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제주시내 모 면세점에 중국인 관광객이 가득하다. 관광객 마다 손에 쇼핑백을 들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차이나머니 명암] (2) 여행사에 호텔·식당·쇼핑센터까지 잠식, 제주업체는 '인두세' 내야

제주 중심지 중국이름 바오젠거리, 도심 쇼핑거리 곳곳에 내걸린 중국어 간판, 관광지마다 들리는 중국어 대화. 모두 전에 없던 풍경이다.

외국인 관광객. 그중에서도 연간 100만명 이상의 중국인 관광객 시대를 맞이하는 제주 관광시장이 갑자기 늘어난 손님과 자본으로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고 있다.

최근 제주시 연동을 주소지로 둔 여행사가 급격히 늘었다. 상당수는 조선족과 화교 등 중국 자본을 바탕으로 세워진 제주지역 현지의 중국 여행사들이다.

이중 유독 경쟁 여행사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는 곳이 있다. 유한회사 타이틀을 내건 H여행사다. 여행업계는 H여행사가 도내 중국관광 시장의 80%를 장악한 것으로 보고 있다.

도내 여행사는 약 160여곳. 이중 20~30여곳이 중국계 자본이다. 나머지 130여곳이 10~20%의 시장을 두고 경쟁을 펼치고 있다. 이마저 소규모 업체는 경쟁에 밀려 문을 닫는 곳도 있다.

중국 관광객은 대부분 현지 대형여행사가 아웃바운드 형식으로 손님을 모집하고 전세기를 띄우면 도내 여행사가 인바운드 형태로 현지 가이드에 나선다. 가이드는 대부분 조선족 출신의 무자격자다.

현지 자본으로 꾸려진 여행사를 통해 제주를 찾은 중국 관광객들. 진정한 제주의 모습을 느끼고 본국으로 돌아가고 있을까?

어렵사리 입수한 중국 N여행사의 3박4일 전세기 제주여행상품의 일정을 들여다봤다. 첫날 중국 광저우 공항에 도착하면 오전 2시 현지를 출발한다. 제주 도착시간은 오전 6시5분이다.

▲6일 제주시내 모 면세점 앞. 중국인 관광객들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새벽에 제주땅을 밟은 관광객들은 곧바로 공항 인근 해수사우나로 향한다. 여기서 4시간을 보낸다. 아침식사가 끝나면 테디베어포 테지움으로 향한다. 옵션상품인 난타공연을 마치면 첫날 일정은 끝이다.

둘째날은 아침부터 관광지가 아닌 자수정 판매장에 들른다. 이어 성산일출봉과 성읍민속촌, 섭지코지를 차례로 방문한다. 중간에 서귀포 잠수함 관광은 이용료가 비싸 역시 옵션상품으로 분류된다.

다음날 첫 방문지도 관광지가 아닌 인삼판매장이다. 체류시간은 1시간. 쇼핑이 끝나면 신비의 도로를 거쳐 서귀포시내 약천사로 이동한다. 주변의 천제연폭포, 대포동 주상절리를 방문하면 셋째날 일정을 마친다.

여행 마지막날에도 판매점은 빠지지 않는다. 아침에 용두암을 거닐고 곧바로 헛깨나무열매 건강보조식품 판매장을 찾는다. 이후 버스는 인근 토산점으로 향한다. 다음 코스 역시 화장품 가게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버스는 다시 제주시내 면세점으로 이동한다. 이곳에서 주어지는 시간만 2시간 가량. 밤 10시 제주를 떠날 때까지 마지막 날 관광지는 용두암이 전부다.

L여행사의 4박5일 상품도 비슷한 코스를 밟는다. 이 상품의 경우 여행 셋째날 인삼매장과 헛깨나무 열매 건강보조식품 판매장, 면세점, 자수정매장을 하루에 몰아서 구경한다.

관광지 역시 신비의 도로와 용두암, 주상절리 등 입장료가 적은 곳에 집중돼 있다. 제주의 자연과 생활을 경험하고 느낄 수 있는 상품구성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평가도 그래서 나온다.

여행사마다 관광객을 판매점에 몰아넣는 이유는 저가관광의 그림자인 ‘마이너스 투어 피’(Minus tour fee) 때문이다. 1인당 얼마씩 돈을 주고 관광객을 끌어 들이는 방식이다.

