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혁이 떠난 러시아 여행] (9) 키르케네스 下

 

   

몇몇 건물을 찾아다니며 물어본 끝에 간신히 비자쎈타를 찾을 수 있었다. 항구의 대형 화물 창고같은, 입구에 아무런 표시나 간판도 없는 건물의 2층 구석진 곳에서 두사람의 여직원은 밝게 웃으며 나를 반겨주었다.

그러나 그들도 나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의 조언은 이 곳에 있는 여행사를 찾아가서 도움을 구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다. 내가 허탈해 하며 어쩔줄 모르고 있는데, 찢어진 청바지를 입은 키작은 금발의 여자가 여권 한뭉치와 서류들을 들고, 들어왔다. 비자쎈터의 직원은 그녀의 업무를 처리하고 나서 나를 불렀다. 여행사에서 온 사람이니 얘기해 보라는 것이다. 그녀에게 러시아로 입국하는 비자를 받아야하는 사정을 설명하고, 그녀는 회사로 전화를 걸어서 한참을 통화했다. 그리고 나를 돌아보며 한마디 뱉었다.

‘Impossible!’

가슴이 철렁 내려 앉으며, 암담해지기 시작했다.

이어서 그녀는 내가 비자를 발급받기 위해서는 최소한 일주일 이상을 여기에 머물러야 한다고 말했다. 일주일 후는 내가 러시아 세례메티예보 공항에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하는 날이었다. 러시아에 있었다면 한국의 여행사에 연락하여 돌아가는 날을 연기하고, 일주일쯤 여행을 더할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여기서 일주일 넘게 하릴없이 머물러있는다는 것은 좀 곤란한 일이었다.

업무를 마친 그녀의 낡은 니싼 승용차로 함께 여행사로 갔다. 시내 광장 주변의 내가 묵었던 호텔에서도 가까운 곳이었다. 직원들이 함께 모여서 음식을 먹다가 들어서는 나를 맞아주었다. 그들은 잠깐 의견을 나누고나서 나이가 좀 들어보이는 여인이 나에게 해결책을 제시하였다. 

러시아 비자를 신청하지 말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짜에 오슬로로 간 다음 오슬로공항에서 세례몌티예보 공항으로 갔다가 바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면 된다. 대신 러시아 공항 터미날 안 환승구역에 머물러야하고, 공항밖으로 나가면 안된다.

그 제안에 동의했다. 결국 더 이상의 러시아 여행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바로 키르케네스에서 오슬로 가는 비행기와 오슬로에서 세례몌티예보 공항가는 비행기를 예약하고 나는 신용카드로 결제를 했다. 

여행사를 나와서 카페에 들어가 늦은 점심을 햄버거와 맥주 한잔으로 목을 축이고, 잠시 한숨을 돌렸다. 그리고 다시 생각해보니 나흘이나 이곳에 있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기왕에 이렇게 됐으니 일찍 오슬로로 가서 관광을 한 다음에 러시아로 가는게 좋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여행사로 다시 가서 날짜를 바꿔줄 것을 요청하였다. 이틀을 앞당겨 오슬로 가는 비행기를 다시 예약했는데, 추가비용이 500크로네(약 10만원)이나 더 들었다. 다시 오기 어려운 오슬로관광을 할 수 있다는데 의미를 두면서 비용을 감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은행의 현금 지급기에서 크로네 현금 서비스를 받아서 아침에 작별인사를 했던 바렌츠 프록코스트 호텔로 향했다. 신용카드는 마치 돈이 샘솟는 화수분처럼 돈을 만들어내고 있었고, 돈에 대한 감각을 무디게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물어내야하는 빚이 자꾸 늘어가고 있었다.

호텔에 루바는 안 보이고, 스타이날이 데스크를 지키고 있었다. 스타이날은 나를 보고 반가워하면서 내가 배낭을 두고갔다면서 호들갑스럽게 큰소리로 말하였다. 그에게 이틀을 더머물러야 하는 사정을 얘기하고, 조금 가격이 싼 방을 요청했다. 일인용 침대 하나와 TV만 있고, 밖에 있는 공동 화장실을 쓰는 방이었는데, 1일 800크로네다. 한국돈으로 15만원이 넘는다.

