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수의 좌충우돌 디카사진 찍기 (3)
1년 6개월, 그와 지낸 기간은 대충 그 정도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를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한 이후 거의 매일 그는 나와 함께 다녔지요.
아내보다도 아이들보다도 더 많이 나와 함께 제주의 들판을 걸어다녔고, 제주의 바다에서 연인처럼 데이트를 나눴습니다. 그 작은 것을 들고 사진을 찍으면서도 고급카메라를 부러워하지 않았고, 내가 원하는 것 이상의 작품(?)을 만들어주는 그 작은 카메라가 너무 고마웠습니다.
1. 똑딱이 카메라의 장점
물론 요즘 나오는 일체형 디카 가운데에서는 DSLR카메라를 닮은 묵직한 것들도 있고, 작아도 화소수나 기능면에서 초창기의 300만 화소 디카와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600만화소가 보편화되면서부터의 똑딱이카메라는 이미 많은 부분에서 DSLR카메라와 큰 차이 없이 사진을 담을 수 있을 만큼 진보하였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LCD창이 있어서 일일이 엎드려서 찍지 않아도 낮은 곳에 있는 것을 찍을 수 있는 장점도 있어 겨울철이나 비온 뒤 낮게 포복하기 어려운 곳에서는 제격이지요. 게다가 단점이기도 하지만 심도가 깊어서 주위 배경까지도 담을 수 있어서 지나치게 뒷배경이 지워지는 단점도 커버할 수가 있습니다.
일곱번째 계명, 카메라 액세서리를 갖추려는 욕심에 빠지면 한도 끝도 없다. 기본적인 기능을 잘 익히면 엑세서리가 없어도 충분히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액세서리로 치장한 이들이 좋은 사진을 찍는 것은 아니다.
요즘에는 DSLR카메라도 LCD창을 통해서 촬영 전의 화면을 볼 수 있는 기능이 있는 것도 있고, 다른 연결기구를 통해서 편안하게 촬영할 수는 있습니다만 카메라와 관련된 소품을 필요한 대로 사다 보면 짐만 늘어납니다. 출사를 할 때 짐 하나가 주는 부담을 생각한다면 똑딱이 카메라가 제격입니다.
2. 사진의 세계로 빠져들게 만들었던 몇 가지 즐거운 추억들
오마이뉴스에 들꽃이야기를 자체 연재하고 얼마되지 않아 출판사로부터 출판제의가 있었습니다. 들꽃이야기는 워낙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 그 전에 포토에세이로 썼던 것을 먼저 출판하기로 했지요. 그것이 <달팽이는 느리고, 호박은 못 생겼다>는 자연산문집이었습니다. 처녀작이라는 설렘이 사진찍기와 글쓰기로 저를 몰아넣었던 것이지요.
미안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주변에 있는 작은 것들이 주는 의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작은 꽃들을 하나둘 만나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나의 의식도 '작은 것'에 대한 관심영역을 넓혀가게 되었습니다.
들꽃뿐 아니라 사람들 중에도 작아서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깊이 각인하게 된 것입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화두는 아직도 내 삶의 화두이지만 들꽃들을 바라보듯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작게 여겨지는 이들과 눈높이를 같이하는지 늘 반성하면서 살아가지요.
사진 한 장이 이런 힘을 가질 수 있다는 것, 잘난 사진은 아니지만 그 사진 하나만으로 누군가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는 것은 또 얼마나 행복한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저는 제주에 있을 때 시골교회를 담임하고 있었습니다. 새벽예배 끝나고 아침을 먹기 전까지 사진 찍고 글을 쓰기가 가장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서울에서 생활해 보니 일어나서 사무실책상에 앉기까지의 시간이더군요. 그렇게 아침을 먹기 전까지 3시간, 그리고 간혹 짬을 내서 열심이 사진을 찍고 그에 대한 글을 썼지요. 어느 날 20년 이상 농촌목회를 하신 선배 목사님께 전화를 받았습니다.
"난 그동안 어떻게 하면 농촌교회를 떠날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20년 동안 불행한 목회를 했습니다. 그런데 후배 목사님을 보니 얼마나 행복하게 목회를 하는지 부끄러웠습니다. 이제 나도 그런 마음을 가지고 목회를 하겠습니다."
몸둘 바를 모를 정도로 부끄러웠지만 이 역시도 나의 사진찍기와 글쓰기가 단지 외도가 아니라는 자부심을 갖게 하였지요.
3. 사진만으로 이야기 할 수도 있지만
디카가 보급되면서 인터넷상에는 수없이 많은 사진들이 떠돌고 있습니다. 감탄에 또 감탄을 하게 하는 사진도 많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사진 따로, 글 따로 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나는 들꽃에 관심이 있었기에 꽃사진에 관심이 많았는데 사진만으로는 양이 차지 않았습니다. 내용을 찾아보면 사진이 바쳐주지 않고, 내용과 사진이 되면 단순히 식물의 특성 정도만 설명하고 있더군요. 그래서 조금 다른 각도에서 들꽃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 것입니다.
여덟번째 계명, 사진에 대한 간략한 느낌들을 정리하자. 차후에 다른 느낌들로 다가올 수도 있지만 그 당시의 느낌이 가장 그 사진의 주제와 가깝다.
나는 글감의 소재가 되는 사진을 찍었다고 생각하면 그 날이 지나기 전에 사진에 대한 글을 쓰는 스타일입니다. 하루 이틀 지나면 그 당시의 느낌들이 살아나질 않기 때문이지요.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날이면 하루에 거의 100여컷 정도 찍었는데 그 중에 쓸만한 사진 한 장은 나오기 마련입니다. 그러다보니 거의 매일 오마이뉴스에 글과 사진을 올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서울생활을 하면서는 한번 마음먹고 나가야 100여컷, 그것으로 한 주간을 살아갑니다. 그것도 매주 나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닌데다가 그동안 사진의 주제로 삼고 있던 들꽃을 벗어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기에 카메라와 소원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아홉번째 계명, 자기가 잘 찍었다고 생각하는 사진에 대한 혹평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러나 올리는 사진마다 호평을 들은 것은 아닙니다. 때론 "그것도 사진이냐?"는 혹평을 듣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자기만의 색깔이 들어 있으면 되는 것이고, 혹평은 참고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훈련이 되면 혹평이 얼마나 고마운 평가였는지 알 수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진에 대한 평가들은 호평이든 혹평이든 다 고맙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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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기사에서 사용된 사진은 모두 300만화소 디카로 찍은 사진들입니다. 다음 기사는 "Av, Tv, ISO만 잘 다루면 작품나온다"는 제목으로 DSLR의 장단점에 대한 이야기, 카메라 구입 전에 생각해야 할 점들과 렌즈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