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를 가슴에 묻다…"豚公(돈공)들이 무슨 罪(죄)가 있으랴"

 

돼지 추모비가 세워져 있는 한 농장의 입구

추모비(追慕碑)의 사전적 의미는 ‘죽은 사람을 그리며 생각하기 위하여 세운 비’입니다. 다시 말해 고인(故人)의 살아 생전의 업적이나 선행을 기리고 나아가 후세들의 귀감을 삼고자 추모비를 세우는 것입니다.

따라서 추모비라 하면 보통 사람을 떠올리게 됩니다.  하지만 동물을 위한 추모비도 있습니다.

▲ 송현우 화백
일전에 도깨비 뉴스에 소개되기도 했습니다만 기르던 애완견을 위해 추모비를 세우는 분도 있고, 가축들을 도살하는 도축장에 가면 ‘인간을 위해 희생하는’ 소,돼지 등 동물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수혼비(獸魂碑)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주도의 한 농장에 세워진 ‘돼지 추모비’는 말 그대로 돼지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순수한 추모의 비입니다.

이 추모비엔 가슴 아픈 사연이 녹아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4 년 전 농장에서 키우던 돼지들이 화재로 불에 타 죽자 이를 쓰라리게 지켜봐야 했던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잘못으로 어미 돼지,새끼 돼지 등이 불에 타 죽자 이를 가슴에 묻습니다.

이렇게 세워진 돼지 추묘비에는 돼지들을 향한 이들의 애틋한 마음을 잘 녹아있습니다.추모비에는 돼지들을 위한 이런 추모사가 새겨져있습니다.

'2002년 봄,햇살이 여물어가는 4월 초나 나흘날 신의 사랑속에 평화로운 삶을 살아가는 돈공(어미 돈, 포유자 돈, 성장의 꿈을 품은 이유자 돈)들에게 화의 재난이 그들의 생을 마치게 하였으니, 돈공들이 무슨 죄가 있으랴. 엄청난 재난의 벌을 인간의 죄를 대신한 것인데......

돈공들의 희생을 슬퍼하며 그 넋을 영원히 기리며 우리를 대신한 돈공들의 희생의 뜻을 그대들의 혈(후대)에 인간의 사랑과 정성으로 보살펴 번창시켜서 보답할 것을 돈령님들께 약속드리오니 불멸의 세상에서 편히 잠드소서...'

서기 2002년 8월 23일 임직원 일동

이 추모비를 세웠던 이들은 끝내 이곳에 머물 수가 없었던 것일까요? 당시 이 추모비를 세웠던 사람들은 모두가 이 농장을 떠났다는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이 농장을 새로 인수했다는 농장 관계자도 ‘떠올리고 싶지도 않다’며 돼지 추모비 자체가 소개되는 것 조차 꺼리셨습니다.

‘인간을 위해 희생하는 동물들을 한 번 되돌아보자는 뜻’이라며 기사의 취지를 애써 설명하자 마뜩찮아 하시면서 제한적인 취재만 허락하셨습니다.

축사에 있는 돼지 사진도 찍고 싶었지만 ‘돼지들이 질병에 취약하기 때문에 외부인의 출입을 절대금지 시킨다’며 거절하더군요.

이곳을 두어 차례 방문하는 동안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하고,애지중지하던 카메라가 부서지는 등 우여곡절 끝에 어렵사리 취재를 마쳤습니다만, 돌아오는 발길이 그리 유쾌하지는 못했습니다.

인간을 위해 가장 많이 희생당하는 돼지... 그들이 불에 타 죽자 자신의 탓이라며
추모비까지 세웠던 그네들의 아픔과 돼지를 향한 깊은 사랑이 긴 여운을 남깁니다.


진입로


진입로를 따라 가면 '돼지들의 대기소'가 나옵니다.


농장에서 팔려가는 돼지들이 마지막으로 머무는 '대기소'


이곳에서 돼지들은 잠시 머물다가 이윽고 차량이 도착하면
그들을 키워낸 사람들과 '마지막 고별'을 합니다.


돼지 추모비로 향하는 길엔 위압스런 철탑이 세워져 있습니다.


이곳을 처음 찾았던 날엔 부슬비가 '부슬부슬' 내렸습니다.


돼지들이 사는 돈사


조금 더 가면 추모비가 나옵니다.


추모비 너머에 있는 돈사


돼지 추모비


피었던 꽃들은 이미 지고...


이곳을 처음 찾았던 날엔 추모비 주변에 꽃들이
피어 있었습니다.


추모비에 새겨진 그들의 아픔...


농장의 사무실 내에 걸려있는 사진


제주도 내에 소재한 한 도축장에 세워진 수혼비
(이 앞에서 1년에 한차례 성대한 제사가 치러집니다.
인간을 위해 희생하는 소,돼지 등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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