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키우고 도전에 나서야할 제주의 청년들이 취업이라는 문턱에서 힘을 잃고 있다. 중학교부터 제주시 평준화지역 고교를 목표로 성적과의 전쟁을 펼친다. 대학에서는 등록금과 생활비 마련을 위해 아르바이트와 수업을 병행한다. 졸업이 앞둔 이들에게 취업은 벽이다. 취업 선택의 폭이 좁은 청년들이 선택한 길은 공무원. 뚜렷한 목표를 잃은 공무원 시험에 빠진 제주청년들. 그럼에도 꿈을 꾸며 달려나가는 청년들이 있다. 그들이 바라보는 88만원세대와 기성세대가 바라보는 88만원 세대의 모습을 4차례 걸쳐 다룬다. [편집자주]

[신년특집Ⅲ-88만원 세대] ②대졸자 취업준비 실태, 목표 상실

박모씨(31)는 1999년 제주시내 일반계 고교를 졸업하고 도내 4년제 대학에 입학한 00학번 세대다. 방학때마다 등록금과 생활비 마련에 애를 먹자 군 입대를 결심했다.

일반병사로 입대한 박씨는 학자금 마련 등을 위해 병(兵)의 신분으로 과감히 부사관을 신청했다. 2007년 중사 계급장을 달고 제대하기까지 6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제대후 대학에 복학한 박씨는 5살 넘게 차이나는 후배들과 학점 다툼을 벌인 끝에 지난해 졸업했다. 학사학위를 손에들었으나 취업의 길은 보이지 않았다. 결국 그가 결정한 길은 공무원이었다.

한 과목당 수백 페이지에 이르는 수험서적을 완독하기 위해 매일 같이 집과 도서관을 오갔다. 도서관에서 함께 캠퍼스 생활을 했던 후배들을 다시 만났다.

대학 졸업 후 3~4년이 훌쩍 지난 동기들도 보였다. 그들의 책상 위에는 대부분 비슷한 책이 놓여있었다. 다름 아닌 공무원 시험에 대비한 수험서적들이었다.

반면, 2년제 대학에 진학한 중,고교 동기들의 상당수를 직장에 다니며 적금도 들고 있었다. 결혼 후 맞벌이 생활을 하며 자녀까지 낳은 친구들도 눈에 들어왔다. 

4년제 대학에 대한 후회감이 밀려온 순간이었다.

입시 전문학원 이투스 청솔이 최근 발표한 '2010 고교 대학 진학률' 분석자료를 보면 제주지역 고교생의 대학진학률은 89.6%에 이른다. 학생 10명중 9명이 대학에 간다는 뜻이다.

▲ 제주도내 상당수의 대학생들은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며 생활하고 있다. 고학년이 될 수록 취업이 현실로 다가오고 목표로 공무원으로 좁아진다고 한다. 88만원 세대가 느끼는 현실이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대학 진학률이 62.8%에 불과한 서울지역과 비교해 무려 27%가량 높은 수준이다. 대부분의 학생이 취업대신 고등교육의 길로 나서면서 그만큼 학사 학위 수여자도 많아지고 있다.

제한된 취업시장에서 월 200만원 상당의 봉급을 원하는 이른바 눈 높은(?) 대학졸업자이 대거 쏟아져 나오면서 졸업과 취업이 연결되지 않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취업의 길에 막힌 20대 후반 30대 초반 젊은이들이 다시 그들만의 제한된 경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갈 곳 없는 청년들, 제주지역 '88만원 세대'의 어두운 그늘이다.

박씨는 "군제대 후 취업의 길이 열릴 것으로 기대했으나 달라진 것이 없다"며 "학과를 불문하고 졸업생들의 상당수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실제 박씨처럼 도내 대졸자의 상당수는 공무원 시험에 몰두하고 있다. 안정된 직장에 소위 명문대 출신이라는 학벌 등의 영향이 없다는 점이 그들에게는 매력이다.

과거와 현재의 9급공무원은 차원이 다르다. 2011년도 제주지방 공무원 선발시험에는 101명 모집에 무려 2340명이 지원했다. 제주대학교의 한해 졸업생보다 많은 규모다.

제주시 행정직이 경우 8명 모집에 646명이 지원하며 80.7대1의 최고 경쟁률을 기록했다. 탈락을 맛본 2200여명의 수험생 중 상당수는 올해 다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는 것이 박씨의 설명이다.

박씨는 "4년제 대학 졸업장을 받아도 취업의 문은 좁고 선택의 폭도 제한적"이라며 "차라리 취업률이 높은 '2년제 대학을 졸업했으면' 하는 후회도 든다"고 말했다.

▲ 제주도내 도서관을 가면 대부분 수백페이지의 두꺼운 책을 펴내놓고 공부를 하고 있다. 대부분 공무원을 준비하는 청년들이다. 시험에 탈락한 청년들은 상당수는 이듬해 다시 공무원 시험에 도전한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1987년생 06학번인 정씨(26)씨는 졸업 대신 휴학을 선택한 케이스다. 취업에 필수 요소인 이른바 스펙을 쌓기 위해 2010년 6월 휴학을 결심했다.

영어 정복을 위해 호주로의 워킹홀리데이를 목표로 세운 것이다. 유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1년간 아르바이트를 하며 수백만원을 손에 쥐었다.

그런 그가 '스펙보다 스토리가 중요하다'는 교수와 선배들의 말에 힘을 얻어 유학 꿈을 접고 취업을 결심했다. 그러나 취업의 목전에서 그가 접한 현실은 여전히 스펙이었다. 

정씨는 "어학연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가 취업으로 눈을 돌렸다"며 "스토리도 중요하지만 스펙은 여전히 취업을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말했다.

이어 "정작 직업을 정할 때도 본인의 생각보다는 주변인들의 인식이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다"며 "그래서 준비하는 것이 다들 공무원시험이다. 그런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고 밝혔다.

정씨는 "하고 싶은 일을 접어두고 부모님이 공무원을 요구해서 시험을 준비하는 친구도 있다"며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고 노력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졸업을 1년 앞둔 정씨는 스포츠경영관리사 자격증을 따고 대한축구협회 K리그의 명예기자로 1년간 활동하는 등 다양한 경험을 쌓고 있다.

정씨는 "졸업과 함께 스포츠관련 업체에서 일할 것"이라며 자신있게 말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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