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병의 제주, 신화] (5) 설문대할망의 문명창조2-토목공사와 무역

제주 땅을 만든 설문대할망은 사람이 제법 살 만한 세상이 완성되어갈 때쯤에 제주 사람들에게, “탐라 백성들아, 너희들이 내게 속옷 하나 만들어 주면, 육지까지 다리를 놓아주마.” 하고 제안을 했다. 설문대할망이 인간에게 던진 ‘속옷(A)이면 다리(B)’라는 제안, 즉 인간이 A(속옷)를 만들어 주면, 신은 B(다리)를 놓아 주겠다는 할망의 제안은 ‘제주에서 육지까지 다리 놓기’ 라는 신의 문명창조 작업, 거창한 토목공사 계획을 이야기한 것이며,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모르지만, 지금의 제주도를 있게 한 조건부 약속이었다.

미완성의 설문대할망 신화는 이 대목에서 정말 굉장한 것, ‘엄청난 구라’를 준비해 놓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옷을 만들어 주면 육지까지 다리를 놓아준다는 제안은, 얼핏 보면 가능한 일처럼 보인다. 그런데 왜 굉장한 거짓말이 되었을까? 이룰 수 없었기 때문이다. 왜 이룰 수 없었나?

#. 제주 사람들의 ‘설문대할망 콤플렉스’

이쯤에서 우리는 앞에서 꺼낸 이야기, 제주 사람이면 마음속에 지닐 수밖에 없는 설문대할망 콤플렉스를 떠올리게 된다. 설문대할망 신화에서 100은 ‘온(=모든 것)’을 뜻하는 신(神)의 수(數)이자 <완전함>, <충만함>을 뜻한다. 그런데 인간의 모든 것은 하나가 모자란 100, 즉 99이다. 인간의 수인 99는 <모자람>, <아쉬움>을 뜻한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설문대할망 콤플렉스는 100을 채울 수 없는 99의 한계 때문에 생기는 비극이다.

탐라 백성들이 거대한 여신 설문대할망에게 만들어 바쳐야 할 할망의 속옷은 제주도를 담을 만큼 무지무지 큰, 예를 들면 장자에 나오는 붕새[鵬鳥]의 날개만큼이나 큰 속옷이었다. 그리고 이 할망의 속옷을 만드는 데는 100통의 명주가 필요하다. 그런데 탐라 백성들은 위대한 할망의 속옷을 만들기 위해 제주에 있는 모든 명주를 다 모아도 99통밖에 되지 않았다. 결국 한 통이 모자랐기 때문에 탐라 백성들이 짠 할망의 속옷은 완전한 하나의 완성품이 될 수 없었다.

하나를 채울 수 없는 인간의 모자람 때문에, 결국 예의를 갖춰 감추어야 할 할망의 음부, 위대한 생식과 생산의 음문을 비밀스럽게 감추지 못하고 벌겋게 드러나게 하는 미완성의 속옷이 만들어지고 말았다. 명주 1통의 모자람은 신이 만족할 만한 아름다운 속옷이 아닌, 미완의 부끄러운 속옷이 돼버렸으며, 신은 이 미완의 속옷 때문에 인간 세상의 문명창조 계획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명주 1통이 모자라 할망의 음부를 드러낸 미완의 속옷은, 아름다움, 예의, 염치를 아는 여신의 권위를 실추시킨다. 

그리하여 할망은 우스꽝스러운 미완성의 속옷 때문에 화가 났으며, 탐라 백성들은 명주 99통으로 짠 미완의 속옷을 통해 제주 땅의 물자가 너무 부족하다는 것, 가난하고 척박한 땅이라는 것을 통감하고 또 통감하였다. 이렇게 너무나도 모자라고 척박한 제주를 풍요로운 땅으로 만들려는 설문대할망의 문명창조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 버린 것일까.

제주 사람이면 느끼는 한계란, 모든 것을 갖춘 할망, 즉 100을 가진 할망에 비해 전부 모아도 하나가 모자란 99밖에 채우지 못하고, 초라하고 모자라기 때문에 절망하고, 물자가 너무 부족하고 가난하기 때문에 느끼는 비애를 말한다. 결국 할망을 만족시킬 수 없도록 준비된 패배 때문에 제주 사람들이 겪는 괴로움을 우리는 설문대할망 콤플렉스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주에서 육지까지 다리를 놓아주겠다는 할망의 제안은 결국 어느 쪽이든 실현 불가능한 제안이었다. 이러한 제안을 가능하게 하려면, 우선 신화 내용 속에는 설문대할망이 인간 세상을 여는 데 필요한 문명창조의 시나리오가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앞의 빨래 이야기에서 부지런히 ‘옷을 빨았다’라는 대목은 “할망이 인간들에게 옷을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라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던 거다. 동물의 세계와는 다른 인간 세상을 만드는 데 ‘옷이 필요함’을 이야기하는 문명창조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문화를 만드는 삶의 지혜와 관련하여 말하면, 단순히 추위와 위험에서 몸을 지키려고 만들어 입었던 가죽옷은 자취를 감추고, 누에를 길러 명주옷을 짜고, 목화를 심어 무명을 짜 옷을 만들었다. 그렇게 옷은 날개를 달아 인간의 품격을 높였으며, 아름다움에 대한 미의식을 키웠고, 멋과 가치를 만들어 지니게 되었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할망이 옷을 입는 법을 가르쳤다는 문명창조의 계획에는 옷을 입음으로써 얻는 이로움, 가릴 곳은 다 가리고 드러낼 것은 드러내어 아름다운 모습으로 태어나게 한다는 미적 수련과정이 포함돼 있어야 한다.

