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병의 제주, 신화] (6) 설문대할망, 인간에게 불을 전하다

#. 설문대할망도 두 번 죽었다.

▲ 솥에 빠지는 설문대할망. (박재동 그림).

설문대할망의 죽음 이야기는 ‘죽음을 통해 다시 살아남[再生]’을 이야기 한다. “설문대할망이 ‘물장오리’에 빠져 죽었다.”는 할망의 죽음이야기는 무엇이 죽었고 무엇이 다시 살아났다는 말인가? 할망은 사라지고 할망 같은  할망의 그림자를 닮은 제주 땅에 할망이 낳은 오백장군이 한라산을 무대로 할망을 어머니[母神]로 모시고 살림을 시작하였다.

이때부터 제주도는 오백장군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이것이 인간세상 역사시대의 시작이다. 설문대할망은 500의 아들을 낳은 것이다. 어떻게 낳았을까? 더 나가면 이야기를 위한 이야기, 지나친 서사의 스토리텔링이 될 것 같아 다시 죽음의 문제로 돌아가겠다. 창조주 설문대할망은 물의 신[水神]이었다. 물의 신이 죽어서 물로 돌아갔다는 것은 죽은 것이 아니라 신으로서의 영생을 얻은 것이다.

드러난 것은 키가 크고 힘이 센 할망의 죽음이지만, 할망의 죽음을 통해 내면화 되고 감추어진 것은 깊이를 모르는 물의 심연 속에 영원히 간직하게 된 어머니의 사랑, 어머니로서 제주[自然]와 제주 사람들[人間]을 향한 변치 않는 사랑이다. 설문대할망은 물의 심연, 지하수의 물통 같은 제주의 심연에 인간사랑, 영원한 어머니의 사랑을 담고 제주 사람의 마음에 한라생수를 퍼주듯 사랑을 가르쳐주고 있다.

무엇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신화기 때문에 그런 것인가. 그렇다면 신화는 우리들에게 더 깊은 상징과 은유를 드러내야 한다. 물장오리에 빠져 죽은 할망은 물의 신이 되었다. 물속에 갈앉은 할망은 물의 신이다. 할망은 인간에게 사랑을 가르치는 물의 신, 영원한 사랑의 신이다. 신화답지 않은가. 

그리고 물의 시대를 마감하는 지진 폭발, 불의 시대를 여는 굉음[轟音]이 천지를 진동시켰다. 그것은 정말 대단한 사건이었다. 천동지괴하는 ‘할망의 방귀’가 우르릉 꽝꽝 온 세상을 불살랐다. 사건의 내용은 “설문대할망이 방귀를 뀌었는데, 그 소리가 세상을 뒤집었다.”는 것이며, 그 결과 세상은 화산의 폭발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할망 신화는 이렇게 적고 있다.

할망의 힘, 큰 키의 거구, 센 힘으로 ‘드러난 힘’은 수면 속에 가라 앉아 감추어지고, 할망의 몸속에서 내면의 불로 타오르던 ‘감추어진 불티’가 밖으로 드러나 세상을 활활 태우게 되었다는 것이다. 할망은 불을 간직한 불의 신이었다. 할망이 힘을 쓸 때마다 안에서 항문을 통해 방출하는 불의 배설을 ‘할망의 방귀’라 하였다. 그리하여 제주 땅에 혼자 외롭게 살아가며 홀로 태우던 ‘외로운 하나’는 제주 땅 내면 속에 감추어진 불, 물의 형태로 끓고 있는 불로 내면화되고, 할망의 몸을 태우는 불꽃이 ‘신의 방귀와 같은 화산 폭발’로 새로운 세상을 열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할망의 내면에서 타 오르던 불이 용광로처럼 한라산을 뚫고 폭발하던 그 순간, 할망의 몸과 하나가 된 제주 땅이 요동을 쳤다. 아, 아름다운 ‘할망 방구’의 굉음이여. 뀌는 순간의 폭발이여. 아, 아름다운 할망의 방귀소리여. 제주도를 태우는 영원한 사랑의 굉음이여. 이렇게 인간은 감성적일 수밖에 없었다. 미칠 수밖에 없었다. 제주 사람들은 그렇게 할망의 방귀를 기다렸고, 불의 시대는 문을 열었다. 외로운 하나에서 두 개의 500시대를 열었다. 그리하여 물의 시대가 가고 불의 시대가 왔다. 500장군의 시대가 온 것이다.
 