▲중국인 관광객이 늘면서 쇼핑업계가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으나 정작 지역 업체의 낙수효과는 미비하다는 지적이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쉽게 설명하면, 중국 현지 아웃바운드 여행사가 관광객을 모으면 도내 인바운드 여행사가 이들을 유치하기 위해 돈을 건넨다. 업계에서는 이를 ‘인두세’(人頭稅)라고 한다.

여행사는 인두세를 회수하기 위해 계약을 맺거나 직업 운영하는 판매점으로 향한다. 이곳에서 관광객들이 건강보조제, 자수정 등을 구입하면 수수료를 챙겨 적자를 메운다.

숙식과 지역상품 판매도 아쉬운 부분이다. 도내 여행업계는 전세기 중국 관광객의 상당수가 중국여행사를 거쳐 중국계 호텔에서 자고 중국인 식당과 판매점을 이용한다고 지적한다.

<제주의소리>가 여러 경로를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도내 중국자본 호텔은 ‘금륭관광호텔’(옛 굿모닝호텔)과 ‘MK호텔’(옛 뉴아시아호텔), 메가리조트(옛 스위스콘도) 등 10여곳에 이른다.

최근에는 도내 중국관광 시장을 장악한 H여행사가 제주시내에 직접 호텔을 준비중이다. H여행사는 이미 도내 호텔 2개를 인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규모 자본을 등에 업은 중국여행업계는 인삼과 화장품, 보조식품 판매점까지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제주시 도두동의 유명한 한정식 음식점 등 도내 10여개 식당도 이미 중국 자본에 넘어갔다.

10년간 여행업계에 종사한 강선미씨(가명)는 “H여행사는 조선족이 돌리는 자본으로 움직인다. 도내 소규모 여행사가 여행상품을 개발하면 대형여행사가 먹고 물량으로 친다(잠식한다)”고 지적했다.

강씨는 또 “만약 중국 관광객들이 제주에서 초콜릿을 많이 사가면 아예 초콜릿 판매점을 만들어 버리는 식”이라며 “여행사에 호텔과 식당, 판매점까지, 결국 도내 업체는 설 곳이 없다”로 토로했다.

▲제주시 연동의 굿모닝호텔이 최근 중국 자본에 넘어가면서 금룡관광호텔로 새단장해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도내 여행사가 아무리 좋은 상품을 개발하고 친절한 가이드로 차별화에 나서도 물량을 내세운 중국 자본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라는 의미다.

반대의 의견도 없지 않다. 제주도는 숙박업과 렌터카, 전세버스 이용률이 최근 3년사이 10% 가까이 증가하고 매일시장과 중앙로 지하상가, 일부 편의점에도 매출이 증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저가상품 논란에는 “여행상품 가격하락은 패키지인지 개발여행인지에 따라 달라진다”며 앞으로 중국인 여행의 흐름을 개별여행으로 전환하는 정책을 본격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10년 넘게 여행사를 운영한 왕치호(가명)씨는 “중국 여행객이 많아지면서 문제점만 발생한 것은 아니다. 초기에 상인들 불만이 있었지만 지금은 지하상가와 신제주 상인들의 상당수가 중국인 관광객 덕을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른바 과도기라는 해석에 또 다른 여행업계 관계자는 고개를 저었다. 장희정씨(가명)는 “전세기는 제주도가 유치하는 것이 아니라 현지 중국여행사가 모객해야 제주로 향한다”고 설명했다.

장씨는 “전세기가 아닌 국적기 이용객이 제주도가 말하는 개별관광객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의 상당수는 카지노 관광객이다. 장기적으로 총량제를 정해 중국인 관광객을 조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도내 여행업계는 정부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저가관광 개선과 고부가가치 관광 활성화 방안’에 기대를 거는 분위기다. 저가관광을 정부차원에서 적극 대처하겠다는 의도다.

제도 손질에 앞서 제주도와 여행업계 스스로 중국인 관광객의 재방문율을 높이고, 경제적 효과가 지역사회에 미치도록 머리를 맞대는 방안이 절실하다. 일자리 창출도 거기서 시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정경쟁이 필수다. 무엇보다 제주의 참모습을 관광객들에게 알리려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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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제주시내 모 면세점에 중국인 관광객이 가득하다. 건물 밖은 고요하지만 내부에는 버스 2대에서 내린 관광객 70~80여명이 쇼핑 중이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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