이제 모든 것이 정리된 것같은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내일은 차를 한 대 렌트하여 북쪽으로 나가서 피요르드 협곡과 바렌츠해를 돌아보기로 계획했다. 호텔 왼편 옆으로 몇집 건너에 있는 기념품 가게 앞에는 렌터카를 쓸 수 있다는 문구가 씌여있는 표지판이 있었다. 가게는 여행객들에게 기념품을 팔면서, 여행사이기도 했고, 렌터카회사도 겸하고 있는 것이다. 

저녁에 루바와 스타이날은 오늘은 이 호텔에 손님이 나 혼자뿐이고, 아무도 없으니 집을 잘 지키라는 말을 남기고 조금 일찍 퇴근했다. 그들 부부가 나가고나니 마치 집을 비우고 여행을 떠난 친구집에 놀러간 것같은 편안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어제 약속한대로 9시에 맞춰서 기념품 가게로 나갔다. 차는 폭스바겐 폴로 소형 승용차다. 가게의 여직원은 E6 도로를 따라 러시아 국경쪽으로 1시간 정도를 달려서 57km를 가면 바렌츠해에 맞닿아 있는 노르웨이의 끝에 도달하고 경치가 끝내준다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활짝 웃었다. 

 

▲ 이스트 핀마르크(East Finnmark)라는 노르웨이 북동지방의 풍경. 위쪽의 희끗하게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 바위언덕이다. ⓒ양기혁

시내를 벗어나자 차들의 왕래가 많지 않고, 한적한 도로는 속도제한을 알리는 표지판이 거의 없고, 따라서 감시 카메라도 하나없이 시원하게 뚫려있다. 대부분 차들이 나를 추월하여 빠른 속도로 지나갔다. 

E6도로는 유러피언 루트(European route)의 하나로 우리나라의 국도처럼 노르웨이의 남쪽에서부터 북쪽끝까지 이어진 도로인데, 가게의 여직원은 E6에서 갈라지는 2차도로(secondary road)를 얘기해주지 않아 처음부터 나는 길을 잘못들었는지 그녀가 말한 한시간을 훨씬 넘기고도 노르웨이의 끝에 다다를 수 없었다. 반대쪽으로 달리고 있었으나 이스트 핀마르크(East Finnmark)라 불리는 노르웨이 북동지방 특유의 풍광을 한껏 만끽할 수 있었다. 완만하게 경사를 이룬 해안에 집들이 별장처럼 드문드문 들어서있고, 혹은 이끼낀 암석투성이의 황무지 주변 바닷가에 작은 마을을 이루고있기도 했다. 북쪽으로 갈수록 기이한 바위산들과 마치 지구밖의 먼 행성처럼 바위로 된 해안절벽들이 나타나며 독특한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서너시간을 달려 계곡의 다리를 건너갔는데 여기서 E6도로를 고집해 방향을 잡는 바람에 차는 노르웨이의 남쪽방향으로 길을 들어섰고, 이제는 바다에서 점차로 멀어져 숲이 우거지고, 목초지가 조성된 농장들이 들어선 내륙 깊숙이 들어갔다. 돌아갈 길이 걱정되어 차를 돌리고 관광정보를 알리는 표지판이 서있는 곳에서 차를 멈추고 보니 키르케네스까지 거리가 210km라고 써있었다. 제주도 한바퀴쯤, 혹은 경부고속도로의 절반 정도를 한나절 동안 계속 달린 것이다. 이제 또 그만큼을 달려서 돌아가야한다.

돌아가는 길에 올 때 못 봤던 박물관이 눈에 띠어 들어갔다. 박물관을 알리는 표지판은 나무판자에 손으로 써서 어설프게 보였는데, 화살표가 가리키는 곳에 있는 사무실은 문이 잠겨있고, 인기척이 없었다. 건너편 좀 떨어진 집에서 한 사람이 나오더니 서둘러 다가오고있었다. 자그마한 체구의 노인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웅얼거리며 해안 쪽에 있는 박물관을 향하여 손짓을 했다. 박물관 쪽으로 걸음을 옮겼고, 노인은 열쇠 꾸러미를 들고 따라왔다.

 

▲ 한 어부의 삶을 보여주는 개인박물관. ⓒ양기혁

오솔길을 따라 박물관 건물 모퉁이를 돌아서자 해변의 너른 공간에 작은 조각배 몇척과 어구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내가 사진을 몇장 찍는 사이에 노인은 닫힌 박물관 문을 열고 나에게 들어가라고 손짓을 했다.

