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오름기행] 가을 위에 드러누운 새별오름

"셋, 둘, 하나, 와---."
지난 2월 11일 19시 30분,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 산 59-8번지 일대에 울려 퍼졌던 10만 인파의 함성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정월대보름 들불축제는 새별오름 능선에 불이 지폈다. 새별오름 5개의 봉우리는 달빛, 불빛, 춤사위에 잠이 들었고, 그날 밤 새별오름은 까맣게 불타버렸다.

 
▲ 정월대보름 들불축제로 새별오름을 불태웠는데, 새별오름 능선은 가을 꽃으로 가득합니다.
ⓒ 김강임
 
자연은 죽었던 땅을 다시 살아나게 하는 마술이 있는 걸까. 그날 이후, 새별오름은 다시 태어나기 시작했다. 봄의 따스한 기운은 새싹이 돋아나고, 여름의 강렬한 햇빛은 푸름을 선물하더니, 가을은 새별오름에게 꽃과 나비를 선물했다.

'저녁하늘에 새별과 같이 외롭게 서 있다'는 새별오름. 가을이 초입에 들어서던 지난 9월2일, 새별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새별오름 앞 광장에 서 있으려니 어디선가 지난겨울 함성이 들리는 듯 했다. 고추잠자리 한마리가 그 여백을 채운다.

 
▲ 능선위에는 오르미들의 발길이 이어집니다.
ⓒ 김강임
 
불타버린 오름 등성이는 상처를 잊었나 보다. 정월보름 들불축제 때 "불이야! 불이야!" 소리 질렀던 오름 앞 광장에서 초원으로 뒤덮인 오름을 보니 갑자기 숙연해 진다. 자연의 상처는 계절이 지나 갈 때마다 그 아픔도 치유되나 보다.

 
▲ 오름 중탁을 가로지르는 오토바이 동호인들이 환호성을 지릅니다.
ⓒ 김강임
 
초원을 헤집고 오른쪽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보았다. 아직은 여름 햇빛을 먹고 자란 잡초가 무성하다. 오름 등성이에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목가적인 풍경 뒤로 초원을 달리는 오토바이 애호가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오름은 인간은 물론 동물들까지 살찌게 만드는 비결이 숨어 있다.

 
▲ 새별오름 주변은 벌써 리조트 단지가 들어섰습니다.
ⓒ 김강임
 
표고 519.3m의 새별오름 주변은 개발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허허벌판이었던 오름 주변에 어느새 리조트 단지가 들어섰다. 인간과 자연을 연계한 상술은 오름 중턱에까지 파고들었다. 인간은 자연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자연에게 얼마나 몹쓸 짓을 하는가. 뒤돌아서서 바라보는 세상의 풍경이 그리 홀가분하지만은 않다.

 
▲ 등산로에는 가을꽃들이 마중을 나왔습니다.
ⓒ 김강임
 
무성한 잡초 속에서는 가을꽃들이 얼굴을 내밀었다. 보랏빛 얼굴을 무릇, 여름과 가을의 교차로에 있는 이질풀, 그리고 한겨울에도 피어난다는 쑥부쟁이가 좁은 등산로 마중 나왔다. 계절을 잊고 피어있는 철부지 꽃들이 오르미를 반긴다. 서로 얼굴을 내미는 들꽃과 눈인사를 하느라 발걸음이 늦어졌다.

 
▲ 마치 가을꽃 전시장을 방불케 합니다.
ⓒ 김강임
 
꽃 전시장에 온 느낌이랄까. "야- 이 녀석들, 그 뜨거운 불길 속에서도 다시 살아있었네!" 간간히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가녀린 줄기, 불타버린 대지 앞에 불평한마디 하지 않고 다시 태어나는 끈질긴 생명력, 오름 위에 피는 가을꽃들은 불속에서 다시 태어났다.

 
▲ 멀리 한라산이 보입니다. 백록담 분화구에서는 구름이 피어 오릅니다.
ⓒ 김강임
 
남봉에서 갈라지는 봉우리를 밟으니 제주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제아무리 오름이 높다한들 한라산만큼 높겠는가. 하지만 제주의 오름 정상에 서면 한라산 동능 정상을 기어오른 것보다 더한 쾌감을 누린다.

 
▲ 말굽형화구에는 죽은자의 터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 김강임
 
말굽형 분화구 안에는 죽은 자의 터가 자리 잡았다. '제주 인들은 죽어서도 오름에 묻힌다'더니, 어찌 말굽형분화구까지 상여를 메고 들어올 생각을 했을까. 이렇듯 오름은 어느 누구도 차별하지 않는다. 산자는 오름에 올라 봉우리를 바라보고, 죽은 자는 오름에 올라 영원한 안식처에 묻힌다.

 
▲ 마치 가을 신부가 부케를 든 것 같지요.
ⓒ 김강임
 
새별오름 중턱에 하얗게 핀 사위질빵이 가을의 신부 같다. 가을에 태어난 신부는 나비를 초대했다. 이렇듯 오름 위에 피는 꽃들은 각양각색의 테마가 있다. 불타버린 오름은 죽어 버린 줄만 알았는데, 온갖 동식물이 서식하고 야생화가 천국을 이루고 있으니 자연은 참으로 위대하다.

 
▲ 야생화를 잘 모르지만, 새별오름은 가을꽃 위에 드러누워 있는것 같더군요.
ⓒ 김강임
 
잡초에 숨어 피는 야생화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주었으면 좋으련만, 야생화에 문외한이니 그저 답답할 뿐이다. 이달봉 오름을 등에 지고 내려오는 오는데 공동묘지가 눈에 띄었다. 가을꽃들을 한줌 꺾어 묘지 앞에 바친다. 그랬더니 가을위에 드러누운 새별오름은 저녁하늘에 뜬 '새별'처럼 빛이 나더라.

 
  새별오름  
 
 
 

새별오름은 제주시 애월읍 산 59-8번지에 있다. 새별오름은 표고 519.3m, 비고 119m, 둘레 2,713m로 말굽형 분화구를 가진 오름이다. 새별오름은 효성악, 신성악(曉星岳, 晨星岳)이라고도 하며 오름전체가 풀밭을 이룬다. 정월대보름에는 들불축제를 개최하는 곳이기도 하다.

새별오름 남봉을 정점으로 남서, 북서, 북동방향으로 등성이가 있으며, 등성이마다 봉우리가 있다. 서쪽은 삼태기모양으로 넓게 열려있고, 북쪽은 우묵하게 패여 있으며, 별표처럼 둥그런 5개의 봉우리가 존재한다. -제주시 관광정보-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도 실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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