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나의 열여덟 일기①] 교복이라는 든든한 '갑옷'벗으니 '옷'걱정

[로마나의 열여덟살 일기] 연재하며...

▲ 김 로마나
김 로마나(18)양은 고교 1학년 때인 지난해 다니던 학교를 자퇴했다. 그날로 교복을 벗고 집과 인근의 도서관을 오가며 즐겁게 공부중이다.

사업을 하는 부모님 밑에서 홈스쿨링(home scooling)을 하면서 부족하다고 느끼는 일부 과목에 대해서만 학원수업으로 보충할 뿐 스스로 학습일정을 짜고 공부하고 있다. 물론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대학진학을 목표하고 있다.

로마나는 세례명이다. 1990년 11월 13일 서귀포에서 태어났다. 지금은 제주시에서 생활하지만 지금도 스트레스가 쌓이면 5·16도로에서 서귀포행 버스에 몸을 싣고 흔들리는 차안에서 이어폰을 꽂은 채 책읽기를 즐겨하는 흔히(?) 만나는 10대 청소년이다. 가장 좋아하는 책은 ‘아기참새 찌꾸’ ‘슬램덩크’다.

로마나의 좌우명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할 뿐!’이다. 로마나는 된장처럼 구수하고 물리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제주의 소리>는 공교육과 학교라는 틀 밖에서 부모가 자녀의 적성과 특성에 맞는 교육을 직접 설계하는 ‘홈 스쿨링’ 청소년의 이야기를 생생히 듣는 ‘로마나의 열여덟 일기’ 코너를 마련했다.

자칫 불안할 수 있는 학교밖에서 이리저리 부딪치며 열심히 공부하는 로마나 양의 이야기에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편집자>

오랜만의 외출. 학교를 그만두고 나서는 아무래도 집 밖에 나갈 일이 없는 터라 늘 무릎 나온 트레이닝복에 목이 잔뜩 늘어 난 티셔츠만 입고 있다.

그래서 외출하게 될 때면 무슨 옷을 입어야 할까 싶어 고민하게 되곤 한다.

옷장을 열 때마다, 아직 버리지 않은 교복이 보인다. 체크무늬의 교복. 학교에 있을 때에도, 하굣길에 분식집에 들러 떡볶이를 사먹을 때에도, 독서실에서 풀리지 않는 문제를 보며 뒤통수를 벅벅 긁을 때에도 늘 입고 있던 교복. 그리고 어느 상황에서나 가장 어울리는 옷이고, 가장 '다운'옷이었던 교복.

사실 학교를 다닐 땐 교복이라는 든든한 갑옷이 있었으니 어딜 가건 옷 걱정을 해 본 적은 없었다. 그렇지만 교복을 벗는 순간, 나는 절대 해 볼 일이 없으리라 생각했던 '옷 걱정'을 자연스럽게 시작하고 있었다.

누구에게나 잘 어울린다는 청바지는 그렇다 치고, 상의를 고르느라 10분을 훌쩍 넘기는 일도 비일비재. ‘이 남방은 너무 어른 티 나지 않나? 그렇지만 이 티셔츠는 너무 어린애 같은 걸.’ 그렇게 한참을 이 옷 저 옷 뒤적이다 결국은 아무거나 손에 잡히는 대로 입고 외출을 하지만, 예전엔 그저 내 옷이거니 싶던 옷들도 왠지 남의 옷을 빌려 입은 것처럼 껄끄럽고 어색한 기분이 든다.

교복이 메우고 있던 딱 맞는 옷의 공백은 생각보다 컸다. 열여덟 살. 대한민국엔 수천 명도 넘는 열여덟 살이 있지만 그런 열여덟 살을 위한 딱 맞는 옷은 없다. 열여덟 살을 위한 책이 없고, 열여덟 살을 위한 영화가 없는 것처럼.

사실 몇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교복이 있었고, 교과서가 있었기 때문에 그런 불편함을 느낄 새도 없었다. 어쩌다 한 번씩 있는 휴일엔 ‘모처럼 이니까.’ 하는 생각으로 어른스럽게 꾸며 입고 당당하게 거리를 활보하곤 했었다.

앞으로 몇 년 만 더 있으면 매일같이 입고 다닐 옷인데 뭐가 그리 즐겁고 신기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그 ‘모처럼’이 아닌 일상이라면 매일같이 어른스레 챙겨 입는 것도 보기 나쁘다. 부모님과 주위사람들의 눈부터 버스요금 700원을 낼 때 기사아저씨의 의심스런 눈초리까지.

