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병의 제주, 신화] (13) 세경본풀이 1

자청비 사랑 수업 #.1 빨래를 배우다.

옛날 김진국 대감과 조진국 부인은 동개남 은중절에 가서 석 달 열흘 백일 불공을 드리고, 합궁일을 받아 천정배필을 맺어 여자아이를 낳았는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주였다. 이름은 부부가 자청하여 낳은 자식이라 ‘자청비’라 하였다. 소녀는 자라나 열다섯 살 되었을 때, 하녀 느진덕 정하님을 데리고 주천강 연화못에 빨래를 하러 갔다.

“느진덕 정하님아, 너는 무사 손발이 경 고우냐? 아이구. 상전님아, 그런 말은 하질 맙서. 종이어도 매일 의복입성 빨래하고, 상전님네 먹던 그릇 설거질 하다보면, 손발이 경(그리) 고와 집디다.“ 그 말 듣고, 자청비는 아버지 방에 달려가 아버님 입던 옷 내어놓고, 어머님 방에 달려가 어머님 입던 옷 내어놓아, 가는 댓구덕에 주어 담아 주천강 연화못에(蓮花池)에 빨래를 하러 소곡소곡 내려갔다. 물가에 앉아 빨래를 하는데, 하늘에서 ‘노각성자부연줄’(하늘에서 내려오는 길)을 타고, 하늘 옥황(玉皇) 문왕성(文王星) 문도령(文道令)이 인간 세상에 글공부하러 내려오고 있었다.

멀리, 연못가에서 옥 같은 아기씨가 앉아서 연서답(빨래)을 하는데, 얼굴은 보니 너무 고왔다. 문도령은 남자(男子)의 기분으로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말이라도 걸어보고, 물 한 바가지 얻어먹고 가려고 가까이 다가가서, “길 가는 선비가 됩니다. 물이라도 조금 얻어 먹엉 목이나 잔질루앙(축이고)가게 하여 줍서. 요 곱닥헌(고운) 아기씨야.”하고 수작을 걸었다.

아이구. 빨래하러온 사람 그릇이 있어야 물을 떠 줄 게 아닙니까? 하니, 어서 걸랑(그건) 기영헙서(그리 하세요) 하며, 문왕성 문도령님 뒤주박을 내어주니, 물 위도 삼세번 헤쳐 간다. 물밑도 삼세번 두드려 간다. 물을 떠서 참버드낭 이파리 하나 뜯어 물위에 띄워 주었더라.

이를 보고 문도령님 이르는 말이 “얼굴은 보니 양반인데 마음 쓰는 건 보난, 그렇진 않은 것 닮수다.”하니, “아이고 한 일은 알고 두 일은 모르는 도령이로구나”하니. “어째서 나에게 후욕(詬辱)누욕(陋辱) 해염수과(하십니까)? 물 위에 물 티라도 있으면, 건져줄 일인데, 참버드 낭 이파리 트더놩(뜯어놓아) 주는 일은 뭔 일이멍, 물 위에 삼세번 헤치는 건 뭔 일이며, 물창(밑) 삼세번 두드리는 건 어떤 일입니까?”하니, 자청비 하는 말은, “문왕성 문도령님아, 이건 물 위에 삼세번 헤치는 건 물 티라도 있을까봐 삼세번을 헤쳤수다. 이거 물창 삼세번을 두드리는 건 버러지라도 있으면 물 아래 가라앉아 버리라고 삼세번을 두드렸습니다. 물을 떠 놓고 참버느낭 이파리 하나 뜯어놓아 드리는 건, 목마르고 먼 길 걸어난 때, 목을 태우다 물을 마시면 체해도 약이 없으니 찬찬이 불며 마시라 하여 참버드낭 이파리 하나 뜯어 놓아 물 위에 띄워 드렸습니다.”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연화못 물을 퍼다 먹고, 하늘 남자 문도령과 땅의 여자 자청비로 통성명(通姓名)을 하였다. 문도령은 자청비가 낙점한 첫사랑의 연인이 되었던 것이다.
 
자청비 사랑 수업 #.2 글공부는 사랑공부

어디로 가는 선비가 됩니까. 나는 하늘 옥황 문왕성 문도령이라 하오. 인간에 글공부 하러 내려왔소. 저는 인간 세상에 자청비라 합니다. 우리 집에 가면, 자청도령이라 부르는 남동생이 하나 있는데, 글공부를 가려해도 친구 벗이 없어 허송하는 가련한 아입니다. 원컨대 내 동생 데리고 함께 글공부 가시면 어떻겠습니까?

문도령이 그렇게 합시다 하니 자청비는 집으로 데려와 몰팡돌(노둣돌)에 세워두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어머님아, 아바님아. 저 아랫녘 거무 선생께 글공부하러 가겠습니다"하니, 여자가 글공부는 해서 뭣에 쓰려고 하냐고 후욕을 하였다. 어머님, 아바님아. 그런 말을 하지 맙서. 여궁녀(女宮女)라도 글공부를 해두면 써먹을 때 되면 다 써 먹습니다. 제게 어느 오라버니가 있으며 어느 형제간이 있습니까. 부모님께 글공부 가는 허락을 간신히 받아 내어 남장을 하고, 남동생인 체하며 문도령을 따라 글공부를 갔다.

