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기자단] 청춘에게 봄은 아직… / 오군성 대학생기자·연세대 법학과

청춘은 봄(春)이다. 봄은 얼어붙은 땅 위에서 만물이 소생하는 시기이다. 봄이 그러하듯, 청춘은 그 자체로 싱그럽다. 하지만 우리 시대의 청춘은 ‘아프다’. 치열한 경쟁이 가져오는 미래에 대한 불안은 피어나려는 청춘을 자꾸만 움츠리게 한다. 청춘은 외롭다. 인터넷과 SNS의 발달로 서로의 거리가 좁혀지고 다양한 생각을 공유할 수 있기를 바랐지만 공허함만 더할 뿐이고, 누구나 하나씩 쥐고 있는 스마트폰은 차갑기만 하다. 청춘에게 봄은 아직 요원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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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에도 어김없이 봄은 왔다. 벚꽃이 활짝 핀 4.3평화공원. ⓒ오군성
 제주의 봄은 봄바람에 슬픈 역사를 함께 싣고 온다. 지워질 수 없는,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 4.3사건. 올해는 우여곡절 끝에 4월 3일이 국가추념일로 지정되어 국가적 차원에서 추념식 행사가 거행되었다. 추념식에는 많은 정치인들이 참석하였고, 그만큼 언론의 관심도 뜨거웠다. 하지만 국가추념일 지정이 4.3 문제의 끝인 것 마냥 홍보하는 분위기, 행사 참석 여부에만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들 속에서 역사에 대한 진정성을 느끼기는 힘들었다. 나를 더욱 무력하게 했던 것은 행사장에서 청춘들을 찾아볼 수 없었던 점이다. 

 이 날 평화기념관에서 4.3을 주제로 목판화 전시회를 가진 박경훈 작가는 “젊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보는 것이 중요하다. 4.3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자기 안에 타자화 되어가고 있다”며 행사장에 청춘이 별로 보이지 않음을 아쉬워했다. 성찰적 내면이 결여된 청춘, 역사적 감수성이 없는 청춘, 타인의 권위에 의존하고 타자의 욕망에 의해 지배되고 소비되는 청춘이 이 시대 청춘의 현 주소인 것 같아 씁쓸했다.

“유례없는 경쟁사회에서 우리는 조금씩 지쳐있다. 그렇더라도 마음이 무거워져야 할 때 그 무거운 마음을 나누어 짊어지는 것도 우리의 의무다.” (황현산, 밤이 선생이다)

 무거운 마음을 짊어진다는 것, 그 시작은 아마도 봄(見)일 것이다. ‘보면 알게 되고, 알면 사랑하게 된다’는 말이 있듯 ‘봄’은 앎의 시작이자 관계의 시작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진정한 의미의 봄(見)이 결여 되어있다. 인터넷 발달과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엄청난 정보에 노출되어 있지만 정보의 질은 떨어지고, 그마저도 대부분은 소비를 위한 관심을 끄는 정보들이다. 여기에서 관심의 불균형이 생긴다.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 기준이 흔들린다. 니체는 [우상과 황혼]에서 교육자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세 가지 과업을 거론하는 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보는 것’이다. 우리는 많은 것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자극에 즉시 반응하지 않고 속도를 늦추고 중단하는 본능을 배워야”만이 진정한 의미의 봄, 성찰적 봄, 주체적인 봄(見)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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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희생자 중 시신을 찾지 못해 묘가 없는 행방불명인을 모신 공간. 4.3평화공원 가장 안에 위치해 있다. ⓒ오군성


 청춘의 봄(見)은 어떠한가. 학생들은 입시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한 눈 팔지 말고 교과서만 보라고 배운다. 가까스로 입시라는 문턱을 넘어 대학생이 되어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캠퍼스의 낭만을 만끽하기도 전에 취업에 대한 걱정,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모두들 스펙 경쟁에 뛰어든다.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없다. 자신을 이끄는 힘이 무엇인지 모른 체 달려가는 이들에게 ‘힐링’이라는 단어가 그나마 위로가 된다. 힐링을 설파하는 이들은 지쳐있는 이들에게 ‘나로부터 의미를 찾으라’고 속삭인다. 그들의 시선은 오로지 자신 내부로 향한다. 그리고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기억의 바닥에서 잠자고 있던 어릴 적 꿈도 한 번씩 떠올려보지만 잠깐의 ‘힐링’ 끝에 기다리는 건 다시 냉혹한 현실이다.

 진정으로 ‘자기 찾기’를 하고자 한다면 타인과 무관한 존재로서의 나를 묻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을 포함한 이 네트워크는 어떤 구조이고, 이 속에서 나는 어떤 존재인가’를 물어야 한다. 나를 지배하고 있는 욕망이 나의 것인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고 있는 건 아닌지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나’에 관한 물음은 내가 속한 ‘관계’에 대한 물음이며 내가 행하고 있는 ‘역할’의 적합성에 대한 질문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구성하고 있는 ‘사회’에 대한 정당성을 묻는 질문의 성격을 지녀야 한다. 이러한 질문을 던짐으로써 주체적인 자아를 회복하고, 주체적인 봄(見)을 통해 유기체적 존재로서의 연대감을 형성해가야 한다.

 [제주의소리] 대학생 기자단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지원하게 되었다. 주체성을 잃고 연대감마저 사라져버린 이 시대 청춘들이 하고 있을 고민을 함께 공유하고 싶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경쟁 속에서 우리가 달리고 있는 이유는 알고 있는지 묻고 싶었다. 그리고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남의 문제를 외면하고 주변을 돌아보지 않았던 지난 시간들에 대한 반성의 마음도 컸다.

 이제 무거운 마음을 짊어지는 마음으로 우리 지역 사회를 더욱 가까이서 바라보고, 청춘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보고자 한다. 진정성 있는 기사로 공허한 외침이 아닌 함께 공감하고 공명할 수 있는 하나의 소리가 되고 싶다. 친근하고 참신한 시각으로 우리 주변과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따뜻한 창이 되고 싶다. 청춘의 봄(見)을 통해 진정한 봄(春)이 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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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군성 [제주의소리] 대학생 기자.
이십대 초반에는 무얼 하든 그게 다 과정인 것 같았는데 이제는 모든 게 결과인 듯해 살짝 초조하기도 하다. 조금 더디더라도 내 생의 주체가 되어 나의 그림을 그리고 싶다. 서울에서 법학을 전공했지만 아직도 누가 나에게 특기를 물으면 초등학교 때부터 해온 축구라고 대답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 잘 하는 것이 누군가의 ‘필요’를 만나 어떠한 ‘의미’가 된다면 더없이 행복하겠다. / 연세대 법학과 06학번. 휴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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