#. 500장군 시대의 수철학(數哲學)

500장군 시대 수 철학은 ‘즈믄’(千 1000)을 만드는 두 개의 500으로 이루어진다. 설문대할망은 어떻게 500의 딸들과 500의 남자아이 장군을 낳았을까? 낳았다는 말보다 만들었다는 편이 보다 사실에 가깝다. 그런데 확실하게 설명할 수 없다. 신(神)은 인간처럼 음문(陰門)을 통해 생산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의 출생을 “성령으로 잉태하였다.” “신이(神異)한 출생이었다.” “큰 지렁이와 교접을 하여 김통정이란 장군이 태어났다.” “제주의 무조신 초공신이며, 심방이 점을 치는 무구 요령, 신칼, 산판을 상징하는 ‘젯부기 삼형제’는 어머니의 겨드랑이를 뜯고 태어났다.”고도 한다. 신이 태어난 것은 이상한 출생이기 때문이다.

설문대할망 신화처럼 엄청 큰 할망만 혼자 살고 있는 세상에 아이가 할망의 뱃속에서, 남자와 교접을 하여 태어났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신화들처럼 이상한 출생이니 하며 얼버무려도 안 된다. 출생의 신비는 제주형 거녀 설문대할망 신화만이 갖는 고민이어야 한다. 그러면 제주 땅에 처음 살게 된 인간, 땅의 신, 인간의 크기, 인간의 힘으로 태어난 아이, 그렇지만 인간보다 조금 큰 장군, 힘도 장군, 밥도 장군, 술도 장군으로 먹는 오백의 장군, 한라산신이 된 아이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가장 제주도다운 출생은 땅에서 솟아났다. 또는 한라산에서 솟아났다는 것이다. 

“설문대할망이 백록담 죽솥에 빠져 죽었다.”는 이야기는 설문대할망은 불의 신으로 마음속에서 활활 타던 불을 꺼내 인간 세상에 불을 전해주었다는 희생적인 사랑이야기다. 불 위에 솥을 걸고, 분주하게 몸을 움직여  배곯는 500명의 아이들의 만찬을 위해 죽을 쑤다가, 결국 죽솥에 빠져 죽었다는 이야기는 희생적인 죽음의 이야기지만, 불의 신이 인간에게 불을 전해준 아름다운 불 이야기를 “제 몸 던져 사랑 이룬[殺身成仁] 어머니의 슬픈 사랑 이야기”로 보여주는 비극이다.

할망은 물속에서 영생을 얻었지만, 인간 세상의 여자아이를 자기와 닮은 500이나 되는 인간, 너무 크지 않고 너무 세지 않은 여자아이, 그렇지만 500장군이 콤플렉스를 느낄 만큼 설문대할망을 닮은 여자, 인간 세상의 설문대할망 분신들을 만들었다. 그의 몸속인지 제주 땅 심연의 물, 생산의 불속에서인지 인간의 여자로 태어난 아이들은 그녀의 분신이며, 인간 세상의 신으로 한 몸처럼 활동하게 하였다. 힘이 세고 키가 큰 할망이 500의 여자아이로 이 세상에 생활하게 하였다.