' How much?'

노인에게 물었는데 노인은 손을 내저으며 들어가라고 재촉했다. 

침침한 실내엔 노인의 한평생 삶이 펼쳐져 있었다. 아마도 어부로 평생을 지낸 그가 오랫적에 바다에서 쓰던 물건들 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삶의 모든 것이 거기에 있었다. 자신과 가족들의 옷들, 재봉틀이며 커피도구들, 축음기와 책과 노트들, 소소한 잡동사니들이 여러 가지 어구들과 함께 노인의 인생을 반추하고 있었다.

갔던 길을 되돌아 마을로 돌아왔을 때는 오후 5시가 넘었다.

그날 밤 늦게 거의 자정이 가까워가는 시간인 데 호텔밖의 거리에서 자동차 소리가 요란 스럽게 들려 내다보니 잘 차려입은 남녀 젊은이들이 근처의 카페겸 디스코텍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그들은 광란의 토요일 밤을 보내기위해서 근처의 여러 마을에서 이곳 디스코텍으로 모여드는 젊은이들이었다. 여러대의 승용차로 함께 오기도 했고, 늦은 시간인데도 택시가 바쁘게 오가기도 했다. 피자전문점이며, 풋볼펍을 겸한 디스코텍은 토요일 밤마다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고, 나는 늦게까지 잠을 설쳐야 했다.

다음날 일요일은 스타이날과 루바의 출근 시간이 토요일 보다 1시간 늦은 9시다. 나는 똑같은 메뉴의 늦은 아침 식사를 하고나서 두사람의 사진을 찍고, 작별 인사를 했다. 루바와 스타이날은 나에게 악수를 청하며 이별에 대한 아쉬움을 표했고, 나는 언젠가 이 곳을 다시 찾고싶다고 말하고는 호텔을 나왔다

공항가는 택시를 탄 것은 호텔 바로 옆에 택시회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광장에는 정기적으로 공항가는 버스가 다니고 있었는데 거기엔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그리고 비행기탈 시간이 급한 것도 아니었는데도 무심코 덜컥 택시를 탔고, 의외로 공항은 멀리 떨어져 있었다.

택시회사 사무실에 있던 머리를 짧게 깍고, 금발의 솜털이 보송보송하여 어려보이는 기사에게 'How much?'라고 물었을 때, 기사는 'Maybe twenty'라고 대답했는데, 나는 공항까지의 택시요금을  20크로네라고 알아들었는데, 기사의 말은 20분 정도 걸린다는 말이었다. 택시를 타자 러시아에선 볼 수 없었던 요금 게이지에 54가 표시되었고, 공항에 도착해서는 무려 350크로네가 나왔다. 택시기본요금이 약 1만원이 넘고, 공항까지의 요금은 7만원정도가 나온 것이다. 한국으로 치자면 서울역쯤에서 혼자 모범택시를 타서 김포공항까지 간 것같은 기분이 들었다. 스스로 화가 나기도 하고, 침울해 지기도 하였는데 계산이 잘 되지는 않았지만 러시아에서 3주정도의 여행경비로 생각했던 비용을 이미 노르웨이에서 며칠 사이에 다 써버린 것같았다.

아담하고, 한적한 키르케네스 공항. 몇 대 안되는 비행기들도 전부 소형 항공기들이다. 일찍 나온 탓에 대합실에 앉아서 좀 기다려야 했는데, 자판기는 고장나있고, 물 한모금 마실 데도 없다. 검색대를 통과해서 들어가고 난 뒤에야 요깃거리를 사서 먹을 수 있었다.

소형 항공기에는 체격이 큰 중년의 여인과 몸집이 작고,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할머니 두사람의 스튜어디스가 있었는데, 기내의 모든 서비스는 유료였다. 생수, 커피와 같은 음료수, 맥주와 포도주같은 주류, 안주 거리, 빵과 햄버거같은 음식도 팔고 있었고, 물 한잔 공짜로 주는 일이 없다. 나는 커피 한잔 주문했는데, 작은 종이컵에 담아 건네주는 아메리카노 커피 한잔이 25크로네 (5천원)이다. / 양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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