그러나 너무 크고 힘도 세었지만, 부드럽고 아름다운 탐라형 미인의 모습으로 탐라 백성들 앞에 멋진 속옷을 입고 나타나고 싶어 했던 설문대할망은, 음부가 드러난 부끄러운 미완의 속옷 때문에 모든 토목 공사 계획, 다리 쌓는 일을 그만두어 버리게 되는 것이다.

#. 섬 땅에 남은 할망의 흔적

지금도 설문대할망이 다리를 놓다 만 흔적은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 엉장매코지 지명 전설에 남아있다. 얼마나 큰 토목공사였을까 하고 찾아가 보면, 신화가 말해주는 거창한 토목공사, 제주에서 육지까지 놓으려던 거창한 신화 상징물인 다리는 아니다. 시민에게 세금을 받고 선심 쓰듯 놓는 다리와 별로 다를 것 없다. 다만 생긴 게 신화의 다리를 쌓는 토목공사 현장과 닮았을 뿐이다.

엉장매코지에 남아있는 다리는 거창한 창조의 신이 놓던 다리, 세계지도를 바꾸는 제주형 거녀신화에 값하는, 제주를 육지와 이을 만한 다리가 아니다. 사람들은 실망한다. 신화는 폄하되고 한 마을의 지명전설로 남아 전할 뿐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말한다. 신화가 되기엔 너무 초라하다고. 제주도에는 그런 거창한 설문대할망 신화는 없었다고. 

이와 같이 곳곳에 있는 지명 전설은 신화의 배반이다. 거창한 창조신화를 초라하게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신화의 복원은, 초라한 현실화로 지명전설의 신화 상징물이 되고 있는 유적들을 붕새의 날개 이야기처럼 풍부하게 확장하여 제주 사람들에게 상상의 날개를 달아줄 수 있어야 한다. 사라진 신화 또는 신화의 왜곡으로 만들어진 지명 전설을 역으로 유추하여 제주 사람들의 꿈과 이상의 세계를 복원해낼 수 있어야 한다. 생각해보자. 신화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을 말이다. 속옷을 만들어주면 육지까지 다리를 놓아주겠다는 제안을 하던 신화 속의 시기는 언제였을까?

#. 그리하여 시작된, 섬 땅 무역의 역사

할망은 왜 육지까지 다리 놓는 토목공사를 중단해야만 했을까? 단지 화가 났기 때문이었을까. 신화는 할망이 탐라 백성들에게 옷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었다는 말은 감추고 있다. 옷은 추위로부터 몸을 보호해주고, 이곳저곳 부끄러운 곳을 가린다. 그리고 몸을 아름답게 두르는 장식으로서 예의 바른 태도를 지니게 한다. 멋을 맘껏 누리게 한다. 옷의 발명은 인간의 미적 성숙의 척도다.

그리고 옷을 만들기 위해서는 길쌈이나 바느질도 필요하다. 지명 전설은 설문대할망이 길쌈하던 곳, 설문대할망이 바느질하던 곳이라 하며 역사 속에서 또는 자연 속에서 증거물을 제시하면서 진실성을 찾으려고 한다. 그런데 거녀신화의 상징물에 미치지 않는 증거물 때문에 신화에서 찾아낼 수 있는 제주 사람들의 깊고 다양한 상상력은 퇴색되고 축소되어 지명 전설로 남게 된다.

거녀신화는 사라진 신화, 실패한 신화로 이야기된다. 사람들에게 신화는 오래전에 사라지고, 어느 곳에 가면 할망이 놓던 다리의 흔적이 있다는 식의 증거물을 통해, 거녀 설문대할망 신화는 여성 가내수공업사 유물 같이 축소된 채 왜곡된다.

할망은 다리를 놓아주는 걸 포기했다. 왜 거창한 토목공사를 포기했을까. 제주 사람들이 99통으로 짠 미완의 속옷 때문이다. 그것은 다 끌어모아도 100통이 안 되는 물자 부족, 작은 섬의 한계이다. 하지만 미완의 속옷으로 인한 수치감은 사람들에게 예의와 염치라는 덕목을 깨닫게 했다. 그리고 어쩌면 육지까지 지하철을 놓는다 해도 제주 섬은 편리한 만큼 공해에 찌든 세상이 될 것을 경계했음일까. 설문대할망이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탐라 백성들아. 나도 할 말은 있어. 내 속옷 하나 만들지 못하는 사정을 모르는 건 아니지. 한라산 어딜 강 봐도 어신 건 어신 거주. 어느 세월에 다릴 놓을 거라. 내 생각에 배 탕 육지 강 몇 100통이라도 명주를 사당 속옷을 짜면 될 거 아니?”

▲ 문무병 시인·민속학자. ⓒ제주의소리

그렇게 해서 할망은 물자가 모자란 제주 백성들에게 배를 타고 육지에 나가 세상을 돌며 무역 장사를 하게 하였다. 그때부터 삼한을 왕래하며 무역을 하게 되었다고 후대의 역사서 <삼국지 위지 동이전>은 무역의 역사를 기록하였고, 탐라 백성들은 조금이나마 설문대할망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방법을 배웠다. /문무병 시인·민속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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