인간의 신이 된 제주 여자들은 설문대할망 콤플렉스가 없는 할망의 분신이었다. 그러므로 태초 제주 공동체의 사람은 할망을 닮은 500의 여자와 땅속의 불에서 나와 돌이 된 아이들, 500의 돌사람에서 할망의 정기를 받아 할망의 몸속의 물과 불이 섞여, 피가 돌고, 뼈대를 세우고 살을 만들어 사람이 된 오백 아이들이었다.

이들을 사람들은 제주 땅 할망의 몸 속에서 태어난 아이라 “땅에서 솟아났다.”하고, 솟아난 아이는 불이 녹아 돌이 된 돌 아이들이 영실(靈室)에서 할망의 영기를 받아 태어났다 하여 “설문대할망이 낳았다.”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백장군 시대는 설문대할망을 창조주로 모시고, 할망을 닮은 여자아이와 한라산신 오백장군이 사는 최초의 공동체, 탐라가 이 세상을 열었다. 그러므로 설문대할망 신화에서 할망은 사랑의 불속에서 아이를 낳았다고 한다. 인간이 할망의 몸속 생산의 불속에서 태어났다는 것이다.

옛날의 제주 여자는 할망의 분신이었다. 그러므로 500의 여자아이들은 물의 속성을 지닌 생산의 불에서 빛을 만들어 길쌈을 하고, 바느질을 하고, 옷을 만들고, 빨래를 하였다. 생산의 불로 밥을 지었다. 남자 아이들, 500의 장군들은 실제로 불을 가지고 쇠를 녹여 농기구를 만들고 활과 칼을 만들어 사냥을 하였고, 솥을 만들어 모든 음식을 장만하게 하였고, 할망이 육지까지 다리를 놓아준다 했을 때, 여자들이 속옷을 짤 때, 500장군들은 온 힘을 다 하여 다리를 놓는 토목공사에 적극적으로 참여 했다.

남녀 제주 사람이 힘을 모아 ‘즈믄’(千천)이 세상을 열었을 때, 완전한 하나, ‘일천(一千)’이 되었을 때 느끼는, ‘수눌음’의 완성이었다. 그때 명주가 1통만 있어 ‘온’(一百)이 완성되었으면, 세계지도가 달라졌을 거다. 500장군은 한라산신이며 불의 신으로 훗날 한라산을 지키는 장군선왕 불도깨비가 되었다.

그러면 설문대할망을 신으로 모시고 할망 같은 여자와 한라산신 오백장군이 제주 땅을 살던 시대에 그들은 무엇을 양식으로 살았을까? 한라산 시대의 신의 양식으로써 죽은 무엇이며, 할망이 솥을 놓고 지었던 밥은 무엇일까? 백록담에 솥을 걸고 설문대할망이 지었던 죽은 이랬을 것 같다.  ‘용암이 부글부글 끓다’가 변하여 ‘팥죽이 폭폭 끓다’로 변한 것이라면, 불의 신 설문대할망의 죽은 용암이 산꼭대기 분화구에서 끓는 현상을 “할망이 백록담에 죽솥을 걸고, 불을 때어 아이들의 죽을 쑤다가 죽솥에 빠져 죽었다.”고 한 것이라면, 불의 신의 양식은 불이므로, 신의 죽음, 어머니의 본(本)으로 보여준 희생은, 아들을 위해 아낌없이 주는 희생제의(犧牲祭儀)를 인간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 문무병 시인·민속학자. ⓒ제주의소리

어머니의 고기를 놓고 끓인 죽은 어머니의 살신성인으로 배고픈 아이를 살린다는 설정 때문에 처절하며, 처절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비극미를 간직한 창조신화가 되었다. 지금도 한라산 영실(靈室)에는 499개의 장군처럼 괴이하게 생긴 돌사람이 있고, 한경면 고산리 차귀섬에는 막내 동생 하나 외롭게 서 있다. 죽솥에 빠져죽은 슬픈 이야기는 화산도 사람들만이 들려줄 수 있는 신들의 이야기다. /문무병 시인·민속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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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위로 굳은 오백 장군. (박재동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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