모처럼의 휴일 날, 책이라도 읽으면 좋으련만 그런 것 쯤 평소에도 할 수 있는 일이라며 친구들과 노래방엘 가고, 음식점엘 가고, 조금 무리해서 카페까지 가다 보면 어느새 휴일의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곤 했다. 물론 평소에 그만큼 책을 열심히 읽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학교에 묶여있는데 학교에서 읽을 수 있는 책이란 건 상당히 한정되어있게 마련이니까.

그리고 학교에서 읽을 수 있는 책은 추천도서에 올라있는 책들이 다 그렇듯 어렵고 지루한 글들이거나, 첫 페이지를 읽으면 마지막 장이 짐작되어 유치하단 생각이 들 정도인 아동문고가 대부분이니 책을 읽을 맛이 나질 않는 것이다.

그런데도 TV광고의 내용에나 추천도서 목록 표 위에 나오는 자료는 ‘한국 청소년의 평균 독서량이 한 달 평균 몇 권이고, 이건 어느 나라와 비교해서 몇 퍼센트, 어느 나라와 비교해서 몇 퍼센트가 모자라는 양이다.’ 하는 내용들 뿐.

그런데다 저조한 독서량의 주범으로 손꼽히는 것들은 놀기 좋아하는 청소년들의 습성, 컴퓨터, TV프로그램들이 대부분이다. 청소년이 읽을 책이 없다는 사실은 누구에게도 크게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컴퓨터보다, TV 프로그램보다 더 '재미'있다면 제아무리 놀기 좋아하는 청소년이라 해도 즐겁게 읽을 수 있을텐데.

학교에 메여있던 시간을 완전히 내 스스로 관리하게 되고 나서부터 나는 ‘넘치는 시간’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무료함을 쫓기 위해 해보지 않은 일이 없다. 생전 해보지 않았던 온라인게임도 해 보고, 만화책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읽어보기도 했다. TV프로그램의 편성표를 외울 정도로 TV 앞에  달라붙어 있기, 보고 싶었던 영화 리스트 뽑아서 다 빌려다 보기도 제법 즐거운 일 중 하나였다.

그렇지만 그저 손 안의 시간을 흘려보내는 데 불과한 일들에 열중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만화책은 ABC 순서만 뒤바꾼 같은 이야기 일색이었고, TV에선 같은 프로그램을 왜 그리 많이, 자주 방영하는지. 온라인게임은 금전난 탓에 그리 오래 할 수 없었고, 영화는 한꺼번에 너무 많이 보아서 어느 게 어느 영화인지도 모를 판이었다. 신물이 나서 정말로 마음속에 남는 책 한권, 영화 한편을 보고 싶어도 ‘볼 게’없었다.

서점엘 가면 20대 초 중반을 위한 책이 있고,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있는 사람을 위한 책도 있다. 그렇지만 10대를 위한 책은 대부분 구석에 몇 권 꽂혀있는 게 전부다.

열다섯과 열여섯은 언뜻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열셋과 열여섯은 천지차이. 몸에 성장기가 찾아오고, 몸이 자라나는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자라나는 생각과, 변하는 관심사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열셋과 열아홉을 위한 책을 한데 묶는 건 어째서일까?

열여덟이 읽을 열여덟을 위한 책은 정말로 드물다. 열셋을 위한 책을 읽거나, 아니면 파우스트니 벽이니 하는 ‘논문 급으로 어려운’ 책을 읽거나, 그도 아니면 어른들이 킬링타임이라며 색안경을 끼는 장르문학, 혹은 만화책정도가 읽을 수 있는 전부이다.

읽는 이가 없으니 열여덟을 위한 책이 없는 것이고, 입는 이가 없으니 열여덟을 위한 옷이 없다고 한다. 그렇지만 사실 수요와 공급 중 어느 것이 먼저인가를 따지는 것은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를 따지는 것만큼이나 우스꽝스러운 일이 아닌가. 공급이 있다면 수요가 생기고, 수요가 있다면 공급이 창출되는 것이니까.

열여덟에게는 열여덟의 옷이 필요하다. 열여덟에게는 열여덟의 책과 영화가 필요하다. 스물 셋과 서른의 세계가 있는 것처럼, 열여덟에게는 열여덟의 세계가 있다. 흔히들 청소년을 ‘주변인’이라고 표현하지만, 어린아이와 어른의 사이에서 왜 청소년은 주변인으로 취급되어야 하는 것일까.

어린이의 세계에도 어른의 세계에도 끼지 못하는 과도기가 아니라, ‘청소년’이라는 하나의 세계 안에 소속된 것으로 보여 질 수는 없는 것일까?

오늘은 모처럼 외출을 하는 날. 그렇지만 달갑지 않게 찾아 입은 숙녀복 탓에 그렇게 설레는 외출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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