그날부터 하늘 남자 문도령과 남자로 변장한 여자는 자청도령 둘은 한 솥의 밥을 먹고 한 이불 속에 잠을 자고 서당에 같이 앉아 글공부를 하였다. 문도령은 자청도령이 여자 자청비가 아닌가 의심했고, 자청비는 그때마다 꾀를 내어 대비했다.

“너는 어째서 은대야에 물을 떠다 옆에 놓고 자느냐?” “글공부 올 때, 아버님이 말씀하시기를, ‘은대야에 물을 떠다 옆에 놓고 잠을 자되, 은저∙놋저가 떨어지지 않게 잠을 자야 글공부가 잘 된다’ 하더라”  매일 밤 문도령은 늘 대야의 젓가락이 떨어질까 걱정하여 잠을 설쳤고, 자청비는 맘 놓고 잠을 잤다. 문도령은 글공부하며 졸고, 자청비는 성적이 항상 장원이었다. 넘어도 되는 금은 넘지 못하고 사랑은 그리움만 키웠다. 신의 시험인가? 아니 그것은 열다섯 살을 넘은 철날 무렵의 미성년자에게 성애를 가르치는 성교육이었다.

▲ 세경본풀이를 노래하는 강순안 심방.

자청비 사랑 수업 #.3 오줌 갈기기 시합

문도령은 무엇이 됐든 한 가지는 이기고 싶었다. 자청도령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아니 차라리 여자로 생각하고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온갖 여자 냄새가 풍겨왔다. 꿈이라면 차라리 꿈속에서 도령을 끌어안고 모든 것을 끝내고 싶었다. 남성 속의 여자라니, 서양 사람들이 말하는 아니마(anima)가 아닌가.

왜 자청도령은 너무 여자를 닮아 나를 미치게 하는가. 차라리 너는 내 앞에 여자가 되어라 하며 문도령은 오줌 갈기기 내기를 생각해 내었다. 여자 같은 몸에서 쏟아지는 오줌은 하나로 집중 공격하듯 갈기지 못하고, 여러 줄기로 흩어져 갈갈갈 퍼지다 결국 문도령이 갈기는 오줌발을 따라갈 수 없어 자기 앞에 패배를 인정할 것만 같았다.

그랬기 때문에 내기를 걸었고 상상 속에 남성의 힘을 자랑하며 힘내어 오줌을 쏟았다. 오줌은 멀리 나갔고, 자랑할 만했다. 그는 대단한 정력이라 너무나 곱상한 여인 같은 자청도령 앞에서 ‘여섯 발 반’이나 나가는 남성을 자랑하고 싶었다. 그런데 아름다운 여자 같은 남자는 무서운 괴력을 가졌는지? 아, 자신이 갈긴 오줌발을 조롱하지 않는가. 도령을 위장한 여자, 자청비는 한 수 위였는지 그녀의 성기 안에 대 막대기를 잘라 넣어 힘을 써 오줌을 갈기니 오줌은 길게 날아 ‘열두 발 반’이나 나갔다. 예쁘고, 미치게 아름다운 용모의 여자 같은 남자, 문도령이 애인으로 삼고 싶은 자청도령에 대한 여자인가 하던 의심이 말끔히 씻어졌다.

이것은 비극인가 희극인가. 문도령은 여자라는 의심을 버리면서 자기보다 더 큰 힘을 가진 여성다운 남자를 사랑하게 되었다. 이 또한 자청비 콤플렉스라 할 만한 것이었다.  

자청비 사랑 수업 #.4 삼년 만에 얻은 사랑의 첫 경험 그리고 이별

그러던 어느 날 하늘 옥황의 붕(鵬)새가 편지를 떨어뜨리고 갔다. 글공부를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와 서수왕 딸아기한테 장가를 가라는 편지였다. 사랑을 잃을지도 모르는 위기가 닥쳐왔다. 성교육, 남녀구분법을 놓고 애태우던 아이들은 어른이 되지 못하고 헤어지게 된 것이다.

남자를 옆에 두고 사랑의 사연 없던 3년의 쌓인 한, 자청비는 목욕하고 가자며 위쪽 물통으로 들어가고 자청비는 버드나무 잎을 뜯어 편지를 썼다. “멍청한 문도령아. 연 삼년 한 이불 속에 잠을 자도 남녀 구별도 못하는 사랑의 백치, 눈치 모른 문도령아. 이 천치, 바보야.”라는 버들잎 편지를 띄우고 자청비는 집으로 먼저 떠나 버렸다. 자청비의 편지를 본 문도령은 황급히 옷을 꿰어 입고 자청비를 따라 갔다. 자청비는 문도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 문무병 시인·민속학자. ⓒ제주의소리

자청비는 열두 폭 대홍 대단 홑단 치마로 갈아입고 문도령을 맞아 자기 방 병풍 안에 앉혀 놓고 저녁상을 차렸다. 만단정화를 나누고 한 이불 한 요에 잣베개 같이 베고 연 삼년 속여 오던 사랑을 풀었다. 문도령은 박씨 한 알과 얼레빗 반쪽을 꺾어 자청비에게 주고 박씨를 심어 박을 따게 될 때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하늘로 올라갔다. 그런데 박이 익어도 문도령은 돌아오지 않았다.  /문무병 시인·민속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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