서 그 어떤 도시에서도 이정도 또래의 아이들이 교복을 입은 모습을 보지 못했다.

   
 
 
아이들을 몰래 찍고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큰길에서 벗어나 작은 골목으로 들어가다 보니 이곳저곳에 소들이 주저앉아 있었다.

   
 
 
귀찮은 듯 큰 눈을 끔뻑끔뻑하며 파리조차 쫓지 않는 소들은 이미 익숙한 풍경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가슴 뛰는 풍경이기도 했다. '여기가 인도구나'라고 새삼 두근거리게 해 준다 할까. 사람과 소가 나란히 앉아 마치 대화하는 것처럼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은 늘 새로운 기분으로 여행할 수 있게 해주는 보험 같은 풍경이었다.

델리에서 탔던 기차가 거의 한국 기차만큼 좋은 기차여서 맛있는 짜이(인도식 밀크 티. 밀크티를 만드는 방식으로 만들고, 커드멈이라는 특유의 향신료를 추가하여 맛을 낸다.)와 베지터블 크로켓이 무료로 제공되는 덕에 정말 '배가 터지도록' 먹었지만 숙소를 잡느라 고생하고, 길을 다니며 깜짝깜짝 놀라고 재밌어하느라 칼로리를 소모하다보니 어느새 배에서 꼬르륵 꼬르륵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마침 들어선 곳이 식당 밀집지역이라 배부터 채우기로 하고 간판을 봤더니 이게 웬 걸. 내가 먹고 싶었던 건 '인도의' 요리라고요. 맛살라(인도 특유의 향신료들을 총칭하는 말) 범벅의 한국음식이 아니라!!!!

그랬다. 관광도시인 아그라. 거기다 요즘 한국엔 인도열풍이 불고 있다. 국내항공사의 직항노선까지 운영되고 있을 정도이니 인도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으리라. 게다가 그 곳은 '아그라'가 아니었던가. 사람들이 꿈꾸는 타즈마할이 있는 곳. 문화유산을 보기 위해서라면 그 어느 도시보다도 적합한 도시. 한국인 관광객이 몰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니 한국음식점도 생겨난 거겠지.

뱃가죽과 등가죽이 들러붙고 있었다. 다른 곳을 찾아 볼 여력이 없어 티베탄키친과 '원조'티베탄키친, 조니스플레이스 셋 중에서 하나를 골라 들어가기로 했다. 조니스플레이스는 안이 꽉 차 있어서 제법 오래 기다려야 할 것 같아서 선택한 게 티베탄키친이었다. 원조 티베탄키친은 앞의 원조가 마음에 안 들어서 패스. 원조라고 이름붙인 데 치고 진짜 원조인 데 없더라.

하지만 음식을 주문하고 20분 후, 나는 내 선택을 뼈저리게 후회할 수밖에 없었다. 베지터블 초우면 하나에 스위트라씨(우유를 발효시킨 커드에 우유와 설탕을 넣고 갈아 만든 일종의 요구르트) 한잔. 말호트라에서는 십 분 만에 나왔던 음식이 감감 무소식이었다. 주문한 꼬마애에게 언제 나오느냐고 물어봐도 환하게 웃으며 "wait, wait!" 하고 말할 뿐이었다. 퉁명스레 말하면 화라도 내지. 곰살맞게 흰 이를 잔뜩 드러내며 웃는데 웃는 얼굴에 침을 뱉을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그대로 앉아서 한 시간을 기다리니 스위트 라씨가 나왔다. 홧김에 벌컥벌컥 들이켜고 기다린 지 10분 만에 초우면이 나왔다. 재료가 모자라서 새로 사 온 모양이었다. 재료가 없으면 다른 메뉴를 고르라고 할 것이지, 참 화도 낼 수 없게 하는 식당이었다. 맛도 없었다면 잔뜩 저주해줬겠지만 맛은 일품이더라. '정말 토마토 맛이 나는 토마토케첩'을 살짝 쳐서 먹는 초우면은 아직도 출출하면 눈앞에 둥둥 떠다닐 정도다.

배도 채우고, 시간도 제법 늦은 것 같고 해서 왔던 길을 되짚어 숙소로 돌아갔다. 체크인 할 때 유난히 글을 느리게 써 짜증나게 했던 보이도 배가 불러 느긋한 상황에서 보니 훤칠하니 참 잘생겼더라. 잘생겼다고 하니 얼굴을 붉히며 고맙다고 말하던 그 녀석. 녀석과 데스크에서 한참 수다를 떨다 가이드북이나 한 번 읽어두려 2층의 정원에 올라갔다. 목이 마른 김에 땅딸막하고 김정일을 닮은 생김새의 주인아저씨에게 라씨 한잔을 부탁하고 정원 의자에 편히 앉아 가이드북을 팔랑팔랑 넘기다보니 하늘에서 뭐가 팔랑팔랑 떨어지더라. 뭔가 해서 보니 원숭이였다!

   
 
 
이 녀석이 어찌나 똑똑한지, 주인아저씨 몰래 주방에 숨어들어가 토마토를 훔쳐 먹기도 하고, 여행자에게는 애교를 떨어가며 바나나를 얻어먹기도 한다. 물론 한번 애교떨고 안주면 때려서라도 빼앗는 포악한 녀석들이기도 하지만, 뭘 먹을 때의 반짝반짝한 눈이 '거 참 당신 좋은 사람이네'라고 말하는 것 같이 귀여워서 일부러 바나나를 하나씩 던져주기도 했다.

타즈마할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라씨를 마시고, 아저씨와 원숭이의 전투도 간간히 즐겨가며 느긋이 늘어져 있다 보니 하루해도 뉘엿뉘엿.

처음 하루를 그저 흘려보내게 되었다는 불만과는 달리 나름대로 즐거운 하루였다. 일상적이라는 느낌. 휴식이 되는 느낌. 가이드북에 실린 이런저런 문화유산을 찾아보고 하는 것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는 여행이었다. 숙소의 보이와 밤늦은 시간까지 떠드는 것도 즐거웠고. 셰비때도 그랬지만 역시 난 사람을 만나는 여행을 가장 좋아하는 것 같다.

   
 
 
하지만 셰비도 그렇고 이 숙소의 보이(이름을 들어두는 걸 깜빡했다!! 서로 이름을 모르는데도 즐겁게 대화할 수 있는 나라가 얼마나 될까. 킬킬.)도 그렇고, 대화를 할 때 간혹 튀어나오는 어려운 단어들은 내 자존심을 팍팍 상하게 해 주더라. 솔직히 나도 또래 중에서 영어를 못하는 축에 속하지는 않는다고 여겨왔는데 인도인들은 (물론 영어를 모르는 사람이 반 이상이지만) 정말 고급영어를 구사한다. 그걸 그대로 마음에 담아뒀다 인도에서 돌아오자마자 영어단어장을 펴 든 나도 나지 참….

영어공부가 미치도록 지겨울 땐 그때 그 친구들과의 대화를 떠올리곤 한다. 내가 모르는 단어를 끈기 있게 쉬운 단어들로 설명해주던 사람들. 그리고 얼굴이 새빨개져서 다이어리에 적어두던 김로마나를.

인도에서 '일상'안에 스며든 게 너무 많아서, 지금의 '일상'에서 생각나는 추억이 너무나 많아서 아직까지도 이렇게 인도가 그리운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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